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자기소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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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요즘, 기독교 방송에서 결혼 정년기의 청년들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보게 되었는데요.
마라톤 선수 출신, 아나운서, 교사, 대기업사원, 카페사장 등등
다양한 스펙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스펙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열매를 보여주것입니다.
그래서 입사지원할때 그 스펙을 이력서에 꼼꼼히 적는 것입니다.
‘이렇게 훌륭하고 성실하게 공부 열심하고 경험 쌓은 인재이니 나를 뽑아주십시오.’ 라는 의미 입니다.
기독교인들도 배우자를 찾을때, 자기 인생을 얼마나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는지도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이력은 신앙의 이력일 것입니다.
이 방송의 데이트 과정에서 서로의 신앙가치관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청년들이 생각보다 결혼에 대해 진지하고
나름 고난을 겪고 성숙을 경험한 청년들이 많고, 신앙이 단단한 청년들이 생각보다 이 시대에 많이 있구나 라는 생각에 희망을 보았습니다.
어떤 한 청년은 목사님 아들인데, 빨리 아름다운 신앙의 가정을 이루고 싶어서 나왔노라 하면서 최근 몇년 전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하면서 뭐라고 하냐면
요즘 “예수님 때문에 살맛이 난다”고 고백하는 모습이 참 뭉클했습니다.
결국은 배우자를 찾는 과정이든 일꾼을 뽑는 일이든 그 사람의 삶의 이력은 아주 중요합니다.
영미권에서는 이력서를 “Resume” 라고 하고
유럽권에서는 “C.V.”(Curriculum Vistae) 커리큘럼 비타이 라고 합니다.
라틴어로 “삶의 경로 또는 삶의 과정” 이라고 번역이 가능 합니다.
보통 이력서든 C.V. 이든 주로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업적이나 경력, 학업을 중심으로 작성을 합니다.
성경에는 수 많은 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담겨 있습니다.
일종의 이력서들 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인물들의 소개서들이 갖는 특징은 세상의 이력서가 장점만 담고있는 것에 비해 수많은 단점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 인생과 신앙에 큰 의미를 갖는 수많은 이유 중에서도 한 가지는
성경의 인물의 성공뿐만 아니라 처절한 실패까지도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지혜를 줍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의 자기소개서를 담고 있습니다.
바울이야말로 고난과 실패의 이력서가 가득한 사람 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인생은 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에 전력투구하는 것의 중요성과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들으시면서,
지난 일년과 더 넓게는 호주에서의 지난 삶과 더 나아가 전체적인 나의 인생의 과정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신앙과 나의 삶에 대한 나만의 자기소개서를 마음 속으로 기록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과정을 통해 삶과 신앙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잔잔하게 성찰하는 시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첫번째로 살펴볼 것은 우리의 능력과 기술과 배움과 경험은 어디에 쓰일때 가장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1.자기소개서는 어디에 사용하나요?
1.자기소개서는 어디에 사용하나요?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유대인 형제들 앞에서 “변명”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력을 사용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형들아 내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변명은 헬라어로 “아폴로지아”인데 법률용어 입니다.
법적 고소에 대한 자신을 방어하고 변론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의 변론, 변명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에 대한 적계심과 오해로 가득했습니다.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그리고 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합니다.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회심 후 첫번째로 예루살렘에 방문했을때도 죽음의 위협을 받고
다소로 떠난적이 있었습니다.
그 상황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안좋아졌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생각에 율법을 어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끌어들인 상황이기 때문 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바울의 변명은 자신을 향한 유대인의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말하는 바울의 말투에는
자기 한 몸 살고자 전전긍긍하거나
분노나 복수심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오해를 풀고자 하는 간절함이 느껴질 정도로 간곡한 어투로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내용을 보면 먼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합니다.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이 말은 나도 너희와 같은 유대인 이다.
나도 너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열심히 믿던 바리새인이다.
나도 하나님을 알고자 열심히 말씀을 공부했다.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나는 너희 처럼 기독교인들을 오해하여서 그들을 죽이는 일에 동참 하였던 사람 이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그러니, 나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부형들이여.(Brothers and fathers)
바울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과거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소개하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해외 생활 하다가 보면, 내가 왕년에 얼마나 잘 나갔는지, 내가 왕년에 무슨 공부를 했고 어떤 회사를 다니고 어떤 비지니스를 했는지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왕년에 공부 많이 하고 하나님 열심히 믿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에 대한 애정 때문 이었습니다.
바울은 할수만 있다면 유대인들을 전도하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유대인들의 무지함과 완악함을 긍휼하게 보고 그들을 이해하고 변호하고 싶어 했습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마음 속 깊은 진심은
나도 너희와 같았다. 너희가 나를 오해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라는 공감의 의미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보니, 진정한 구원의 기쁨으로 그 복음 전하는 삶을 살다 보니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라는 간증을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바울의 삶의 경로가 담긴 간증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한국 사람을 가장 잘 전도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 사람 이다.
