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열매를 드리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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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신명기 26:1-11(구약 300쪽)
설교제목: 첫 열매를 드리는 믿음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합시다.
‘감사합니다. 오늘 당신과 함께여서 행복합니다.’
# 축복후
제가 최근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감명 깊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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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수 목사님의 이야기인데요. 현재 강원도 정선 덕천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곳에서 목회를 하기까지 참으로 감동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써는 상상이 되지 않지만, 중학교 2학년 때 머리를 노랗게 탈색하고 오토바이를 타고다닌 폭주족이었다고 하는데요. 당시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이른바 비행과 일탈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자유당 말기의 정치깡패였다고 하는데요. 군입대를 피해 도망다니다가 어머니를 만나서 강원도 탄광에서 일하면서 정착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늘 문제를 일으키고 어머니와 자녀들에게 폭력을 일삼았다고 해요. 그 기억이 아프게 남아 있다는데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술에 취해 병을 씹고 입에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 아버지가 두려워서 이불 속에 숨었던 기억,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 등으로요.
놀랍게도 이런 아버지가 극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해요. 아버지가 ‘채독’이라는 병에 걸렸는데요. 이 병이 뭐나면요. 과거에는 화학비료 대신 인분을 사용해서 거름을 대신하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이런 채소를 깨끗이 씻지 않고 잘못 먹으면 기생충에 감염이 되는 거예요. 이 병에 걸리면 음식을 거의 먹을 수가 없다고 해요. 음식이 들어가면 내장이 갈가먹히는 듯한 고통이 동반된다고 해서요. 그러다보니 이 병으로 돌아가시는 분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아버지도 거의 돌아가실 상황이 됐는데요. 평소에는 전도하던 사람들에게 막 폭력을 행사하시던 분이 너무 힘드니깐 새벽기도회를 나가셨데요. 그리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그날부터 식사를 하실 수 있게 된 거죠. 이렇게 아버지가 극적으로 치유함을 받고서 가족들이 신앙생활을 하게 됐어요.
이제 아버지가 예수 믿었으면 좀 바뀔까도 했는데, 여전하더래요. 계속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시고 교회 가서는 1시간 넘게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 것을 보면서요.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에 신앙에 관해서도 회의적이었고요. 앞서 말한 것처럼 머리 노랗게 탈색하고 오토바이타면서 반항을 했데요. 그러다가 중학교 졸업을 하고 고등학교 무렵에 집안에 형편이 매우 어려워졌다고 해요. 빚을 지고 빚쟁이들 한테 시달리다 보니까요. 어느 날은 아버지가 경운기를 타고 어디를 가시는데 어머니가 불안해서 따라가보라고 했대요. 멀찌기서 아버지를 따라가는데요. 그날 아버지가 산으로 가시더니 나무 밑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게 되었데요. 아버지가 우시면서 간절히 기도하시더래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위기를 지나게 해주세요.’ 게다가 변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놓고도 회개하며 기도하시는데요. 그 장면을 보고 나니깐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해요. 이전에는 아버지가 이중인격같아서 너무 싫었는데, 아버지도 변화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돼요. 그러면서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데요.
그때부터 자신도 변화되기로 결심하고서요. 아버지에게 좋은 성적표를 가져다 줘야겠다는 마음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대요. 당시에 공고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변화된 마음으로 공부해서 2학년 중간고사에서 전교 7등을 하게 돼요. 머리 탈색하고 오토바이타고 놀던 녀석이 성적이 잘 나오니깐, 선생님이 성적을 보고 그러시더래요. ‘너 컨닝했지, 기말고사에도 이 성적 나오지 않으면 컨닝한거라고 하면서’요. 시험을 잘 봤는데 오히려 선생님 한테 혼나고 매를 맞았데요. 그리고 기말고사 때는 감독 선생님이 자기 곁에만 계시더래요. 그래도 기말고사에서도 전교 10등을 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공고에 있으니깐 취업을 나가는데, 대우조선소로 가게 되었데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인지 참 신기하게도 당시에 대우조선소에서 2학년 성적만 보는 바람에요. 평소에 공부잘하던 친구들은 떨어졌는데요. 자기는 2학년 성적이 좋으니깐 우등생으로 대우조선소를 들어가게 되었다고 해요.
