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무엇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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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어린 자녀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가다보면
꼭 한번씩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 소리가 뭐냐면
“엄마, 아빠! 거의 다 왔어요?”
가끔 어떤 아이들은 출발하자 마자 이렇게 묻기도 합니다.
“언제 도착해요?” 아직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그럼 부모님들은 대답해주시죠.
“아직 한참 남았어.” 또는 상황에 따라서 “거의 다 왔다.”라고 대답해주십니다.
여기서 ‘거의 다’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가 여행하는 목적지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만약,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저 멀리 하와이로 가고 있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도착까지 한 1시간 정도 남았을 때 ‘이제 거의 다 왔다.’라고 말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1,2시간 정도 걸리는 부모님 댁에 가는 길이었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아마 몇 분 정도 남았을 때 이제 ‘거의 다 왔다’라고 말해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의 ‘거의 다’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가는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게 됩니다.
본론
본론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질문을 했을 때에 예수님의 대답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거의 다 왔습니까?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까? 드디어 그 일이 일어날까요?”
지금 예수님 곁에서 이 질문을 하고 있는 이들은 예수님의 12 제자들 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가룟유다가 죽고 11명이 되었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었다라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에는 열두개의 지파가 있습니다.
예수님 곁의 12제자는 이 12지파를 상징하는데,
이 12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였다라는 것은
모세를 중심으로 12지파가 모인 것 처럼 한 나라가 세워진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이 12명의 제자들을 통해
무너졌던 이스라엘이 다시 재건될 것이다, 다시 회복될 것이다라는 소망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아마 본인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세보다 더 예사롭지 않으신 분이라는 것을 지켜 보았고,
이스라엘을 가장 번영시킨 다윗 왕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뿐만 아니라, 구약의 예언들이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메시야 오실 것이라고 가리켰기 때문에
어느정도 확신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제 왕이 되시기만 하면 지금까지 우리를 핍박했던 저 로마를 무찌르고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우뚝 세워질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가장 가까이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거의 다 왔습니까?”
“예수님,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그 때가 지금입니까?”
제자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목적지는 예수님께서 이 나라의 왕이 되셔서
로마를 군사들을 무찌르신 다음에, 무너졌던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였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다윗 왕과 같은 분이였습니다.
우리를 다스리실 위대하신 왕!
이스라엘이 가장 번영했던 그 때처럼, 이 나라를 멋지게 세워주실 우리의 왕이였습니다.
그래서 몇몇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나라의 왕이 되실 때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냐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 몇주 동안 그들 가운데에 일어난 일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목적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로마를 무찌르고 승리하셔야 할 왕이, 로마 군사들에게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했던 목적지대로 라면, 예수님이 다 무찌르시고, 승리하심으로
로마 군사들이 다 도망가고 우리들도 그 안에서 한 자리씩 차지해야 하는 것인데,
너무나도 허무하게, 칼 자루 한 번 뽑아보지도 못하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시는 어린양마냥
바로 곁에 있던 제자들조차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러한 방식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 끝나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이스라엘의 번영과 자신들의 모든 계획이 다 물거품이 된 줄로만 알았는데,
제자들의 귀에 말도 안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예수님 부활하셨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다 끝나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정말 드라마틱하게, 영화같이 부활하셔서 제자들의 눈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로마의 군사들에게 패배하여 다 망한 줄 알았는데,
부활하심으로 지금까지의 상황들을 완전히 역전시켜버리신 것입니다.
이 때, 제자들의 가슴이 얼마나 벅차올랐을까요?
지고 있던 축구경기에서 손흥민이 역전골을 넣어 이겨도 국뽕이 막 이만큼 차오르는데,
“역시 우리 손흥민”
한 골 들어갈 때마다 막 동네가 들썩들썩 하는데,
“와아아아” 함성 소리가 옆 동네까지 들립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다 끝난줄로만 알았는데, 부활하심으로
지금의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켜버리신 것입니다.
이 때, 제자들의 가슴이 얼마나 벅차올랐을까요?
“역시 우리 예수님, 와아아”, “중꺽마”
“우리 예수님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실리가 없지”
그렇게 벅차오르는 가슴을 뒤로하고 이제 제자들이 예수님께 정말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이 이제 진짜 우리가 이긴겁니까?”
“지금이 정말 그 때 입니까?, 우리 이제 거의 다 온 거 맞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조금은 애매합니다.
