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4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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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된 의의 면류관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아온 여러분들에게 주님께서 말씀으로 은혜를 부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3학년들을 파송하고 처음 1,2학년들끼리 드리는 첫 예배이죠? 그런데 또 아이러니하게도 이번학기 마지막 바로 전 예배입니다.
시간이 참 빠른 것 같죠?
여러분들은 어떻게 한주를 보내셨나요?
아마 월화수까지 3학년들 짐뺀다고 막 난리난리 했을거고, 여러분들은 옆에서 그걸 바라보면서 싱숭생숭한 마음들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요. 참 마지막이라는 것이 우리가 어쩔수없이 겪는 것이긴 하지만, 겪을 때마다 참 적응이 안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늘 보던 3학년들을 보지 못하고, 내가 3학년이, 2학년이 된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이 되죠.
그런데요, 참 신기한게 오늘의 본문 역시도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본문이 어디죠? 디모데후서 사장 말씀이에요. 여러분들 가지고 계신 성경책을 펼쳐보면, 디모데후서가 몇장까지 있을까요? 맞아요. 바로 4장까지만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본 본문은? 디모데후서의 마지막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편지를 한번쯤은 써봤을거에요. 하다못해 우리 캠프가면 롤페를 쓰잖아요?
그걸 쓰면 마무리할때 하는 이야기들이 있을거에요.
마지막이 가까워오니 보고싶다. 뭐 언제 다시 보자. 이런 이야기들을 적겠죠.
오늘 말씀의 바울 역시도 디모데에게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그의 안에 있는 정말 마지막 권면과 그의 마음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함께 본문 4장 말씀을 보면서, 그의 삶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기, 디모데에게 쓰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하였을지, 또한 우리는 이를 통해 어떤 은혜를 누릴 수 있을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첫구절은 바울의 디모데를 향한 마지막 권면의 내용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죠?
하나님 앞과 심판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한대요.
어떤 것을 명할까요? 바로 2절에 이어지죠. 말씀을 전파하라.
그렇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한 마지막 주된 권면은 말씀을 전하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 전하는 것이 누구 앞에서 명하는거에요? 하나님 앞에서. 그런데 그 하나님은, 다시 오실 분, 또한 그의 나라를 세우실 분이시죠.
그러니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야, 하나님께서 분명 다시 오실 것이고, 그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니, 너는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그런데 말씀을 어떻게 전하래요?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때를 얻는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거죠. 디모데가 말씀을 전할 때, 그 말씀이 무조건 다 모두에게 은혜를 주게 될까요?
물론 뭐 성경인물들이 전하는 말씀이라면 뭔가 지금의 이런 것과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겠지만요, 사실 디모데의 말씀선포도 어쩌면 그 말을 믿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을거에요. 즉 말씀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그러면 말씀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한 것은 디모데의 탓일까요? 뭐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왜요? 말씀 선포는 전하는 자에 따라서 능력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제가 여러번 말했죠? 전도는 우리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과 능력으로 행하지는 것이라고.
결국 말씀의 능력은 전달하는 자, 즉 우리의 능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뜻에 맡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어때요? 말씀을 전해도 능력이 발휘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아직 때가 이르지 못한 것이죠.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때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를 얻지 못했으니까 앞으로 말씀을 전하지 않아야 할까요? 아니 말씀을 전해도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하는게 차라리 낫잖아요.
문제는 그 때를 우리가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겠죠. 우리는 그게 언제인지 몰라요. 심지어 나 스스로는 별로인 것 같은데, 그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해요? 그냥 내가 말씀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전혀 신경쓰지 아니하고 나는 전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의 때가 우리 가운데 임하겠죠. 그러니 우리는 그때가 바로 오늘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복음 선포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또 필요한 것이 있겠죠. 뭘까요? 이어지는 말씀에 등장하죠.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말씀을 아무리 선포해도 안듣는 자들이 존재하는데, 그래도 신경쓰지 않고 전하라고 하시는 거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뭐가 있어야겠어요? 우리 마음에 오래참음과 온유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친구한테 야 하임 한번 나와봐 했는데 가기 싫은데, 일어나기 귀찮아 라고 할 수 있는거에요. 그러면 아 얘는 구원 못받는 애구나 하고 넌 탈락! 하라는 거에요? 아니라는 겁니다.
아 지금은 그 때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으로 이후에 또 다시 한번 권유해보는 거에요. 야 하임가자! 하임 좋아! 그런데 이번에는 짜증을 낼 수도 있겠죠. 안간다니깐!
