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입성: 왕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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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11:1-11(신약 73쪽)
설교제목: 예루살렘 입성: 왕이신 예수님!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부터 시작된 여정의 끝인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교회력으로 사순절 그중에서도 고난주간을 앞둔 종려주일을 지킬 때 이 성경 이야기를 많이 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셨다는 것은 십자가 죽음에 가까이 가셨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고요. 이는 예수님의 사역이 절정을 향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이야기를 통해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걸어서 들어가지 않으시고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는 나귀 새끼를 타고 가셨다고 하고요. 보다 정확히 헬라어로는 ‘폴로스’ 곧 ‘망아지’를 타고 가셨다고 소개합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가셨다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망아지는 말의 새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번역한 것은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행동을 구약성경 스가랴9장 9절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가랴의 예언에 따르면 ‘너의 왕이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 성경에서는 모두 나귀새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 요한복음을 제외하고 헬라어로는 폴로스 곧 망아지로 쓰고 있습니다.
제가 대수롭지 않은 내용을 따지고 있다고 여기실지 모르지만요. 사실은 이것이 동일한 이야기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있어서 서로 관점의 차이가 생기는 부분입니다. 마가복음은 마태복음이나 요한복음과 달리 이 이야기를 스가랴의 예언과 연결시키지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은 스가랴의 예언을 통해 예수님을 겸손의 왕으로 강조하고 있고요. 누가복음은 평화의 왕으로 소개하는데요.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바로 사람들이 고대하던 그 메시아임을 또한 우리를 다스릴 왕이심을 강조해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론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각자 다른 강조점을 지고 있지만요. 동일하게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사람들이 예수님이 나귀새끼 또는 망아지를 타고 오실 때 옷을 땅에 펴고 나뭇가지를 흔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고대 사회에서 왕의 행차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인데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성경 이야기에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이 사건을 우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라고 부릅니다. 결국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바로 사람들이 고대하던 메시아이자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시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왕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고대 사람들에게 왕은 오늘날 대통령 또는 우리 조선시대의 왕과는 달랐습니다. 왕은 신의 현현 또는 신의 대리자라 불리는 존재였고 신과 같이 숭배되어지던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이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고 우리는 그의 다스림을 받아야하는 존재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예수님이 다스림을 받는 삶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또 예수님이 다스림을 받으며 신앙생활하고 계신가요?
‘배덕만 교수님’이라는 분이 있어요. 현재는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이라는 단체 속하여 계신데요. 쉽게 말하면 여기가 비인가 신학교이고요. 좋게 말하면 초교파적인 신학교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꼭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기독교에 관해 공부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저는 종종 신학에 관심을 두는 분들에게 이곳을 소개해드리곤 해요. 이 단체 속한 몇몇 교수님들의 강의나 책을 제가 유익하게 접했는데요. 제가 감명받았던 교수님들 중 한분이 배덕만 교수님이에요. 이분은 교회사를 가르치시는 분인데요.
‘새롭게 하소서’라는 간증 프로그램과 더불어서 제가 즐겨보는 ‘잘잘법’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셨고요. 거기에서 세계교회사와 한국교회사를 잘 정리해 주셨고 특별히 한국의 여러 교파가 생긴 것을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해주신 강의도 너무 감명깊게 들었어요. 특히나 이분이 학벌이 꽤 훌륭하시거든요. 서울대를 나왔고 미국에 이름난 학교인 예일대학교나 드류대학을 나온 똑똑하신 분인데요. 저는 이분이 느헤미야 기독연구원 오기까지 참 어려운 결단의 시간이 있었음을 간증을 통해 알게 됐어요.
