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27 수요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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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7:15–29 (NKRV)
15 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22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24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25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받는 축복은 우리의 부가 늘어가는 것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진정한 축복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영적으로 분별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분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이 생기기 위해서 성실하게 하나님의 길을 쫓아 가야 합니다. 다시말해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의 길을 쫓아 가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3–14 (NKRV)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이처럼 성실하게 주님의 길을 쫓아가는 것은 힘들고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따라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결국 영적으로 분별하며 신앙생활하는 사람도 많지 않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라” 그렇다면 무엇이 내 생각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생각입니까?
내 생각인지 하나님의 생각인지 잘 분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이것이 내생각인지 사탄의 생각인지, 하나님의 생각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는 예수님께서 앞으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나자 마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켤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지금 베드로는 자신의 진심으로 예수님을 위해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생각하고 이야기 한 결과 베드로가 사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6:23 (NKRV)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말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것이 예수님의 생각이고 어느것이 내 생각이겠습니까?
지금 베드로의 상황이 이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신앙생활하고, 봉사하고 헌금하였는데 그것을 보신 주님께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했다고 했던 모든 행위들이 알고보이 내뜻 내 생각이라면 그것보다 두려운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에 그대로 나옵니다.
마태복음 7:21–23 을 보면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였는데 그래서 이들은 주님의 길을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것이 주님 보시기에 불법이라면 이것보다 더 두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을 위한 나의 마음, 주님을 위한 내 열심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대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먼저 서있지 않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열심만을 가지고서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서 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가고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것이 염려가 되고 걱정이 되어서, 주님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예수님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이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베드로의 가장 큰 문제는 기준이 자기의 생각에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내가 볼 때, 내 경험이 기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달려야하는지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경청하며 묵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미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기에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감정이 먼저 들어가기에 그의 신앙이 틀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기준은 그 무엇도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느끼는 것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그 열매를 먹은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창세기 3:6 을 보면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인 것은 아담과 하와의 생각과 판단 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은 먹으면 반드시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볼 때 아무리 먹음직 스럽다 할지라도 아무리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 할지라도 그것을 먹으면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았다면 그들은 그 열매를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생각, 내 경험, 내 마음, 내 열심, 내 열정 보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을 기준 삼았을 때 이것이 맞는가를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1차 전도여행을 끝낸 바울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2차 전도여행을 계획 하였겠습니까? 바울은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성령하나님께서 몇번씩 나타나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가게 하십니다.
지금 바울이 선교를 안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열심으로 선교계획을 세웠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몇번씩 성령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시고 끝내 바울은 성령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그 말씀에 순종하여 마게도니아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삼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이해가 되지 않을 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살아가야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믿음이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다시말해 그 실력이 없으면 그 말씀대로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폭포수 같은 은혜를 구한다고 한들 우리의 그릇이 이 물컵 정도라면 폭포수 같은 은혜가 임한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훈련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땅을 말씀을 기준삼아 살아가는 실력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창세기 27장은 야곱이 이삭을 속여 에서의 축복을 뺐는 장면이다.
그런데 사실 야곱은 지금 축복을 뺏는것이 아니다.
창세기 25:21–23 을 보면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리브가가 임신했는데 아직 태어나기 전에 누가 더 실력이 있고, 성품이 어떻고를 보기 이전에 배속에서 야곱이 축복을 받는 자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축복의 특징이 있는데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의 혈통과 조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수요예배를 드리는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래서 택한 백성이며 왕같은 제사장이 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을 따내서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가 있기에 우리가 축복의 자녀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축복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축복의 자녀로 태어났는데 축복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이미 축복은 야곱 자신의 것이다. 에서의 것이 아니라 야곱 자기것이다.
그런데 자기것을 이렇게 어렵게 가져 오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이 결정한 사건을 하나님이 결정한 일을 사람의 능력으로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것 이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이 결정 한 것이다. 하나님이 뱃속부터 야곱으로 결정했다. 하나님이 결정한 것을 어떻게 사람이 바꿀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결정한 축복을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야곱은 에서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야곱이 얼마나 어리석어 보이겠습니까? 이미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었는데 그것을 이렇게 어렵게 얻으려 하니 하나님께서 난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원래 야곱의 것이기에 지금 야곱에게 준 것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그냥 주는 것인데 그것을 받는 야곱은 너무 어렵게 받아 가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이 너무 어렵게 축복을 가져간다.
