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2 금요기도회: 고린도전서 1: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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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1:18-31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18–31 NKRV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는데요. 가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벌써 겨울이 온 것 같습니다. 추위 가운데 몸관리 잘 하시고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햇빛보다 더욱 따뜻하신 주님을 삶 속에서 항상 느끼고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그런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 위해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고린도전서 1장 말씀으로 바울이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대조하여 고린도 교회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무엇인지 함께 깨닫고 이를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먼저 오늘 본문 앞에서 고린도 교회 내에 있었던 분쟁을 문제시합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서 분쟁이 일어났는데요. 그 분쟁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했는가 또는 누구의 제자인지를 서로 간에 자랑하는 문제였습니다. 12절을 보시면 어떤 이들은 자신이 바울의 제자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아볼로의 제자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게바, 즉 베드로의 제자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한다며 나뉘어지고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 내에서 각각 당을 지어 분열이 된 것인데요. 서로가 자신은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고, 베드로의 가르침을 따르고, 아볼로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면서 분열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인데요. 우리가 얼핏보면 그리스도, 즉 예수님과 나머지 세 사람을 동일 선상에서 놓고 보고 있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이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사도들이나 직분자들의 목회나 지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결국 그저 독자적으로 자기 스스로 자신의 목회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아무튼지 간에 고린도 교회 내에서 이러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한분이신데 어찌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나뉘어졌냐면서 모든 사도들은 한분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면서 고린도 교회가 분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17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보내신 이유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에 대해서 바울이 이야기 시작하는데요.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지혜”입니다. 무엇이 지혜인지를 가르치면서 세상적인 지혜, 즉 누구의 사상이나 가르침을 따르면서 어떤 권위자를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이신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 지혜라고 말합니다.
18절부터 보시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혜와 연관시키는데요. 같은 십자가이지만 두 가지의 반응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 다른 말로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자들, 특별히 여기에서 바울을 포함한 고린도 교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능력을 대조시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구절을 그냥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세상의 관점을 봤을 때는 당연히 어리석고 미련해보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고난이며 수치입니다. 당시에 가장 극형에 해당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십자가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 십자가로 구원하십니다.
그러니 오히려 역으로 이 십자가가 어리석은 것이라고 여기는 자들이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 어리석은 십자가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지혜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십자가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19-20절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혜자들의 지혜를 파괴시키시고, 총명한 자, 다른 말로 영리한 자들의 그 영리함을 폐하실 것이다, 없애버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지혜자, 여기에서는 선비로 번역되었지만 전문가들, 변론가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지혜자, 전문가들, 변론가들이 무엇입니까? 바로 세상에서 지혜 있는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따르는 자들이고 이 사람들이 진리를 안다고 여겨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이들은 결코 지혜있는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지혜인 십자가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21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바로 세상에 있는 지혜자들은 결코 지혜자가 아닙니다. 그들의 지혜로는 도무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그림자이 보이거나 하나님이 희미하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을 알 수 있도록 알려주기로 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전도’, 즉 설교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를 통하여 자신을 인간에게 알려주기로 하셨습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이 설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22절에 그 이유가 나와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바로 유대인은 표적으로 하나님께서 알려주기를 원하고, 헬라인은 철학과 같은 지식 또는 지혜라는 이성으로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설교라는 것은 이들에게 굉장히 미련하고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어리석은 설교를 통하여 자신을 알려주심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 설교를 통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하게 하심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23절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바로 세상에서는 어리석다고 하는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어리석어 보여도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유대인과 이방인에게는 어떤 존재입니까? 23절 하반절절입니다.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다.” 유대인에게는 걸림돌과 같은 존재이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십자가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24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 모두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에게 이 그리스도는 능력이고 지혜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 그리스도를 더욱 강력하게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바로 하나님은 지혜로우시고 사람은 어리석다는 것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것도 비교법으로 말입니다. 25절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바로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다고 한들 하나님의 어리석음보다 못하고, 사람이 아무리 강한다고 한들 하나님의 약하심보다 못하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어리석고 약하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혜로우시고 강하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너희 자신을 보면서 이 하나님의 능력을 알라라고 말합니다. 26-28절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 구절들 속에 나오는 자들을 보십시오. 하나님꼐서 구원하기로 택하신 자들은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고 권력이 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만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이런 자들만이 구원받기에 합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보잘 것 없고, 오히려 가장 가난하고 낮은 자들을 택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어리석어 보이는 자들을 하나님은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관점에서 지혜자,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들이 구원받지 못하도록 하셨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29절에 나옵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로 오직 세상에서 힘없는 자들에게만 구원을 베푸셨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이런 것들을 통해 자신을 뽐내고 자랑하여 교만해진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셔서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못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누구도 이웃을 향해 자신을 자랑하지 못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자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30-31절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자들에게 그리스도는 전부가 되시기 때문에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도 고린도 교회와 같은 상황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우리 맘에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야, 저렇게 경건하게 살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거야 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은연 중에 율법주의자입니다. 우리의 행함이나 어떤 모습을 통해 구원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의하면 이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감격하여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이쁨을 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은 설교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하기를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함을 보시고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알려주심으로 구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을 교회 안에서 자랑해선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며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그리스도만을 자랑합시다. 우리의 모든 교제, 그리고 우리의 삶 전체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냅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것이 됩니다. 우리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원함 이 모든 것이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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