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함께여서 감사합니다.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70 views
Notes
Transcript
에베소서 2:11–22 NKRV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외로움이 많은 우리

최근에 한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신종 우울증’ 이라는 내용인데요. 신종우울증의 증상은 이런게 있다고 해요. 한번 읽어 드릴테니까 내가 혹시! 신종우울증은 아닌지 점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함
퇴근하고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누워만 있음
피곤한데 밤새 스마트폰하면서 안 자고 버팀
우울보다는 이유없이 무기력함
좋아하는 거 할 땐 신남
일/공부할땐 집중이 어렵고 몸이 아프기도 함
잠에서 깨도 멍하니 누워있음
식욕도 살아있어서 밤에 폭식함
우울증인지 괴로움인지 구분이 잘 안감
방정리 안됨
생각보다 ‘어?’ 하는게 많죠? 이 신종우을증의 증상은 요즘 20-30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현상들이 우리 안에 일어나는가 알아보다 보니, ‘고립’, ‘외로움’ 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원인을 찾아보니 사회생활, 관계는 있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지속되면서 일어나는 무기력함, SNS등의 활성화로 인해 비교에서 부터 비롯되는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인 진출이 막히는 벽에서 느껴지는 좌절감등 다양한 원인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원인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진실된 관계’의 부재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요.
‘속마음을 터놓을 수 없는’ 정도로 사회안에서 믿을 만한 사람도 없고, SNS라는 꾸며진 세상의 이야기가 진실처럼 다가오며, 다양한 벽들을 만나며 ‘진심’을 느끼고 싶지만 진심을 느낄수 없음에 외로움을 느끼고 고립되어가는 우리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속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또 저번주에 우리는 새생명축제도 있었지만 한 해의 감사를 올렸던 추수감사절을 보냈었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되었던 감사중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건 ‘함께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특별히 엘더들과의 시간, 교역자들과의 시간을 거치면서 ‘교회’에 대한 감사가 컸던 한 주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귀하게 주신 축복이 있다면, ‘교회’를 허락해주셨다는 것인데, 가끔은 우리가 이 교회의 소중함을 잊을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말씀을 나누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특별한 공동체,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외로움을 해결하고 싶지만

오늘 말씀의 에베소 교회는 ‘교회’에 대한 주제가 강력하게 선포되는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지역은 당시 로마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였습니다.
에베소는 상업적으로도 번영한 나라였고, 동시에 종교적인 열심이 많았습니다. 아데미 신전을 통해서 사람들은 축제를 열고 신을 숭배하면서 자신들의 허전함을 달래곤 했습니다.
또한, 점성술, 마술등을 통해 자신들의 불안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었죠. 그래서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 복음을 전했을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마술책, 점성술책들을 모아 불사르는 행동을 했는데, 그 은 오만 정도라고 합니다.
은 오만은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50-75억 정도라고 하니까, 에베소사람들이 얼마나 종교적인 열심이 있고, 불안감들을 해소하고 싶어 했는지를 알 수 있죠.
에베소 교인들은 본인들의 어떤 우울감, 외로움, 허전함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런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된 에베소 교인들에게 또 다른 소외됨이 있었는데, 그건 자신들이 예수님을 만나 교회에 왔지만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환영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어떤 특권의식이 있었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는 섞일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체로 있다보니 이방인들로 구성된 에베소 교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갈등하며 진정한 교회 됨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에베소 교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라는 특별한 공동체 안에서도 소외됨을 느끼고 허전함을 느끼는 상태를 겪게됩니다.
바울은 이런 에베소 교인들에게 진짜 교회가 주는 유익에 대해서, 교회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줍니다.
소외감, 불안감이 가득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교회는 어떤 곳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1. 교회는 ‘내’가 복음으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곳이다.