에서가 나간 사이에 여러가지 노력을 해서 축복을 얻어 냅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나를 축복했다는 것을 알고 또 그것을 믿고 있었으면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해 축복을 받아 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훌륭한것은 딱 한가지이다. 어떻게해서든 축복을 받고 싶은 것. 그 마음은 훌륭한데 그것을 가져오는 방법이 너무나도 잘 못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족속이고, 왕같은 제사장 입니다. 아멘이 되십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이땅에서 축복받은 사람 답게 당당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축복을 받은 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는 믿음이 없어 오늘 본문의 야곱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 통장에 100억이 있다고 예를 들면 그 돈을 쓰고 싶으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냥 은행에서 뽑아 쓰면된다.
그런데 그돈을 쓰기 위해 은행에 몰래 들어가 은행에 있는 돈을 훔친다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겠습니까
우리가 마치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의 축복이다. 이삭이 눈이 어두워 에서에게 줄 축복을 야곱에게 준 것 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주시기로 계획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한명한명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이고,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백성이자 자녀 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의미를 아는가? 천사가 흠모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사들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그 천사들이 우리들을 보고 흠모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분, 하나님이 우리들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천사는 하나님의 종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늘나라의 기업을 이어갈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귀한 존재이다.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마귀를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마귀를 대적해 이길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이고 자녀인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허락하셨기에 또한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사탄의 영적인 공격이 온다 할지라도 겁먹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다가 가위가 눌리면 떨지말아라. 시커먼 것이 와도 당당히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내 기도에 응답하신다.
우리는 이것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야곱이 이미 축복을 받은 사람이지만 누리면서 살아가지 못한 이유는 자라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라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야곱의 나이는 어린나이가 아닙니다. 성경에 몇살이라고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여러 구절을 통해서 유추 할 수 있는데 이 때 야곱의 나이는 70이 넘었습니다.
야곱은 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방법이었습니다. 자신의 꾀로만 살아갔습니다.
장자의 축복도 어련히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축복도 얻어 냈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기다리질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음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배경이 되는 27장 1-2절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창세기 27:1–2 (NKRV)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이삭이 눈이 어두워져 죽을 때가 가까이 왔다.
이 말씀때문에 야곱에 급해진것이다.
야곱과 심지어 리브가 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다 잊고 있었다.
그 결과 야곱이 축복을 받긴 하였지만 에서의 분노를 사게 되어 삼촌집으로 도망치듯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삼촌 집에서도 고생 고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잘 읽어보면 알겠지만 도망가지 않았어도 되었습니다.
27장 41절에 보면 에서가 야곱을 죽일 날을 아버지 이삭이 죽을 때로 잡았다. 에서가 생각하기로 아버지 이삭이 이제 곧 죽을 줄 알았다. 에서 뿐만이 아니다 모두가 이삭이 죽는 줄 알았다. 에서는 이삭의 사랑을 받고 자라서 이삭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이삭이 죽고 난 후에 야곱을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이삭이 35장까지 살아있습니다. 안 죽습니다.
창세기 35:27–28 을 보면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아브라함보다 이삭이 더 오랜시간 살았다. 결과적으로 야곱이 도망가지 않았어도 되었다.
야곱이 도망간 이유는 살기 위해 도망갔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야곱이 도망가지 않았어도 이삭이 죽지 않았기에 에서가 야곱을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플랜 1이 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기 눈에 보이는대로 행동하며 살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지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면 우리는 오늘을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신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하나님이 이유없이 사람을 연단하지 않음을 믿고 있다면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축복은 세상 사람들처럼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축복은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는 것이 축복이고,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 그것이 축복이다.
우리의 힘은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정에 있지 않습니다. 나의 지혜와 지식 인맥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힘은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주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가치관, 내 욕심, 내가 보이는대로 판단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한다고 하면 우리가 어떤 상황과 환경일지라도 그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
어떤것도 하나님을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이 결정 했다면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하나님이 축복하심에도 불구하고 나의 그릇이 작아 그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연단과 훈련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훈련은 어렵습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훈련을 성실하게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살아가시길 바라고, 훈련의 과정가운데 계신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그 훈련과 연단의 시간을 성실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모든 힘들었던 훈련의 시간을 통해 우리의 믿음의 실력이 늘어났음을 경험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주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축복받는 사람답게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오늘도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히 아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축복을 받은자답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백성답게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이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마져도 허락하신 우리 주님을 바라봄으로 이 땅에서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기쁨을 잃지 않는 저희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에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