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2 설교
Notes
Transcript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우리 공동체와 캠프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러 나아오신 여러분들에게 주님께서 큰 은혜로 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드디어 준비팀 첫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30차 하임 캠프를 섬기기 위해 헌신된 마음으로 나아오신 여러분들을 정말로 환영합니다.
사실 이번 캠프를 섬기겠다고 신청해주신 여러분들은 정말 큰 결심을 하고 오신 분들일거라 생각됩니다.
이번에는 캠프가 평소보다 일찍 진행되잖아요? 그러다보니 준비팀 기간에 시험도 끼어있고, 심지어 곧 새내기가 될 여러분들은 입시 시험도 있으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팀을 신청해주셨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분들께서 이 캠프를 향한 마음, 또한 하나님과 그분께서 주신 이 공동체를 향한 마음이 크다는 증거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번 캠프 준비팀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아마 어떤 분들은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었다! 라는 마음으로 바로 신청하셨을 수도 있구요, 어떤 분들은 할까말까 여러 고민들을 하다가 신청을 하셨을 수도 있구요, 또 어떤 분들은 늘 했던 그대로 이번도 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신청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마음이든, 아마 여러분들 모두 이번 캠프를 준비하며 마음 한 가운데 어떤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캠프를 만들고 싶다. 참여자들이 어떤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다양한 생각들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첫 모임을 시작하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는지 함께 살펴보며 우리의 첫 시작을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호세아 말씀입니다. 사실 호세아라는 말씀이 소선지서이기도 하고, 그렇게 자주 언급되는 말씀이 아닌 편이긴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에게는 처음 듣는 말씀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아마 저희 하늘고 분들은 그래도 익숙한 말씀이시라 생각이 됩니다.
제가 자주 말씀을 전하면서 인용을 하기도 하는 성경이기 때문이죠.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요, 호세아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명령을 하시는데요, 놀랍게도 음란한 여인을 만나 음란한 자녀를 만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인을 만나는데요, 호세아는 고멜과의 사이에서 세 명의 자녀들을 낳습니다.
첫째는 이스르엘, 둘째는 로루하마, 셋째는 로암미였죠.
그런데 성경 많이 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성경에서 인물의 이름은 꽤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도 마찬가지였죠. 첫째 이스르엘은 하나님께서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에게 갚으시겠다는 의미였는데요,
요 내용은 우리가 잠시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호세아 당시가 언제냐면요, 북이스라엘 나라의 여로보암2세 왕의 시대입니다.
이 왕이 어떤 왕이냐, 예후왕의 증손자에요. 그러면 예후는 어떤 왕이냐,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아합 왕과 그 자손들을 모두 죽인 왕입니다.
하나님은 예후 왕이 모든 일을 끝내고 나서, 그에게 그의 자손 4대의 왕위를 지켜주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원래 북이스라엘이 반역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예후 밑으로 4대는 아주 평화롭게 왕위를 넘기게 되죠.
그리고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여로보암 2세의 아들이 스가랴의 때가 되어서야 4대의 약속이 끝나고 그는 반역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호세아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부분인거에요. 예후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그랬기에 예후가 했던 것들을 그들이 그대로 당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 앞에 죄악을 지속적으로 행했음을 꾸짖으시는 말씀이겠죠.
그리고 이어지는 로루하마는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로암미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었죠.
이 모든 것은 어떤 메시지냐, 너희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악을 행하고 있다! 나는 너희를 벌할 것이다! 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호세아가 결혼한 고멜이라는 여인이 어떤 여인이에요? 음란한 여인이에요. 그러다보니 계속 외도를 하는겁니다. 남편이 아니라 다른 남자와 함께 있고 하는거에요.
이건 무슨 상황이냐, 결국 고멜의 모습이 누구의 모습인거에요?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호세아에게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그들의 죄를 벌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의 구절은 어떤 내용이었죠? 우리가 계속 보았던 말씀과는 조금 대조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한번 보죠. 10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대요.
