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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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이수현
여러분 혹시 이수현 이라고 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2001년 일본에서 신오쿠보역이라고 하는 전철역에 한 일본인 취객이 열차 선로에 떨어진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 전철역에 도달하고 있는 전철이 아주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구요. 다른 승객들은 “저거 어쩌지”하면서 지켜보고만 있는 와중에 한국인 유학생이었던 이수현씨, 당시에 26살이었는데, 아무런 망설임 없이 선로 위로 뛰어들어서 그 취객을 구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열차 간격이 3분밖에 되지 않았고, 이미 역에 전철이 들어오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수현씨와 취객, 그리고 그를 돕던 다른 일본인 카메라맨 한 명을 포함해서 모두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고이지만 당시에 일본 사회에 굉장히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생판 남인 일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드는 그 희생정신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고귀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건으로부터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이수현씨의 기일에 맞춰서 많은 일본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 역에 찾아와서 이수현씨의 죽음을 기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는 의로운 행위다, 고귀한 행위다 라고 하는 인식은 세계적으로 퍼져있습니다. 비록 나는 남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뉴스에서 누군가가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몸을 던지는 행위를 보고 의로운 행위, 고귀한 행위라고 많이들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요즘에는 이러한 희생에 대해서 어리석은 행동이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제가 종종 보게 됩니다. 굳이 왜 자신의 아까운 목숨을 남을 위해서 던지냐는 겁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죠? 저희들이야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죽음은 끝이기 때문에 남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던지는 행위가 어리석다라는 겁니다. “대체 뭐하러 그런 짓을 하는거야?”하고 말이죠.
저희도 저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몸을 던지신 의로운 분을 기념하고 예배드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와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라는 것이 저희의 신앙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저희의 믿음이 바보같은 것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죄를 대신 속해준다라고 하는 속죄의 개념이 저희들에게는 복음이지만 세상 사람들에게는 폭력, 죽음, 희생이 어떻게 구원으로 이어질 수 있냐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서 좀더 깊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속죄=하나됨
속죄=하나됨
먼저 속죄라고 하는 단어의 뜻을 먼저 알아보고자 하는데요. 한국어로 속죄라고 한다면 단순히 죄를 속한다, 즉 저희의 죄를 없애거나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교환한다라고 하는 뜻이 되는데, 영어로 번역하면 atonement라고 해서 하나됨, 연합함이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의미가 굉장히 크게 확장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은 단순하게 저희의 죄만 씻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연합, 즉 하나님과 저희의 연합일 수도 있고, 인간사이의 연합이 될수도 있고, 인간과 하나님의 피조세계와의 연합일 수도 있게 됩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더욱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속죄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이다 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18-19절을 보시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우리끼리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과 세상이 화목하게 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결과다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스도의 승리
그럼 대체 어떻게 속죄가 이루어지는 것이냐, 하는 그 방법이 중요한데요, 먼저는 예수님의 속죄는 마귀에게 대적하여 승리하시는 영적 전쟁의 승리입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마귀와 세상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종종 우리는 성경에서 육체의 일은 악하고 마귀의 것이며, 영적인 것이 선하고 하나님의 것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볼 수 있는데요, 제가 인간의 죄에 대해서 설명할 때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모든 육체, 저희의 몸이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지난주 말씀에 영지주의자들처럼 물질적인 세상이 다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거스르는 육체의 일이 나쁘다고 말씀 드린바 있습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선하게 창조하신 육신과 세상이 성령을 거스르는 일이 발생을 할까요? 그것은 마치 제국이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지배했던것 같이, 그리고 그들이 세상을 혼돈으로 이끄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을 쥐고 흔드려고 하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이 세상 풍조, 육신의 것을 쥐고 흔드는 것을 바울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구요,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요한은 이 세상의 임금, 즉 세상을 통치하는 자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받으실 때, 마귀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네게 주겠다”라고 하는 말은 자기가 가지고 있을 때나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읽으면서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의 주권이 마귀에게 있는 것이 문제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엥? 이 세상의 주권이 마귀에게 있다구요? 사실 성경을 읽으면서 굉장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제일 쎈거 아닌가요? 왜 마귀가 이 세상의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이것은 저희가 지난 시간들에서 살펴본 이스라엘의 역사들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수많은 제국들에 의해서 지배받아온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로마와 같은 제국들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공중의 권세잡은 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마귀는 그냥 보이지 않는 귀신이나 유령같은 존재가 아니라 정말 그들의 삶에서 경험하고 있는 마귀입니다. 때로는 왕처럼 채찍을 휘두르면서 폭력적이고 억압하기도 하고, 때로는 헬라 문명의 혼합주의와 같이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마귀는 어디 멀리 떨어져서 이 세상을 조종하는 존재라기 보다는 피부로 느껴지는 악한 존재입니다. 그 자체로 죄를 짓는 권세잡은 자이기도 하고, 저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자이기도 합니다. 저희도 일제시대 때 많은 억압을 받았습니다. 마귀는 그런 억압하는 자의 모습이기도 하고, “야, 너희 나라를 팔아넘기면 우리가 너네 한국땅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줄게”라고 속삭이며 매국노로 만드려고 하는 유혹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귀가 이 세상의 권력자고 지배자라고 하는 것은, 정말로 마귀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자기 맘대로 주무르고 있다기 보다는, 도저히 하나님께서 다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희망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마귀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나타나심으로 인해서 이것이 확 바뀌게 됩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예수님께서 행하신 속죄는 바로 저희들을 억압하고 유혹하는, 공중의 권세잡은 것처럼 보이는 마귀를 십자가로 멸하시고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가장 중요한 증거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마귀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적인 죽음과 육체의 죽음 모두를 향해서 치닫게 만들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죽음을 경험하시고, 무엇보다도 부활하심을 통해서 사망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마귀에게 승리하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속죄입니다. 마귀가 빼앗아서 죽음가운데 던져넣어질 운명인 저희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으로 돌이키시고 연합시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속죄라고 하는 것입니다.
