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성육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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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이번 돌아오는 주일부터 저희가 대강절이 시작되는데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리면서 이번주에 저희가 크리스마스 트리도 장식할 거고, 조명도 다는 것을 포함한 여러 준비를 어제 목사님 장로님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준비해나가고 있는데요, 여러분 사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거나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하거나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모여서 식사하거나, 크리스마스 카드, 크리스마스 캐롤 송을 부르는 것, 기부행사 등등 현대에 크리스마스하면 떠오르는 대부분의 일들이 딱 책 한권으로 인해서 생겨난 걸 아십니까? 성경이 아닙니다. 바로 크리스마스 캐럴이라고 부르는 1843년 출판된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크리스마스의 이미지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은 사실 사람들이 더이상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않는 시대에 생겨났습니다.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에 사람들이 점점 돈에만 관심을 갖게 되고, 도시에 몰리고 남들과 교류하지 않고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일이 늘면서 크리스마스는 그저 시골에서 조금 즐기고 마는 지방 축제 혹은 기념일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발간된 이후에 전세계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다시금 즐기게 되었고 오늘날의 크리스마스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이 쓰여질 때에 그런 삭막해진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 이 크리스마스 캐럴에 등장하는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입니다.
스크루지 영감이라고 하시면 조금 아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스크루지 영감은 남들에게 단 한푼도 베풀줄 모르고 자기의 돈을 챙길 수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을 만나고나서 개심하고 개과천선해서 구두쇠 성질을 버리고 자신이 모질게 대했던 주변 사람들과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면서 이야기가 마무리가 됩니다.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이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저는 한가지 뽑는 것이 역지사지 입니다. 부자로서 구두쇠로서 살던 스크루지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고 보게되는 역지사지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선한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사실 이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도 사실은 보면 이 역지사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잘못하신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 하나님 자신이었던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서 이 땅에 오심으로서 저희들이 겪는 희노애락을 모두 예수님께서 체험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 즉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서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기독론의 정통성 문제

지난주 수요일에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사람이 13년 동안이라는 제위기간에 엄청나게 넓은 땅을 차지하고 “헬레니즘 제국”을 세웠다라고 초반에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이 사건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 이 헬레니즘 제국 때문에 심지어는 세계 전역에서 “헬레니즘 문화”라는 것이 깊이 스며들게 됩니다.
이 헬레니즘 문화를 간단하게 말하면 “혼합주의”입니다. 다양한 철학과 종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혼합해나가는 혼합주의가 만연했는데, 전에 제가 바벨론 제국의 문제를 이야기했을 때도 말씀드렸죠? 바벨론 사람들이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야 너네 찬송 되게 좋다! 어디 우리한테도 한번 보여줘봐!”라고 이야기한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헬레니즘 문화 때문에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아주 심각한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야! 너네가 믿는 예수님이라는 사람, 하나님이라는 신을 이야기하는데, 예수라는 사람은 그냥 인간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도 그냥 우리가 믿는 신과 똑같은 신 아니냐?”하는 질문을 받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이 문제는 아직 유대교와 기독교가 분리되지 않았던 시절, 즉 신구약 중간기도 지냈던 바로 그 유대인들과, 이제 예수님의 복음을 접하기 시작한 기독교인들이 아직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던 시절부터 이어졌는데요. 제가 전에 마치 길가에 깔린 돌멩이들처럼 “내가 메시아다!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시기에 예수님이 등장하셨다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당원들을 포함해서 몇몇 강경 유대인들은 기원후 66년에 아예 로마에 대대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는데요, 이 결과는 여러분들도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원후 70년에 마지막 예루살렘 성전이 완전히 무너지게 되면서 지금까지도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으로 그 터가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로마 제국을 비롯해서 헬레니즘 문화를 가진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만이 진정한 하나님이고 다른 신들은 다 가짜다”라고 이야기하는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모두 싫어하게 되고, 또한 유대인들은 “너네들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 메시아를 믿으면서 왜 우리와 같이 전쟁하지 않았냐?”라고 하면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도 이 때 서로를 반목하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로마 사람들은 “너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대체 우리가 믿는 신들과 뭐가 다르기에 이렇게 반란까지 일으키는거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유대인들은 “너네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 메시아가 다른 그리스도들과 뭐가 다르기에 우리를 배신한거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반박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왜 하나님이 하나님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를 설명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주 잘 설명하고 또한 선포하는 것이 바로 오늘 본문말씀인 요한복음의 1장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로고스

