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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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 본문: 사도행전 13:13-14 찬송: 301장

<말씀의 문을 열며>
2015년 개봉된 영화 '히말라야'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한 명의 산악인이 동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던 사건을 다룹니다. 히말라야 등반 도중 한 젊은 대원이 목숨을 잃었을 때, 엄홍길 대장과 팀원들은 극한의 추위와 위험 속에서도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다시 히말라야로 향했습니다.
이들에게 히말라야는 단순한 도전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은 서로의 생명을 책임지는 동행의 현장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흔들릴 때면 다른 이가 붙잡아주었고, 누군가 지칠 때면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며 올라갔습니다. 진정한 등정은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사도행전 13:13-14 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복음이라는 더 높은 산을 오르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도 때로는 동료의 이탈로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었고,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의 동행이야말로 이 위대한 여정을 완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특별히 2025년을 앞두고 우리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라는 표어를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이 부흥의 여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 안에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함께 가는 진정한 동행의 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동행이 무엇이며,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동체를 허락하셨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령의 능력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행 중에 겪는 위기와 성령의 인도하심>
본문 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3:13 NKRV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이 짧은 한 구절의 말씀 속에는 선교 여정 중에 겪은 뜻하지 않은 위기가 담겨 있습니다.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라는 표현입니다. 이 요한은 바로 마가라고 하는 요한입니다. 그는 바나바의 생질이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일꾼이었습니다.
그가 왜 갑자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는지 성경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선교 여정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소아시아의 험난한 지형과 위험한 도적들, 낯선 이방인들과의 만남 등… 이 모든 것이 젊은 요한에게는 너무나 큰 부담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이와 비슷한 순간들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정적으로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에 등록을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교회에 나오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포기하는 분들이 계시기도 합니다. 교회 봉사를 시작했지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중도에 그만 두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교회에는 이러한 일이 없지만,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러한 일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때때로 마가 요한과 같은 연약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바울과 바나바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마가 요한의 이탈이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욱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전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동행은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가 아니라, 오히려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입장에서는 왜 요한과 같이 끈기가 없는 사람을 데려왔을까 하며 속상해 했을 지도 모릅니다. 바나바 역시 자신의 사촌이 중도에 선교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려서 바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며 나아갔습니다. 한 사람이 지칠 때 다른 사람이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그들이 의지한 것이 단순히 서로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었다는 점입니다. 13절 앞부분에서 “바보에서”라는 표현은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이 바보에서 바울은 총독 서이고 바울에게 복음을 전했고, 처음으로 ‘사울’이 아닌 ‘바울’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다순한 이름의 변화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워진 사역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바울은 겸손해지고, 낮아졌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로줄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마가 요한처럼 도망가고 싶을 순간이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요한이 떠났던 것처럼 예상치 못한 순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서로를 붙들어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줍니다. 후에 마가 요한은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는 편지에서 우리는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가는 나의 사역에 유익하니”(딤후 4:11)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이루시는 회복의 역사입니다.
<복음 확장을 위한 동행의 실천>
본문 14절을 보면
사도행전 13:14 NKRV
그들은 버가에서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마가 요한의 이탈이라는 어려움을 겪은 후에도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해서 전진했습니다. 그들이 향한 곳은 비시디아 안디옥이었습니다. 이곳은 지금의 터키에 속한 곳으로 험준한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가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였기에 이 어려운 여정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14절에서 그들이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회당에 앉았다는 물리적인 행위 이상의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새로운 복음전파의 전략적 시작이었습니다. 회당은 당시 유대인들의 중심 공간이었고, 하나님을 찾은 이방인들도 모이는 장소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의 지혜로운 협력을 보게 됩니다. 바울은 뛰어난 지식을 가진 율법학자였고, 바나바는 ‘권위자’라는 뜻처럼 사람들을 격려하고 화목케 하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고유한 은사를 조화롭게 사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어떤 이는 말씀으로, 어떤 이는 섬김으로, 어떤 이는 찬양으로, 어떤 이는 기도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갑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은사가 조화를 이루어 사용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후 사도행전의 계속된 기록을 보게 되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놀라운 복음의 열매가 맺힙니다.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행 13:49)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성령 안에서 서로를 신뢰하며 협력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들의 사역이 단순한 개인의 사역이 아닌 공동체 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공동체성의 상실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되어 집니다. 한 사람의 능력이나 열정으로만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은사를 인정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동역할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마치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경험한 것처럼, 우리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오늘 우리는 바울과 그의 동행자들을 통해 진정한 공동체의 의미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들을 때로는 이탈자도 있었고, 때로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성령 안에서 서로를 신뢰하며 위대한 복음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8 은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우리가 서로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비판하기보다, 사랑으로 덮어주고 서로를 세워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년 2025년 우리 교회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라는 비전을 세우고 나아가려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자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이 약속의 실현은 결코 한 사람의 능력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은사로 협력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랬듯이, 우리도 서로를 신뢰하며 나아갑시다. 각자가 받은 은사가 다르고, 섬기는 방식이 달라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진혜입니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동행할 때 성령께서 우리교회를 통해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이 부흥의 역사에 함께 동참하시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처럼 우리도 서로를 위하고 격려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한 사람이 연약해질 때 다른 이가 붙들어주고, 누군가 지칠 때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사오나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감당하게 하옵소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다르지만, 그 은사들이 조화를 이루어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성령의 능력으로 채우사 복음 전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다가오는 2025년,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예배가 형식에 그치지 않게 하시고, 성령의 임재 가운데 참된 부흥을 경험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통해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우리 교회의 환우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병상에 누워계신 분들, 치료받고 계신 분들의 아픔을 주님께서 친히 만져주시고 치유하여 주옵소서.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주님의 위로와 힘을 더하여 주시고, 우리 모두가 한 마음으로 환우들을 위해 기도하며 돌보는 공동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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