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6-8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67 views
Notes
Transcript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251장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말씀후 502장 빛의 사자 들이여
빛에 대한 증거
요한복음 1:6-8
왕이 있던 시절 외딴 섬같은 곳에 왕과 그 신하가 나타나면 아마 그 곳 사람들은 왕과 신하를 잘 구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화려한 옷을 입은 권세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모두가 위대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왕과 그 신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눈으로 나타난 것만 보고 예수님과 다른 위대한 선지자를 구별하기 못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들이 다 놀랍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소개할 때 사람들은 예수님만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머리에는 금방 스쳐 지나가는 또 다른 놀롭고도 위대한 말씀의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요?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세례 요한이 끼친 말씀의 능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감리교인으로서 18세기 말씀의 사람이라고 하면 존 웨슬리 목사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설교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기도하고, 자기들의 죄를 통회하며 자복하였습니다. 그가 탄광촌에서 설교할 때 광부들이 시커먼 얼굴에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당시 전 세계 유대인들의 이목을 아무도 없는 광야로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세계 곳곳의 유대인들이 광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고 너무나도 마음이 찔려서 자기들의 죄스러운 삶을 다 회개하고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다 한결같이 랍비 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헬라 사회에는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나름대로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세례요한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나요?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오직 세례 요한만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지닌 공통점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사역에 임했던 것입니다. 말씀에 보내다는 뜻의 헬라어에는 보낸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과 임무의 위임을 강조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후자에 속합니다. 즉 수많은 교사들과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고,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고 일한 자는 오직 세례 요한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요한만이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 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요한 자신이 이와 같이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러한 자각을 다른말로 소명의식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다른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요한도 이 의식이 철저하였습니다. 이는 자기에게로 나아오는 유대 종교의 지도자들에 대한 세례 요한의 두 가지 태도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힌 점입니다.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회개를 촉구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구원해 줄 그리스도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사역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메시야로 생각하도록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따라서 요한이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말했더라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를 따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와 달리 그는 제사장의 아들이어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배척을 받게 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도 이러한 당시의 정황을 읽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겨로 사람들을 속이지도, 자기 분량을 넘어서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단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자신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소명에 대해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명 의식이 철저한 이들은 분량 밖의 자랑을 피하고 자기 본분에 충실합니다.
둘째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책망한 점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의 행동 여하에 따라 그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고, 해를 입힐 수도 있는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책망했으며, 심지어는 헤롯의 불의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책망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이 일로 헤롯에 의해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소명 의식이 철저한 사람들은 이와 같이 모든 불의에 대해 과감히 지적하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이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올 반사 이익이나 손실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보다 사람들의 반응을 더 의식하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자 힘씁니만, 소명 의식에 철자한 사람드은 언제든지 하나님 편에 서고, 하나님의 뜻을 최우선 순위에 둡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소명 의식이 철저한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목적을 분명히 알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인정받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때때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읽고 하지만 믿음은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신앙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시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과 만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우리 인격 가운데 비추어 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억지로 성경공부만 많이 하고, 듣기 좋은 설교를 많이 듣는다고 해서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실 때 반드시 사람을 보내십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다 알고 사람을 보내십니다. 우리 생각에는 우연히 말씀을 듣는 것 같지만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사람을 보내어 하나님의 계시를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는 바로 성경입니다. 이 성경이 해석되어지면 나의 마음을 치는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세워 놓습니다. 그 전까지는 교회에만 나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성전에 세워 놓는 것입니다. 이 때 내가 얼마나 사악한 자이며,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 알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떨게 됩니다. 이 때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요한이 한 일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였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던 것은 오직 그에게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성경이 바로 해석되어지고, 그것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내 마음에 와 닿아야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나에게 믿겨져야 합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여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44절에서 요한복음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설교자인 저를 통하여 성경을 해석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이 말씀이 살아 있는 말씀으로 나에게 와 닿아야 합니다. 이 말씀이 내 영혼을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전으로 끌고 가서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죄인이었는가를 깨닫고,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나에게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셔야 이 말씀이신 그리스도 앞에 떨며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세례 요한이 그토록 많은 사람을 회개시켰고 놀라운 말씀으로 증거했지만 그 역시 이 ‘빛’이 아니라 단순히 이 빛의 증거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으로 사람들을 회개시켰습니까? 그 앞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요한의 말씀을 듣고 자기 죄를 회개했습니다. 겉모습만 본다면 요한은 예수님보다 훨씬 더 유명한 사람이요, 주목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씀도, 빛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이 빛을 믿게 하기 위하여 빛의 증거자로 보냄을 받은 하인일 뿐이었습니다.
