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인 신앙의 성도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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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6:24–32 (NKSV)
24 바울이 이렇게 변호하니, 베스도가 큰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 하고 말하였다.
25 그 때에 바울이 대답하였다. “베스도 총독님,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참말을 하고 있습니다.
26 임금님께서는 이 일을 잘 알고 계시므로, 내가 임금님께 거리낌없이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므로, 임금님께서는 그 어느 사실 하나라도 모르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27 아그립바 임금님,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28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짧은 말로 나를 설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가!”
29 바울이 대답하였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 및 그들과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일어났다.
31 그들은 물러가서 서로 말하였다. “그 사람은 사형을 당하거나, 갇힐 만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소.”
32 그 때에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으면,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오.”
예수님의 제자 누가는 두권의 성경을 썼습니다.
복음서인 누가복음과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누가복음은 구약에서의 예언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이야기이고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예언이 세상안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통해 성취되어져 가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오시는 날 까지 그 예언은 계속 성취되어져가고 있고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시대, 1세기 유대인들은 식민지생활을 하고 있고, 여러지역으로 흩어져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자신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세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민족이라는 의식이 강했습니다.
그러한 흔적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흩어져 살아갈 지라도 그들은 경제, 정치, 역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요한 많은 문화들은 유대인들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 많습니다. 유대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문화의 중심이 그들에게로 이동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문화를 바꾸었갔을까요?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윤리적 가치가 있는데, “티쿤 올람(Tikkun Olam)”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이 의미는 “세상을 고치다”라는 뜻인데, 현대에서 유대인을 통해 사회적, 윤리적, 인도주의적 활동을 이끄는 중심 철학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티쿤 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집단적 노력이 담겨져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던 1세기 그리스도인을 통해 급속도로 선교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복음 전할 때 기적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다른 성경보다 훨씬 더 많은 기적들이 소개됩니다.
다 소개할 수는 없지만, 가장먼저 2장1절부터 오순절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면서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바울이 평생 걷지도 못하는 사람을 일으켜세워 걷게 한 일이 있습니다.
또 베드로는 다비다라고 하는 여인이 죽었는데 살려내고, 바울은 유두고라는 청년이 떨어져 죽었는데 또 살나게 합니다.
뿐만아니라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 귀신을 내 쫓는 기적 등 초자연적인 기적들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왜 이런 기적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사도행전에서의 기적은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진리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할때 기적이 일어남으로 인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더 담대해 졌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서서히 공적인 자리, 세상이 보는 자리에서 복음이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공적인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감옥에 갖혔다가 자신이 총독과 왕 앞에서 변호 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자신을 변호하는 자리는 많은 권력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중요한 공적인 자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구체적으로 복음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왕에게 담대하게 자신이 경험하고 만난 복음을 말하고 이 자리에 있는 왕과 다른 모든 권력자들도 자신과 같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은 어떤가요?
너무 사적인 복음에 갖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을 공적인 자리나 공적인 관계에서 발휘하기보다
오히려 개인의 삶에서 더 간절이 원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진학, 성공, 부요한 삶, 물질 필요, 직장 등 우리의 많은 개인적인 문제앞에 복음을 끌어다 놓고 있지
공개적인 자리, 즉 직장 속에서, 마을 사람들속에서 신앙을 드러내놓고 선한 삶을 추구하는 일이 지극히 드뭅니다.
그리스도인끼리 그렇게 말합니다. 이런데서는 그렇게 하지 말자 하고 말이지요.
교회에서 특심하게 신앙을 발휘하다가 회사에 출근을 하거나 학교에 가고 모임에 가게 되면 그 특심한 신앙을 차안에, 가방안에 집안에 넣어 놓고 우리는 출근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세상의 어떤 일을 요구할 때에도 우리 입장에서만 요구를 합니다.
복음으로 세상을 어떻게 이롭게 만들지의 대한 고민은 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대인들이 삶의 철학으로 여기고 사는
티쿤올람처럼, 복음으로 세상을 유익하게 만드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말하고 신앙을 드러내기 시작한 곳은 거의 모든 곳이 공적광장이었습니다.
공적광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거리, 광장, 모임의 장소, 공개적인 자리 등을 말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붐비는 명절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명절의 거리로 뛰쳐 나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을 했습니다.
바울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정치인들 속으로, 철학자들 속으로, 상업지역 안으로, 축제 장소로 들어가서 복음을 말했습니다.
복음을 말한 곳이 우리끼리 모여 있는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공적광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건강한 신앙입니다. 건강한 신앙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신앙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을 추구하는 신앙입니다.
정치권력에 따라가지 않고, 화려한 종교지도자에 따라가지 않고
세상의 신념과 이념에 따라가지 않는 신앙입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나서는 신앙입니다.
누가복음 12:29–31 “29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30 이런 것은 다 이방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1 그러므로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 염려하는 신앙은 아주 사적인, 개인적인 신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신앙은 공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찾는 신앙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 모두 공적 광장에서 복음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건강한 신앙인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