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메시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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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메시야(1)
마11:5
지난 주일 부터 우리는 강림절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강림절(Advent)은 '옴', '도착'을 의미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이는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하며, 한때 이 말은 성탄절에만 국한되어 사용되기도 했었던 것이 오늘날에는 주님의 탄생을 미리 기대하며 자신을 가다듬는 것을 그 본질로 하는, 성탄절 전 네 주일을 포함한 절기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강림절의 또 다른 명칭으로는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뜻의 대림절(待臨節), 대강절(降臨節) 등이 있습니다.
강림절은 태초부터 종말까지 이어지는 역사 중에서 최대의 사건이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서막인 주의 탄생 기념일을 미리 준비하여 자신을 가다듬는 절기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과연 주님의 탄생이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기간 동안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자세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영성이 깊어지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케이 미술관에는 프레드릭 왓츠라는 화가가 그린 '소망'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둥그런 지구 위에 아주 연약하게 보이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을 자세히 보니 눈에 수건을 싸매었습니다. 그래서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손에는 조그마한 비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파의 일곱 줄 가운데 여섯 줄은 다 끊어지고 이제 마지막으로 한 줄만 남았습니다.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여인, 여기에다가 비파 줄도 거의 다 끊어졌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것이 절망의 상황입니다. 소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자는 유일하게 남은 이 한 줄을 가지고 비파를 계속해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의 제목을 '소망'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혹 이런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까?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신 분은 없습니까? 그러나 분명하게 기억하십시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세상의 모든 줄이 다 끊어져서 우리의 삶이 흔들거리고 칠흑같이 어둡다할지라도 한가지 줄, 즉 소망의 줄만 끊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계속해서 인생의 악기를 아름답고, 멋있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이 여인과 같은 처지에 있는 현대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고 했습니다. 요즈음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소경이 있습니다. 앉은뱅이도 있습니다. 문둥이도 있습니다. 귀머거리는 물론 죽은 자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난한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오늘 아침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이 희망의 말씀이 오늘 아침 여러분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들은 지금 현대인들이 당하고 있는 위기의 한 가운데서 살아가고 그들과 함께 희망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 희망을 회복하려면 그렇게 많은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아마 늦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왜냐구요? 인류의 구원자이신 메시야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있어서 희망의 메시야이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희망의 메시야를 소개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드리려고 합니다. 말씀드릴 때에 아멘으로 받으시고 희망의 날개를 활짝펴고 훨훨나는 출발의 새아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주님은 소경을 보게 하신 희망의 메시야이십니다.
소경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왜 그들이 앞을 보지 못할까요? 대체적으로 그 원인을 몇가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눈이 멀게되는 원인
1) 고령으로 인하여 앞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삭-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가로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창27:1).
야곱-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 맞추고 그들을 안고(창48:10).
엘리-때에 엘리의 나이 구십 팔이라 그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삼상 4:15).
아히야-여로보암의 아내가 그대로 하여 일어나 실로로 가서 아히야의 집에 이르니 아히야는 나이로 인하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더라(왕상14:4).
2) 불순종으로 인하여 앞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침과 눈멂과 경심증으로 치시리니 소경이 어두운데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 네 길이 형통치 못하여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뿐이니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 (신 28:28, 29).
여기서 우리는 불순종에 대한 저주 가운데 하나가 앞을 보지 못하는 경우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기적에 의하여 앞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저희의 눈을 여시매 저희가 보니 자기가 사마리아 가운데 있더라(왕하6:18-20).
그 외에도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하여(창19;11), 노예가 되는 조건으로(삼상11:2), 전쟁에서 패배로 인하여 시드기야의 눈이 빠졌으며(왕하25:7),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다가 강한 빛에 의하여 사흘 동안 보지 못했습니다(행9:8,9),
2. 눈먼 자의 무자격
눈먼 자는 제사장 직무를 행하지 못합니다(레21:18, 21). 눈먼 짐승은 제물로 드리지 못합니다(레 22:22)(신15:21; 말1:8).
3. 소경의 치료는 약속되어 있습니다.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사 42:7,16).
어떻게 치료됩니까? 기적적으로 치료됩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5)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마12:22).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15:30, 31).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우러러 보며 가로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의 걸어 가는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저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만물을 밝히 보는지라(막8:22-25).
5. 영적 눈먼자들이 있습니다.
왜 영적으로 눈이 멀어집니까? 하나님에 대한 무지, 예수님에 대한 무지, 성령님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바로는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했습니다.(출5:2).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영적인 무지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였습니다(사 1:3).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엡 4:17-19).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무지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옷을 나눠가졌습니다(눅23:34). 요한은“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다”(요1:5,10).고 말씀합니다.
뿐만아니라 성령에 대해서도 무지했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고 했습니다.
또 성경에 대해서도 무지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마22:29).”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행 13:27).”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고후3:14, 15).”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을 향하여 이사야는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목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사29:10-12).” 고 말씀합니다. 레위기에서는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렘 2:8).”고 말씀합니다.
영적 눈이 멀면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다(잠10:21; 잠4:12). 버림 받습니다(호4:6, 14). 사27:11).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습니다(살후1:8,9).
