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9 금요기도회: 고린도후서 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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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7:5-11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7:5–11 NKRV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벌써 11월 마지막 금요기도회가 되었는데요. 2024년도 벌써 한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지난 한 해를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오늘도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크신지 깨닫는 이 금요기도회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먼저 말씀을 기도제목으로 삼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고린도후서 7장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2장 13절까지 말을 하다가 잠시 끊고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변호를 2장 14절부터 7장 4절까지 하였는데요. 이제 다시 2장 13절에서 끊었던 말을 7장 5절부터 이어서 말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고자 했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게도냐로 갔습니다. 드로아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마게도냐로 간 바울은 참 쉽지 않은 상황을 겪게 됩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시면 마게도냐에 간 바울은 외부로부터는 다툼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 마게도냐에 있던 불신자들이나 혹은 그리스도인 대적자들과의 격렬한 논쟁 또는 이들이 바울을 향한 박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편지들을 살펴보면 데살로니가나 빌립보에서 바울을 적대시하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게도냐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마 바울을 적대하는 상황들이 펼쳐져 박해를 받는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부로부터는 뒤에서도 나오지만,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문제들에 대한 아주 통렬한 편지를 썼을 때 고린도 교회가 바울의 편지를 받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자신으로 인해 혹여나 고린도 교회가 믿음을 포기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육체가 편하지 못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외부에서든, 내부에서든 마게도냐에서도 계속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전달해줄 디도를 찾지 못하여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을 겁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있던 바울은 다행히도 마게도냐에서 이제 그토록 찾던 디도를 만나게 됩니다. 디도를 만나게 되자 이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이후 상황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찾아왔을 겁니다. 그리고 이 디도를 통해 바울은 굉장히 중요한 것을 받게 되는데요. 바로 낙심한 바울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는 겁니다. 6절을 보시면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디도가 와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굉장히 좋았겠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디도를 통해 자신에게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는 겁니다. 바울은 밖으로는 박해, 안으로는 두려움이라는 굉장한 환난을 겪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낙심한 바울을 디도를 통해 찾아가심으로 위로하십니다. 자신의 복음 사역을 위해 달려가는 자가 환난 중에 있을 때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위로받는 바울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디도는 바울의 동역자입니다. 2장 13절에서 바울은 디도를 향해 “내 형제”라고 하였습니다. 디도는 8장 16절을 보면 바울과 같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디도는 바울에게 있어서 큰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디도가 찾아왔을 때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겠습니까? 홀로 복음 사역을 위해 달려가는 이 바울에게 디도라는 존재는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주고 큰 힘이 되어주는 존재였을 겁니다. 이렇게 디도가 찾아온 것만으로도 바울은 큰 위로를 받았을텐데, 바울은 이 디도를 통해 더 큰 위로를 받고 심지어 큰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고린도 교회로부터 받은 위로 덕분이었습니다.
7절을 보시면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고린도 교회의 목회자였던 이 디도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위로를 받았습니다. 디도의 목회에 고린도 교회가 지지하고, 그의 모든 목회 활동에 순종하였을 겁니다. 그래서 디도는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위로를 받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고린도 교회로부터 받은 위로를 이제 디도가 바울에게 전달합니다. 그 위로가 무엇이냐면, 고린도 교회의 사모함과 애통함, 그리고 바울을 위한 열심이라고 합니다.