이 말씀,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지 않나요?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의 의미는 뭐에요? 티끌도 셀 수 있으니까 너희 자손도 셀수 있을 정도로 줄게. 이건가요? 아니죠.
반어법이에요. 땅의 티끌을 셀수 있다면, 네 자손도 셀수 있을 텐데, 티끌을 셀수가 없으니, 그정도로 많은 자손들을 주겠다! 라는 의미이죠.
즉 10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전에 아브라함과 맺었던 처음의 그 언약을 떠올리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어떤 내용이 등장하죠? 전에 내가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다시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전 9절에서 나오는 말씀이죠. 너희는 이제 내 백성이 아니다. 너희가 너무나도 죄를 많이 저질러서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호세아의 두 자녀의 이름을 통해서 하신 말씀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한구절만에 반전되어 나타나는 것이죠. 내 백성이 아니라 했지만, 이제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회복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죠.
그리고 이어지는 11절에서는 또 어떤 말씀을 하시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건 어떤 말씀일까요. 가장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인다는 것입니다.
서두에 제가 이 말씀이 어떤 배경에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북이스라엘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나라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있을 시기입니다.
그리고 여로보암2세의 시기는 이미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나뉘어진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입니다.
심지어 남과 북이 전쟁도 여러번 치른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리 남과 북이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남과북이 함께한다는 것은 거의 전쟁으로 한쪽을 무너뜨려야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인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이겠어요? 한쪽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둘이 함께라면, 결국 온전한 통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통합된 나라에 한 우두머리가 세워진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말씀을 들었다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장군 하면 대부분이 이순신을 떠올리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통일된 나라의 우두머리는 바로 다윗을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이미지와 함께 연결되어 떠오르는 것이 한 가지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다윗 언약입니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언약은 어떤 언약이죠? 하나님께서 다윗의 나라를 영원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전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더해 이제는 다윗의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떠오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가 다시 다윗의 때와 같이 견고하게 이전 무너졌던 그 땅에서부터 올라와 번성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본문 2장 1절에서 말씀하시죠. 자녀들의 이름을 암미와 루하마라고 바꾸라고 하십니다.
앞서 처음 부여되었던 이름에서 뭐가 바뀐거죠? 로암미에서 암미로, 로루하마에서 루하마로 바뀌었죠.
앞에 ‘로’라는 단어가 빠졌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이 로라는 것이 뭐냐면, 부정을 의미하는 접두어입니다. 영어로 하면 Not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Not 이 빠진 거니까 어떻게돼요? 반대의 의미가 되는 겁니다. 내 백성이 아니다에서 내 백성이다가 되고, 너희를 긍휼히 여기지 않겠다에서 긍휼히 여기겠다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역전의 엄청난 반전을 허락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회복을 주신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런데요, 이 회복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시면서, 왜 이전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을 언급하셨을까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 언약들을 잊지 않으셨고, 계속 너희를 위해 일하겠다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 그리고 다윗에게 약속했던 것 잊지 않고 있다. 너희를 모래와 같이 번성하게 만들 것이고, 너희 나라를 강대하게 만들 것이다.
이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둘째는, 하나님께서 기억을 하셨다면, 다른 한쪽 누구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예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백성들은 이 언약에 대한 말씀을 상기하게 되면,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왜요? 언약을 지키지를 못했잖아요.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언약을 하실 때, 단서를 다신 것이 있었죠. 무엇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따랐나요?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의 북이스라엘 역시도 지속적으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모습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이렇게 언약을 잊고 죄악된 행동들을 행했을까요?
그것은 백성들에게 이미 언약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고 깨어진 것이라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두번째로 보았던 언약, 다윗 언약을 보시면, 그 주된 조항은 하나님께서 다윗 자손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어때요? 물론 왕위가 이어지고는 있다만, 다윗의 나라 같이 강대한 나라로 보기는 거리가 멀어요. 오히려 여로보암 2세의 북이스라엘이 더 강대해 보입니다. 이 당시만 해도 최고의 영토를 차지했었거든요.
