보배로운 산 돌 예수를 따라
Notes
Transcript
베드로서를 함께 나누어 가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이 서신서를 읽게 될 수신자에 대한 이해입니다.
1:1절에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 지금의 터키 지역에 흩어진 나그네들 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받아 들이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하나로 인해 국가와 사회, 이웃으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핍박과 박해를 당하고 이웃으로부터는 외면을, 사회로부터는 고립을 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현실에서 먹고 사는 문제와 삶과 죽음의 위기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왜 지금 이런 고난을 당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난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으며 피하거나 거부할 수는 없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오늘도 던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초기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당시의 현실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 한 수준에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삶은 그 때 보다 더 복잡하고 난해한 것 만은 사실입니다. 육체적인 고통은 그 때보다 덜하다 해도 영적으로 신앙적, 양심적으로 더 힘든 시대를 살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의 정체성을 바르게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서신서를 통해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는 흩어진 나그네들의 정체성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하나님 백성으로, 더 나아가 하나님 자녀로 인식시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몇가지 독특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4절에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5절에는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라
6절에는 보배로운 모퉁잇돌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9절의 말씀과 10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긍휼을 받은 자, 왕같은 제사장 등의 표현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 베드로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요?
4절에서 말씀하는 산돌의 의미를 함께 보겠습니다.
산 돌은 살아 있는 돌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에서는 산 돌 앞에 수식어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보배로운. 보배로운 돌이라고 하면 그것은 보석입니다. 그 보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살아 있는 돌에 대한 생각을 모퉁이돌 머릿돌로 확장 시키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돌’로 비유한 말씀들이 여러 곳에서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21장 42절에서는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이라 비유하고 있고,
고린도전서 3장 11절에서는 예수님을 건물의 기초석으로 소개하고 있고,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서는 예수님을 광야에서 물을 낸 신령한 반석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구약 다니엘서 2장 34절에서는 느부갓네살 왕이 본 큰 신상을 부숴뜨린 ‘뜨인 돌’을 말하는데 그 뜨인 돌이 바로 예수임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배로운 살아 있는 돌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의미의 말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배로운 산돌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는 버린 바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간혹 유투브에서 보석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곤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냥 돌인데 보석을 찾는 사람들은 그냥 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돌을 가져와서 가공을 하니까 영롱하게 빛이 투과되는 값비싼 보석인 것을 보게 됩니다.
보배로운 산 돌을 버린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배로운 산돌, 보석임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의 길이 있는지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길을 보여 주어도 그 길이 생명의 길인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예수님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보이시고 권위의 말씀을 전하실 때 사람들은 오히려 가지려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향해서는 격렬하게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이야기하고 그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떠났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기 원하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십자가를 지고 싶으며 거기에 달리기 원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십자가, 고난 이런 거 말하지 말고 기적, 도덕적인 좋은 말, 세상에서 이길 수 있는 그런 말들, 세상에서 화려하게 일어날 수 있는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대해서 우리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오심은 도덕적인 것을 깨우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네 구원의 길, 영원한 생명의 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길, 고난이 눈 앞에 보이는 길입니다.
네 맞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이 따릅니다. 세상과 연합 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길입니다. 모든 사람이 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아니라고 말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믿으면 고난이 빤히 보여요. 현재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아요.
신앙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하고 있어요. 그럼에도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런 것이 사람들의 버림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버린 산 돌을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보배로운 살아 있는 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5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여기에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제 너희도 그 산 돌 같이 신령하게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령하게”라는 말은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신통하게 그런 말이 아닙니다. 어떤 영적인 신령함이 아닙니다. 흠없고 순전한 정결함,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버린 산 돌을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거룩하고 흠없는 살아 있는 돌로 만드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와 교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버림을 받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하나님의 자녀로서 담대하게 인격적인 만남의 교제를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에게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큰 복을 주시고 안전을 보장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정도의 복은 누려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왜 하나님께서는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그 길, 세상과 구별되어져야하는 그 길을 가도록 허락하셨는가? 입니다. 우리에게 주실 영광과 승리의 면류관이 있다면 지금 주시지 않고 오히려 힘든 고난의 삶 뒤에 그것을 허락하고 계시는가 입니다.
이 질문에 답이 5절에 있습니다.
네, 제사장으로 만드시기 위함이십니다.
본문 9절에도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강조하였다기 보다는 하나님께 나가는 제사장 자체를 말하고 있습니다. 흠없고 거룩한 제사장을 말합니다.
핍박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현실이 고난이지만 그 고난을 회피하거나 타협하게 되면 거룩한 제사장으로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인내하고 견디야 합니다.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세워져 나가야 베드로가 말하는 제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9절의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왕 같은 제사장.
이것은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왕이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서 만국을 통치하며, 동시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자입니다.
본문을 보면 베드로서를 읽게 될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이 확장되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땅에 쓸모없이 죽어 있는 돌이 하나님의 작정하심으로 선택되어져 살아 있는 돌이 되어졌습니다. 비록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은 보배로운 돌로 그리고 왕으로 제사장으로 계속적인 신분 상승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갈 때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현실의 아픔과 고난과 슬픔과 힘듦을 이겨낼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감히 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할 수 있고 세상사람들은 이겨 낼 수 없는 고간을 우리는 이길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신분 상승입니다.
본문 6-7절입니다.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모퉁이의 머릿돌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모퉁이 돌은 제일 먼저 놓여지는 돌입니다. 건축물의 기준이 되어질 뿐만 아니라 다른 돌들의 기준이 되어집니다. 모퉁이 머릿돌이 세워진 다음 그 다음에 다른 돌들이 차례로 연결 되어지면 놓여집니다. 또한 이 돌은 건물을 지지하는 돌입니다. 모든 다른 돌들은 그 위에 놓여지며 그 돌의 도움을 받습니다.
우리가 왕으로 거룩한 제사장으로 되어지는 것은 모퉁이돌 옆에 세워질 때입니다. 아무리 보배로운 살아있는 돌이라 할지라도 모퉁이 머릿돌 옆에 붙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길에 있는 돌 그 이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퉁이 머릿돌에 붙게 되면 그 돌은 건물의 일부가 되어집니다. 그리고 결국 건물이 되어집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예수님께서 건물의 머릿돌이 되셨고 그 다음으로 놓여진 사도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확장해 놓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도 거룩한 성전의 한 면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베드로는 산 돌이 되셔서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나라를 세워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들도 하나님의 집을 세워가라고 권면합니다. 5절에서 말씀한 산 돌은 원어로 보면 복수형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예수님 혼자 만들어 가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스스로 건축물의 기준이 되어 주셨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 자녀로서 하나의 돌이 되어 세워지게 될 때 또 다른 성도가 내 옆에 하나님 자녀로 세워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함께 하나님의 집을 세워가라는 말씀입니다. 벽돌 하나만으로 집을 세울 수 없습니다. 여러 개의 벽돌이 쌓이고 쌓여서 집이 만들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나라를 함께 세워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나라의 모퉁이 돌이 되셔서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반석으로 서 계시고 그 위에 우리 성도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우리가 함께 주님의 나라를 세워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가 세상에 진리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전파하며 살아가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40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우리 연합 장로교회 안에 성도님 한분 한분이 주어진 세상 속에서의 삶을 잘 인내하시고 견디시고 이겨 내시면 먼저는 내가 성장해 나갑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서가게 됩니다.
머릿돌로 세워진 예수님 옆에 지금 여러분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내 옆에 계신 성도님이 세워져 계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