사모함이라고 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가 바울을 보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을 뜻하고, 애통함은 바울을 부당하게 대우했던 지난 과거에 대한 고린도 교회의 뉘우침을 뜻하고, 열심이라는 것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따르고자 하는 열심을 뜻합니다. 디도를 통해 비록 자신을 예전에는 비난하고 의심했던 고린도 교회였지만 디도의 목회를 따르고 자신을 향한 이러한 마음을 품고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바울의 마음에는 이제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러자 이제 바울은 자신이 두려워했던 부분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바로 아까 말했듯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이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자 고린도 교회의 믿음이 사라지진 않을까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후회한 것을 떠올립니다. 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바울은 처음에는 “내가 괜히 보냈나. 내가 괜히 편지를 보내서 고린도 교회에게 오히려 해를 끼친 것은 아닐까?”하는 후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도를 통해 긍정적으로 고린도 교회가 바뀐 것을 통해 이제 자신의 편지를 통해 고린도 교회가 근심하게 된 것이 잠시만 근심하게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후회하지 않게 되었고 말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은 바울은 이렇게 자신에게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뀐 고린도 교회를 통해 자신이 한 일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게 된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자신의 편지를 이제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입지가 이제 고린도 교회 안에서 생길 수 있기에 기뻐하는 것일까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바울이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러한 뜻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9절에서 나옵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자신의 편지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근심하게 만들어 회개에 이르게 했기에 근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회개라는 열매가 고린도 교회 안에 맺힌 것을 바울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비록 고린도 교회가 근심이라는 고통을 겪긴 하였지만, 이를 통해 회개라는 정말 소중한 열매가 맺혔기에 바울은 자신의 편지로 고린도 교회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전에 있던 바울의 모습과도 일치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로 인해 고린도 교회가 믿음에서 떠날까 두려워하고 근심하였지,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신의 편지로 인해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자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바울의 초점은 언제나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더 나아가 회개는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내에 있던 문제를 바울이 지적하자 고린도 교회는 근심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근심은 회개로 이어졌는데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근심입니다. 자신의 죄를 근심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회개로 이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통렬한 편지를 통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이 회개는 고린도 교회가 아무런 해도 받지 않는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 회개의 열매가 맺힌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바울이 이어서 말해주는데요. 10절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룹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의 차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불러일으키게 하지만, 세상 근심은 후회로만 끝나고 만다는 겁니다. 회개는 우리의 모든 마음과 생각의 변화, 그리고 행동을 변화시켜 하나님께로부터 구원받은 참된 백성의 모습으로 만들어갑니다. 그러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도 함께 동반되어 죄에 대하여 근심했던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회개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은 후회 이상을 결코 넘어가지 못합니다. 발생한 일에 대하여 “내가 왜 그랬지”라며 깊은 후회를 할 순 있으나 마음과 생각의 변화, 그리고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어떤 의지를 결코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모습으로 결코 바꾸지 않는 것이 세상 근심입니다. 죄에 대한 깊은 근심도 없고, 결코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세상 근심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우리 입장에서는 고통이고 하기 싫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를 향한 은혜입니다. 만일 우리의 죄를 진심으로 통탄해하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할 것이며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이며 결국 구원받지 못하게 될 겁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 어떤 믿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다윗과 베드로를 보십시오. 밧세바를 범한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자신의 죄를 근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근심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고, 자신의 연약함을 두고 울며 통탄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적하시고 근심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율법이 없었다면 죄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회개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됩니다. 바울은 바로 이 지점에서 고린도 교회가 근심하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근심을 통해 고린도 교회가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11절에서 한글 성경에는 나와있진 않지만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씀으로 고린도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더욱 더 자세하게 이야기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편지를 통해 고린도 교회가 사도와의 관계 악화와 교회의 문제를 극복하는 부끄러움과 회개의 깊은 의미를 일깨웁니다. 다시 말해 분노, 두려움, 사모, 열심, 보응이라는 열매가 맺혔다는 겁니다. 분노와 보응은 고린도 교회 내에 있어 고린도 교회를 오도하고 있던 거짓 교사들을 향한 것을 나타내고, 두려움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만 뉘우치지 못했던 지난 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사모와 열심은 바울을 보기 원하고,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열심을 뜻합니다. 근심을 통해 이 모든 열매가 맺히게 되었고, 이 일을 통해 고린도 교회는 “자신의 깨끗함”을 증명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잘못이 있었을 때의 결백을 주장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회개를 통해 사실상 이제 지난 날의 모든 죄들에서의 허물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고린도 교회가 회개하는 것은 이들이 직접 범한 잘못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12절에서도 나타나지만 바울을 향해 불의를 행한 자의 잘못을 즉각적으로 잡지 못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열매가 고린도 교회 안에서 맺히게 된 것을 알게 된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되고 기뻐하게 됩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우리 교회 내에서도 회개의 열매가 맺히는 복을 하나님께서 주시길 바래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현대 교회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우리 모두가 죄를 지적받길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 우리에게 힘을 주는 말을 듣고만 싶어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회개하는 것이 우리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죄를 지적하시는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며 세상 근심과 같이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말씀과 설교를 통해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서 지적하실 때 우리는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회개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해 라는 강박관념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뉘우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근심으로 이어지게 하시는 성령님의 탄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게 하심으로 우리에게서 허물을 없애고 싶어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교회 안에서도 충분히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바로 회개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깊은 근심, 그리고 죄를 뉘우치는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정죄하시고 우리를 억누르려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 문제가 생기고 죄가 있을 때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는 도저히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도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편지를 보내셨기에 그들의 죄를 깨달을 수 있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우리에게 항상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말씀을 통해 알려주시도록 도우심을 구합시다. 이것은 죄를 지적당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것을 행한다면 비로소 우리 교회가 성숙한 교회라는 것을 나타내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회개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회개할 수 있는 능력을 베푸시길 원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회개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회개를 통해 맺혀지는 열매들을 누리는 복된 교회로서 세워지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시간 함께 오늘 말씀을 두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을 통해 우리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벌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다시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입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교회가 되어 우리의 모든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동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참된 백성의 모습을 취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성숙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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