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1:1 세상의 짐을 지고 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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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짐을 지고 간 사람
아모스 1장 1절
어떤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모스는 ‘이름도 빛도 없이 산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아모스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배경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개인적 배경을 알 수 없지만 아모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쓰임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시대에 선포하며 세상을 향해 경고하고 질책하는 일에 부름 받았다. 아모스 1장 1절에서 우리는 아모스가 드고아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드고아는 베들레헴의 남동쪽 사해 근처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작은 마을이다. 보통 성경에서 인물을 소개할 때 아버지가 누구이며 어느 집안의 사람인지 드러나는데 아모스에 대해서는 그런 설명이 없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특별한 배경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학벌이 얼마나 좋고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고 명문가 출신이나 3-4대 예수 믿는 집안의 모태신앙인을 더 크게 쓰시는 것도 아니다. 집안과 학벌 그리고 출신 배경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다. 그분을 향한 온전한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도 다 쓰신다. 사사기에 등장하는 사사들을 보자. 거의 배경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배경 없고 내세울 것 없는 그들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다. 오른손의 장애 때문에 왼손을 사용해야 했던 에훗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쓰셨고,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하던 아낫 여신에게 바쳐져 ‘아낫의 아들’이라고 불리었던 삼갈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 여자들에 소외당하던 시대에도 드보라를 민족을 구원하는 사사로 쓰셨으며, 아버지와 형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다웟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 배우지 못한 어부인 베드로 역시 교회의 지도자로 쓰임 받았다.
바람과 함께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듯한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께서 충분히 쓰실 수 있다. 집안과 배경, 그리고 학벌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쓰신다는 확신을 가지라.
아모스의 직업은 목자였다. 목자들은 두 분류로 나뉜다. 한곳에 정착해서 양을 치는 목자가 있고 양들을 데리고 다니며 여기저기 유목하는 목자가 있다. 아모스에 나오는 ‘드고아 목자’는 후자의 경우로 여러곳을 돌아다니면서 유목 생활을 하던 목자를 가리킨다. 아모스는 한 곳에 정착해 있던 사람이 아니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사람이었다. 아모스가 활동하던 시기는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때였다. 베들레헴 지역, 즉 남 유다 출신인 아모스는 자신의 고향이자 거주지인 남 유다와는 별 상관없다고도 할 수 있는 북 이스라엘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그는 북이스라엘의 선교 사역을 감당한 셈이다. 아모스는 직업적으로 떠나는 것에 훈련받은 사람이다. 유목하던 기질을 살려 어느 곳에 가든지 탁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직업을 통해 훈련된 아모스의 기질을 쓰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경험과 배경을 사용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배우고 경험한 모든 일을 통해 선하게 이루신다. 별 목적 없이 훈련한 작은 재능이라도 하나님께서는 다 쓰실 수 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나면 무언가 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들은 이제 쓸모없어. 모두 다시 시작해야지’ 하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 바란다. 작은 능력이라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면 그분의 뜻대로 선하게 사용하실 것이다.
모세는 40년 동안 이집트의 궁전에서 왕자로 살았다. 이집트의 언어를 배우고 그 나라의 학문을 익혔다. 긴 세월 동안 그는 많은 것을 보고 자랐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이 경험을 사용하셨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할 때 모세가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궁전에서 나와 광야에서 양을 치던 40년의 경험 역시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경험을 선하게 사용하신다. 우리가 실수한 과거라 할지라도 그것을 바꾸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실 수 있다. 가정을 벗어나 고생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또한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하나님은 이런 경험까지 선하게 사용하시는 분이라 확신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레에게 주어진 일을 ‘쓸데없는 일’이라고 비하하거나 성의 없이 대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 있던 필요한 때에 하나님께서 쓰실 계획이 있음을 알고 열심히 배우고 준비해야 한다. 학생중 “주님을 섬기는데 공부가 뭐 필요해요?”하고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훗날 하나님께서 그 경험을 사용하신다.
예배와 찬양과 선교가 교회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아니라고 해서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여기면 안 된다. 예배당이 아닌 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잘하는 것도 크게 보면 주님의 일이다. 학생이면 학교에서 직장인이면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라. 바로 그 경험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
‘아모스’는 ‘무거운 짐을 진 사람’ 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름 그대로 무거운 짐을 졌다. 아모스는 자처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짐을 진 사람이다. 삶을 살아가는 자체가 무거운 짐이다. 산다는 것은 힘들고 고단한 일의 연속인 것이다. 일이 기쁘지 않고 피곤하며 힘든 날이 반복 될 뿐이다. 결국은 남을 돌보는 일에 무관심해지고 아예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가 져야 할 짐은 따로 있다. 자신의 안위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 그분께 받은 사명이 우리의 짐이 되고 부담이 되어야 한다. 지금 나의 어깨 위에 하나님께서 주신 무거운 짐이 있는지 돌아보라.
