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법? 알려드릴게요
Notes
Transcript
제가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중
지옥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있습니다
드라마에 보면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신적인 존재가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한 고지를 합니다
죽음을 고지한 날이 되면
어디선가 3마리의 헬창이 나타나서
사람을 두드려 패고
태워서 죽입니다.
이 공포스러운 존재의 등장으로 인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의 모습, 죄의 경향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서 사라사라사사라
살누군가는 이를 이용해서 사라사라사누군가는 이를 이용해서 사라사라사살누군가는 이를 이용해서 사라사라사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서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서 사라랏사라사
자신들이 신을 대신하는
대리자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등쳐먹기 시작합니다.
또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서
자신들이 사람들을 심판하기 시작합니다.
화살촉이라는 집단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죄를 캐묻고 다녀요
그래서 죄를 지었다면
본인들이 심판을 하고
본인들이 사람을 죽입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쾌감을 느끼며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사회를 파괴하고
사람들의 인생을 파괴합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계속해서 던지는 주제가 이거에요.
“자, 이제 어디가 지옥이지?”
사실 초자연적인 현상이
왜 일어났는가? 에 대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아요.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본성에 충실해서
본능에 충실해서 살아가는 곳은
결국에는 지옥과 같은 곳이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본성에만 충실해서 살아가면
결국에는 서로의 삶을 파괴할 것이고,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연약함과 어리석음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최근에 너진똑이라는 유튜버가
기독교의 진실에 대해서 밝힌다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이보다 더 끔직한 곳이었을 것이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주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 있는
사회가 된다 라고 말하더라고요?
이 유튜버가 똑똑한게 맞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죄의 뿌리를 다스려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 죄의 뿌리를 다스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과 싸우고,
세상과 싸울 수 있는 무기를 주셨어요.
사람들의 삶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들을
제거할 수 있는 싸움의 기술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이냐면?
함께 읽어봅시다!
지난 번에 말씀을 전할 때에는
여러분에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며
방어하고 견디는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조금 흑화를 해서
세상이 나를 억까할때,
누군가가 나를 억까할때,
그리스도인들이 맞서고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해요.
자 일단,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엇을 파악해야 할까요?
상대방을 파악해야겠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그렇죠 잘 알고 있네요.
일단 적을 먼저 알아봅시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자기중심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서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건 말건
신경쓰지 않는 경향이라던지
그러기 위해서 무리를 만들고
직위나 권위로 짓밟는 태도,
자신들의 감정대로 복수를 하며
통쾌함을 느낍니다.
때로는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이 휘두른 폭력이나
자신들의 분노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이런 말 자주 하는 사람들 봤을거에요.
이러니까 내가 화가 나 안나?!
니가 그딴식으로 행동하니까
내가 욕을 할 수밖에 없지
니가 그 따위로 행동하니까
내가 개빡치지.
너 같으면 주먹이 안 나가겠냐?
니가 먼저 그렇게 행동했으니까
우리가 분노를 한거지.
여러분, 이게 바로
죄에 물들어 있는
세상의 방법입니다.
이 세상이 죄로 물들어 있다는 것은
자기중심성으로 가득차서
자신들이 곧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말해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아갈까요?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내가 인정을 받는 삶을 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 세상은
서로 죽고 죽이며 싸우는 곳이 되었습니다.
“나를 건드리면 내가 너를 이렇게 심판할거야”
“나는 정의롭고 정당한 사람이야”
이것이 바로 세상이 싸우는 방법,
사람들의 죄의 뿌리가, 자기중심성이
드러나게 되면 싸우게 되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맞서
싸우는 방법은 세상의 방법과 전혀 다르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육정을 따라서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싸움에 쓰는 우리의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요새라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궤변을 무찌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서, 그리스도께 복종시킵니다.
앞서 말했던 세상의 방법이
육체의 무기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원하는대로
복수하고 짓밟고
무리를 지어서 누군가를
권위로, 직위로 찍어눌러서
결국에는 나는 정당한 사람이라는 결론,
내가 곧 누군가를 심판하는 하나님이라는 교만,
이것이
육체의 무기이자, 세상의 방법입니다.
그런 세상에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우리가 가져야 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그 무기가 뭘까요?