게다가 시간이 좀더 지나게 되면, 어떻게 되죠? 나라가 망해버려요.
아마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어졌다는 생각이 그 마음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나라 백성들은 이미 다윗의 자손을 섬기지도 않으니 더욱 그랬겠죠.
사실 그러면 어떤 결말이 있어야 할까요?
우리가 사회에서 어떤 계약을 맺어도 그게 정상적이지 않게 끊어지게 된다면, 어떤 일이 따라오나요? 귀책사유를 따져서 위약금을 지불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다못해 핸드폰 사는 것도 그렇게 묶여있잖아요. 그러면 하나님과의 언약은 어떻겠어요?
당연히 우리는 그 귀책사유를 가지고 위약금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드려야 합니다.
무슨 의미에요? 죽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1장 앞부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 안돌보겠다 너희 나랑 상관없어! 라고 하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거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의 구절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회복의 말씀을 하시는겁니다. 회복 뿐만 아니라 번성의 말씀을 하시는거에요.
사실 이것만 보아도 엄청난 놀라움의 연속인데, 우리가 또 살펴볼 것이 있어요. 그건 뭐냐면, 9절에서 10절을 넘어갈 때 잘 보세요.
분명히 하나님은 9절까지 내 백성 아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단 말이에요.
그런데 딱 10절 넘어가니까 그러나라는 접속사 한마디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어버려요.
원래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려면 뭔가가 있어야 해요. 그렇죠? 귀책 당사자가 다시 계약 이행 의지를 보여주고, 내가 어느정도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를 해줘야 뭐라도 바뀔 수가 있죠.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는? 없습니다.
누가 만화방에서 만화책 중간을 찢어간것도 아니고, 갑자기 아무것도 안했는데, 하나님께서 태세전환을 하시는 겁니다.
이건 뭘까요. 뭘까요? 대체.
바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향해서 책망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것들이 죄이며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아야 함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다시금 우리에게 사랑으로 회복을 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는 어떠한 조건도 붙지가 않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맨 처음 하나님과 언약한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은 조건이 필요했어요. 말씀을 잘 들으면, 내 백성이 되면, 내가 이렇게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조건있는 것도 지키지 못했는데, 그 이후로 아예 조건을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안했는데, 갑자기 회복을 시켜주신다는 거에요.
사실 이건 세상에서는 불가능해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죠.
우리가 또 집중하여 볼 것이 있는데요, 바로 10절 마지막 부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뭐라고 칭하시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칭하십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들로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들이라는 것은 다른 백성, 종 이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자리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봅시다. 여러분들이 살면서 부모님한테 몇번 잘못했나요? 아마 셀수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님은 왜 아직도 부모 자녀 관계를 유지하시죠? 부모님한테 잘하지도 않는데 돈도 들고 이런 관계를 지속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데 왜 유지하시겠어요? 그게 사랑이잖아요. 사랑하니까, 내 자녀니까 내 말을 잘 들을 것 같지도 않지만, 밥도 주고 옷도 입혀주고 잠도 재워주고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못 행하고, 앞으로도 잘 할 것 같지도 않지만, 나 아들이니까, 내 딸이니까. 사랑으로 그들을 안아주시고 다시 일으켜세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실 탕자의 비유도 그것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죠. 아버지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 한게 없어요. 오히려 돈만 날리고 잘못만 행했죠.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바로 달려가서 끌어안고 아들로서 지위를 회복시켜준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이고, 우리를 회복시켜주시는 일하심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들을 11절에서처럼 통일된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요?
여러분들이 중간사를 공부하셨다면, 마카비라는 사람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그 사람은 로마에 의해 지배받던 이스라엘을 군대를 일으켜 로마를 몰아내고 독립국가로 만듭니다.