당시에 대우조선소면 대기업이잖아요. 마을 잔치가 벌어지고 아버지가 너무 좋아셨데요. 그렇게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하며 살았는데요. 언젠가부터 장출혈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해요. 대변을 보니 피가 나고 해서 처음엔 치질인줄 알고 병원을 갔는데요.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해서 갔더니 장출혈이라는 거예요. 그러고 몇 년이 지나니깐 장출혈이 너무 심해서 빈혈이 생기고 수혈을 받아야 될 정도가 되었데요.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었다고 해요. 그리고 병원에서 상태를 보더니 장 절제술을 해야겠다고 해요. 아니면 장루라고 해서 변주머니를 평생 달고 다녀야 한다고 해요.
그 당시가 일찍 결혼해서 아이도 있고 아직 20대였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해서 너무 절망적이었데요.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하기 시작했데요. 당시에는 서리 집사였는데, 교회에서 찬양인도도하고 여러 봉사도 열심히 하면서 신앙생활했데요. 과거에 아버지의 병도 하나님이 고쳐주셨으니깐 그 믿음에 기대어 신앙생활 한 것이죠. 그러다 담임목사님이 부산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큰 집회를 가자고 권유하시더래요. 장수술을 앞두고 있던 상황이고 몸상태도 좋지 않아서요. 집회에 가서 오랜 시간 앉아 있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는데요. 그런데 목사님이 강권하시기도 했고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수술을 연기하고 그 집회를 갔데요. 예상한데로 너무 힘들었데요. 쉬는 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이 고역이었고요. 갈때마다 피를 한 바가지씩 쏟아 놓기 일수였대요.
그런데 그곳에서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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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2장 20절인데요. 앞에 화면 보고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 말씀에 황홀하게 붙잡혀 그런 기도를 했다고 해요. ‘하나님, 저를 고쳐주시면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그렇게 말씀에 붙들려 집회를 은혜롭게 마칠 수 있었는데요. 한편 그런 마음이 들었데요. ‘그 집회 강사로 오신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으면 이 병에서 치유되지 않을까?’ 그런데 워낙 많은 인파속에서 그 일은 불가능해 보였고요. 실제로도 집회 끝날때까지 그 일은 이뤄지지 않았데요.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데요. 함께 오신 분들이 갑자기 그 강사 목사님 교회를 탐방을 가자는 거예요. 집으로 가려면 4~5시간을 가야하는데, 은혜를 받았어도 몸이 않좋은 것은 변함이 없어서요. 가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교회 봉고차로 모두 함께 왔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따라 가게 된 거예요. 그런데 예상치도 못하게 거기에서 강사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거기에 강사 목사님이 그 시간에 계실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는데요. 뜻밖에 만나게 된 것이죠. 그래서 담임목사님이 사정을 설명하고 그 강사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게 해주었다고 해요.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병원에서 수술 일정을 다시 잡고자 몇 주 기다리는데요. 놀랍게도 몸이 점점 회복되어져 가는 것 같더래요. 그리고 병원에서 교수님을 만나서 상담을 받는데 그러시더래요. ‘그 동안에 뭐 좋은 거 드셨어요? 이정도면 수술 안해도 되겠다’고요.
그 소식을 듣고서 주변에서 그러더래요. ‘집사님, 이건 신학교 가야된다’고 하면서 신학교 가라는 권면이 계속 들어오더래요. 그때가 30대인데 아직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이 신학교를 간다는 것이 감당이 안 되더래요. 그런데 집회를 참여해서 하나님께 서원한 것도 있어서 기도하기 시작했데요. ‘만약 제가 신학교 가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면 확실한 길을 보여달라’고요. 그러니깐 하나님이 이번에도 말씀을 주시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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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받고서 신학교 가야되나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다음 날 회사에 출근 했더니 회사가 부도가 난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도에 확실하게 응답해 주신 것이니 재고말고 할 것 없이 2009년도에 신학교에 입학을 했데요. 그러고 그로부터 10년 신학공부를 하는데요.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고 해요. 신학교 다니면서 수입은 적은데 자녀들이 자라니 지출은 커지다보니 이런 일도 있는 거예요. 아내와 자녀들이 버스비가 없어서 40분 거리를 걸어다닌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주일 사역을 마치고 학교가 멀리 있으니깐 교회차를 타고 학교로 가야하는데요. 기름값이 없더래요. 집에서는 도무지 방법이 없으니 밤에 나와서 무작정 차를 타고 신학교를 가는데요. 기름이 거의 다떨어진 상태에서 휴게소 도착했데요. 이제 여기를 벗어나면 차가 중간에 멈출 것 같았데요. 어찌할 바를 몰라서 차를 세워놓고 기도하는데요. 기도는 안 되고 자꾸만 눈물만 쏟아지고 하나님께 원망만 밀려오더래요.