이 분이 어릴 때 가난한 가정에서 심방오셨던 전도사님 통해서 신앙생활하게 됐는데요. 그러면서 신학교 가서 목회를 할 생각을 하셨다고해요. 본래 서울신학대학을 가려다 주변의 권유로 서울대를 가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목회보다는 교수가 자신에 잘 맡겠다는 판단을 하고 유학까지 갔다와서 결국 신학교수가 되었는데요. 강의를 하다보니 그런 얘기를 하시는 분이 있었데요. ‘교수님 얘기 참 좋은데, 목회를 안 봐서 교회의 상황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목회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데요. 당시 속해있던 신학교에서 전임교수는 겸직을 할 수 없는데요. 사례를 안 받고 목회를 하는 조건으로 폐교회가 될 번한 교회를 가게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정말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하고 그곳에서 만나는 교인들의 모습이 크게 다름을 깨닫게 된 거예요. 학교에 만나는 신학생들이나 또 협동목회를 하던 교회들에서 전혀 볼 수 없었던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보통의 교회에 속하기가 너무 어려운 분들인 거예요. 우울증을 앓고 있었어서 죽으려고자녀랑 뛰어내려 하셨던 분, 교회를 10번이 넘게 옮겨다니신 분, 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시는 분 등등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 참 다행스럽게 몇몇 가정들이 교회에 정착하고요. 특별히 영특하고 신실한 한 청년이 교회에 정착을 하면서 교회가 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청년 덕분에 많은 교인들이 생겨나고 또 목회에 큰 위로와 힘이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청년과 갈등이 일어나면서 그 청년이 교회를 나가게 되었데요. 그러면서 교회가 이전 힘들었던 상태로 돌아갔다고 해요. 그동안 쌓았던 공든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목회를 그만두고 싶었다고 해요. 오죽 했으면 마음 속에 분노가 차서 성경책을 집어 던져버리기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1장의 말씀을 통해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주시고 그 말씀을 붙들면서 계속 목회사역을 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러다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본래 여기가 평신도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단체였는데요. 신학전공 과정을 개설하려고 신학교수들에게 청빙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비인가 신학교니깐 기존에 하던 교수직에 비해 월급도 반으로 줄고 또 어렵게 목회했던 교회도 떠나야되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따지면서 기도했데요. 제가 욕심 안 부리고 지방 신학교에서 이렇게 학생들 가르치고 목회도하고 있는데, 비인가 신학교까지 보내셔야 하냐고요. 그렇게 막 하나님께 따져 물었더니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시더래요. ‘너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하면서 정작 너는 가지 않는구나’하는 마음이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에 교수로 가게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또 그곳에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백향나무교회를 개척하여 목회하게 됐는데요. 그 이전 교회에서 어렵게 목회를 해봤으니깐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데요. 그런데 2년 채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더래요 계속 문제가 생기고요. 오죽하면 탈모가 생기더래요. 또 다시 목회를 계속 해야하는지를 놓고 하나님과 씨름했다고 해요.
그런데 하나님이 골고다를 향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요.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임을 깨닫게 되었데요. 그리고 사실 그 무렵에 월급이 줄어서 다른 강의들을 겸해서 했고요. 목회는 약간 부업 느낌으로 했다는 생각이 들었데요. 그래서 다 정리하고 본업이었던 느헤미야 기독연구원과 백향나무교회 담임목회만 전념 하기로 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놀랍게도 다시 교회가 회복되기 시작하더래요.
그리고 벌이가 줄어서 자녀들 학비나 생활비 때문에 사실 다른 곳에서 강사를 했던 것이었는데요. 그러네 하나님이 자녀들 책임져 주셔서요. 자녀들 학비 걱정 않고 유학도 가고 장학생도 되고 했다고 해요. 또 목회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이전에 강사하면서 벌던 비용을 목회를 통해 하나님이 다 채워주셨다고 해요.
제가 이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저는 이렇게 학벌 좋고 훌륭한 분은 목회도 능히 잘 할 것을 생각했었고요. 목사를 가르치는 신학교수니깐 더 탁월한 목회를 할 거라고 기대했는데요. 목회는 학위나 어떤 개인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어요.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그것을 따를 때 온전한 목회를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순종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지만요. 순종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을요.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통해 참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게 돼요. 저는 우리가 예수를 왕으로 믿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다는 것이 이와 같지 않은가 생각해 봐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주시는 마음에 순종하는 것 말이지요. 물론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데요. 그러나 우리가 순종할 때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하나님이 이뤄가심을 깨닫게 돼요.
바라건대, 우리 성도님들께서 예수님을 왕으로 믿고 따름으로서요. 주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뤄가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