그 무기에 대해서 말하기 전에
그런데 그 무기를 끼려면
조건이 필요해요
우리가 가진 모든 생각과 모든 마음을
싹 다 사로잡아서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
나도 저 자식을 험담하고 짓누르고 싶은 마음.
뚜드려 패고 싶은 마음
교묘하게 잔머리를 잘 굴려서
지혜롭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
이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하나도 남김 없이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죠.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놀라운 비장의 무기를 장착하는
기본 조건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내 내면에 있는 모든 죄의뿌리를
삭 다 복종시키는거에요.
여러분 혹시 야생마 본적 있어요?
말은 생각보다 굉장히
예민한 동물이에요.
게다가 사람 손에 길들여지지 않고,
자연에서 자기 본성 그대로 자라난
야생마가 얼마나 강력한지 아세요?
야생마가 뒷발로 차는 힘이
어지간한 복싱선수가
풀파워로 때리는 힘보다
최소 10배 이상 강력합니다.
마이크 타이슨이 한창
전성기인 시절에
호랑이를 키웠었는데
하도 놀자고 귀찮게 하길래
풀파워로 떄렸는데
호랑이가 놀자고 하는 건 줄 알고
더 치근덕거렸다고 합니다.
타이슨은 진심으로
바위를 때리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호랑이 같은 맹수들도
말의 뒷발차기에 제대로 맞으면
두개골이 박살납니다.
세상의 방법은 이렇게 그냥
아무런 길들임 없이 자라난 야생마처럼
자기의 감정대로 예민하게 굴고
자기가 가진 힘을 과시하고
자기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해서
복수하고 때려 부숴서
나는 의롭고 정당하다고
나 자신을 과시하는 방법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아요.
여전히 내 감정대로 예민하게 굴 수 있고,
여전히 내가 가진 모든 걸 다해서
복수하고 싶고 파괴하고 싶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께
철저하게 길들여져야 합니다.
그것이 무기를 착용하는 조건이니까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그리스도 앞에 복종하는 거에요.
그렇다면 이 조건을 알게된 후에
우리가 착용하게 될,
세상을 무너뜨릴 강력한 무기는
무엇일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위를 내가 좀 지나치게 자랑했다고 하더라도, 그 권위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넘어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세우라고 주신 것이므로,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야생마와 같은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잘 길들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들임은
하나님께서 처음 세상을 디자인하실때
인간을 지은 그대로를 회복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에 우리를 길들이시는 거에요.
그렇게 길들임을 받으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때
필요한 무기를 얻게 되는데,
그 무기가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위를 내가 좀 지나치게 자랑했다고 하더라도, 그 권위는 주님께서 여러분을 넘어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세우라고 주신 것이므로,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원래대로의 사람은
누군가를 넘어뜨리고 짓밟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힘으로
누군가를 넘어뜨리고 무너뜨리는 인생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고,
서로를 높여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은 결국 나를 자랑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기는
누군가의 삶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무너져 있는 인생들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참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10:17 (NKSV)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나를 자랑하려하지 말고,
나를 철저하게 부인하고
주님 앞에 내 마음과 생각을
싹 다 복종시켜서
우리를 자랑하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자랑하는 사람,
주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를 자랑해주고,
서로를 격려하고 일으켜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너무나 강력한 무기입니다.
혼란스러운 이 세상을,
어지러운 이 세상을 바로잡을
강력한 무기인 것이죠.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싸움에 쓰는 우리의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요새라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우리는 궤변을 무찌르고,
최선의 방어는
최선의 공격이다.
최선의 공격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무기를
주셨어요.
그런데, 그 무기가
육체의 무기, 세상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무기입니다.
세상의 방법은 복수하고 파괴하고
빼앗고 다양하게 얍삽한 방법으로
누군가를 짓밟음으로써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내세우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 속에서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자기중심성,
그를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며,
내 분노는 정당한거라고,
내 복수는 지혜로운 거라고
스스로 감정의 위안만 삼는 것,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이자,
세상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기는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며
일으켜 세워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시고,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자기중심성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맞서 싸우는 무기는
나의 생각과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철저하게 복종시키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의 삶을 일으켜 세워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고
서로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