먼저 저희가 1절말씀을 보시면,
John 1:1 NKRV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신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이 말씀=하나님이라고 하는 도식이 세워지게 됩니다. 여기서 저희가 그냥 “말씀”이라고 번역이 되어서 그냥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그냥 오해할 수가 있는데요, 이 말씀은 그리스어로 “로고스”라고 해서 그리스철학, 즉 헬레니즘 철학에서 아주아주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입니다.
로고스는 먼저 말씀이라는 뜻인데요, 바로 말로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것, 진리를 뜻합니다. 당시에 고대 그리스철학은 무슨 책을 열심히 써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강론하고 설교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도 말로 사람들에게 강변함으로써 자신의 철학을 남기게 되었고,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도 관련된 책을 보면 다 대화록입니다. 이 말로 이루어지는 철학과 지혜의 정점이 진리고 로고스인 것입니다.
이 로고스가 지혜의 정점이자 진리이다 보니까 당시의 고대 그리스사람들은 이 로고스가 만물의 질서라고도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 무엇이죠? 만유인력, 혹은 중력이라고 부르는 힘이죠. 바로 이런 중력처럼 우주 만물에 존재하는 모든 질서가 다 말씀, 로고스라고 하는 존재에 의해서 운행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로고스가 곧 하나님이시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시면,
John 1:2–3 NKRV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 로고스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 말씀은 “창조의 대상”이 아니라 “창조의 주체” 즉 창조를 행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구약 성경을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기도 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까꿍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 설교를 통해서 이미 말씀드린바가 있는데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기 때문에 저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한다고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그 구약성경에서도 아주 분명하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씀해주신 바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자 계명이고, 심지어 구약성경에도 이것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영생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가 있습니다.
신명기 5:16 (NKRV)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긴 생명을 누리고 복을 누리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은 당연히 그 말 자체만 보면 저희가 알고 있는 영생, 즉 하나님 나라와 천국에서 이루어지게 될 영생과는 조금 다르지만 자손 대대로 복을 받게 됨으로써 그 삶이 길게 지속될 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특히 저희 한국인들에게는 이러한 개념이 조금 익숙할 겁니다. 저는 어렸을 때 제가 나중에 결혼 못 할줄 알고, “난 결혼 안하고 혼자 살거야”라고 하니까 저희 아버지가 “너는 6대째 신앙인이다. 내 외할머니의 외할머니로부터 전해받은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가족들이 다 예수님을 믿게되고 너가 예수님을 믿는 것처럼 너의 자손들을 통해서 복음의 씨앗이 심겨질거야”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는데요. 이처럼 구약에서도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다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자손 대대로 이어지는 신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영원한 생명의 빛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구약성경을 통해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진리=로고스가 세상 가운데 이미 나타나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 4-5절을 보시면
John 1:4–5 NKRV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는 말은 사람들이 더이상 이 말씀을 안 믿는다는 겁니다.

영지주의

여기서 저희가 중요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데요. 바로 영지주의입니다. 헬레니즘 문화가 만연해있던 세상에서 아주 다양한 학파로 구성된 영지주의자들이 만연해있었는데요, 이 영지주의는 아까 제가 말씀드린 헬레니즘 문화의 “혼합주의”로 발생한 것입니다. 말그대로 동서양의 철학과 종교가 혼합되어서 발생한 일종의 운동이었는데, 다양한 종파들이 있지만 이 사람들이 유대교와 기독교도 슬쩍 가져가서는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창조세계는 악하고 오로지 영적인 세계만이 선하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구약의 신인 여호와는 악한 세계를 창조했으니 악한 신이고, 신약성경의 신인 로고스는 악한 육신을 벗어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인도하니 선한 신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이 당시에 많았습니다.
여기에 대항해서 요한복음은 단호하게 “너희들이 선하다고 이야기하는 바로 그 말씀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고, 여전히 이 빛되신 말씀이 우리 가운데 계셔왔다”라고 선언합니다.
9-10절 말씀을 보시면
John 1:9–10 NKRV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헬레니즘 문화로 인해서 생겨나게된 영지주의자들을 포함해서 이방 민족들에게 이 빛, 구약성경이 그들에게도 계시되었는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리고 유대 민족들을 모조리 잡아서 처형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빛으로 오신 말씀을 깨닫지 못한 것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시면,
John 1:11 NKRV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여기서 자기 백성이라고 언급하는데요, 대체로 이 자기 백성은 먼저 구약 성경을 접하게 된 유대 민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 민족들, 이스라엘 족속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빛으로 영접하지 않았다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죠? 지난 주에 말씀드린 신명기적 사관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해서 수많은 제국들에 의해 지배를 받기도 했고, 오시리라 했던 메시아는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 메시아가 아니라 온 만물의 주권을 가지시고 모든 백성을 구원하실 메시아인데, 전쟁 영웅들만을 메시아로 생각했고, 그 결과 예루살렘 성전까지 무너졌습니다.
하스몬 왕조 시절에는 다른 민족들을 다 정복해서 유대인으로 흡수시켜버릴거야 라고 하면서 무리하게 정책을 펼치다가 결국엔 자기들이 흡수했던 에돔 사람 헤롯에 의해서 나라와 민족이 팔아넘겨지기 까지 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바로 유대민족이 잘못 알고 있던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다시 설명합니다.
본문말씀 12-13절, 여러분들도 잘 아는 말씀이죠? 함께 한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John 1:12–13 NKRV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 하나님의 말씀은 보편적인 말씀입니다. 로고스, 즉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지혜고, 진리입니다. 어떤 민족이든지 간에 그 이름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본문 말씀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참 하나님