그런데 울음소리를 들으셨는지 어떤 분이 차로 오셔서 문을 두드리시더래요. 교회차인걸 보고 ‘전도사님 이시냐고, 이 늦은 밤에 여기서 뭐하시냐’고 묻더래요. 차마 ‘기름값 없어서 여기 있다’고 말을 못하고 잠깐 피곤해서 쉰다고 얘기하니까요. 그분이 다시 차로 가시더래요.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 기도했데요. ‘하나님 저 너무 힘들어요. 도와주세요.’ 그런데 누가 또 차 문을 두드려서 보니까 아까 오셨던 그 분이 5만원을 건내셨다고 해요. 그순간에 깨달았데요.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구나’ 하는 것을 말이지요. 그렇게 힘든 시간을 하나님의 은혜로 지나오면서 목사가 되었다고 해요.
목회자 모임에서 당시 덕천교회 담임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해요. 자신이 일본선교의 부름을 받았는데, 후임자가 없어서 교회를 떠나고 있지 못하다고 하면서요. 자기 후임으로 교회에 와줄 수 있느냐고 묻더래요. 그런데 그 교회가 너무 열악했다고 해요. 얼마나 열악한지 어떤 분은 교회를 보러왔다가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도망가셨다고 해요. 그도 그럴 것이 건물이 200년이 넘었고요. 벌레, 쥐, 뱀이 들끊고 있는 환경이었어요.
그런데 그 분도 다급한 마음에 얘기를 하고 사정을 들어보니 너무 마음에 걸리더래요. 그래서 3일 금식하며 기도를 하는데요. 하나님 또 말씀을 주시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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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장 8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무슨 뜻인지 말씀을 연구해 보는데요. 본질을 쫓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데요. 이전에 자기가 목회를 꿈꾸면서 그런 기도를 했데요. ‘하나님 교인 수는 이정도 있었으면 좋겠고요. 사례는 최소 이랬으면 좋겠고’ 하는 등등을 기도했었는데요. 그런데 말씀을 통해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요. ‘주를 위해 사는 것’이 본질이다 생각하고 그 교회를 가보지도 않고 당시 덕천교회 담임목사님에게 후임자로 가겠다고 연락을 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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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내랑 같이 교회를 찾아가는데요. 얼마나 오지에 있던지 네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산길을 겨우겨우 넘어서 밤중에 도착했데요.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곳에 십자가 하나가 보이더래요. 가까이 다가가니 당시에 산에서 멧돼지 내려온다고 교회에서 사냥개를 5마리 키웠는데요. 개가 시끄럽게 짖었고요. 담임목사님이 200년된 나무 대문을 열고 나오시더래요. 열악 교회 상황을 보고 나니 머리가 복잡해져서요. 머리속으로 계속 ‘본질적인 것만 붙들자’고 외치면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모르고 얘기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데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차마 교회가 어땠냐고 아내에게 물어보지를 못하겠더래요. 서로 말한마디 없이 집으로 왔는데요. 집에 오니까 아이 거기 어땠냐고 묻는데요. 그 말 듣고 아내가 방에 들어가서는 3일을 앓아 누웠다고 해요. 아내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더래요. 신학교 졸업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목회지가 이렇게 험악한 걸 보니까 아내의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는 거였죠. 그래서 아내를 위로해 달라고 계속 기도했데요.
