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벗어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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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
본문: 롬 3:12
(롬3:12)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They are all gone out of the way, they are together become unprofitable; there is none that doeth good, no, not one.
이 말씀은 우리가 타락해서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구약으로 신약 교리를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고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신약 성경이 완성되기 수십년 동안
이 모든 논리를 구약성경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죄와 구속과 복음에 대한 논리를 구약을 통해서 설명한 것을 알면
나는 바울의 가르침만 따른다는 말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그리스도가 아직 죄를 위해 죽지 않으셨지만,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가 아직 부활하지 않으셨지만,
그 모든 교리가 구약에 있었던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거듭남을 알지 못한 것을 책망받음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예수님은 그가 성경에서 그것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신약의 교리는 바울이 아라비아로 가기 전에도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롬3:10) 이것은 기록된바, 의로운 자는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으며
As it is written, There is none righteous, no, not one:
(롬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
There is none that understandeth, there is none that seeketh after God.
(롬3:12)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They are all gone out of the way, they are together become unprofitable; there is none that doeth good, no, not one.
(롬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돌무덤이라. 그들이 자기 혀로 속임수를 쓰나니 그들의 입술 밑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Their throat is an open sepulchre; with their tongues they have used deceit; the poison of asps is under their lips:
(롬3:14) 그들의 입은 저주와 쓴 것으로 가득하며
Whose mouth is full of cursing and bitterness:
(롬3:15) 그들의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므로
Their feet are swift to shed blood:
(롬3:16) 파멸과 고통이 그들의 길에 있어
Destruction and misery are in their ways:
(롬3:17) 그들이 화평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And the way of peace have they not known:
(롬3:18)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There is no fear of God before their eyes.
오늘 우리는 12절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롬3:12)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They are all gone out of the way, they are together become unprofitable; there is none that doeth good, no, not one.
이 말씀은 한눈에 어떤 사람이 길을 벗어나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1 발람의 나귀
발람은 돈만 된다면 무슨 말씀이던 선포할 사람이었습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라는 왕의 요청을 받고
큰 돈을 벌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민22:22) ¶ 그가 간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분노가 타올라 {주}의 천사가 대적이 되어 그를 치려고 길에 서니라. 이제 그는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었는데
¶ And God's anger was kindled because he went: and the angel of the LORD stood in the way for an adversary against him. Now he was riding upon his ass, and his two servants [were] with him.
(민22:23) 나귀가 {주}의 천사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떠나 밭으로 들어가므로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때리니라.
And the ass saw the angel of the LORD standing in the way, and his sword drawn in his hand: and the ass turned aside out of the way, and went into the field: and Balaam smote the ass, to turn her into the way.
이 장면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길에서 벗어나
세상의 길로 빠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길에서 벗어난 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좁은 길의 중심에만 완벽하게 걸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끔찍한 죄를 지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은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말을 하면,
그들의 생각 속에는 끔찍한 범죄만을 떠올리며 반발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사람이 끔찍한 죄를 행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에서 벗어났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귀를 타락시킨 죄는 교만이었습니다.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녀나 깡패 단원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생각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충분합니다.
(시58:1) (악장에게 준 다윗의 믹담, 알다스헷) 오 회중들아, 너희가 참으로 의를 말하느냐? 오 너희 사람들의 아들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단하느냐?
<To the chief Musician, Altaschith, Michtam of David.> Do ye indeed speak righteousness, O congregation? do ye judge uprightly, O ye sons of men?
(시58:2) 참으로 너희가 마음속에서 악을 꾸미고 땅에서 너희 손의 폭력을 저울에 다는도다.
Yea, in heart ye work wickedness; ye weigh the violence of your hands in the earth.
(시58:3) 사악한 자들은 태에서부터 떨어져 나갔으니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길을 잃고 거짓을 말하는도다.
The wicked are estranged from the womb: they go astray as soon as they be born, speaking lies.
이제 막 태어난 아기는 엄마를 괴롭히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지금 당장 젖을 물리지 않으면 굶어 죽을것 처럼 울어댑니다.
이건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거짓말은 아닙니다.
단지 그 아기 안에 있는 본능일 뿐입니다.