이 말은 바울이 비록 이방인의 선교사로 부름 받았지만 항상 그 동족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가졌듯이,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 민족을 복음화해야 하는 일종의 사명 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의 마음은 자신이 저주를 받더라도 골육친척인 유대인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바울도 자기 동족들에대한 애끓는 사랑이 있어, 그들의 오해를 풀어 자신과 같이 회심하여 하나님을 옳바르게 믿고 따르게 만들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간청하면서
어떻게 보면 해서는 안될 말을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 입니다.
불경한 말일지 몰라도 이 말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나의 사랑하는 백성을 살려야 하겠다는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 입니다.
바울의 자기소개는 바로 동족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간절함의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며 남다른 노력으로 자격과 학위를 따거나 기술을 습득합니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우리 인생의 결과물로 이력서에 당당하게 기제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스펙쌓기는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경쟁의 무기 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당대의 명문학파에서 공부한 학식과 바리새인이며 로마시민권자 라는 완벽한 스펙을 가졌지만
예수님 만나고 보니, 복음 전파하라고 지금껏 훈련 시키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아람어와 헬라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이중언어 능력은 유대인 청중을 주목시키는 좋은 도구로 사용됩니다.
그들이 그가 히브리 말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한지라 이어 이르되
바울의 완벽한 스펙과 인생경험은 결국 가장 가치 있는 일에 쓰기 위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우리 나름의 학식과 경력들로 우리의 이력서를 채울 수 있습니다.
호주땅에 태어났거나 이주하여 터득한 이중언어 능력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장 값지게 쓰임 받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 하십니까?
바로 교회에서 복음전파의 현장에서 사용하시기 위해 우리를 훈련 하신 것을 깨닫고 그에 맞게 사용하고자 헌신하는 자들이 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공부할때는 몰랐지만, 경력을 쌓고 기술을 배울때는 몰랐는데, 주님 만나고 보니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여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사탄을 보신적 있습니까?
초기 교회 교부, 리옹의 이레나이우스 <이단에 반박하여>라는 책에서
사탄은 뿔달린 무서운 영적 존재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는 모든 것” 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마땅히 받아야 할 영광을 받지 못하게 하고 은혜를 깨닫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과 나 자신을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게 만드는 존재”
가 사탄 입니다.
때론 너무 높은 학식이 사탄 입니다.
때론 너무 유창한 영어실력이 사탄 입니다.
때론 너무 잘난 내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나에게 돌립니다.
나의 모든 것을 가장 옳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2. 자기만의 스토리가 정립되어야 한다.
2. 자기만의 스토리가 정립되어야 한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9장에서 바울의 회심사건을 자세하게 다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또 26장에서 또한번 다룹니다.
이것은 저자의 의도가 강하게 담겨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 기술법에 대해 바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바울은 누구보다 자신만의 강력한 간증이 성립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떠올리면 여러 가지 놀라운 사역의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야기는 바로 회심 사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예수님의 이야기 였습니다.
바울의 인생에대한 많은 글들을 읽으며 추적하다보면
그의 인생에 고난과 핍박은 있지만 절망과 낙망은 없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됩니다. 어떻게 그럴수 있을까요?
바울과 달리, 우리는 왜 시기, 질투, 우울, 불안, 주체할 수 없는 화에 끌려다니며 살까요?
심학자 대런 브라운 “저작권(Authority)의 부제”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과 사고를 하고 다양한 상황과 사람을 만납니다. 만약에 우리 안에 어떠한 기준이나 자신만의 가치가 없다면 언제나 결정을 하지 못하고 주저 하며 스트레스 상황에 방치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만든 이야기에 휘둘리며 되며 살아갑니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졌을때, 거기에 덛붙여지는 수 많은 불길한 추축과 불안감을 주는 생각을 멈추고 돌뿌리는 돌뿌리 일뿐 영향 받지 말고 내 가던 길을 가자 라고 생각을 수정하는 주체적인 생각의 힘이 필요 합니다.
자기만의 확고한 가치관과 주님과 동행하는 이야기와 사명이 있는 사람은 고난과 핍박 보다
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 일 즉 사명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어
평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넌 크리스챤들 대부분은 물질적 부유함을 통해 육체적 평안함을 추구합니다.
쉬는 날 교회에 나오기 보다는 집에서 쉬는 것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신앙의 스토리가 있고 자기만의 간증이 있고 사명이 있는 사람은 육체의 평안 보다 주님이 주시는 영의 평안을 추구 합니다.
쉬지 않으면 월요일이 걱정 되는데
하루 종일 교제하고 가르치고 헌신하고 돌아가도
허무하지 않고 충만함을 얻습니다.
