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은혜

새벽예배 - 공동체 성경읽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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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우리가 함께 나눌 본문 말씀은
23장 44-49절 말씀입니다.
Luke 23:44–49 NKSV
어느덧 낮 열두 시쯤 되었는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해는 빛을 잃고, 성전의 휘장은 한가운데가 찢어졌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는 숨을 거두셨다. 그런데 백부장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구경하러 모여든 무리도 그 일어난 일을 보고, 모두 가슴을 치면서 돌아갔다. 예수를 아는 사람들과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따라다닌 여자들은, 다 멀찍이 서서 이 일을 지켜보았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
많이 들어본 속담이죠?
여러분은 소잃고 외양간을 고쳐본 경험 있으신가요?
저는 그랬던 경험이 있습니다.
23살에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을
대표하는 찬양팀의 리더를 맡았었습니다.
열정과 패기만 가득 넘쳐서
세상에서 가장 잘난 줄 알고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법 잘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온누리 찬양단이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평가가 될 정도였습니다.
물론 자칭이 아니라 타칭이였습니다.
그렇게 리더로써 사역을 마치게 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갑자기 문득 저에게 있었던
부족했던 점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하나 두개씩 생기기 시작하는거에요.
아니 생각날거면.. 이왕이면
리더로써 섬기고 있을때 생각이 났으면
더 좋았을 것을… 왜 이제서야 생각날까
후회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 했던 실수들, 그때 놓쳤던 것들을
우리교회에 와서
청소년들에게는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점검하고 돌아보며
사역을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감사했습니다.
뒤늦게서라도 외양간을 고치고 나니
새로운 송아지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없는 존재이고,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살아가면서 후회는 반드시
하게 되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후회도 은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쨋든 후회를 한다는 것은
뒤늦게라도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것이니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도 소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기이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낮 열 두시쯤이었는데,
어둠이 온 땅을 덮었고,
오후 세시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해가 빛을 잃었다는 건
과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일식일 것입니다.
일식 중에서도
달이 태양을 완전하게 가리는
개기일식이 되어야
해가 빛을 잃고 땅에 어두움이 드리울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이론적으로 달이 태양을 완전하게 가릴 수 있는
최대 시간은 7분 32초정도 됩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가장 길게 관측된
개기일식 시간이
7분 4초정도 남짓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조금 더 길게 관측을 한 기록도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래봐야 10분 내외일 것입니다.
그런데 해가 빛을 3시간 동안이나
잃어버렸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슬퍼하는 하나님의 마음에
온 자연이 자연의 법칙조차 잊어버리고
공명을 해버린 것이죠.
TV를 보다보면
자식을 잃은 슬픔에 잠겨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해메이는 부모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저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데,
여러분은 상상이 되시나요?
만약 제 주변에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단언컨데,
그 옆에서 단 한 마디의 위로의 말도
건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옆에 있는 것 조차도
미안하고 눈치보여서
어쩔 줄 모를 것 같습니다.
자녀를 잃은 슬픔으로
그 삶에 드리워진 어두움을
감히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요?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아무런 죄도 없고 흠도 없는
하나 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셨습니다.
자녀가 죽음의 길을 향해 걸어가는 것을
눈물을 머금고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
그런데 하나님께서 눈물을 머금으면서까지도
하나뿐인 아들이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45절 말씀 읽어볼까요?
Luke 23:45 NKSV
해는 빛을 잃고, 성전의 휘장은 한가운데가 찢어졌다.
해는 빛을 잃었는데,
성전의 휘장은 한 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성전은 50규빗 정사각형
두 개로 되어 있습니다.
50규빗은 대략 20미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두 개 중 한 개의 영역은 사람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개의 영역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사람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일년에 한 번 속죄일에
대제사장만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위해서
희생제사를 드리던 장소가
하나님의 영역이고
이를 지성소라고 부릅니다.
인간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 사이에는
휘장이 있었어요.