엄마가 힘들거라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아기에게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정반대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우리는 나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합니다.
그러다 우리가 때로는 말씀대로 잘 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간 금방 교만해져서,
자신이 칭찬받을만 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일로 그 수고를 망쳐버립니다.
우리는 선한 행동을 하면서도 그 행동으로 교만해지는 인간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욥31:4) 그분께서 내 길들을 보시며 내 모든 걸음을 세지 아니하시느냐?
Doth not he see my ways, and count all my steps?
(욥31:5) 만일 내가 헛된 것과 함께 걸었거나 내 발이 빨리 속임수로 치달았다면
If I have walked with vanity, or if my foot hath hasted to deceit;
(욥31:6)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 나의 순전함을 아시기를 원하노라.
Let me be weighed in an even balance, that God may know mine integrity.
(욥31:7)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벗어났고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갔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If my step hath turned out of the way, and mine heart walked after mine eyes, and if any blot hath cleaved to mine hands;
(욥31:8) 내가 심되 다른 사람이 먹으며 참으로 내 후손이 뿌리째 뽑히기를 원하노라.
then let me sow, and let another eat; yea, let my offspring be rooted out.
욥은 참 용감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는 자신을 거짓으로 비난하던 세 친구들을 보았습니다.
자신처럼 완전하고 올바르게 살지 못한 이웃들을 보았습니다.
욥은 그런 사람득과 자신을 비교해 보니
자신의 발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저울을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거짓말과 자신의 탐욕은 언급하지 않고,
목사의 탐욕이나 목사의 거짓말만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준인 저울에 우리가 올라서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가 길을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유입니다.
길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그들이 "나는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 we have turned every one to his own way; and the LORD hath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이 구절은 우리가 단순히 길을 벗어난 것만이 아니라,
자기 길로 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길에서 벗어났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길 대신 자신의 길을 고집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자신의 길을 주장하고
사람들은 서로의 길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말을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끼리 살면서 별 문제없이 어울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 길과, 자기 성경 해석, 자기 번역본, 자기 교단,
자기 교리, 자신들의 종교적 방식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등장해서 당신들이 가는 길은 지옥으로 가는 길이고,
예수님만이 당신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그들은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을 합니다.
비대면 예배가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저마다 하나님이 제시한 길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책에 들어가서 무엇이 참된 길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당신이 얼마나 멀리 그 길에서 벗어났는지 알 수 있고 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길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성경구절 몇 구절 읽게 하고 영접기도를 따라 하라는 식으로
혼을 구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출발은 하나님을 아는 지점부터 입니다.
(잠21:16) 명철의 길에서 벗어나 방황하는 사람은 죽은 자들의 회중 가운데 남으리라.
The man that wandereth out of the way of understanding shall remain in the congregation of the dead.
우리는 처음에 명철의 길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롬1:21)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Because that, when they knew God, they glorified him not as God, neither were thankful; but became vain in their imaginations, and their foolish heart was darkened.
살인자도, 노예 상인도, 동성애자도
모든 죄인은 "하나님을 알았다"는 데서 출발했다는 것입니다.
(전7:29) 보라, 내가 발견한 것은 오직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사람을 곧바르게 만드셨으나 그들이 많은 창안물을 찾아냈다는 것이라.
Lo, this only have I found, that God hath made man upright; but they have sought out many inventions.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아이들이 자신들의 고의적인 죄를 범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보호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점에 하나님께서 "이 길 가운데 있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길로 가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르는 우리의 고의적인 죄를
하나님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았고,
감사하지도 않았으며, 스스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벗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벗어나 것입니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
All we like sheep have gone astray; we have turned every one to his own way;
하나님께서 그들을 길에서 벗어나게 하셨다고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양 같아서 길을 잃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길에서 벗어난 양을 예수님이 어떻게 대하셨을 까요?
주님께서 길을 잃은 양을 어떻게 대하실까요?
그분은 우리 모두를 멸망시키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나님은 은혜롭고 긍휼이 많으시며 오래 참으시는 분입니다.
(히5:1) 사람들 가운데서 취한 대제사장마다 하나님께 속한 일들에서 사람들을 위하여 임명을 받나니 이것은 그가 죄들로 인해 예물과 희생물을 드리게 하려 함이라.