요한이 전하는 말씀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우리는 요한을 하인이 아니라 집 주인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하여 먼저 보냄을 받은 신하에 불과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대하여 27절에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말한 것은 결코 과정된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과는 도저히 비교될 수 없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만드신 분이시며, 요한은 오직 그의 피조물에 불과했습니다. 그 조용한 말씀의 주인공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십니까? 요한은 다른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했지만 그는 단 한 사람의 죄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사람의 죄를 용서하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제자들도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로 세례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는 분은 위대한 설교자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죄를 성령으로 씻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세례요한이 자신은 빛이 아니고 오직 이 빛을 증거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나를 부르고 계신 분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여러분을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사역자가 여러분을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교회가 영광스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능력이 나타날 때 교회는 영광스럽습니다. 하나님게서 말씀의 사역자를 놀랍게 사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여러분을 생명으로 초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부르고 계신 분은 교회나 설교자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지 않는 이상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듣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며 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의 말씀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요한의 세례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잠시 요한이 빛에 있기를 즐거워하였지, 참 빛 되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지 않는 말씀이나 교회는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말씀의 사역자라고 하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뿐입니다. 요한의 말이 옳습니다. 그는 신부를 신랑에게 소개하는 친구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가 우리 중심에 계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그리스도를 다른 것과 뭉뚱그려서 생각하기 쉽습니까? 단순한 친교를 교회의 목적으로 생각하시나요? 우리 모두 중심에 그리스도가 안 계시면 우리의 교제가 아무리 친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이십니까? 그분 앞에 그 어떤 것도 우선순위로 두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는 높은 산에서 예수님이 변화된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영광스럽고 찬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만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도 함께 보았습니다. 그들도 모두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함께 섬기려고 했습니다.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다른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또 다른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만 들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모세와 엘리야를 주님과 함께 모신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사람들끼리 서로 추켜세우면서 영광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서 교회에 올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모세와 엘리야와 같은 수준에서 모시는 것입니다. 요한을 예수님처럼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며, 우리를 말씀으로 찾아오신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 바로 알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영광과 찬송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세례 요한이 온 목적은 무엇입니까? 7-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7–8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한이 온 목적은 이 빛을 믿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좀 우습지요. 빛을 빛이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요? 빛은 그 자체가 빛입니다. 빛을 빛이라고 증거해 줄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빛은 빛이라고 증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빛은 그 자체가 빛입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증거가 필요 없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만으로도 충분한 빛이셨습니다. 너무나도 찬란한 빛이셨습니다. 태양빛과 같은 빛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빛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이 빛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빛은 증거를 받아야 빛이 되고, 증거를 받지 않으면 빛이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빛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완악함은 이 빛을 인정치 않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먼저 보냄을 받아서 능력의 말씀으로 사람들의 주의를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교만과 죄가 그리스도의 육신 안에 있는 그 놀라운 영광을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증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자기 스스로 빛을 알아서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가 이 빛을 알지 못합니다.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 빛에 대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가만히 두면 한 명도 오지 않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께서 오직 선지자들을 통해서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 시대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엘서에는 마지막 때에 내 신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겠고, 그들이 예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이라도 능히 이 빛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구든지 이 빛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의 시대에는 아무리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빛에 대한 증거가 몇몇 사람에게 제한되지 아니하고 무한히 개방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성령의 능력으로 이 생명의 빛에 대한 진정한 증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이며, 그들의 증거를 통하여 하나님의 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을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 놀라우신 하나님을 믿게 하였습니다. 자신의 삶과 인격을 통해서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줄기차게 지적한다고 해서 그들이 바르게 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빛의 사람들이 누리는 그 찬란한 삶을 보아야 빛으로 나아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의 영광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끌려가는 삶이 되고 있다면 빛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흘러 넘쳐야 하고, 무엇인가 영광스러운 기쁨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날마다 가득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 : 빛의 사자들이여
결단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빛의 자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다함께 주여 삼창 하시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를 빛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오늘도 주님의 빛과 동행하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매일의 삶이 세상에 끌려 다니는 삶이 아니라 삶이 자리 곳곳 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제대로 보여주는 증인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께서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들의 삶에 주께서 주신 빛이 흘러 넘치게 하여 주옵시고, 날마다 주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뜻 이루어 주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으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