우리 함께 1:7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아, 이젠 진짜 거의 다 온 것 같아서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거의 다 왔습니까?라고 묻고 있는 제자들의 물음에
예수님께서 조금은 뜬금없는 대답을 해주십니다.
“그건 너희가 알 바 아니다.”
너무나도 답답한 대답을 해주십니다.
아니, 우리가 거의 다 왔으면 거의 다 왔다고,
아니면 우리가 잘못 가고 있는거라면 잘못 가고 있는 거라고
좀 돌이켜 와야된다고 뭐라도 좀 말씀해주시면 참 좋겠는데,
예수님은 조금은 뜬금없는 대답을 해주십니다.
‘그거 너희가 몰라도 된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고요.
우리는 이 때와 시기가 언제인지가 너무나도 궁금해서 자주 예수님을 재촉합니다.
쫌, 정확하게 알아야지 우리가 미리 준비도 하고 필요한 것도 좀 사놓고 할텐데,
아무런 말씀도 해주시지 않아서 가끔은 혼자 상상의 나라를 펼쳐놓고 내가 계획하다 실수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때와 시기가 언제인지가 너무나도 궁금해서 자주 예수님을 재촉합니다.
쫌, 언제쯤 우리 본동교회가 부흥할지 알고 있어야지 우리가 미리 준비도 하고 필요한 것도 좀 사놓고 할텐데,
아무런 말씀도 해주시지 않아서 가끔은 혼자 상상의 나라를 펼쳐놓고 내가 계획하다 실수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못 가고 있는거면, 잘못 가고 있는거라고, 맞게 가고 있는거면 맞게 가고 있는거라고
쫌 말씀해주시면 참 좋을 것 같은데, ‘그거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새로운 목사님도 오시고, 분위기도 계속해서 더 좋아지고 있는데,
그러면, 언제 우리가 회복됩니까? 언제 우리가 부흥됩니까?
지금이 그 때입니까? 라는 질문 앞에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어서 답답하기만 합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차에 태우고 여행을 떠나다보면 가끔 그럴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목적지를 아무리 잘 설명해주어도
이 자녀들은 전혀 다른 곳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 곳이 처음 가보는 곳이라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아무리 잘 설명해주어도 진짜는 도착해 봐야 아는 것입니다.
거의 다 왔다고 말해주어도 애들은 모릅니다.
그 거의 다가 몇 분일지, 몇 시간 일지, 몇 일 일지 모르고 그냥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 안에서 아이들은 혼자 상상의 나라를 펼치기도 합니다.
그 곳의 바람 소리는 어떨지, 공기는 신선할지, 탁할지, 내가 거기를 가면 환대를 받을지
이것 저것 혼자 다 상상하고 계획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가 뭘 생각하든, 어떠한 곳을 계획하고, 준비하든 그건 상관이 없습니다.
혹여라도 이 아이가 부모님의 생각과 전혀 다른 곳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있을지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 그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으신 분은 부모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뭘 생각하든, 운전대를 잡으신 부모님이 이끄시는대로 가는 것입니다.
도착하기까지 진짜 얼마나 남았는지는 거기 데려가 주시는 부모님만 아십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렇게 될꺼다. 저렇게 될꺼다.
내가 잡힐거다. 죽을거다. 그러나 다시 살아날거다.
그러나 제자들은 말 해줘도 모릅니다. 자신들만의 상상의 나라를 펼쳐나가면서
혼자 끙끙 앓기도 하고 계획대로 안된다고 서운해하고 속상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우리의 운전대를 잡고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운전대를 잡고 계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제, 자녀들의 입에서 이 질문들이 사라지게 되냐면,
본격적으로 이 여행 자체를 즐기기 시작할 때입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감탄하고, 부모님과 나누는 대화에 푹 빠져들고
형제 자매들과 함께 맛있는 간식도 먹고 교제하면서 여행을 즐기게 되면
아이들의 입에서 질문은 쏙 사라지고 웃음 소리만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언제 도착할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운전대는 아버지께서 붙잡고 계시니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 땅에서의 여행을 즐기는 것입니다.