형벌의 대속
형벌의 대속
그런데 속죄가 단순히 예수님의 영적 전쟁의 승리! 라고 해버리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냥 예수님이 승리하셨다 와아ㅏ 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을 그냥 제 삼자의 시선에서 극장가서 영화보듯이 보고서는 “믿습니다. 저도 천국행 티켓 좀 끊어주세요”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속죄에 저희들의 죄 때문에 받게 될 형벌을 예수님께서 대신 속해주셨다라고 하는 것을 저희가 반드시 기억해야합니다. 먼저 인간의 죄와 타락에 대해서는 저희가 앞서서 깊이 알아본 바가 있기 때문에 죄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하겠습니다마는 문제는 인간의 죄 때문에 인간은 심판을 받을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에 대한 반역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해야한다는 인간의 목적이 뒤틀려서 성령을 거스르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피조물들에 대하여 죄를 저지르는 것은 그냥 단순히 “나쁜 일”을 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반역을 저지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 인격적이고 보복적인 심판을 하십니다.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그냥 판사가 심드렁하게 서류를 읽어보고 “징역 몇 년 땅땅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거룩하지 못한 인간에게 “진노”하셔서 하시는 심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은 그냥 인간처럼 조금 수틀린다고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거룩하심이 침해당하는 일에 진노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이 심판은 멈춰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는 “어휴 네가 그럼 그렇지.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거야”하면서 그냥 용서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행인것은 하나님은 심판만 하시는 분이 아니고, 사랑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용서받게끔 하는 방편을 마련해주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이를 희생제사를 통해서 해결을 했습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죽음과 사망만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을 피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이 폭력적이고 죽음과 피를 좋아하는 악신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저희가 분명히 알고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하나님은 절대 죽음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이 맹세까지 하실 정도로 하나님은 심지어는 악한 사람조차도 죄때문에 죽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죄 때문에 자꾸 동물 잡아가면서 희생제사를 드리는게 좋은게 아니라 애초에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지만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희생제사로는 부족하게 돼버린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의 죄를 대신 짊어질 희생양을 이 땅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죠.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다들 너무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는 속죄제처럼 이스라엘의 죄만을 씻으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범한 죄를 속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이 반드시 받아야할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자신이 그 죄를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죄가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저희의 죄를 대신 감당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심판만 피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형벌을 피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본문 말씀 20-21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의롭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저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게 하셔서 거룩한 하나님과 연합하게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되는 것이 속죄
화목하게 되는 것이 속죄
사실 오늘 드린 말씀은 저희들의 신앙에 있어서 아주 기초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굉장히 익숙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희들의 죄를 속해주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믿기 때문에 다들 교회 나와서 예배도 드리고 하는 것인데, 간혹 이 속죄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도 오해하기를 그리스도의 속죄는 저희의 죄를 사하여주시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죄를 없애거나 씻어주신 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게끔 하시려고 속죄해주신 거냐라는 것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본문말씀 17-19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속죄의 궁극적인 목적이 죄를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속죄, 영어로 Atonement는 하나님과 저희의 연합, 그리고 저희들과 이웃간에 화목하게 하시는 것,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와 저희가 화목하게 되는 것이 속죄의 목적입니다.
나만 잘 믿고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대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또한 “내가 그런게 아니라 마귀가 그랬어요”하면서 회피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마귀에게 대적하여 승리하셨고, 저희로 하여금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 집중하여 세상 가운데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아가게끔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화목제물로 드려지심으로 인해서 저희가 의롭다 여겨짐을 받고 이 세상 가운데서 의로운 백성으로서 살아갈 토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저희의 죄를 속해주셨음을 믿습니까? 믿습니까?” 만약에 아멘으로 화답하셨다면, 저희는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기 위해서, 이웃과 화목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과 하나된 삶을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로 드려지심으로 저희들의 죄를 속해주심과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마귀에게 대적하여 승리하심을 통해 보여주신 소망을 믿고, 날마다 하나님과 이웃과 하나님의 피조물들과 화목하며 살아가기에 힘쓰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