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에 관한 가르침: 약자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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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10:1-12(신약 70쪽)
설교제목: 이혼에 관한 가르침: 약자 보호
1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현재 서울에 있는 우리들 교회를 담임하시는 김양재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여자 분이신데요. 결혼생활에 관해 방송에서 이런 간증을 하신 적이 있어요. 이분이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피아노과 입학해서 4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졸업했는데요. 그 덕분인지 맞선에서 부잣집 장로님의 의사 아들을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어요.
장로님 아들인데다가 의사에 부잣집이니 결혼생활이 행복할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시집살이가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해요. 시어머니는 매일매일 새벽부터 청소를 시켰고요. 주일에 교회 한 번 나가는 것 말고는 외출도 못하게 했데요. 청소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집을 관리해 주시는 분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도요. 새벽에 새벽기도는 안가면서도 시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며느리들이 총동원이 되서 청소를 하는 거에요. 청소하는 걸레만 4-5종이 있었데요. 그것을 매일하고 있으니깐, 이럴려고 결혼을 했나 싶고 그동안 자신이 배운 것은 아무짝에도 쓸 수가 없게되니 사는게 정말 힘들었데요. 그뿐만 아니라 시어머니는 가난한 집 딸이라고 구박하기 일수고 조금만 실수를 해도 서울대 나왔으면 그것도 못하냐고 타박을 받았다고 해요.
그렇게 외부와 소통을 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종처럼 몇 년을 살다가 보니깐 그런 마음이 들었데요. 이대로 살아서 뭣하겠냐, 이혼을 하던지 죽던지 해야겠다고 말이죠. 차마 죽지는 못하겠고 이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해요. 그러다 결국 집을 뛰쳐 나가서 친정으로 갔는데요. 친정에서도 가시방석이 되니깐 돈도 없고 해서 기도원으로 도망을 갔데요. 기도원으로 갔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음에도 남편은 데리러 오지도 않아서 답답한 마음으로 기도했데요.
그러다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다고 해요. 이전까지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는데도요. 내 야망을 쫓아서 서울대 피아노과를 갔고 부잣집 남자와 결혼을 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자기가 이전까지 욕심부리며 살았던 것들을 회개하며 마음을 돌이키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러다보니깐, 그 밉던 시어머니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자기의 마음이 변하니깐 이혼이고 뭐고하는 생각은 사라지고 그 집안 식구들을 하나님께 어떻게 인도할까하는 생각만이 간절해지더래요.
이렇게 이혼을 생각하던 분들이 신앙 안에서 극복하고 회복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놀랍기도 하고 그것이 옳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다시 말해 신앙인이라면 이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말이죠. 그 생각에 더 확신을 주는 것이 오늘 성경구절처럼 보여지는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어요. 뒤에 조금더 보충해서 말씀을 드릴 것인데요. 결론적으로 말하면요. 신앙인도 이혼할 수 있어요. 다만, 이혼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어요. 왜냐하면, 오늘 성경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이 그렇기 때문이에요.
오늘 성경 이야기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이혼에 관해서 묻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에 관해서 성경을 통해서 답변을 하십니다. 먼저 바리새인들에게 묻기로 모세가 어떻게 했는지를 물으셨어요. 모세의 이야기는 율법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혼증서를 써주면 이혼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더 정확히는 9절에 ‘하나님이 짝지어 준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라고 얘기합니다. 다시 말해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보면, 이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심지어 그것은 죄의 문제로까지 여겨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주의해야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는데요.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이혼을 해서 안 된다고 말하시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혼이라는 것은 주로 힘을 가진 남자들이 막무가내로 행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율법의 교사라는 랍비들은 아내가 밥을 태웠거나,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도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남자들은 아주 쉽게 이혼을 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렇게되면 문제는 이혼을 당한 여자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먹고사는 문제에서부터 이혼녀라는 굴레로 인해 많은 남성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혼을 금하신 것은 단순히 이혼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 이혼으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여성을 보호하고 지키고자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단순히 문자적으로 읽으면 이혼하면 죄가 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배경을 이해한다면,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 속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고요.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해서 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어요. 왜 예수님이 이렇게 복잡하게 얘기를 하시나, 그냥 쉽게 알아듣도록 YES인지 NO인지 딱 정해서 알려주시면 안 되나하고 말이지요. 오늘 성경 이야기를 놓고 보면 여기에도 어떤 이유가 있는데요. 이혼에 관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매우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답변에 따라서 예수님이 곤경에 처할 수 있는 위험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2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 질문을 했다고 얘기합니다.
설명하자면 이런 겁니다. 이혼에 관한 문제는 당시 분본왕 헤롯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분봉왕이라는 말은 헤롯의 왕의 아들을 뜻하는 말인데요. 헤롯 왕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고요. 후에 땅을 4개로 나누어 네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동일하게 헤롯이라고 나오지만 아버지 헤롯이 있고 아들 헤롯이 있습니다. 아들 헤롯 왕 중에 하나가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서 결혼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를 비판하다가 사실 죽게 되었는데요. 세례 요한은 그 결혼은 잘못된 것이라고 공공연히 얘기하고 다닌 것입니다. 아마도 세례 요한은 이혼을 해야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을 바리새인들은 의도적으로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를 결코 모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에게 각각 답하십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보다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제자들에게는 남편을 버리고 분봉왕과 결혼한 헤로디아를 겨냥하여 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가는 것을 간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깐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옳다는 것입니다. 다시 보면 예수님은 이혼을 금하시기도 하지만 이혼을 허락하시기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혼에 관한 신앙적인 답은 이렇습니다. 이혼 할 수도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혼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합니다. 사실 저는 이혼 가정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혼 가정이 어떤 고민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저는 종종 어머니에게서 이혼에 관한 생각을 가졌던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해서 벌인 여러 일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했을 것이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저는 어머니의 이혼을 지지했습니다. 다행인지 몰라도 아직 이혼하지 않고 살고 계십니다.
그런데 방송을 통해서 이혼의 위기를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 또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 곧 부부만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자녀에게까지 오랫동안 상처로 문제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이혼을 결정하는 것은 신중해야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행인지 예전에는 안 그랬다고 하던데 요즘엔 이혼에 관해 다시 생각하는 숙려기간이 있다고도 합니다. 그것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인식을 법원도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혼을 죄악시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성경이 말하는 것도 이혼하면 죄라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오히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그래서 혹여라도 이혼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 문제로 고통당할 약자인 어린 자녀들을 배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저는 앞서 소개한 김양재 목사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신앙생활이 참으로 위대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혼하려던 마음을 돌이키고 오히려 미운 시어머니 구원해야겠다는 사랑으로 섬겨야겠다는 변화를 이룰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약한 자들이 보호받는 것이고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주시면 우리는 새롭게 변화된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신앙생활 덕분에 오늘 우리 성도님들이 이렇게 가정을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바라건대, 오늘도 주님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살아갑시다. 내 힘으로 불가능하지만 주님께서는 나를 변화시키시고 그것으로 우리의 상황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