첫번째로 바울이 말하는 교회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내’가 먼저 누리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화평’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장 불안하고, 가장 외로운 삶을 사는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은혜는 ‘복음’입니다.
가장 기쁜 소식을 듣고 누리게 해주신 것이죠.
바울은 복음을 만나기 전, 우리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11–12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바울은 복음을 만나기 전에 에베소 교인들의 상태를 말합니다.
11절은 간단하게 말하면, 너희는 하나님 자체를 모르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12절에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이죠?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기에 약속과는 상관도 없고 세상에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하나님도 없는’ 자라는 것이죠.
에베소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라고 했죠? 로마의 세번째 부유한 도시입니다. 문화적으로 누릴 수 있는게 많고, 아데미여신, 점성술, 마술 등 종교적인 요소도 본인들이 원하면 찾아서 누릴 수 있는 그런 곳이에요.
그런데 어떻다고 말하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지만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외로움, 소외됨, 허전함을 채우려고 많은 것들을 시도하지만 정작 그것은 그 공허함을 채워줄 수가 없는 것이죠. 잠깐은 채워지는 것 같지만 이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상태인 것입니다.
복음을 알기전,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기전 누구나 이런 상태입니다. 이건 교회를 다닌다, 안다닌다로 나뉘는 것이 아니에요. 복음을 듣고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알게 되기 전과 후를 말하는 것이죠.
바울은 그런 에베소 사람들이 복음을 만나 이렇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피,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이제 하나님과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어떻게 우리를 가깝게 했는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2:14-15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화평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어서 나아갈 수도 하나님을 알수도 없는 벽에 막힌 관계를 십자가 사건을 통해 그 담을 헐어버렸다고 합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켜야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인간이 절대로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스스로 지키시며 완성하셔서 우리를 새 사람이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그분의 부활 사건이 ‘소망’없고 ‘하나님’없는 삶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은혜를 누리게 하셨다는 것을 바울은 기억하게 하는 것이죠.
교회는 어떤 곳이냐면, 바로 이런 하나님을 알게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진짜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삶에서의 공허함을 헛되게 채우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진실된’관계를 맺음으로 말씀이 말하는 놀라운 기쁨들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는 먼저 내가 그런 은혜를 알고 누리는 곳이란 것을 현장속에서 고민하는 에베소 교인들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저번주에 목사님이 말씀의 핵심이 무엇이었죠?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그 가치를 알기에 우리가 이 곳에 모여있는 거죠. 무엇이 그렇게 가치 있길래, 2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내고 있냐는 것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무언가를 누리고 있기에 이 곳에 있는 것이죠. 교회란 그런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는 특별히 예배에 진심이죠. 왜죠? 예배 가운데, 우리는 복음을 듣고 복음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충분히 누리기 때문이죠.
바울이 말한 교회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듣는 우리 각자가 하나님과의 진실된 관계 안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은혜를 충만하게 누리는 곳입니다.

2. 교회는 ‘평안’을 함께 누리는 곳이다.

외로움과 공허를 채우지 못하는 에베소 교인들이 가장 먼저 ‘내’가 복음의 은혜를 주님과 누리며 채워가는 곳이 교회라면,
교회 안에서 공동체가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해 참된 교회를 누리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바울은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가면서 ‘평안’을 누리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두번째, 바울이 말하는 교회는 ‘평안’을 ‘함께’ 누리는 곳입니다.
각자의 은혜를 누리지만, 에베소 교회는 어떤 문화나 생활방식이 다른, 즉 외면적으로 나와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다투거나 같은 교회안에서도 따로 다니며, 세상과 다를 바 없이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읽었던 14절부터 16절 새번역으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14–16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
무엇이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에베소 교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는 서로의 다름이 섞이지 못할 이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라온 환경, 신앙적인 배경이 모두 다른 사람들입니다. 배경이 다르다는 것은 어떤 부분에서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그 충돌이 때때로 섞이지 못하는 관계라고 생각하고, 어렵게 다가와 ‘진실된’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쉽지 않을때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음을 누리는 우리 안에서는 다름이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큰 은혜중 하나가 ‘평안’이기 때문이죠.
에베소서 2:17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평안은 ‘편안’과는 다른 용어입니다. 우리는 종종 평안을 어떤 감정적인 편안함, 상황이 해결되어 안정감을 느낌으로 생각할 때가 있지만 말씀이 말하는 평안은 이런거에요.
상황이 불편하고, 때때로는 내 문제들이 해결된 게 없어서 혼란스러운 그 때에 우리가 주님께 이 문제를 두고 나아갈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가운데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이 평안을 누린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그 상황을 헤쳐나갈 힘이 생기는 것이죠.
오늘 교회의 상황으로 보면 어떤 것이죠?
서로가 다르기에 다툼이 생기고, 때때로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될 때,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면
다름의 문제는 더이상 이겨내지 못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 평안을 가지고 다른 시선,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평안을 선물받은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고 ‘진실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한 성령’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우리가 믿는 분이 다른 분이 아니고 하나님 한 분이라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과 은혜도 한 방향이기에 보이는 다름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정리합니다.
에베소서 2:19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우리는 더이상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고, 하나님안에서 동일한 시민, 권속 이라는 것, 다시 말해 차이가 없는 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르지만 품을 수 있고, ‘진실된’ 관계로 발전되어질 수 있는 것이죠.
우리가 믿는 분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 분이라면, 교회는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주며, ‘평안’을 누리는 공동체라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시대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하라고 하죠? ‘손절’하라고 합니다.
너랑 다르고 유익도 안되는 사람을 굳이 곁에 두지 마라 , 뭐하러 너의 감정을 낭비하냐 다르다 싶으면 너를 만족시키는 사람들하고만 지내라
이런 메시지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합니다.
물론 나를 피폐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죠. 악의적인 의도로 나를 이용하는 나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을 잠깐 보고 알아긴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세상은 다른 것일뿐 틀린 것은 아니다. 라고 외치면서 정작, 다른 것은 철저하게 배척하고 외면하고 공격하는게 오늘의 시대인데, 에베소 교회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런 다름이 성령 안에서 ‘하나’된 우리에게, 믿음안에서 ‘진실된’ 관계를 막는 요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죄로 인해 하나님과 많이 달라진 우리를 위해 먼저 희생하고 사랑함으로써 우리에게 ‘평안’을 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주님의 시선과 마음으로 바라보며 마주할 힘을 주는 엄청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교회가 세상과 다른 특이점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품어주는 것을 넘어 주님의 사랑을 알아감으로 품어지게 되는 곳, 주님이 나에게 주신 그 놀라운 ‘평안’을 내가 누리고 그 평안 서로에게 선물하는 곳인 것이죠.
서로가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만 화평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한 성령 안에서 평안을 얻는 것이 우리이기에, 주시는 평안으로 너무 다른 서로를 다시한번 이해하고 품어가면서 서로가 서로의 ‘진실된’ 관계가 되어가는 것, 이것이 ‘교회’ 라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공동체가 이런 참된 교회의 은혜를 더욱더 누리는 공동체가 되길 축복합니다.

