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십자가는 변화를 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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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10:32-45(신약 72쪽)
설교제목: 예수의 십자가는 변화를 일으킵니다.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십자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오늘 우리에게는 거룩하고 애뜻한 사랑의 상징물일 수 있지만요. 실제 십자가는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멜깁슨 감독에 의해 2004년에 개봉하여 이제는 거의 기독교 고전영화라 할만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를 보면요. 십자가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살이 찢기고 피칠갑을 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영화를 통해 보게 되는데요. 일화에 따르면 누군가 멜깁슨 감독에게 영화를 왜 그렇게 잔인하게 만들었냐고 물으니, 실제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거라고 답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본래 십자가는 끔찍하게도 잔인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그 십자가를 지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십자가를 진다고 얘기하진 않으셔지만요. 34절에보면 능욕당하고 채찍질당하며 죽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죽음과 부활에 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임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 죽음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처참한 모습이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이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인정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32절에 예수님이 앞장서 가시는 것에 제자들은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을 것이라고 예고하셨는데, 그 길을 앞장서서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욱이 37절에 제자들 중 일부는 예수님의 좌우편에 서게 해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그리고 41절에 이 얘기를 들은 다른 제자들이 화내는 것을 볼 때 정말 제자들은 예수님께 일어날 일들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일부 제자들의 요구처럼 예수님의 좌우편에 서게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그들은 정말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45절을 통해 제자들을 깨닫게 하십니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지금 가시는 길은 제자들의 기대처럼 세상에서 권력을 얻게 되거나 왕이 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쉽게 말해 죽으러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것일까요? 물론 지금의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임을 너무 잘 압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제자들을 포함한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오늘 사는 우리에게도 사실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전능하시는 분인데요. 구태여 십자가라는 어려운 길을 택하기 보다 당시 사람들의 기대처럼 혹은 오늘 우리도 비슷하게 바라랄지도 모르지만요. 세상에 왕으로 오셔서 통치하시는 것이 더 영향력 있고 좋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좀 지나친 말일지 몰라도 예수님께 이렇게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왜 고생을 사서 하시냐고요.’ ‘쉬운 길이 있는데 어려운 길로 가시냐고요.’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고 하나님의 방법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음을 말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방법이 예수님을 세상의 왕으로 세우시는 것이었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어쩌면 큰 차이가 없었을지 모릅니다. 우리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좋은 왕 또는 좋은 리더가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는 힘을 가지고 권력을 가져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생각이 틀렸고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세상을 뒤집습니다. 십자가와 섬김의 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전혀 반대되는 방법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곰곰히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무엇이 우리의 삶을 변화키시는지 말입니다. 제가 유명한 분들 또는 훌륭한 사역자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과 후의 삶이 달랐고 하나님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생각에 큰 변화가 찾아오는 것을 공통적으로 발견합니다. 대략 이렇습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열심으로 구원받거나 변화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가령, 유명해지고 성공함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혹은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정상에 서고 또한 열심을 내었음에도 만족감과 행복감은 충분히 채워지지 않고 공황장애를 비롯한 문제들 또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들만 쌓여가더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요. 더 이상 자신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삶을 살게되어 모든 상황 속에서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험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을 힘입은 사건을 말입니다. 저는 자주 얘기했지만 지금의 아내를 만나고 결혼하고 또 아이가 생기는 이 모든 과정들이 정말 기적같이 느껴집니다. 실제로 제가 설교를 통해서도 이에 관한 실패와 고민 또는 걱정을 늘어놓은 적이 있을 정도로 이는 제 힘으로 이룰 수 없는 영역에 속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제 계산 밖에서 이뤄진 일이고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만 고백되어지는 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게는 이와 같은 일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면서 저는 참으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내 힘으로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일이 또 그 은혜와 신비를 깨닫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실패로만 보여집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돌풍을 일으켰지만 결국 참혹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실패한 것 같은 십자가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움터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변화되었고 그 생명의 씨앗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대에 전해지고 뿌려지기를 반복함으로 귀한 생명의 결실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사이 담임목사님과 청년들이 목요일 마다 함께 모여서 공부하고 기도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가장 힘든 것이 시간을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갓생’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모르겟습니다. 신을 뜻하는 영어단어 갓과 삶이라는 한자어 생을 합친 신조어인데요. 마치 신과 같이 완벽하고 철저하게 부지런하고 빼곡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하루의 시간을 매우 촘촘하게 살아가는 것이데요. 직장생활 외에도 취미활동이나 사회활동 등을 병행하면서 정말 24시간이 모자라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삶이 트렌드이고 또 그것이 삶을 성공하게 할 것이라고 혹은 구원할 것이라고 여기는 청년들에게요. 교회에서 신앙생활에 관계된 시간을 내라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함께 모임을 이루면서 그 모임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한 갓생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말로 열심히 살지만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질문 앞에서 우리는 할말을 잃기 때문입니다. ‘만약 지금처럼 또는 앞으로 열심히 살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겠느냐?’ 우리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또는 이미 살아온 삶을 통해 어느 정도 경험한 바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서 우리의 삶을 구원하고 변화시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워주고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십자가를 통해 알리십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는 실패했다고 보여지는 그 십자가의 삶으로부터 우리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소망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변화를 이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셔던 것처럼 고통스럽고 참혹한 과정을 통과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예수 잘 믿는다고 모두가 부자가 되거나 세상에서 성공하는 등의 일은 일어나지 않으니 말입니다. 더욱이 고난과 박해가 우리를 덮쳐오는 일들이 더 많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 길에 구원이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온 인유를 구원했듯이 우리가 그 길을 따름으로 구원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한다는 말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가치와는 다르게 낮아지고 고난 받는 험악한 길일 수 있지만 그곳에 신비하게도 구원과 평안과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와 같은 은혜를 누리며 십자가의 길을 걷는 우리 성도 분들 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