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노래합시다(희망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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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을 노래합시다(희망의 소리) 본문: 예레미야 33:1-16 찬송: 105장 오랫동안 기다리던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은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 시작을 알리는 거룩한 시기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희망을 노래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는 그의 불후의 명작 '신곡'에서 지옥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에 다다른 자여 희망을 버려라. 영원히” 단테는 지옥의 본질이 바로 ‘희망이 없는 곳’이라고 정의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절대 절망이요, 끝이며, 그 자체가 지옥입니다. 그러나 절망 속에 있으면서도 희망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여전히 치유와 회복의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픔과 고통 중에 살았던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다 써버렸고, 율법에 따라 부정한 자로 취급받아 사회적으로도 철저히 고립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희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열두 해를 흘리던 피가 곧 멈추었고 온전히 치유되었습니다. 이처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녀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완전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죄악으로 인해 멸망 직전에 처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이 절망과 심판의 위기 속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그의 음성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희망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함께 렘 33:1-16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절망의 터널 끝에서 빛나는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희망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3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예레미야 33:3 NKRV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야는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이때는 유다 왕 시드기야 11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통치 18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한 상태였고, 성이 함락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 순간에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이것은 단순한 제안이나 권면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초청이며, 약속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이시겠다고 하신 점입니다. 여기서 ‘크고 은밀한 일’이란 무엇일까요?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베추로트’(בְּצֻרוֹת)라고 하는 이 말씀은 ‘요새화된, 견고한, 접근하기 어려운’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차르’(בצר)에서 나왔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려는 크고 은밀한 일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마치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견고한 하나님의 깊으신 구원 계획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은 집과 왕궁을 헐어 그 재료로 성을 보수하며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죽은 자들의 시체로 성이 채워지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인간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절망적인 순간 속에서도 소망의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먼저 썩은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치유와 회복을 위한 거룩한 수술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예루살렘처럼 무너져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은 절망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내게 부르짖으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의 초청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을 기대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치유와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고난 중에도 희망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치유와 회복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앞서 보았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놀라운 약속을 선포하십니다. 본문 6절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예레미야 33:6 NKRV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그러나 보라”라는 말씀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앞서 나온 심판의 말씀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차원의 약속이 시작됨을 알리는 표현입니다. 마치 캄캄한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심판 다음에 회복을, 고난 다음에 은혜를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치료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히브리어로 이 단어는 '새 살이 돋아나게 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치 상처가 아물면서 새 살이 돋아나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상처를 깊은 차원에서 치유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상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한 환자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그 의사는 매일 상처를 살피고 침을 놓으며 정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차도가 보이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결국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치유도 이와 같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완전한 회복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7절 말씀을 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라고 하십니다. ‘처음과 같이’라는 표현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누리던 그 친밀한 관계로의 회복을 암시합니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회복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치유의 약속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조건 없이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했기 때문도 아니고, 그들이 충분히 고난을 받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 때문입니다. 그분의 변치 않는 사랑이 이 모든 치유와 회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의 치유는 전인적입니다. 영적인 상처도, 마음의 상처도, 관계의 상처도 모두 치유하십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아픔을 하나님은 알고 계시며, 그분의 때에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치유하십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도 치유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마음에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관계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영적인 메마름을 겪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러나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현실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더욱 크다는 선포입니다.
우리는 때로 당장의 변화를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마치 그 의사 선생님의 환자처럼, 치유의 과정이 더디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분의 치유하심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치유와 회복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희망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십니다.
함께 본문 15-16절을 읽겠습니다.
예레미야 33:15–16 NKRV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치유와 회복의 약속은 메시아를 통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그래서 16절의 ‘공의로운 가지’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이는 단순한 왕의 출현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셨습니다. 그분은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소외된 자들을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특별히 주목할 것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입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 치드케누’입니다. 이는 앞서 보았던 크고 은밀한 일의 절정이며,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이 완성되는 순간입니다. 이 이름은 우리의 의로움이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오늘은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이중적 의미를 가집니다. 먼저는 이미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은 공의로운 가지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 다음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분이 재림하실 때, 모든 희망이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때는 더 이상 불의도, 슬픔도, 고통도 없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로움만이 가득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 두 시점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믿음으로 누리면서, 동시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세 가지 희망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고난 중에도 희망의 음성을 들려주시는 하나님, 치유와 회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희망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대림절 첫 주일을 맞이한 우리는 이제 두 가지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마치 부모님을 기다리는 자녀의 마음과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미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마치 멀리 계신 부모님이 곧 오신다는 약속을 받은 자녀가 기쁨과 설렘으로 기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이미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이며, 아직 오지 않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은밀한 일을 기대하며,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될 희망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대림절 첫 주일 예배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크고 은밀한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 저희가 믿음으로 그 약속을 붙잡고 살게 하옵소서. 절망의 순간에도 주님께 부르짖는 저희가 되게 하시고, 그때마다 주님의 치유하시는 손길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상한 마음과 깨어진 관계들을 치유해 주시고, 영적으로 메마른 저희의 심령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저희를 고쳐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미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찬양하오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기다리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대림절을 보내는 동안 저희 마음에 참된 소망이 가득하게 하시고, 그 소망을 노래하며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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