그런데 바로 그 말씀, 빛으로 나아오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됩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John 1:14 NKRV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로고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게 되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바를 시사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헬레니즘 문화와 영지주의와 유대교에 대항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말하는 것이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그냥 인간 아니냐? 혹은 그냥 조금 뛰어난 인간이 아니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야 빌립보서 2:6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라는 것을 믿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냥 인간이었습니다. 조금은 뛰어난 인간일 수도 있지만 결국엔 십자가에 처형당한 다른 메시아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이 땅에 거하시게 된 것을 믿는 이들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성육신한 그리스도로서 “참 하나님” 순수 100%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꼭 기억해야합니다.

참 인간

그런데 오히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면, 인간이 아니시라는 이야기네?”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인간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 분”이라고 이해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게임속 캐릭터처럼 하나님이 조종하는 아바타라고 이해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14절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거나 육신 안에 거하는, 즉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겉 껍데기만 가지고서 조종하시는 것이 아니라, 육신이 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 순수 100%하나님임과 동시에 참 인간, 순수 100% 인간이 되셨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은 예수님이 참 인간이라는 증거를 여러가지 내포합니다. 예수님도 저희처럼 마귀에게 시험받고 유혹당하시기도 합니다. 배고프면 밥을 드시고, 목마르면 물을 드십니다. 예수님이 불의를 보시면 아주 화를 불같이 내기도 하셨습니다. 성전에 장사하는 무리들을 쫓아낸 사건처럼요.
다만 이 참 인간이시자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이 가지는 죄의 유혹또한 똑같이 가지시면서도 인간으로서는 저희와 다르게 죄를 짓지 않으신 분이시다 라는 것이 예수님을 유일한 그리스도로 만듭니다.
히브리서 4:15 (NKRV)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 성육신은 아주 독특하고 유일한 사건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그냥 예수님 안에 거하시고 조종하시는 거면,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저희 안에도 거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말이 안되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3:16 (NKRV)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희 안에도 하나님이 거하시고 계신데 예수님 안에 거하시고 계신거면 예수님은 참 인간, 끝 해서 그냥 평벙한 인간이신 것이 되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진짜 인간이 되시고 저희랑 똑같이 밥먹고 유혹도 받는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역지사지가 가능하신, 즉 저희의 마음을 진정으로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자기 비움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할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스스로를 비우셔서 종의 형체를 가지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Philippians 2:6–7 NKRV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예수님께서는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는 것처럼 의로운 “왕”이시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왕”의 형체가 아니라 “종”의 형체를 가지셔서 우리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셨지만 죄를 짓지 않으신 참 인간 참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라고 이야기할 때에는 바로 예수님처럼 저희 스스로를 비우고 하나님의 성령이 거주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Philippians 2:5 NKRV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 마음이 아까 읽었던 하나님께서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지신 바로 그 겸허한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인간이 되셨고 저희들과 똑같은 조건 속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고백하는 저희들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닮아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또한 저희 스스로를 비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저희 안에 거하시도록 해야합니다.
그렇게 참 인간이시자 참 하나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라는 로고스, 하나님의 말씀이자 진리를 실천하고 스스로를 비워 성령님께서 저희를 통하여 일하시게 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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