3일 후에 아내가 설겆이를 하고 있기에 얘기했어요. ‘몸은 괜찮냐’고 그러니 아내가 그러더래요. ‘하던 일 그만둬야겠다’고요. 그동안 신학생 남편 때문에 약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요. 이제 그것이 너무 힘들졌나 보다하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런데 아내가 이렇게 얘기하더래요. ‘거기서 살려면 나도 올인해야하지 않을까? 이제는 사모 역할을 해야하지 않을까?’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이런 마음이 들었냐고 물으니까 그러더래요. 자기가 너무 낙심이 되서 기도하고 성경을 폈는데요.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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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3장 18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그 말씀이 눈에 밟혀서요. 주님을 사랑한다면 거기 가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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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처음에 접하면서요. 그 찬송이 생각이 났어요. ‘부름받아 나선 이 몸 / 어디든지 가오리다 /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따라 가오리니 /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2절은 같이 불러볼까요. ‘아골골짝 빈들에도 / 복음들고 가오리다 / 소돔같은 거리에도 / 사랑안고 찾아가서 /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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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 목사님이 쓰신 책이 있는데요. 그 제목도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예요. 자기 간증의 이야기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찬송은 이렇게 멋들어지게 부르는데요. 정말 찬송의 가사처럼 살기가 쉽지 않죠. 정말 부르심 따라서 ‘아골골짝, 빈들, 소돔같은 거리’를 간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다보니 찬송과 삶이 참 다를때가 많이 있죠. 아까 그런 얘기드렸잖아요. 덕천교회 보러 오셨던 목회자들 중에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도망치듯 떠난 분이 계셨다고요. 저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데요. 저도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들더라고요.
오죽하면 최기수 목사님도 그 교회를 처음 방문하고서 그런 분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라고 했으니까요. 거기 환경이 너무 열악했데요. 아까 벌레, 쥐, 뱀이 막 우글거린다고 했잖아요. 그 교회로 부임하기로 하고 처음 덕천교회로 아내와 둘만 이사해서 가서 사택에 들어가는데요. 천장의 벽지가 쥐 오줌으로 누렇게 변색되고 어떤 곳은 움푹 내려와 있더래요. 또 벌레가 많아서 에프킬라를 한통을 다 뿌리고 서로 펑펑 울면서 밤을 지새웠다고 해요. 그러니 누군들 이곳에서 쉽게 목회하겠다는 마음이 들겠느냐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이 분 이야기가 참 감동이 되었던게 쉽지 않은 일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따라 갔다는 거였어요. 나중에 덧붙이겠지만, 덕천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도 참 많은 은혜를 받았는데요. 그 시간이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그리고 신앙이 성숙했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는데요. 우리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 곧 언행일치가 되는 사람을 성인군자라고 하잖아요. 신앙이 성숙했다는 것도 그와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을 통해서도 알 수 있어요.
우리가 읽은 성경은 구약성경 신명기인데요. 신명기라는 책은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다고 약속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출애굽 2세대들에게 설교하면서 율법을 가르치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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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신申이라는 한자가 거듭하다 되풀이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요. 명命이라는 한자는 명령(율법)을 뜻하고 기記가 기록하다는 뜻인데요. 율법을 다시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에요. 모세는 왜 죽음 앞에서 율법을 다시 기록하고 이것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쳤을까요? 그만큼 율법이 다음 세대들에게 남겨줄 중요한 유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거에요.
왜냐하면, 출애굽 1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따르지 않아서 광야에서 다 죽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 사는 길이고 그것만이 다음 세대에게 소망이 되는 것이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미국은 유진 피터슨이라는 신학자이고 목회자였던 분이 있어요. 그 분이 원어를 좀더 쉽게 풀어서 ‘메시지’라는 이름으로 성경을 번역 했어요. 본래 이분이 신학교에서 헬라어와 히브리어 가르치던 분이니깐 성경번역을 꽤 훌륭하게 해냈다고 평가받는 번역성경인데요. 영어로 나온 책을 오래 전에 한글로 또 번역해서 우리나라에도 출간이 됐어요.
제가 요사이 그것을 읽고 있는데요. 각장에 관한 해설이 붙어 있어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흔히 모세오경이라는 책을 이렇게 비유적으로 설명하더라고요. 모세오경은 하나님의 백성이 마치 태아가 뱃속에서 자라 태어나고 유아시절을 거쳐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신명기는 청년이 된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고 그렇게 자라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일러주는 책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신명기는 성숙한 신앙인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하는지를 일러주는 이야기라는 거예요.
