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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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호세아 8:1-14
주제: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분을 신뢰하며 인애와 공의를 실천하고 삶이 담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본문은 호세아 8장 1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북이스라엘이 영적으로 극도로 타락했던 시기에 주어진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했던 때는 여로보암 2세의 통치 말기였습니다. 표면적으로 이스라엘은 정치적,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영토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버금갈 정도로 확장되었고,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물질적 풍요도 누리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는 매일같이 분주하게 제사가 드려졌고,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겉모습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내면은 깊은 영적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바알과 금송아지 우상 앞에 절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는 화려한 예배가 드려졌지만, 그들의 일상에서는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정의를 왜곡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도 북이스라엘처럼 입술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앎'은 인격적인 만남과 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마치 남편이 아내를 알고, 아내가 남편을 아는 것처럼,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신뢰하며 사랑하는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입술로만 그분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인격과 삶을 통해 그분을 알고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앎과 행함의 일치 (호 8:1-4)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침이로다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호 8: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1절에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나팔을 불도록 명령하십니다. 이 나팔 소리는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덮치듯이,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율법을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우리 이스라엘이 주를 아나이다 하나" (호 8:2)
2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주를 아나이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얼마나 당당한 고백입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이며,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있었고, 예배도 드렸으며, 절기도 지켰습니다.
"이스라엘이 선한 것을 버렸으므로 원수가 그들을 따를 것이라 그들이 나의 허락도 없이 왕들을 세웠고 나의 허락도 없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며 그들이 자기들의 은과 금으로 자기들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 패망하리라" (호 8:3-4)
하지만 3-4절을 보면, 그들의 실제 행동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선한 것을 버렸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왕을 세웠으며, 자신들의 은과 금으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식과 행함의 불일치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지만, 삶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님을 잘 안다고 하면서도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녀와 같습니다. 또는 의사가 처방해준 약의 효능은 잘 알면서도, 실제로는 그 약을 복용하지 않는 환자와도 같습니다.
야고보서 2장 17절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진정한 앎은 반드시 행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안다면, 그 앎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자들이 되어, 그 앎이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순종으로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일상의 작은 결정에서부터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까지, 항상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믿음과 대상의 일치 (호 8:5-10)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노라 내 진노가 그들에게 맹렬하니 그들이 어느 때까지 무죄하지 못하겠느냐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들었으며 신이 아니라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부서질 것이라" (호 8:5-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5-6절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들은 여로보암 1세 때부터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워두고 숭배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상징물로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것은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신이 아닌 것을 신으로 섬기는 어리석음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호 8:7)
7절에서는 우상숭배의 허망함을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정성과 재물을 들여 우상을 섬겨도, 그것은 결국 허상을 좇는 것에 불과합니다. 마치 바람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이 삼킨 바 되었으니 이제 그들이 이방인 중에서 기뻐하지 않는 그릇 같이 되었도다 그들이 혼자서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호 8:8-9)
8-9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앗수르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군사적 위기가 닥치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대국 앗수르와 동맹을 맺으려 했습니다. 심지어 조공을 바치면서까지 앗수르의 도움을 사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 한 방울 담을 수 없는 깨진 웅덩이를 파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들이 이같이 값을 주고 이방 민족들을 얻었으나 이제 내가 그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강대한 왕의 압제로 쇠하기 시작하리라" (호 8:10)
결국 10절에서 보듯이, 이방 나라를 의지한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의지했던 바로 그 나라들로 인해 오히려 고통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은 결국 실망과 고통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시 우리도 눈에 보이는 것들, 세상의 권력과 재물, 사람의 지혜와 능력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만이 우리의 참된 도움이 되시며, 그분만이 우리의 온전한 신뢰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크고 작은 순간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보다 더 차지하지 않도록 깨어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왕이요, 우리의 목자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복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백과 순종의 일치 (호 8:11-14)
"에브라임이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더니 그 제단이 그에게 죄가 되었도다" (호 8: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1절 말씀은 얼마나 아이러니컬합니까? 죄를 씻기 위해 만든 제단이 오히려 그들에게 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곳곳에 제단을 세우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경건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이 이상히 여기도다" (호 8:12)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만가지'라고 표현할 만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이상히 여겼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게 제물을 드리고 그 고기를 먹으나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여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리라" (호 8:13)
13절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제사를 드렸고, 그 제물의 고기도 먹었습니다. 제사의 형식은 지켰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의 예배가 삶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단 앞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일상에서는 이웃을 착취하고 불의를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리니 그 궁궐들을 사르리라" (호 8:14)
마지막 14절은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대신 자신들의 힘을 믿고 왕궁을 세우고 견고한 성을 쌓았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예배가 단순한 종교적 의식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일에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삶이 하나로 이어지는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우리의 삶 속에서 진실한 순종으로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 됨을 깊이 깨닫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예배, 우리의 전 삶이 담긴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호세아서 8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앎이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행함으로 나타나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우리도 입술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다른 것들을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예배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높이면서, 일상에서는 그분의 뜻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진정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전인격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로 일치되는 삶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진실한 예배를 드리는 삶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에게 풍성히 부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인 열매로 맺히시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이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예배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