For every high priest taken from among men is ordained for men in things pertaining to God, that he may offer both gifts and sacrifices for sins:
(히5:2) 그가 무지한 자들과 길에서 벗어난 자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음은 그 자신도 연약함에 싸여 있기 때문이라.
Who can have compassion on the ignorant, and on them that are out of the way; for that he himself also is compassed with infirmity.
모든 사람이 길에서 벗어났습니다.
우리에겐 길에서 벗어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대제사장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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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5:5)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영화롭게 하여 대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시고 그분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신 분께서 그리되게 하셨느니라.
So also Christ glorified not himself to be made an high priest; but he that said unto him, Thou art my Son, to day have I begotten thee.
이 위대한 대제사장은 우리가 예수님께로 돌이키기만 한다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을 살펴봅시다.
우리가 인생의 어느 순간,
어떤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 길로 향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그들의 부모는
아이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보고 책망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친구들 또한 같은 죄악 속에 빠져 있어서,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누구도 그에게 무엇이 잘못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가 삯군 목사를 만났다면 더큰 비극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마치 데이트 상대를 기다리는 연인처럼 말해줍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얼마나 기렸는지 모릅니다.
당신이 찾아와서 예수님이 너무 기뻐할 겁니다.
여러분은 잘못된 길로 벗어났고, 이제 다시 올바른 길로 돌아와야 합니다.
어떻게 돌아가야 할까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은 어느 시점에서 성경을 읽게 되었고
그 안에 있는 내용이 두려움을 주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으신 겁니다.
여러분이 이미 길에서 너무도 멀리 벗어난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되돌리고 싶지만, 나에게 그럴 능력이 없고,
지금 이 엉망진창이 된 상태에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긍휼이 많으신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신 것입니다.
(골2:13) 또 너희의 죄들과 너희 육체의 무할례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너희의 모든 범법을 용서하셨으며
And you, being dead in your sins and the uncircumcision of your flesh, hath he quickened together with him, having forgiven you all trespasses;
(골2:14)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를 반대하던 규례들을 손으로 기록한 것을 지우시고 그것을 길에서 치우사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셨으며
Blotting out the handwriting of ordinances that was against us, which was contrary to us, and took it out of the way, nailing it to his cross;
나는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들을 어기고 10km 이상 길을 벗어났습니다.
나의 범법들은 고발되었고, 나는 스스로 그 길을 돌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좁은 길 한가운데서 예수님이 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손을 잡고 내가 너의 구원자가 되게 한다면,
내가 너의 죄가 고발된 것을 모두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 주겠다.”
우리가 그분의 손을 잡으면
그분은 나를 다시 좁은 길 한가운데로 데려오십니다.
사람들을 지옥으로 모는 삯군 목사들
하지만 죄를 반대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지옥으로 내모는 설교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죄인인 여러분은 정신 차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을 정리하고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스스로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좁은 길에서 10km나 벗어났습니다.
지금부터 바로잡으려고 해도 이미 멀어진 위치에서 돌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점점더 멀리 벗어나기만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바로잡아 주지 않는다면 내 스스로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
(눅15:3) ¶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여 이르시되,
¶ And he spake this parable unto them, saying,
(눅15:4) 너희 중의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가 그것들 중의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남겨 두고 잃어버린 것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What man of you, having an hundred sheep, if he lose one of them, doth not leave the ninety and nine in the wilderness, and go after that which is lost, until he find it?
이 비유에서 양은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이 방황하며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양은 정말 어리석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 개처럼 길을 벗어났다"고 하셨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양은 옆집으로 가서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길 잃은 사람을 양에 비유하셨을 때,
그는 스스로 집으로 돌아올 수 없는 유일한 피조물을 선택하셨습니다.
양이 집을 떠나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양이 울타리를 빠져나와 마당을 돌아다니며,
진입로 끝에 서서 집을 바라보며 크게 울부짖습니다.
왜냐하면 양은 울타리만 벗어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양은 거기 계속 서 있다가 누군가 데려가거나, 아니면 트럭에 치일 것입니다.
