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고린도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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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전서 10:14-22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2024. 11. 29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과거에 출애굽한 백성들을 본보기 삼아서, 우리가 그들과 같이 범죄하여 멸망당하지 말고, 항상 깨어서 조심하자, 라고 말씀을 했는데요.
그러면서 특별히 마지막 13절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들을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고, 혹시라도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시험이라면,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신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길 수 있는 시험이라면 우리가 맞서 싸워야겠지만, 이길 수 없는 시험이라면 피하는 게 상책이에요.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길 수 없는 시험이 두 개 있었는데요. 하나는 “음행”이었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가 워낙에 음행이 가득한 도시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음행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도저히 음행을 이겨내기가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바울이 뭐라고 말을 하냐면, “음행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음행을 이기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아예 피해버리라는 거예요.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를 피해서 도망쳤던 것처럼, 음행의 장소, 음행의 환경, 음행의 생각으로부터 피하라는 거예요. 괜히 이겨보겠다고 객기 부리지 말고, 음행을 피하라.
자,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교인들이 피해야만 하는 두번째 시험을 말하는데요. 오늘 본문 1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4절 시작,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아멘.
무엇을 피하라고 합니까?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고린도전서에서 피하라는 말이 딱 두 번 나와요. “음행을 피하라,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음행만큼 우상숭배가 고린도교회에 골칫거리였습니다.
제가 고린도 도시에 대해 설명을 몇 번 드렸었죠? 고린도는 마게도냐 지방을 비롯해서, 온 지중해 도시들 중에 가장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항구도시로서 수많은 민족이 오고가는 인종의 용광로였고요. 그래서 각종 민족신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을 섬기고, 그 신전들을 많이 세워놨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에서 어디를 쳐다봐도 신전이 꼭 보여요. 그만큼 신전들이 규모가 크고 수가 많았어요.
그러다보니까 고린도인들이 자연스럽게 신전에 들어가서 우상숭배에 참여를 합니다. 아버지가 그랬고,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어른들 따라서 자연스럽게 우상숭배를 하면서 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상숭배는 고린도인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일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활이었어요.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우상숭배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머리로는 우상숭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데 우상숭배를 하러 가고 싶거든요. 왜냐하면, 신전에서 하는 제사가 일종의 잔치이기 때문에 그래요. 이스라엘의 제사하고 완전히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는 내 죄를 회개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굉장히 엄숙하죠. 하지만 고린도의 제사는 축젭니다. 신과 만나고, 신의 축복을 받는 즐거운 축제예요. 그래서 신전 제사에 가면 민돌이 민순이, 친구들도 다 만나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우상의 제물도 먹고, 한바탕 놀다 오는 겁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것을 끊으려고 하니까, 교인들이 좀이 쑤시는 거예요. 머리로는 거기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도 가고 싶은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기 안 가면 괜히 왕따 되는 것 같고, 소외 되는 것 같고, 그리고 1세기에 뭐 즐길 거리가 있었겠어요? 신전 제사는 정말 재밌거든요. 그런 걸로 기분전환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이 우상숭배의 문제가 교회에서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우상숭배에 대한 갈망.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이상하네요. 어쨌거나, 마치 술을 끊고도 계속 술이 생각나는 것처럼, 우상숭배가 계속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날, 교인들 중에 일부가 우상숭배를 하러 가는 일이 일어납니다. 무단으로, 우상숭배를 하러 가버렸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간 게 아니에요. 자기들 나름대로 논리가 있습니다. 그 논리가 뭐냐면, 고린도전서 8장 4절의 논리와 같은 거예요. 고린도전서 8장 4절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말하는 교인들의 논리를 기록한 말씀인데요. 성경을 앞으로 한 장 넘겨서 고린도전서 8장 4절을 같이 찾아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우상의 제물을 왜 먹어도 되느냐?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백번 우상 앞에 제사를 지내도 깨끗하다. 그러니까 먹어도 된다.’ 이것이 먹어도 된다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어차피 우상이라는 것은 다 가짠데, 그러면 그 앞에서 제사 지내는 것도 다 가짜 아니냐? 거기 올렸던 제물들 다 깨끗하다. 이거 우리가 먹어도 된다.’ 이러면서 우상의 제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겁니다.
언뜻 듣기에는 일리가 있죠.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나만 양심에 거리끼지 않고, 영적으로 잘 분별하면 되지,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은 미성숙한 사람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반드시 내 행동이 내 형제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주의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8장 9절에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아멘.
참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입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항상 다른 사람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서 먹었어요. 그런데 새신자가 그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교회를 안 나와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기에는 꼭 우상의 제물만이 아니라 여러가지가 술, 담배, 로또, 경마 등등 여러 가지가 포함이 됩니다. 우리는 천국을 대표하는 천국의 외교관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언제 어디서나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고린도전서 8장을 자세히 보면, 바울이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단호하게 먹지 말라고 해야 될 텐데, 먹지 말라는 말을 안 했어요. 다만,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만 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제가 설명을 드렸었죠. 고린도는 고기의 유통이 굉장히 특이합니다. 먼저 가축이 신전으로 무조건 들어가요. 그리고 신전에서 도축을 하고 제단에 올립니다. 그 뒤에야 시장에서 팔아요. 왜 이렇게 하냐면, 고기에 신의 축복을 받게 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고기 가격이 올라가요. 신의 축복을 받은 특별한 고기라는 명목으로 비싸게 팔 수가 있어요. 그래서 먼저 신전으로 보내는 겁니다.