그럼 이 사람의 국가를 말하는 것일까요? 유다와 이스라엘이 함께 모여 우두머리를 세웠다잖아요. 마카비 아닐까요?
그렇죠. 마카비는 얼마 안돼 다시 로마에게 망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구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바랐던 세상의 국가가 아니었죠. 바로 그리스도 메시야를 중심으로 이스라엘과 유다, 더 나아가서 이방인들까지도 모여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하늘나라를 세우시며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그의 아들로 다시 부르시고, 그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그 나라의 주민이요, 아들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준비하는 캠프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캠프로 나아오는 우리들의 마음 가운데 이러한 마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나는 참 너무한 죄인이다. 나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바로 전 캠프에서 말씀드렸던 것 너무 지키지 못했어.
내가 이 죄를 씻기 위해서라도 나는 여기서 무언가를 열심히 할거야.
내가 여기서 많은 것들을 이뤄내야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거야. 내가 이 캠프를 잘 행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명을 할거야.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뭘 원하셨죠?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모습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아직 더러운데도, 뭐가 바뀐게 없는대도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우리 다시 호세아에게로 가볼까요? 그의 아내 고멜이 계속 다른 남자와 외도를 했었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러한 상황에 놓인 호세아에게 하나님은 한가지 명령을 주십니다.
어떤 명령일까요? 율법에 적힌대로 찾아가서 돌로 쳐 죽여라 라는 말씀일까요?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하나님의 명령은 그 여자를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값을 치르고 사오라고까지 하시죠.
이 말씀에서 호세아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고멜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도 외도하는 여인인 우리를, 이제 안그러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값을 치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값은 하나님 스스로가 십자가에 달려 흘리신 핏값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 어떤 것도 조건으로 삼으시지 않습니다. 그냥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으로 받으십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들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괜찮다고 하신 여러분을 왜 자꾸 못살게 굴고 자꾸 고통을 주고, 자꾸 힘든 뭘 하라고 시키시나요.
하나님이 됐다는데도 자꾸 뭘 하려고 하는것? 어쩌면 그조차도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이번 캠프를 시작하면서 이것 하나만 기억하시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캠프는 여러분이 행해서 만들고 하나님께서 평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우리는 그저 누리는 것 뿐입니다.
성경에 정말 수많은 기적들이 나타나지만요, 그것들 중에 단 한가지도 인간이 한 것은 없습니다. 선지자? 족장? 제사장? 아무도 안했어요.
그럼 누가 해요? 하나님께서 다 하십니다.
얼마전에 하늘고에서도 나눴는데, 그 유명한 홍해의 기적. 그 본문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모든 기적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십니다. 아니, 하나님께만 허락된 것입니다.
우리의 캠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가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들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통해 역사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저 그 일에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캠프 준비를 시작하면서, 이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캠프의 성과를 통해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을 통해, 그 일하심을 통해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캠프가 되게 해달라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캠프를 준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준비하는 과정 가운데서도 뭔가 멋지게 드러날 것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주실 은혜들을 생각하시면서 열심히 준비하시구요,
캠프의 자리에 들어가면, 온전히 그 은혜를 함께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준비팀이지만, 동시에 캠프에 참여하는 영혼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준비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놀랍게 일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 자리에서 함께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할게요. 오늘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해 주신 말씀, 우리가 고멜과 같이 죄악을 행했고, 그 과정에서 변한 것 하나 없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녀삼으시고, 놀랍게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또한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캠프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 모든 준비팀들이 함께 그 회복의 은혜를 경험하기 소망합니다. 내가 뭘 해야 이쁨받을까 생각하지 마시고, 일단 들어와서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같이 우리 모든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함께 그 승리를 누리며 즐거워할 수 있는 그런 귀한 캠프의 자리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그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든 하임 캠프 준비팀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내 모습 이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