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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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독자들을 이렇게 지칭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사실 이 표현은 요한일서를 통해 반복되어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요한은 일관되게 사랑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이제 알려주는 단락입니다. 요한이 그들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지칭함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난 하나님이 사랑이십니다. 오늘 이 하나님의 사랑을 향해 사랑하는 여러분들과 함께 더 깊이 들어가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놀라운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으로 보내신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모양이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진리가 정말 믿어지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이러한 관점을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3:16 함께 읽어봅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러분, 요한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과 그 목적을 이야기합니다. 한결같은 답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살리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망가지고 죽었던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다시 회복시키시고 살리시기 위해 정하신 유일한 방법, 그것은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가 만드신 사람과 동일한 존재가 되어 그가 만드신 사람에게 죽임당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요한1서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동하거나 그렇지 않음을 선택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기꺼이 그 생명을 내어주신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렇게 할 때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그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어떻게 거하실까요? 성경 구절을 찾아봅시다. 마태복음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가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을 믿는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가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과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을 믿는 자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에베소서 2:21–22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어가는 공동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어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요한이 이렇게 편지를 쓴 시점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본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분명히 이렇게 전달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는 것, 사랑 안에서 두려움 없이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이 안에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온전한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누가복음 17:20–21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이미 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분을 통해 담대함을 얻은 우리 안에 임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고, 그리고 그 성령을 통해 사랑을 알고 믿은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우리 안에 거하신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요? 오늘 본문 15절 함께 읽습니다. 요한1서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여러분, 예수님을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다른 누구말고 정말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되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삶은 다른 무엇의 눈치를 볼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당신만을 향한 그 사랑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자는 그 형제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마태복음 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무엇같이요? 나 자신을 사랑함같이 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사랑합니다. 나에게는 매우 관대하고, 나도 모르는 ‘나’ 중심의 삶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나는 용서가 되는데 내 옆의 사람은 용서가 되지 않을 때가 있고, 나는 이렇게 행동해도 되지만, 내 옆의 사람은 그러면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를 남보다 더 뛰어난 존재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의 자아존중감을 떨어뜨리고자 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존재인데, 다른 사람은 그렇게 여기지 못할 때가 많을까요? 여러분이 정말 옆의 분들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보이신 그 사랑으로 닮아 사랑한다면, 여러분들은 그 속에 사그러져들어가는 영혼을 보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평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평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전해야하고 예수님을 닮아가야하고 예수님을 닮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계속해서 평안을 만들어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 아직 이 사랑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했다면, 그들을 어서 이 공동체로 초대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선물한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할 것을 주려고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은 죽음에 있는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었고, 그로부터 누리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이 사랑을 다른 사람을 향해 표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 간의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어른이 자녀 세대를, 자녀세대가 어른을, 같은 세대 간에서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세대나 성별, 기타 여러 조건을 넘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인간의 일탈행위로 인한 책임을 왜 지십니까? 당신의 뜻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었기에, 저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편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생명의 승리로 바꾸셨다고 믿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상대방의 편에서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외부로 이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