이것이 확고한 나만의 이야기를 소유한 인생 입니다.
한마디로 단단한 신앙이 주는 유익 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만났던 이야기가 여러분들 속에 정리가 되어 있습니까?
안되어 있다면 오늘 이후로 우리 모두 자기 소개서를 정성껏 써봅시다.
주님이 나를 어떻게 만나주셨고 어떻게 구원으로 인도하셨는지
나의 삶은 주님을 만난 후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봅시다.
우리의 자기 소개서는 세상의 그것과 다를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나의 신앙 자기소개서의 목적은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소개서는 나의 보다는 주님이 들어나는 자기소개서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력을 통해 동족에 대한 애끓는 마음과
그들을 공감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전했습니다.
이제 부터는 그야말로 바울의 흑역사 입니다.
내가 이 도를 박해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유대인 입장에서는 바울 자신이 그렇게 혐오하고 미워하고 핍박하던 그 그리스도인이 된 조금은 부끄러운 이야기 입니다.
바울의 자기소개서는 문학적인 용어로 “course of shame” 수치의 과정 이라는 개념으로 설명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소서는 예수 만나기 전의 모습이 아무리 화려하고 능력있었다 하여도
예수 만난 지금의 모습에 비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삶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때 가장 큰 능력이 나타납니다.
내가 예수 믿기전에 잘나갔다고 간증하는 사람이 없듯이,
진정한 능력은 바로 나의 부끄러움을 가감 없이 들어낼때 하나님이 높아지십니다.
어찌보면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바울이 예수를 만나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선망할만한 잘산 인생이라고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생각에는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나니, 부끄러운 삶이고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열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도 잘못된 열심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찬란한 광명 앞에서 자신은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눈도 못뜨고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는 한낱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체험 한 것입니다.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나의 열심이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방해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예수를 만나고보니, 모든 것이 배설물 처럼 느껴지고 세상에서 성공하고 유명해지는 것보다 예수를 따르는 삶이 가장 고상하고 가치 있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고백 입니다.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이제 내가 나의 지식과 경험과 나의 경력으로 무엇인가 하기가 두려워지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이제 주님을 의지해야 겠다는 생각밖에는 없게 된 것을 간증 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나의 구원 이구나!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는 것이구나!
그리고 나서야 사명을 주십니다.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한 손에 세상을 쥐고 또다른 손에 하나님의 사명을 쥘 수는 없습니다.
나의 과거의 영광과 세상야망이 분토가 되어야 비로서 사명을 따를 수 있습니다.
나의 직업과 학업과 비지니스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을 위해 쓰고자 결단 해야만
비로서 십자가의 길을 걷는 고상하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래전 부터 사회를 정화하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이력을 쌓아왔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믿음 좋은 가정인데, 한 일년 동안을 부모님이 다투는 날이 잦아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들어 봤더니, 아버지가 일년 동안을 월급을 못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알았답니다. 왜 종종 식구들이 굶어야 했고 대부분 라면으로 끼니를 떼워야 했는지를…
사장이 잠적을 해버려서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찾아냈고
그 집에 가봤더니 오늘 먹을 양식도 없이 쫄딱 망했더랍니다.
이 여집사님이 자기네도 힘든데 쌀하고 먹을것을 사다가 그 사장님네 갖다주고 이후로도 종종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어렸을때는 엄마가 답답했는데, 자기가 커서 목회를 해보니 어머니의 선한 신앙이 오늘날의 자신을 만들었구나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언제부터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풍토를 따라 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리스도인들이 손해를 안보려고 악착같이 경쟁 합니다.
교회는 세상방식으로 법정다툼을 하고 온갖 구설수와 범죄에 연루 됩니다.
정직과 신뢰와는 거리가 먼 단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사람과는 다르게 살아야 결국 복음은 전파 됩니다.
교회가 본래의 복음전도와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에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끄러운 욕망을 고백하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지 못하고 헌신 하지 못하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부터라도 선한 이력을 쌓아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신앙과 삶의 과정을 걸어야 합니다.
장차 세월이 흘러 뒤돌아 보았을때, 아름다운 신앙의 이력서를, 헌신의 자기소개서를, 예수동행기록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결론
결론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러고 나니 다른 것은 분토와 같이 여겨졌습니다.
비록, 매를 맞고 비난을 받을지언정 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한 부끄럽지 않게 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명예를 잃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 쳤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 주간의 시작을 주일성결예배로 시작 합니다.
내일은 또다시 월요일이 돌아올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것입니다.
지난 주와 똑같은 환경과 조건 속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삶은 한 주 한 주 거듭될 수록 예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할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더 깊히 알아야 할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삶은 점점 영적으로 깊어져야 할줄로 믿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양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