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아이처럼 믿음에 이르는 길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마가복음 10:13-16(신약 70쪽)
설교제목: 어린 아이처럼 믿음에 이르는 길
13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은 말씀하시니다. 15절인데요.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는 하나님 나라 또는 천국은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이 필요함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은 무엇일까요? 일전에 담임목사님이 이에 관해 적절한 비유로 설명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이는 마치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 아무런 의심과 판단없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바로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성경에 대표적인 사례를 하나 들자면요.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도무지 오늘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인데요.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번제 곧 제물을 불에 태워드리는 제사로 드리라고 명령하시자 그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미워한 것도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기적의 아들이고 본처 사라에게서 얻은 유일하고 귀한 아들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것은 굉장한 믿음의 결단이었고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믿음이 바로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련해서 최기수 목사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이분은 현재 강원도 정선에 있는 덕천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속한 교회가 워낙 시골에 ‘오지’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데요. 심지어 현재에도 정선에서 교회까지 한 시간 정도가 걸리고요. 택배도 오지 않는 곳이라고 해요. 이 분이 여기서 사역하게 된 것에는 매우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이분이 20대 시절에 몸에 큰 병이 들었다고 해요. 어느 날부터 시작된 일인데 계속해서 피똥을 싸기 시작하더니 그 정도가 심해서 빈혈이 생기고 수혈을 받아야 할 정도로 않좋았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대장을 절제해야하고 대변주머니를 평생 차고 다녀야 했다고 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그 병이 치유되었는데요. 그러면서 신학교를 입학하게 되었답니다. 그 무렵에 이미 가정을 이루었고 자녀들이 있었는데, 가장이 학교에서 가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고민이 되었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기도 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결국은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요.
10년 정도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힘들게 생활을 했다고 해요. 교육전도사로 일하면서 받는 사례 50만원이고 아내가 벌어오는 돈 100만원 합쳐서 150만원 가지고 4식구가 근근히 생활해 나아가는데요. 신대원을 졸업할 때쯤에 덕천교회를 담임하던 목사님에게서 연락이 왔답니다. 그 목사님이 일본선교의 부르심을 받았는데요. 후임자가 없어서 6년동안이나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후임으로 올 수 있겠냐고요. 당시 강원도 살았기 때문에 그 교회에 관한 얘기는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답니다. 워낙 낙후된 곳이라서 후임자로 와달라는 요청에 어떤 분들은 차를 타고 왔다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냥 가버릴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라기보다는 차리라 헛간에 가까운 곳인데요. 200년이 넘은 건물에 쥐랑 뱀이랑 벌레가 들끓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자신이 받은 은혜가 있고 자신이 신학교 있으면서 주님 부르시는 곳은 어디든 가겠다고 주님께 약속한 터라 기도하고 결정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그곳을 가라는 확신을 주셨답니다. 그래서 곧장 전화로 전임 목사님에게 그곳에 가겠다고 알리고 며칠 후에 아내랑 같이 그 교회를 방문했답니다. 워낙 오지라 네비게이션에도 안 나오는 길을 더듬더듬 올라가서 전임 목사님을 만나는데요. 교회를 실제로 보고 나서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답니다. 돌아오는 길에 차마 아내에게 어떠냐고 묻지를 못했는데요. 아내는 그로부터 3일을 앓아 누웠답니다.
정말 아내의 입장에서는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답니다. 그런데 아내도 같이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곳으로 인도하는 확신을 주셔서요. 결국은 그 교회로 가게되었답니다. 이사한 첫 날 벌레가 들끊는 집에서 서로 눈물을 흘리며 밤을 보냈답니다. 더군다나 그곳에서의 목회는 너무나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곳에 사는 분들이 대부분 샤머니즘 그러니깐 무속 신앙에 깊이 빠져있던 분들이라서요. 교회에서 전도하러 가면 욕을 하고 험하게 굴었답니다. 신학교 입학 이후로 시련의 상황이 한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더군다가 그 무렵에 큰 아이는 고 3이고 둘째도 고 2였는데요. 아이들은 기숙사로 보내놓고 생활비 60만원으로 이전보다 더 힘들게 지내야 했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이요. 그곳에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답니다. 그곳에 온지 1년이 안 되서 19년만에 셋째 아이를 가지게 되었답니다. 또 그 소식을 들었던 주변 지인들이 그렇게 험한 환경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냐고 교회를 새로 건축하도록 도움을 주는 손길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또 고3이었던 첫째가 대학을 입학하는데 학비를 보태주는 분들도 생겨나고요. 더군다나 셋째가 생기면서 다둥이 혜택으로 국가지원을 받아서 이전 보다 살림살이가 나아졌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러한 이야기들이 소문이 나서 한번도 교회를 가 본적이 없는 분들이 그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답니다.
그렇다고 그 교회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아닙니다. 2023년도 인터넷 기사에 실린 내용을 보니깐 그 교회에 15명의 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적은 숫자일 수 있지만요. 그곳에 모여서 신앙생활 하는 분은 거의 평생에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고 무속 신앙에 오랫동안 빠져있었던 분들입니다. 어찌보면 저 외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시는 분과 같이 귀한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하고 말입니다. 참 부끄러운 얘기지만 어쩌면 저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도망갔을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험한 산골에 쥐와 뱀과 벌레가 득실 거리던 곳에서 생활하면서 목회를 한다는 것이 도무지 감당이 안 되었을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연 누가 그와 같은 선택을 쉽게 할 수 있을가요? 그런데 또한 깨닫게 되는 것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두리시는 분이 아니시고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책임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참으로 믿을 만한 분이시고 우리가 그분을 전적으로 믿으며 그분께 우리의 삶을 내어놓을 수 있습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어제 추수감사절 찬양제에 물의를 일으킨 것을 기억하시지요. 사실 저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어서요. 왠만하면 준비되지 않은 것을 남들 앞에서 펼쳐보이기를 꺼려합니다. 어제 평소의 저의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선택을 했습니다. 사실 그날 청년들과 점심을 먹고 오후 1시에 모여서 약 30분 정도 연습을 하고 무대에 선 것입니다. 물론 몇 시간을 더 연습했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겁니다. 제게는 매우 당황스럽고 힘든 무대였습니다. 특히나 춤을 추는 일은 제게 몹시나 힘든 일인데요. 예전에 춤 하나를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한 달동안 밤마다 1시간 이상씩 연습을 했는데요. 그럼에도 만족스럽게 소화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그렇게 무리한 선택을 했는지 아십니까? 어제 저처럼 처음 연습해서 무대에선 청년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청년은 저보다 훨씬 좋은 기량을 보여줬지만요. 제가 만약 핑계를 대고 빠진다면, 그 청년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또 청년들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제가 춤을 못춘다는 것은 청년들도 익히 잘 알고 있지만, 함께 하기를 원하는 요청이었습니다. 저는 평소 제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이러한 상황이 어쩌면 주님의 뜻이라 믿으며 무모한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많은 부끄러움 감수하고 무대에 서면서요. 제가 비록 훌륭한 춤사위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무대에 서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웃을 수 있었고요. 저로 인해서 청년들이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생각을 너머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선물할 수 있는지 깨닫기를 소망합니다. 만약 제가 제 생각을 고집했다면 어땠을까요? 또 앞서 최기수 목사님이 덕천 교회에 가지 않았다면 어땟을까요?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귀한 시간을 얻지 못했을거라 여겨집니다.
바라건대, 오늘도 주님의 뜻을 쫓아 살기로 힘쓰고 용기내시기를 소망합니다. 내 생각으로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는 어린 아이와 같이 주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이루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