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회개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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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보통 우리는 회개의 문제를 다룰때 개인적인 죄를 중심으로 다룹니다.
내가 어떤 죄를 지었는가, 어떤 행동으로 잘못했는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죄를 보통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한 것, 다른 하나는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지 말아야 하는데 한 죄에 더 주목합니다.
예를 들면, 남에게 화낸 것, 미워한 것, 무시한 것, 거짓말 한 것, 나쁘게 말한 것 등의 행위들입니다.
그러나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죄도 있습니다.
이러한 죄는 보통 종교적 의무와 연관된 것으로 한정하기 쉽습니다.
묵상 안하고 기도 안한 것, 예배 소홀히 여긴 것과 같이 해야 하는데 안한 것을 죄로 여깁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을 가지는 것 자체로도 큰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죄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더 넓고 깊습니다.
죄는 단순히 나의 행위나 태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피조세계와의 모든 관계를 왜곡하고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의 결과는 나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속한 모든 공동체와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죄의 뿌리에는 우상숭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을 삶의 중심에 두고 신뢰하며 의지하려는 마음과 태도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매우 싫어하시고 강하게 경고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상숭배는 결국 죄에 빠지게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왜 우리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될까요?
단지 한 개인의 욕망때문만은 아닙니다.
개인의 욕망을 조장하고, 죄를 당연시하며, 우상숭배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여기게 만든 세상의 영향도 깊이 작용합니다.
죄와 우상숭배의 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구조적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오늘 나눌 말씀인 호세아 5장 1-15 절은 죄와 우상숭배로 인해 망가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날 우상숭배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무엇을 회개하며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죄와 세상의 영향력 앞에서 참된 회개와 삶의 방향성을 발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1]
먼저 호세아서의 배경을 알아봐야 겠습니다.
예언자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때 활동을 시작한 예언자입니다.
여로보암 2세는 아합왕가인 오모리왕조 다음 예후왕조의 마지막 왕입니다.
북이스라엘의 가장 화려한 전성기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상태였습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힘이 잠시 약화되어 전쟁도 없이 평안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 2세 이후 약 30년 후 북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하고 맙니다.
도대체 무엇이 나라를 이렇게 급격하게 무너뜨렸을까요?
겉으로는 매우 부유하고 안정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속은 완전히 썩어 있었습니다.
겉은 화려했지만 안은 어둠과 타락으로 가득 찬 시대였습니다.
수많은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바알신을 숭배하며 풍요와 번영을 기원했습니다.
이때 바알 신전에는 신전 창기들이 있어 음란하게 종교의식을 치뤘습니다.
이런 의식을 통해 바알신을 기쁘게 하여 풍요를 누리려 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삶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겼다는 것입니다.
혼합주의가 퍼지며 여호와 신앙은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마음이 없는 껍데기일 뿐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빈부격차가 심해지며 돈있고 힘있는 사람들은 약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했습니다.
아모스, 호세아같은 예언자들이 이런 사회적 부패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호세아 4장 1-2 절은 그 시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사랑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저주와 사기와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다. 살육과 학살이 그칠 사이가 없다.”
북이스라엘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지만, 안으로는 썩어들어간 것입니다.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폭력과 탐욕의 전쟁터가 된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되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점차 사라져간 것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도자들의 책임이 컸습니다.
호5장 1 절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 이스라엘 백성들, 왕족들을 향해 경고하십니다.
이런 지도자들중 제사장들이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그들은 백성들의 영적 건강을 책임지는 영적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왜곡하며 백성들의 욕망을 부추겼습니다.
제사장이 오히려 백성들이 죄를 짓게 만드는 덫이자 그물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타락을 영적 간음으로 보십니다.
제사장들이 이처럼 타락했으니 백성들이 함께 타락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제사를 드린들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호5장 6 절입니다.
양떼와 소떼를 무수히 몰고와 하나님께 예물을 바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만날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들 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헌신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형식적인 종교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이미 그들 곁을 떠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배의 중심이 아니라 욕망의 도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인격적이고 경험적인 관계를 맺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할때 우리의 예배는 껍데기가 됩니다.
우상숭배와 타락이 우리의 삶을 잠식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북이스라엘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참 부유하고 번영된 세상입니다.
경제는 발전하고, 기술은 날로 진보하며, 사람들은 더 많은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사회적 불평등과 도덕적 타락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빈부격차는 점점 더 커지고, 사회적 약자들은 점점 더 소외되고 있습니다.