그러면 전하는 여러분도 어쩌면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어요. 아니 좋은거 준다는데 왜 마다하는거야. 쟤는 탈락! 하는 게 아니고, 뭘 해야겠어요? 오래 참음으로 가르침으로 잘 권하며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 너무 싫어하면, 일단은 기다리며 참고 있다가 하나님께서 또 기회를 주실 때, 잘 지혜롭게 복음에 대해 설명하면서 잘 전할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때에 맞춰 그 지체를 우리 공동체 가운데 보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아니 저는 똑똑하지 못한데요, 친구들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상관 없습니다. 전도와 믿음의 과정은 절대로 어떤 논리와 지식을 통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뜻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번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들이 윤리 시간에 한번쯤 들어봤을 칼빈이라는 종교개혁자가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대학원 발표 때문에 그분의 여러 기록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칼빈이 쓴 편지들을 볼 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기록 중에 어떤 내용들이 있었냐? 칼빈이 사역하면서 힘들었던 내용을 토로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칼빈이 그가 양육하던 학생에게 권면을 하는거에요.
평소에 그 친구가 말씀도 안지키고 잘못된 짓들을 행하면서 다니는게 파다하게 알려진거에요. 그런데 성찬식을 이제 해야하는데, 그러한 죄악들을 그대로 둔 채로 성찬을 하게 할 수 없었던 거에요.
그러니 그 친구를 불러서 너의 잘못을 회개하도록 권면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뭐라고 했냐, 아니 고해성사는 카톨릭 꺼 아닌가요? 왜 제가 죄를 고하고 회개해야해요? 개신교는 그런거 없잖아요? 라고 비아냥대는거에요.
그래서 칼빈은 아니다. 기독교에도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들이 필요하다라고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칼빈이라는 지식인이 신학에 대해 설명하는데 얼마나 잘 설명했겠어요?
그런데 그 친구는 결국 칼빈의 말을 안듣습니다.
그래서 칼빈이 편지로 그 일 때문에 힘들다고 적어 놨던 것입니다.
그래요, 그 대단한 칼빈 역시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단 한명의 지체도 올바르게 이끌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만 잘 맞는다면, 당장 교회 말씀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어도 충분히 전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 전도자의 역할을 맡게 될 디모데에게 그 일에 전심전력으로 열심히 행할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그 때가 아니라서 잘 되지 않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힘써라, 분명 하나님의 때에 맞게 될 때가 있을 것이고, 그때에 맞는다면 하나님께서 이뤄내실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우리가 열심히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요,
바로 이어지는 3절에서부터 등장합니다.
또 때가 이르는데, 어떤 때가 이르는거에요? 여기서는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 정반대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가까워지면서 악한 이들의 악행이 불일듯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려워서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른대요.
간단하게 말하면 뭘까요?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세상의 가르침들, 진리와는 벗어난 전혀 맞지 않는 허황된 이야기들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들을 따라가는 것일까요? 바로 그것이 듣기 좋고 편한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거에요. 말씀에서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해야해. 그러면 너가 좀 손해 보더라도 그걸 감수하여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해!
하지만 세상에서는 너가 손해를 왜 봐? 네 세상은 너의 것이야! 당장 너가 즐거워야지! 다른 사람 좋은게 너랑 뭔 상관이야?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마치 세상에서 이득보는 꿀팁들을 공유하고 그것만 찾아다니는 모습들이 있을 거라는 거에요.
그래서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법 이런 것들을 봐야하는데, 허탄한 것들, 코인 단타로 대박나는 법. 이런 것들에만 우리가 따른다는 겁니다.
뭐 제가 예를 들긴 했지만, 사실 지금의 세상도 다르지 않죠. 여러분들이 너무나도 좋아할 인스타 릴스나 유튜브 쇼츠들이 딱 이런 것들이 많죠. 순간적인 즐거움, 당장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할 수 있는 것들. 이런 것들이 자꾸 우리의 귀를 울리고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이 악해졌기 때문일거에요. 서로 나누고 사랑하고 이런 모습들보다는 누굴 앞서고 이기고 누르고 정복하는 이런 악한 모습들만을 세상이 원하다보니 당연히 이런 진리가 아닌 잘못된 것들에 우리의 마음이 자꾸 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말씀과 주님을 향한 마음은 멀어지게 되겠죠.
하지만 바울은 그럼에도 디모데가 말씀 전도자로서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바울의 디모데를 향한 이 말은 당장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자꾸 진리가 아닌 것들을 이야기하죠. 앞서 말한 이득을 챙기고 이런 것들도 있겠지만,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말 잘못된 진리들도 많습니다.
요즘 시대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 즉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진리를 따르는 사회가 되다보니, 여러분들이 성경에서 보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실 여러분들 삶에서 어때요? 어려움들을 겪을 때가 있어요.