이 휘장은 성경에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만
유대인들의 전승 탈무드에 따르면
두께가 약 7.5센티미터 정도이고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져서
쉽게 찢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휘장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그리고 인간의 제한성이었습니다.
죄로 물들어버린 인간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구별하는 것을 상징하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담인 것입니다.
그 담이
모든 능력과 모든 권세와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완전하게 무너진 것입니다.
이제 성소와 지성소의 구분은 없어졌고,
반드시 대제사장을 통하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죽음의 길을 향해
기꺼이 걸어가는 그 모습에
슬퍼하시기도 하셨지만,
그 안에는 모든 인류의
무너져 있는 영혼과 삶을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이 있었던 것이죠.
이 놀라운 사랑의 계획을
눈 앞에서 목도한 백부장과
구경하러 모여든 무리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47절과 48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Luke 23:47–48 NKSV
그런데 백부장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구경하러 모여든 무리도 그 일어난 일을 보고, 모두 가슴을 치면서 돌아갔다.
백부장도 이 일을 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죠.
이 사람은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의롭다는 말은
정당하다, 옳다, 아무런 죄가 없다는 뜻입니다.
구경하러 모여든 무리도
뒤늦은 후회를 했습니다.
가슴을 쳤다는 것은
애도와 후회를 상징하는 행동입니다.
모두 뒤늦게서야 깨닫게 되었죠.
눈에 보이는 놀라운 증거들을
보여줘야만 그제서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미련하죠. 참 안타까운 인생들처럼 보입니다.
왜 예수님인걸 몰랐을까
수업이 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권위가 넘치는 말씀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신 분이었는데,
왜 사람들이 진작에 알아보지 못했을까?
저는 어렸을때 이 말씀을 읽으면서
참 답답했어요.
아니 출애굽 때도 그렇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도 그렇고
아니 왜 봐도 못 믿고
말씀을 들어도 모르는거여 바보들 아니여?
그런데 그런 말이 있잖아요.
바둑을 둘때 바둑 9단보다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은
옆에서 지켜보며 훈수두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뇌과학자들도 말하는 것이
3자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면
생각이 트이고 창의력이 극대화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바둑을 두는 사람이 되면,
3자의 입장이 아니라
당사자가 되면
너무 쉬운 것들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자신이 그 상황이 안 되보면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함부로 말하는 훈수를 두는 사람이었죠.
만약 내가 저 시대에
예수님을 직접 눈 앞에서 목도했다면
나는 예수님을 믿었을까?
그런 마음으로 말씀을 바라보니
백부장과 구경하러 모여든 무리들에게
굉장히 큰 은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뒤늦게서라도 예수님을
알아보는 은혜를 누렸다는거에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에
동참하고, 방관하던 사람들이였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에 대한
죄책감도 후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숨기려고 했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과 구경하러 모여든 무리들은
깨달았습니다.
우릴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말이죠.
우리에게 그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님, 늦게라도 좋습니다.
뒤늦게 깨닫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살아가지 않길 소망합니다.
비록 연약하고 부족해서
날이면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죄인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가 있다면
바로 저일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바라옵기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가슴을 치며 후회하고 자책하는 한이 있더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뒤늦게서라도 반드시 깨닫는 은혜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처럼
눈이 멀어서
자신들의 죄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로 살아가지 않게 하옵소서.
비록 연약하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련맞게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인생이지만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비록 모든 자연 만물이
하나님의 슬픔에 공명하여
온 하늘과 온 땅이 함께 울었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이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숨을 쉴 수 있는 통로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매일매일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숨을 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비록 연약하여
여전히 죄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며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박곤 하는 우리지만,
뒤늦게라도 좋으니
우리의 죄를 날마다 깨닫게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뒤늦게라도 좋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뒤늦게라도 알아보아서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안에
영원히 거하며 그 사랑을 받은 자로
살아가게 되는
성도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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