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에 맞서기(신명기 8장 11-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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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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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사회에서 겸손은 그리 추구되는 덕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당장 서점에 가서, 인문학 서적을 조금만 찾아보더라도, 겸손에 대한 주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인문학 서적 베스트셀러 9위에 올라와 있는, 고윤 작가가 쓴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주제를 보니 이런 주제들이 있더라구요.
포용력을 갖춘 리더로 변화하는 방법, 인생의 부조리함을 넘어서는 해답, 사회의 부품이 되어버린 우리, 당신이 모르는 상상의 잠재력, 진정한 자신으로 조각되는 시간, 복수심 또한 연료가 될 수 있다, 마음의 벽인 고정관념을 허무는 방법, 당신의 자아상이 인생을 결정한다, 내면의 적과 외부의 적을 물리쳐라, 스스로에게 물으며 인생을 살아가라, 진정한 위대한 사람이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낸 사람들의 특징, 불가능한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 내가 숭배하는 것이 나를 노예로 만든다, 맹목적인 순응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등등.
이 주제들을 간략하게만 훑어봐도 알 수 있듯이, 요즘 인문학의 전제는, 인간 자체의 위대함을 전제로 하고, 내 안에 있는 그 위대함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간 자신이 위대하다는 전제하에 출발하다보니, 겸손은 그리 주목받는 덕목이 될 수 없는 것이죠.
왜냐하면, 겸손은, 인간의 위대함에 반하는 덕목처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보다는, 자신감 넘치고,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고, 멋진 차, 멋진 옷, 멋진 집을 소유하는 삶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멋처럼 여겨지는 그러한 시대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겸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덕목이라는 사실입니다.
스테판 차녹은 이렇게 말합니다.
“교만한 믿음이란 말은 겸손한 사탄이란 표현 못지 않게 모순된다”
그러므로 빛과 어둠이 섞일 수 없듯이, 겸손과 교만은 어떤 지점에서도 서로 양립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교만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교만에 대한 단어의 정의를 이해하기에 앞서서, 교만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한하시고,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살아가는데 모든 필요한 은혜뿐만 아니라, 구원에 필요한 모든 영적인 자원까지 하나님께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을 바꾸어보면,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는 자는 주리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영원히 목마른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영적인 필요는 오직 예수님께 나아가고, 그를 믿을 때에만이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육적이고 영적인 모든 필요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모든 필요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로부터 채워진다고 믿을 때, 교만해집니다.
오늘 본문 14-16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광야에서 그들을 인도하시며 물과 음식을 주신 분은 분명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17절을 읽어봅시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누구의 것으로 바꾸었습니까?
바로 ‘나’입니다.
그리고 18절을 또 읽어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 재물을 얻을 능력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고, 이같이 하심은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교만입니다.
교만은, 이처럼 육적이고 영적인 모든 필요가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는 인간이, 그 사실을 부인하고, 나 자신을 의존하는 모든 것이 교만입니다.
이 교만의 형태는 다양하게 표출됩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자신의 자원을 신뢰하는 것이 교만이기 때문에, 이런 자들은, 삶에서 더 이상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교만한 자들은, 적극적으로는 자신이 가진 지식, 스펙, 물질, 그 외의 모든 것을 자신의 공로로 인한 것으로 돌립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
또한 교만한 자들은 소극적으로는, 불신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자들은, 삶에서 기도하지 않고, 예배를 가볍게 여기며, 감사할 줄 모릅니다.
남유다의 웃시야 왕은 교만하여 오직 제사장들에게만 주어진 제사를 자신이 행하려 했습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대하 26:16)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를 나병으로 쳐서,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하셨습니다.
또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주셨지만, 교만하여져서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대하 32:24-26)
결국, 교만은, 내 삶에서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모든 행위가, 교만이 삶으로 나타나는 형태입니다.
여러분, 교만과 맞서 싸우십시오.
그리고 겸손하십시오.
겸손한 자만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하기 위해서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육적이고, 영적인 모든 필요는 하나님으로부터 왔고, 하나님에게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모든 순간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고, 기도할 수밖에 없고,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이기에, 내가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16절 말씀을 다시 읽어봅시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마시게 하시고, 먹이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너를 낮추시며”입니다.
우리의 모든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결국 우리를 겸손케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겸손해서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고자 하시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의 복을 받아누리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은 무엇입니까?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성경에 셀 수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몇 가지의 복만을 언급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대하 33:10-13)
하나님은 앗수르 군대에 의해 유다를 치셨지만, 므낫세의 겸손한 기도를 들으사, 그의 왕위를 회복해주셨습니다.
또 시편 10:17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둘째, 겸손한 자에게는,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주십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 22:4)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 29:3)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셋째,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들은 붙드시고 악인들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시 146:6)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시 149:4)
여러분,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에 따라 볼 때,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어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가장 자랑거리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하나님은,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 그래서 하나님밖에 의지할 수 없는 자, 하나님을 철저하게 바라고, 그를 사모하는 자에게 역사하심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의 강함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을 자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30절 말씀,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고칠 수 없는 치명적인 안질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고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나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9-10)
여러분, 스펙이 뛰어나지 않아도, 가진 재산이 없어도, 지금 직업이 없어도, 멋진 집, 멋진 차, 멋진 옷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약함이 우리의 자랑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 삶을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지 말고, 세상의 것들이 많아도 교만하지 마시고, 겸손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랑하십시오.
겸손이 우리의 멋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