너는 왜 그게 당연해? 라고 하면, 사실 우리는 뭐라고 할수밖에 없어요? 말씀에서 그렇게 이야기했어! 라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과 고난들은, 어쩌면 하나님의 때를 걸어가는 우리에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바울도 5절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죠. 신중하여 고난을 받고 전도자의 일을 해라. 네 직무를 다하라.
그쵸. 분명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까지는 많은 고난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오해를 하거나 혹은 비난하는 이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큰 고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거에요? 열심히 그 자리를 지키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그것까지도 우리 전도자의 사명이자 직무라는 것이죠.
바울은 이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6절부터 8절까지 이어지는데요,
자신이 전제와 같이 부어지고 떠날 때가 왔대요. 전제와 같이 부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제사를 할 때 피를 대신하여 포도주를 쏟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한 제사의 도구로서 온전히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도구로서 모든 역할을 다했기에, 자신이 일을 마치고 떠날 때가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사역이, 아니, 자신의 모든 삶이 끝나감을 직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죠. 그리고 7절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선한 싸움, 즉 하나님의 일을 위해 열심히 분투하며 거짓 교사들과 싸웠고, 지금의 길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통해서 주님이 주신 온전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8절로 이어지죠. 그러니 이제 나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그 면류관을 내게 주실 것이고, 뿐만 아니라 주를 사모하여 그의 일을 행한 모두에게 그 면류관이 주어질 것을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보면 바울의 자기 자랑일수도, 혹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고하는 것일수도 있겠죠.
하지만 바울이 이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지금껏 말한 모든 것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열심히 전하고 오래 참음으로 올바른 이야기를 전했던 것의 모범이 바로 자신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렇게 살았고, 그러한 삶을 살면 주님께서 이렇게 행해주실거야 라고 바울은 자신을 본보기로서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삶은 어땠다고 하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킴으로써 주님께서 바울을 위한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면류관이 어떤 의미인지를 확인해봐야겠죠? 면류관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로마 황제들이 머리에 쓰는 잎사귀를 엮어서 만든 왕관과 같은 것입니다.
그 면류관은 보통 그것을 쓰는 사람의 권위를 나타내게 되죠.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면류관은 바울 혼자를 위한 것이 아니고,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자를 위한 거라고 합니다.
이건 뭘까요? 이건 올림픽을 생각하시면 쉬울 것 같아요.
지금도 올림픽에서 우승하면 월계수관을 머리에 쓰는 경우들이 있죠?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싸움과 달려갈 길을 다 마친 자에게 주님께서 면류관을 씌워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뭐냐? 1등만 주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바울 뿐 아니라 주를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다는 거에요.
즉, 열심히 주님을 따라 걷고 주님을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은 의의 면류관으로 우리 가운데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무얼 의미할까요? 모든 이들이 사역을 행할 때, 잘하는 것, 어떤 실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거에요.
그저 열심히 버티고 싸워나가면서 걸어간다면, 주님은 모두에게 면류관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그럼 그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열심히 마라톤 경주를 하고 그 고통을 끝낸 자들에게 주어지는 면류관, 즉 주님의 때에 우리 가운데 임할 하나님 나라, 그 시민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습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의 모든 사역과 삶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자신과 함께 뛰어온 제자들과 성도들이 마지막까지 힘내서 달려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디모데를 비롯한 성도들에게 바울의 죽음, 바울의 부재는 크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물론 그 때가 올 것을 모두들 알고는 있지만, 막상 그 때를 겪게 되면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교회를 이끌고 가르치면서 힘을 주었던 바울이기에, 그가 주께로 향한다면, 남는 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겠죠.
그랬기에 바울은 자신의 삶이 물론 고된 삶이었지만, 그것이 자신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일하게 겪고 이겨낼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바울의 권면은 지금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2학년 친구들, 3학년들이 졸업해서 떠나면,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나를 이끌어주었던, 힘이 되었던 그들이 없이 잘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내가 후배들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많은 두려움이 있겠죠.
1학년들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이제 나는 더이상 막내가 아닌데, 2학년으로서 맡게 될 것들이 많은데, 선배들처럼 잘 할수가 있을까? 두려움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 사도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 물론 힘든 고난이겠지만, 너에게 맡겨진 일들을 열심히 해나간다면, 주님께서 함께하실 것이고, 마지막 때를 위해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계실 거야.
올 한해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잘 기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앞으로의 삶에 또 어려움들, 고난의 길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여러분들 혼자서 걸어가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걸어주실 것이구요, 우리 공동체가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특별한 누군가만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은 의의 면류관을 준비하시고 끝내는 우리에게 그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바라며 함께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든 하임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나는 오늘을 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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