언제 도착할지? 언제 부흥할지? 그거는 아버지가 알아서 다 하실거니까
이제 질문 그만하고 나와 함께 이 여행을 즐겨보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우리 함께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속작품으로
쉽게 말하면 누가복음 2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기록된 누가복음과 쭉 이어져서 사도행전이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사도행전을 예수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뭐가 되었든, 초대교회 당시, 이 책을 처음 받는 사람들은 사도행전이라는 이름보단
누가복음 2탄이 더 친숙했을 것 같습니다.(쉼)
누가복음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누가복음 2탄의 주인공도 예수님이겠거니 짐작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은 1장에서만 잠깐 등장하시고 그 다음부터는 뒤로 물러나셔서 나오질 않으십니다.
연극을 보는데, 주인공이 앞에만 잠깐 등장하고 이후에는 나오질 않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나와서 이 무대를 꾸며가야 되는데, 그 자리를 청중에게 넘겨버립니다.
그 자리를 독자들에게 넘겨버립니다. 그 주인공의 자리를 성도들에게 넘겨버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가시는, 하나님께서 감독하시는
이 무대에 배우로(actor로) 바로, 여러분들을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그 배역에 흠뻑 빠져드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배역이 있습니다.
어떤 역할은 비중이 좀 적을수도 있고, 어떤 역할은 나와서 계속 고생만 하다가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배우는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던 상관 없이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며 몰입하는 가운데 신들린 연기도 나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자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대 아래로 내려와서
“하나님, 언제 끝나요”, “하나님 언제 부흥해요”, “하나님 언제 도착해요”
질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하나님께서 우리 본동교회에 새로운 배우를 등장 시켜주셨습니다.
오늘 안계시니까 이런 말씀 드리는데,
1인 3역을 해도 되실 정도로 아주 훌륭하신 배우를 보내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목사님이 아무리 뛰어난 배우라고 해도 혼자서 그 무대를 다 꾸며나가실 수는 없습니다.
다 맡겨진 배역들이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만 무대 위로 올려놓고 우린 또 다 내려가서
무대 아래로 내려가셔서 ‘잘 하나 보자’, ‘언제쯤 부흥시키려나 보자.’
그러지 마시고 우리 무대 위로 다같이 올라 가셔서 같이 주거니 받거니도 하면서 주님께서 펼쳐주신 이 무대를 함께 꾸며가 봅시다.
모두가 기뻐할만한 완벽한 스토리를 갖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우리 함께, 예수님을 증거하는 이 무대를 꾸며가 봅시다.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뒤로 물러나시지만,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성령을 보내줄거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할거야.
성령님과 함께 내가 맡은 역할에 몰입하는 그 사람은 밑에 내려와 앉아서 질문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이 여행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질문은 쏙 사라지고 웃음소리만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본동교회를 너무나도 선한 길로 인도하여주실 것이 확실하기에
우리가 할 일은 “언제 도착하냐, 언제쯤 괜찮아지냐”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목사님과 함께, 성도님들과 함께 우리 앞에 펼쳐질 이 여행을 즐기는 것입니다.
서로 서로 맡은 배역들 잘 감당하면서,
성령님과 함께 이 역할에 푸욱 빠져서 예수님을 증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다 보면,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곳으로
그렇게 가다 보면 결말이 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스토리로
감독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운전대를 붙잡고 인도하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끝에서 참된 부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끝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과 함께,
마침내 완성될 그 나라를 소망하며
이 땅 가운데에서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주님
우리가 가는 길이 정확하게 보이질 않아서,
막연하여 두렵기만 하여서 때론 실망하고, 주저 앉아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운전대를 붙잡고 우리를 인도해가심에도,
우리는 뒷 자리에 앉아 근심 걱정하였습니다.
하나님,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심에도 눈어두워 보지 못하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눈을 밝혀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믿음의 눈을 들어 우리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바라보게 하여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비로소 이 여행을 즐기는 주님의 복된 자녀들이 다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역할에 더욱 더 몰입하는 주님의 자녀들이 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과 함께 이 여정 속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는,
주님과 함께 이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 주님 증거하는
귀한 주님의 백성들이 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가장 앞자리에서 길을 구하며, 여기 저기에서 많은 비중으로 역할을 감당하시는
우리 담임 목사님을 기억하여주시고,
목사님의 사역과, 모든 여정 가운데에 어려움 없도록 주님 지켜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목사님과 함께 주님 주신 사명 잘 감당해 나아가는 우리 본동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까지 인도하여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이제 다시 또 우리 앞에 펼쳐질 여정 가운데에서도 언제나 함께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그곳에서 오늘 또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결단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항상 함께하실 주님 찬양하며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