교회란 나, 우리가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교회란 어떤 곳인가?
먼저는 세상속에서 소망없이, 하나님없이 공허하게 살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만나고 하나님과 진실된 관계를 누리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먼저 내가 복음의 기쁨을 누리는 곳이어야 합니다. 말씀이 말하는 기쁨들이 나에게도 경험되어지고, 주님과의 관계안에서 말씀을 통해 세상이 주지 못했던 만족들과 기쁨을 채워가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다는 그 놀라운 복음이 나에게 다가오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새생명축제? 매 주일의 예배, 우리는 끊임없이 놀라운 이 복음을 듣는 것이죠.
그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매 순간 세상속에서 넘어지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다가도 복음앞에 깨닫고 다시 일어서고 세상에서 지치던 수많은 일들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힘, 평안을 얻고 나아가는 곳, 그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화평’이신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죄 속에서 하나님과 멀어질 때마다 우리를 끊어내지 않고 먼저 찾아오신 주님이 화평이 되셔서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다시 복음을 듣는 그 자리로 우릴 부르시기 때문이죠.
그리고 교회는 나와는 너무나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모여있는 곳입니다.
때때로는 서로의 다른 모습이 가시가 되어서 서로를 찌를 때도 있고 ‘내’가 누리는 것에 집중하다가 다른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교회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화해시키시고, 그 은혜들을 누리게 하신 것처럼
한 성령안에서 같은 마음으로 우리 서로도 사랑하고 희생하면서 주님이 각자에게 주시는 ‘평안’을 통해 다시한번 서로를 품고 이해해 나가는 곳,
그 속에서 내가 누리는 평안을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하며 ‘진실된’ 관계로 서로가 발전되어 세상에 줄 수 없는 사랑의 관계를 누리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으로 교회를 정리하면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에베소서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교회는 예수그리스도가 기준이 되어서 그의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져 가는 곳입니다. 서로는 다르지만 각자가 건물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품고 이해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알아가고 닮아가면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가는 것이죠.
교회는 서로 다르지만 복음의 은혜를 알게된 ‘부족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관계가 어렵기도 하고 이해하기 힘들때도 있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습을 본받아 마음가운데 주시는 평안을 가지고 다시 도전하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품어가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며 성장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속에서 주시는 ‘평안’을 통해 서로가 더욱더 가까워지고 말씀이라는 기준 안에서 마음을 열어가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실된 관계’로 나아가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 부족한 부분들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과 마음을 붙잡고 서로의 좋은 점이 서로를 돕고 세워주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것 같지만 외로움이 가득한 이 시대속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 복음안에서만 누릴 수 있습니다. 그 복음이 울려퍼지는 곳이 교회입니다. 헛된 것을 쫒아 끊임없이 갈증을 느끼는 시대속에서 이제는 복음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나랑 맞지 않으면 손절하고 혼자만의 길을 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끊어내지 않으시고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복음의 놀라운 평안을 누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공동체, 이 ‘교회’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며, 서로를 돕고 사랑하며 성장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이 시간 이 찬양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함께 지어져가네
복음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줍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지금 그 평안 누리고 있나요? 세상이 말하는 기쁨 찾느라 주님과 멀어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목회자인 저라고 다를까요? 쉽지 않습니다. 저도 훅하면 일상속에 주님과 멀어지는게 참 쉬워요. 그럼에도 감사한 건 홀로 된 우리를, 이렇게도 주님과 쉽게 멀어지는 우리를 끊어내지 않고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깨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교제하며 동행하길 원하신다는 겁니다.
우리 이 시간에 다시 주님을 바라봅시다. 늘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주님, 이 시간 다시, 주님의 놀라운 복음앞에 반응합니다. 우리에게 평안을 더하여주시고, 각자에게 필요한 말씀들을 마음가운데 채워주시옵소서 주님과 더욱더 가깝게 동행하는 삶이 되고 주님과의 진실된 관계안에서 회복이 일어나고 평안이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간절히 주님을 찾고 나아갑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