누군가 가서 데려오지 않으면 양 스스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양 같아서
하나님께서는 그냥 "우리 모두가 길을 잃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양 같아서 길을 잃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길을 잃었고, 스스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집을 찾아오는 개의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집을 찾아 오는 양의 이야기는 그 어는 곳에서도 소재로 쓰지 않습니다.
양이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는 양 같아서 길을 잃었다’는 말씀은
우리가 길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돌아갈 방법도 없음을 뜻합니다.
(눅15:4) … 잃어버린 것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 and go after that which is lost, until he find it?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을때까지 찾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목자는 그 양을 지팡이로 때리지 않고 대신 그 양을 자신의 어깨에 올립니다.
양은 또한 훈련시킬 수 없습니다.
서커스에서는 여러 동물을 조련시켜서 관객들에게 보여주지만,
양을 훈련시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그 양은 스스로 목자의 어깨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직접 양을 내려다보고 손을 뻗어 들어 올려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양 같아서 길을 잃었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손으로 우리를 들어 올리셔서, 그의 어깨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긍휼과 사랑입니다.
(눅15:5) 또 그가 그것을 찾은즉 기뻐하며 그것을 자기 어깨에 메고
And when he hath found it, he layeth it on his shoulders, rejoicing.
(눅15:6) 집에 돌아와서 자기 친구와 이웃들을 함께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기뻐하라. 내가 잃어버린 내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And when he cometh home, he calleth together his friends and neighbours, saying unto them, Rejoice with me; for I have found my sheep which was lost.
어깨에 매고 집으로 데려가십니다.
양에게 “나를 따라 집으로 가자”라고 하셨다면,
양은 또 길을 잃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기뻐하며 그것을 자기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서”
주님께서는 그 양을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내려놓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양을 길 중간에 내려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양을 처음 있던 자리까지 온전히 되돌려 놓으셨습니다.
(눅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로운 아흔아홉 사람보다 회개하는 한 죄인으로 인하여 더 기쁨이 있으리라.
I say unto you, that likewise joy shall be in heaven over one sinner that repenteth, more than over ninety and nine just persons, which need no repentance.
어떤 분들은 구원을 받았으면 회개 할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합니다.
저는 누가 뭐라고 하던 성경기록대로 말씀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죄인이든 의인이든 회개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로마서 3장으로 다시 돌아갑시다.
(롬3:12) 그들이 다 길에서 벗어나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단 한 사람도 없도다.
They are all gone out of the way, they are together become unprofitable; there is none that doeth good, no, not one.
그럼 어떻게 길로 돌아올 수 있습니까?
내가 내 발걸음을 되돌리면 될까요?
아닙니다
(롬3:21)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
But now the righteousness of God without the law is manifested, being witnessed by the law and the prophets;
(롬3:22)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Even the righteousness of God which is by faith of Jesus Christ unto all and upon all them // that believe: for there is no difference:
>
(롬3:24)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Being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
(롬3:26)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
To declare, I say, at this time his righteousness: that he might be just, and the justifier of him which believeth in Jesus.
(롬3:28)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을 내리노니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
Therefore we conclude that a man is justified by faith without the deeds of the law.
율법은 내가 길을 벗어나며 저질렀던 행위들을 보여줍니다.
만약 내가 그 행위들을 할 수 있었다면,
이미 길에서 1m도 벗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내 행위로 그 길로 돌아가려고 하면
하면 할 수록 더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살면서 내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 있는 곳으로 가서 너를 데리고 올게
그리고 내가 너에게 충분한 의를 줄게.
그리고 너를 네가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려 줄게.”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이 네가 길을 벗어나서 지은 모든 죄값을 이미 치렀다.
만약 네가 이 구원의 제안을 믿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계속 방황하게 두겠지만, 결국 지옥에서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라, 너의 책임이다.”
정말 안타까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이 얼마나 쉬운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오늘 당장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과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들이 올바른 길로 가야할 필요를 모를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의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를 모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이미 가고 있는 길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가장 어려운 일은 그 강퍅하고 자부심 강한 마음을 뚫고 나아가,
죄인들에게 자신들이 죄인임을 납득시키는 것입니다.
길을 잃었음을 깨닫고 나면,
구원을 받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예수님이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들지만 이 사실을 잘 이해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