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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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요나단과 다윗의 언약이 보여주는 하나님과 나의 언약이 어떤 것인지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을 가면서 생긴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피신하는 상황이 얼마나 급했는지 다윗과 다윗을 따르는 군사들은 먹을 양식 하나 준비하지 못했고, 무기조차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당시 제사장인 아히멜렉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양식과 무기를 얻게됩니다. 그런데 아히멜렉이 준 떡은 진설병이라는 성전에 비치되어 있는 떡이었습니다. 이 떡을 다윗이 먹을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 됩니다. 또 하나의 궁금증은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자신이 사울의 명령을 받고 왔다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도덕과 윤리라는 측면으로 해석하려하면 이 본문이 풀리지가 않습니다. 이유는 도덕, 윤리라는 것이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말자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윤리와 도덕에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도덕과 윤리를 지키기 위해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세우시기 위해 일하실 뿐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도덕군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다윗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윗 편에 서 계십니다. 따라서 누구든 다윗을 해하고자 한다는 것은 그가 곧 여호와의 뜻을 가로 막는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대적이 누구인가요?
나의 길을 막는자가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막는 사람이 대적입니다.
이 사건에서 우리는 율법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떡은 제사장만 먹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제사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사장 아히멜렉은 그 떡을 다윗에게 주는 것이며 다윗은 왜 그 떡을 받는 것입니까? 그리고 과연 이것이 율법을 범한 것으로 봐야 합니까?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 때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습니다. 이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님에게
2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말을 합니다.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은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이라며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에 다윗이 행한 일에 대해서입니다.
3-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예수님의 말씀은 다윗의 행위가 결코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행동이나 아히멜렉이 거룩한 떡을 다윗에게 준 것이 결코 율법에 위반된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말씀임을 생각해 보면 본문을 통해서 율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율법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가 쉽습니다. 조금 보수적이라고 하는 교단에서는 주일에는 음식을 사먹으면 안된다 돈쓰면 안된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음식을 사먹는 것이 옳으냐 사먹지 않은 것이 옳으냐라는 판단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진정한 정신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문제로 시비를 건 바리새인들에게 7절에서 말씀합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다고 해서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율법의 조항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율법의 조항 하나하나를 지키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며 그것을 어기면 율법을 어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은 한 개의 조항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율법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즉 제사라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 순종이 아니라 자비를 행하는 것이 순종이며 율법을 따라 사는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이 지향하는 것은 자비라는 사실입니다. 율법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는 것이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법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라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얻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만약 법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셨다면 우리 중 누구도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멸망에 처하게 될 뿐입니다, 이것을 아는 성도라면 법이 적용되지 않음에 대해 참으로 다행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성도가 서로 법을 기준으로 하여 판단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스스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있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이 지향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완벽히 드러내기 위해 오셨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자비를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모임인 교회에서 증거되고 드러나야 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다같이 하나님의 용서하심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답게 비판과 판단보다는 용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