그래서 시장에 가보면, 파는 모든 고기가 다 신전에 한번 갔다 온 고기들이에요. 깨끗한 고기가 없습니다. 교인들 입장에서는 고기는 먹고 싶은데,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없는 거예요. 전부 다 우상의 제물이니까, 뭘 먹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아예 고기를 안 먹게 되는 겁니다. 이때 일부 교인들이 아까 8장 4절의 논리를 가지고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주장을 한 것이죠.
바울이 볼 때, 이 문제도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어요. 고심 끝에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개인의 선택에 맡깁니다. 다만 두 가지의 원칙을 제시해요. 하나는 자기의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형제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원칙에 걸림이 없으면 먹어도 되고, 하나라도 걸리면 먹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울의 결론이었어요.
바울이 이처럼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먹어도 좋다는 뉘앙스로 말을 한 경우는, 바울의 모든 서신서를 통틀어서 여기가 유일합니다. 다른 교회에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어요. 오직 고린도교회에만, 여기가 워낙에 특수한 도시이다 보니까, 예외적으로 여기만 이렇게 허용을 해준 거죠.
자, 이제 다시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요.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하면서 꺼내들었던 논리를, 우상숭배를 하는데 똑같이 꺼내드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어차피 우상이 다 가짠데, 그러면 그 앞에서 제사를 지내도, 괜찮은 거 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도 두 가지 원칙에 따라서 자기 신앙양심에 거리끼지 않고, 형제를 시험에 들게 하지 않으면 우상숭배 해도 되는 거 아니냐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이 문제는요,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젭니다. 시장에서 파는 우상의 제물을 사서 먹는 것하고, 내가 신전에 들어가서 우상숭배를 하는 것하고, 같은 문제일 수가 없죠. 이게 어떻게 같습니까?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까지는 바울이 허용을 해줬지만, 우상숭배는 안 돼요. 이것은 고민할 것도 없어요. 안 되는 겁니다. 14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피하라는 거예요. 신앙양심이고 자시고, 애초에 우상숭배는 안 되니까 신전에는 아예 얼씬도 하지 마라는 겁니다. 피하라. 여러분, 우상숭배의 문제는요, 아까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기는 것이 어려운 문젭니다. 그래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피해야 돼요.
아무리 우상이 가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더라도, 그 지식 믿고 까불다가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멸망당할 수 있어요. 우리가 휘발유가 뿌려진 곳에 가도 죽지는 않지만, 거기에 불똥 하나만 튀면 그대로 타죽는 겁니다. 우상숭배가 그런 거예요. 들어가서 내 신앙 잘 지키면, 보기에는 괜찮아 보여요. 하지만, 거기에 사단이 던지는 불똥 하나가 떨어지면 그대로 끝나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에만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우상숭배와 비교하여 성찬에 참여하는 일을 말합니다. 성찬은 곧 포도주와 떡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피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의식입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다시 깨닫는 은혜의 의식이에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결된 다른 모든 성도들과도 하나가 됩니다.
반면에 우상숭배는 뭡니까? 오늘 본문 20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20절 시작,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아멘.
우상숭배는 곧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와 교제한다는 말이에요.
우상은 분명히 실체가 없는 가짜입니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한다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우상이 가짜든지 진짜든지 간에,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를 향해서 제사를 드리는 자체가 죄라는 것입니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 하늘에 떠있는 태양, 거칠게 부는 바람, 전부 다 생명이 없기 때문에 내가 제사를 지내도 받지 못하죠. 그래서 괜찮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아요. 내가 제사를 지내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1절에, 바울이 이렇게 선언합니다. 21절 말씀에,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직 주님 한분만을 섬겨야 하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길 수 없어요. 사랑에 양다리가 어딨습니까? 우리의 사랑을 오직 주님께만 100% 다 드려야 합니다. 절대로 우상숭배는 안 되는 겁니다.
생명도 없는데, 뭐가 위험해? 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생명이 없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는 겁니다. 돈에도 생명이 없지만, 돈이 우리 신앙생활에 얼마나 위험합니까? 명예는요? 생명이 있습니까? 인기, 권력, 야망… 생명이 없어도 사람 하나 망하게 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이 없는 것을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숭배하는 일을 피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예 얼씬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주님을 섬기기로 했으면, 뚝심 있게 주님만 섬기십시오. 세상의 우상이 아무리 화려하고 즐거워 보여도, 생명이 없다니까요. 오직 주님께만 생명이 있어요.
우리 주님이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영원토록 누리기 위해서는 오직 주님만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직 주님만 섬기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나의 교제를 방해하는 모든 우상을 쳐내고, 오늘 하루 동안에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여하여서 담대히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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