영적 눈먼자는 어떻게 치료받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사9:2).”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35:5)”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사42:6, 7).”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눅4:18).”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소경을 다시 보게 하시는 희망의 메시야이십니다. 오늘 아침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생명의 빛을 얻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마음 밭에 심으시고 영적인 어두움으로부터 자유함을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님은 앉은뱅이를 걷게 하신 희망의 메시야이십니다.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된자도 있으며 살아오면서 사고로 된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앉은뱅이가 일어남은 메시야 시대의 표적이었습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11:5;눅7:22).”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앉은뱅이를 고쳐주셨지만 그것이 육체적인 질병을 고침받는 것에 국한된 것으로만 이해하면 안됩니다. 이러한 이적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을 알고 찬양할 것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육체적인 앉은뱅이를 고쳐주시면서 영적인 앉은뱅이가 되어 신앙생활의 진보가 없는 자들에게 행함이 있는 신앙으로 믿음의 진보를 보이라고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3:2-7절 말씀에 보면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쳐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 구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매일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구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날도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구걸하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면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어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니 많은 사람들이 기이히 여기며 놀랐습니다.
찬양= 금과 은 나 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할렐루야!
또 사도행전14:8-10절 말씀에 보면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8장5-7절의 말씀에 보면 빌립도 앉은뱅이를 고쳐주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앉은뱅이는 걸을 수 없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제한된 환경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늘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만 살아가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늘 앉아서만 살아야 하니 서 있는 사람보다 멀리 볼 수 없습니다. 걸을 수 없으니 다양한 볼거리도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에도 앉은뱅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은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줍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이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뛰어다니면서 바쁘게 살던 사람이 천천히 걸어다니면 이상합니다. 걸어다니던 사람이 기어다니면 더 이상합니다. 기어라도 다니던 사람이 아예 앉아 있다면 그 사람은 어딘가 단단히 고장난 사람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봉사하던 사람이 봉사하기를 두려워하고 아예 하지 않는다면 단단히 고장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앉아 있던 자가 기어다니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기어다니던 자가 걸어다니는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걸어다니던 자가 뛰어다니는 기적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들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뛰어다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주님은 문둥이에게는 깨끗함을 주시는 희망의 메시야이십니다.
문둥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차라아트’로 이는 ‘때려 눕히다’, ‘매질하다’는 뜻의 ‘차라’에서 유래한 말인데 이는 문둥병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생각하던 고대 히브리인들의 사고 방식을 잘 반영해 주고 있습니다. 한편 성경에서 말하는 문둥병은 오늘날의 나병, 곧 한센씨 병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악성 피부병을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문둥병의 증상 및 경과를 보면 종기, 딱지 또는 색점이 생깁니다(레13;2). 환처의 털이 희어지고 우묵하게 파입니다(레 13:3). 난육이 생깁니다10-11,15).
문둥병은 어떻게 생깁니까? 자연적으로 발생합니다(레13:2-17). 부스럼형이 있습니다(레 13:18-23). 화상을 입어서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레 13:24-28). 미리암과 게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문둥병에 걸렸습니다(민 12:9-10). (왕하 5:25, 27). 징표형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흰지라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 보니 손이 여상하더라(출 4:6, 7). 고 했습니다.
문둥병에 대한 성서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부정합니다( (레 13:45, 46).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습니다((민12:13; 왕하 5:6,7).
문둥병자에 대한 규례는 무엇입니까? 제사장이 진단하여 그 진위를 선고합니다((레 13:2, 3, 9, 10). 성전 출입이 금지됩니다( 대하 26:21). 진 밖으로 격리해야 합니다(레 13:46; 민 5:2, 3; 민12:10,14,15). 죽으면 격리된 장소에 장사지냅니다(대하 26:23). 문둥병자는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레 22:3-4).
그러면 문둥병자는 어떻게 해야 깨끗해질 수 있습니까? 먼저 제사장이 진 밖에서 정결 여부를 진찰합니다((레 14:2, 3). 그리고 정결예식을 행합니다( 레14:4-9). 속건제를 드립니다(레 14:10-18)_. 속죄제도 드립니다 (레 14:19-21).
그러면 성경에 고침 받은 문둥병자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먼저 모세입니다. 출애굽기4:6, 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흰지라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손이 여상하더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미리암입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자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그 결과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리고 13-15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비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았을찌라도 그가 칠 일간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나, 그런즉 그를 진 밖에 칠일을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찌니라 하시니 이에 미리암이 진 밖에 칠일 동안 갇혔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진행치 아니하다가”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는 나아만입니다. 열왕기하 5:1, 3, 14절 말씀에 보면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 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 나아만이 이에 내려 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할렐루야!
또 누가복음 4장 27절에 보면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한 문둥병자가 예수께와서 꿇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곧 문둥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마8:3; 막 1:40-42; 눅5:13). 할렐루야!
게하시가 그렇습니다. 열왕기하5:25, 27) “게하시가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웃시야도 그렇습니다. 왕하15: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왕을 치셨으므로 그 죽는 날까지 문둥이가 되어 별궁에 거하고 왕자 요담이 궁중 일을 다스리며 국민을 치리하였더라.” 대하26:18-20절에서는 “웃시야 왕을 막아 가로되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이 왕의 할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의 할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웃시야가 손으로 향로를 잡고 분향하려 하다가 노를 발하니 저가 제사장에게 노할 때에 여호와의 전 안 향단 곁 제사장 앞에서 그 이마에 문둥병이 발한지라 대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왕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였음을 보고 전에서 급히 쫓아내고 여호와께서 치시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문둥병자는 죄악의 총체적인 상징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문둥병자와 같은 죄인들에게 희망을 주시는 메시야이십니다. 이제 그 죄악을 우리는 잘 지배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소경을 보게 하신 희망의 메시야이십니다. 앉은뱅이를 걷게 하신 희망의 메시야이십니다. 문둥이에게는 깨끗하게 하신 희망의 메시야이십니다. 그 희망의 메시야께서 오늘 우리 성도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포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사명이 이스라엘의 영광이라는 희망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란 하나님이 결정한 날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자유하게 되고 형제 사랑으로 맺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이스라엘의 영광이 오늘 우리교회에 회복되는 기쁨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