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나의 언약

사무엘상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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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들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또 많은 성도님들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부분적으로 알고 계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삶의 지침서, 혹은 법전으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잠언서나 전도서를 읽으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입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교훈적으로 말하고 있거든요.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기록된 말씀이 아닙니다. 또 성경은 등장하는 인물들을 위대한 인물로 소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신앙의 초기 당시 들으셨던 설교를 생각해 보시면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위인들에 초점을 맞춘 설교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이런 삶을 살았으니 우리도 요셉과 같은 인물이 되어야 하고 모세는 위대한 지도자이니 위대한 지도자의 면면을 닮아야한다. 성경의 인물들이 설교즤 주제로 많이 등장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신 믿음의 인물들이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은 그들도 죄인임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소개 하는 책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말씀으로 인간을 찾아 오신 이야기, 그리고 다시 오실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 자녀의 구원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약속의 책입니다. 구약, 신약은 옛언약, 새언약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언약 관계로 맺어져 있고 이 언약관계는 파기 할수도 없고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성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 관계에서 하나님은 무한하신 사랑으로 하나님 자녀된 자들을 끝까지 이끌고 가실 것임을 말씀을 통해 확인시켜주시고 증언해 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오늘 본문 20장은 다윗과 요나단의 아름다운 관계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끈끈한 우정 그 이상의 사랑의 관계가 둘의 언약의 관계로 발전되어져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 둘의 우정 관계가 너무도 아름답고 다른 사람들의 귀감이 되기 때문에 기록을 했을까?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 자녀의 언약관계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나단과 다윗의 관계는 신분적인 부분에서부터 극심한 차이가 있습니다. 요나단은 최고의 권력의 집안에서 태어난 이스라엘의 이인자이면서 차기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그의 집안을 아는자가 없을 정도로 낮은 자의 집안 사람이었습니다. 현재는 이인자인 요나단의 왕권을 위협하는 대적자입니다.
그렇지만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서로 대립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이들은 언약관계를 맺었습니다.
사무엘상 18장 3-4절입니다.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우정의 관계가 아닙니다. 우정 관계는 언제든지 깨질수 있는 관계입니다. 중요한 것은 언약관계였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관계는 누구 하나의 일방적인 파기로 깨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쌍방의 합의로만 깨질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18:4절에서 요나단은 다윗에게 자신의 겉옷, 군복, 칼, 활 심지어 띠 까지 다윗에 주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보호도구를 다윗에게 준 것입니다. 상대방을 자신의 생명 같이 사랑하는 우정의 관계이면서 언약의 관계로 묶인 두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14 너는 내가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게 베풀어서 나를 죽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이 말은 다윗이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부탁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인자입니다.
인자라는 말은 변함없고 한결 같은 사랑입니다. 변치 않는 사랑, 진심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대부분 인자를 베풀어 달라고 하면 이것은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구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구하는 인자함은 대등한 관계에서의 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의 위치로 내려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언약관계입니다.
그러면 다윗과 요나단의 언약관계가 유지되어지고 지켜질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21절입니다.
21아이를 보내어 가서 화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지니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둘의 언약관계의 근거가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함”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둘의 언약과계의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 그것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인격적이십니다. 끝까지 책임지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맺어 주신 언약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인격적입니다. 이 말은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고 무조건적으로 지키라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어 주신 당신의 자녀들에게 그 명령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이해시키시고 기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분별하지 못합니다. 아니 분별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내 수준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한다고 심판의 잣대로 먼저 판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창조주로서 피조물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징계하시고 심판하시고 관계를 끊어 버리셔도 우리는 할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행하심에 반문하고 저항한다 할지라도 그것조차도 받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인격적으로 찾아오셔서 설명해 주시고 기다리시고 끝까지 인도하시는 분이 나와 언약을 맺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실수와 허물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외부적인 그 어떤 것도 언약관계를 파기 할 수 없습니다.
조금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언약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쌍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인도하시는 한 결코 파기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와 맺어주신 언약관계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담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놀라운 언약관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친히 피조물의 영역으로 찾아 오셨음을 말씀합니다.
우리의 처지에, 우리의 환경에, 나와 같은 똑같은 피조물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빌립보서 2:6-8절입니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신을 뜻을 아시고 그 뜻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시는 하나님 자신 이십니다. 인간은 무지하여 하나님을 이해하지도 볼수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또 인간의 몸이 필요하셨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의 언어와 행동과 삶의 방식으로 그 환경에 맞게 하나님 자신의 뜻을 말씀하셨고 알리셨습니다.
왜인가요?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관계를 끝까지 이끌어가시기 위함이십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언약관계에 있는 우리, 구원을 베푸신 우리에게 행하시기 위함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은 우리를 어떻게든 일꾼으로 쓰시기 위해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는 소위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일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아닙니다. 말만 일꾼인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솔직히 그런 삶을 살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믿음으로 말하고는 있습니다.
네 그런 믿음이라도 있어야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이유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와 교제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셔서 한분 하나님과의 영원한 인격적인 교제를 위해서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우정을 넘는 언약관계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다윗은 왕위에 올랐을 때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을 찾아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는 자로 그의 지위를 회복시켜 줍니다.
여러분!
지나 온 시간을 생각해 보시면 어느 때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들때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시기를 지나왔습니다. 이렇게 이 자리에 있습니다. 모두가 다 깨끗하게 해결되지 않았을지 모르겟습니다. 멍자국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 멍자국을 보면 그 때의 후회와 미련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이기고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내 힘도 능력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힘이고 능력이었으며 지혜였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변함이 없으실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이끌어 가시는 작정하심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이 지금 하나님과 내가 맺어진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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