우리는 우리의 삶이 안정적이고 평안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날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일까?’하고 끊임없이 묻고 점검해야 한다. 그 대답을 통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모스가 선지자로 활동하기 시작할 당시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탁월한 통치력으로 국정을 운영하여 국력을 키우고 경제 수준도 최고조에 이르게 만들었다. 소위 ‘먹고살기 좋은’ 나라가 된 것이다.
나라의 주변 상황을 보면 북쪽은 하맛과 다마스커스까지 그리고 남쪽은 유다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눈에 가시 같던 앗시리아는 무너져가고 있었다. 가까이에서 견제하던 두 나라가 쇠약해진 틈을 타 북이스라엘은 국경을 확장시켜갔다. 또한 외국과의 교역이 늘면서 상업이 점점 발전했으며 막대한 부를 쌓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시절에도 문제는 있기 마련이다. 북이스라엘이 교만과 사치로 가득차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의 권력이 막강해지면서 도시가 발전했다. 부유한 사람들은 여름 별장과 겨울 별장을 따로 짓고, 비싼 상아로 장식할 정도로 사치가 심했다.
암 6:4-5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사람들은 돈을 주체하지 못했고 호화롭고 음란한 문화가 도를 넘기 시작했다. 부자들은 아름다운 포도원을 소유했으며 몸에 비싼 향유를 발랐다. 아모스가 ‘바산의 암소’라고 불렀던 여자들은 술에 취하기 시작했다.
암 4:1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사회에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도 사라져갔다. 빌려온 돈을 갚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착취를 당했으며 결국 종으로 팔려가는 일도 비일비재 하였다. 세상은 점점 악으로 물들어가고 있었지만 이 일에 대해 경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재판관들이 뇌물을 받았고 돈을 건넨 사람들에게 유리한 재판을 이끌어 갔다. 이런 북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어떠했을까?
아모스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자신의 짐으로 여기며 주어진 사명을 감당했던 사람이다. 북 이스라엘은 남의 나라였지만 그곳의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모스는 하나님의 눈으로 북 이스라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곳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던 아모스처럼 이 시대의 우리 역시 하나님의 심정을 갖게 되기를 소원한다.
모든 일을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 공의와 정의가 사라진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라가 부강하면 경제력도 굉장히 켜져 있지 않는가?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없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살면 결국 심판받을 것이라고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짐을 짊어져야 한다. 그것이 사명 받은 자의 진정한 믿음이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증거이다. 우리는 모두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부담을 나의 부담으로 끌어안고 세상을 향해 선포할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지만 우리 중에 이러한 결단을 할 자가 얼마나 있는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성공과 부를 쫓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순종하며 나아가는 선지자가 필요하다.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라는 말씀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반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상의 말씀을 가지고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갔다.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번영과 부흥의 시기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북이스라엘은 절대로 발전하고 있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압제했으며, 공의가 사라지고 불의가 팽배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이상이며, 그것을 말로 전하는 사람이 선지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의 기준에 옳은 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잘못된 것은 지적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세상의 기준과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상가 필요하다. 우리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봐야 한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말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세상을 보라.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을 보면, 돈과 좋은 학벌을 가지는 것이 성공이라고 가리키는 듯하다. 사람들은 돈을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부자가 되려고 아등바등한다. 이런 불의한 세상에 하나님의 묵시가 전해져야 한다. 명문대학에 가는 것보다 예수님 잘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외치는 ‘왕따 같은’사람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바로 선지자이다. 선지자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관점을 대신 전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셨다(요 8:31-32). 세상의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 이것이 우리 삶의 기준과 원칙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는 진리 가운데서 담대함과 자유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할 수 있다. 선지자는 보편화되고 대중화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진리이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했다. 하나님의 이상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과 원칙으로 삼으라. 하나님께서는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신 예레미야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렘 1:9-10
오늘날 몇몇 설교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빠져있다. 유명한 사람들의 예화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주 내용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겠지만 우리 삶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성경의 말씀이다. 우리 입에서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이라는 말이 선포 될 수 있도록 하라.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전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지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지자로 세워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