마치 신분차이를 태어날때부터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금수저, 흑수저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시대입니다.
부와 지위는 대물림됩니다.
지난주 100분 토론을 보니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생때부터 의대입시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재능이 있는지 고려하지 않습니다.
단지 의사라는 직업만을 목표로 삼고 달리는 것입니다.
세상은 점점 더 성공, 부, 명예라는 기준에 갇혀 사람들의 삶을 규격화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더욱더 이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를까요?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 또한 세상의 가치관과 다를 바 없습니다.
최근에 어떤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강남의 대형교회들이 세워지는 과정을 아느냐고 말입니다.
그 헌금의 출처가 대부분 강남 부동산 투기로 얻은 재산이라고 말입니다.
일부의 사례일지 모르지만 우리의 욕망 역시 세상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과연 기뻐하실까요?
베드로전서 2장 9 절은 우리가 모두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신분을 높이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세상에 전달할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지식적만 아는게 아니라, 그 분과의 깊은 관계속에서 그 분의 성품을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가치관과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이 세상에 드러나야 합니다.
세상이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의 우상에 지배되는 것을 막는 방파제가 되어야 합니다.
[본론2]
문제는 우리가 쉽게 영적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고의 나팔을 울리시고,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깨닫지 못한채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반복합니다.
5장 8절입니다.
기브아에서 전쟁을 알리는 나팔을 불어라. 라마에서도 비상 나팔을 불어라. 벳아웬에서도 전쟁이 터졌다고 경보를 알려라. 베냐민아, 적군이 네 뒤를 쫓는다.
북이스라엘도, 남유다도 나팔소리가 울립니다.
이 나팔 소리는 단순한 전쟁신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리는 경고의 소리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아람과 손을 잡아 앗시리아에 대항하려 합니다.
그러나 결국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멸망하고 맙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피하려고 오히려 앗시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둘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의 힘과 동맹을 의지한 결과는 파멸입니다.
이러한 전쟁중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일부 땅을 점령합니다.
10절에서 유다 통치자들이 경계선을 범하였다는게 바로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지파들에게 땅의 경계를 정하셨는데 탐욕에 눈이 먼 유다는 그 경계를 무시합니다.
이웃의 것을 탐하고, 서로를 착취하는 죄악의 결과입니다.
탐욕과 욕망이 자리잡으면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와 질서를 무시하게 됩니다.
결국 그 자리에는 다툼과 착취만 남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데 뭘,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말하며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파멸로 가는 길입니다.
내가 지켜야할 하나님의 경계선이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처럼 두 나라 모두 어리석은 선택을 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들의 우상숭배때문입니다.
우상숭배는 우리의 분별력을 흐려놓고, 양심을 마비시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하시고, 돌아올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상숭배에 빠진 결과, 그들은 스스로 파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14절 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사자처럼 그들을 찢어놓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의 우상은 외형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면, 우리의 삶은 점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결국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벌을 주는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호5장 15 절입니다.
“나는 이제 내 곳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지은 죄를 다 뉘우치고, 나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겠다. 환난을 당할때에는 그들이 애타게 나를 찾아 나설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여전히 기다리십니다.
처절한 고통과 실패를 통해 자신들의 연약함과 잘못을 뉘우칠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을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심판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복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고통과 실패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깨우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하십니다.
고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회복시키시고, 우상을 떠나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결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호세아서 5장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죄악과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회복을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초대를 보여줍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영과 풍요 속에서 우상숭배와 탐욕,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파멸의 길을 걸었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와 경계선마저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판 속에서도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분은 환난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죄를 인정하고, 우상을 떠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의 회복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겉으로는 풍요롭고 안정된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속은 점점 더 타락과 우상숭배로 물들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와 경계를 넘어가며,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은 형식화되었고, 우리의 예배는 껍데기만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삶 가운데 경고의 나팔을 울리고 계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깨닫지 못할지라도, 그분은 고난과 실패의 순간들을 통해 우리를 깨우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연약한지, 우리가 의지했던 우상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고난 속에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돌아갑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회개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죄악으로 찢어진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시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세우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세상 속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경계선을 되돌아봅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회복하고, 우리의 우상을 내려놓으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결단을 내립시다.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게, 우리 모두가 참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께 돌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시간,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복의 길로 나아가는 은혜의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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