이제 이런 관점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본문을 이해해 보는 거예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다 정확히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가르치고 있어요. ‘너희가 하나님이 약속한 그 땅에 들어가면, 그 땅에서 처음으로 수확한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려야한다’고 말이지요. 왜냐하면, 그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고 그 땅을 통해서 나온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것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성숙한 신앙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왜 첫 열매를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사실 이것에 답하는 것은 좀 어려운데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욕심이 많으시다거나 하나님이 우리가 첫 열매와 같은 것을 바쳐야만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인정해주신다거나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알고 있기로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세상을 전부 소유하고 계신 분인데, 무엇이 더 욕심이 나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구약성경 아모스 5장 21~24절에 이렇게 말씀하세요. 좀더 선명한 표현으로 된 새번역 성경으로 같이 화면을 보고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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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5:21-24
21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22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23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24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이 강력한 어조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재물을 바치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많은 재물보다 공의와 정의 곧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요. 오늘 성경에서 첫 열매를 바치라는 명령은 문자적으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의 백성 답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지. 무조건 첫 열매를 바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바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라는 것임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첫 열매를 드리는 믿음’이라고 지었는데요. 왜냐하면 첫 열매를 드리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자리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땅에 들어가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 땅 밖에 있습니다. 그러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가나안 땅을 점령해 살고 있는 가나안 거민들이 보이는 것이고요. 첫 열매를 얻을 수 있기나 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현재 아무것도 없는데요.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오늘 이 말씀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땅을 주실 것이고 우리가 그곳에 정착하여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된다는 믿음 말입니다. 그 믿음이 없이는 첫 열매를 드리라는 명령은 허공을 치는 메아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첫 열매를 드리기 위해서 구할 것은 첫 열매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 또는 이를 허락해 주신다는 하나님에 관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첫 열매를 드릴 수 없을테니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위안이 됩니다. 앞서 소개해드린 최기수 목사님처럼 모두가 살 수 없잖아요. 특히나 목사인 저에게 그것은 더욱더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니 마치 저렇게 살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것 같고 뭔가 목사답지 못한 것 같은 죄의식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그분이 그와 같은 믿음으로 나아가기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셨고요. 그 믿음이 자라서 정말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요.
저는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일이라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은혜 아래 살아간다면, 우리 안에도 이와 같은 변화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신명기가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한 지침을 주는 책이라고 했는데요. 돌이켜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유아와 같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의심하는 시기요. 그러나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지키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고 자라게 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그와 같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최기수 목사님의 덕천교회 사역을 얘기하고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어렵게 덕천교회에 와서 목회를 하는데요. 정말 어려움이 많았답니다. 우선 그곳에 있는 마을 주민들이 거의 교회를 다녀본적도 복음을 들어본 적도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고요. 또한 무속신앙에 사로잡혀서 산 신을 숭배했었다 그래요. 막 전도하러가면, 부정탄다고 쫓아내고 집에 소가 죽었는데 교회 때문이라고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목회를 하는데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곳에 온지 1년이 안 되서 19년만에 셋째 아이를 가지게 되었답니다. 또 그 소식을 들었던 주변 지인들이 그렇게 험한 환경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냐고 하면서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는데요. 대학에 입학한 자녀의 학비를 대어주시는 분이 생겼고 교회 건축에 비용이 마련되기 시작했어요. 또 셋째가 태어나면 다둥이 혜택을 정부로 받게 되니깐 살림살이 전보다 나아진 거예요. 그런 소문이 나고 하면서 한번도 교회를 가 본적이 없는 분들이 그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 교회가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2023년도에 그 목사님에 관한 인터넷 기사를 보니까요. 그 교회에 15명의 교인이 있다고 나와요. 어떻게 보면 정말 적은 숫자일 수 있지만요. 그곳에 모여서 신앙생활 하는 분은 거의 평생에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고 무속 신앙에 오랫동안 빠져있었던 분들이잖아요. 또 그 교회를 통해 세례받는 분도 생겨났고요. 정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해요.
우리가 성숙한 신앙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지요. 때로는 많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 같고 실제로도 고난 시간을 견뎌내야하니까요. 그런데 제가 최기수 목사님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됐어요. 하나님이 우리가 그 길을 순종해서 따르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말이지요. 물론 대반전이 없을 수 있어요. 돕는 손길이 생겼다지만 여전히 어려운 환경에서 목회하는 것은 맞으니까요.
그런데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 분들의 삶이 어떨가요? 얼마나 만족스럽고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내가 믿는바대로 살았더니 하나님이 은혜베풀어 주셨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했으니 말이지요.
저는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는데 처음과 마지막이 변화없이 같아서는 안 돼잖아요. 조금이라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야 하잖아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첫 열매를 드릴 수 있는 신앙되어야 하잖아요.
바라건대, 저는 오늘 우리의 신앙이 자라기를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그 안에서 주님의 은혜를 누리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