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라, 먹지 말라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고린도전서 10:23-11:1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2024. 12. 6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결론을 내리는 단락인데요. 앞에 고린도전서 8장에서 이미 한번 이 문제를 다뤘었습니다. 8장에서는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 하지만 두 가지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라고 했죠. 하나는 우상의 제물을 먹을 때,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에 내가 이것을 먹는데 뭔가 찜찜하고, 꺼림찍하다면 먹지 말아야 돼요. 또 만약에 내가 이것을 먹는데 새신자가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면, 그때도 먹지 말아야 돼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8장 13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아멘.
내가 먹었다가, 내 형제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신앙에 문제가 생기게 만들 바에야, 차라리 내가 영원히 먹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가 일단락이 됐어요. 그런데 이 문제를 오늘 본문에서 다시 다루는 겁니다.
처음 우상의 제물을 다룬 8장에서부터 오늘 본문인 10장 23절 전까지, 바울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루었는데요. 우상의 제물 문제, 사도의 권리 문제, 모세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본보기 문제, 그리고 우상숭배 문제. 이렇게 크게 네 가지의 문제들을 다뤘어요. 그리고 다시 오늘 본문에서 우상의 제물 문제를 또 다루는 겁니다.
이 모든 문제들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연결되는데요. 그것은 자유와 책임이라고 하는 주제입니다. 자유와 책임.
여러분, 우리는 자유가 있어요.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그런데 그 자유가 무한한 게 아니라, 제한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를 누림에 있어서 절제할 수 있어야 돼요. 왜냐하면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제하지 않았죠. 마음껏 음행을 하고, 주를 시험하고, 원망했어요. 자기들의 자유를 누린 겁니다. 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됐습니까? 음행하다가 하루에 삼천 명이 죽고,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 물려 죽고,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멸망을 당했어요. 절제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는 무서운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본보깁니다.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 돼요. 내가 먹을 수 있어도, 내가 행할 수 있어도 절제해야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3절에 바울이 이 말을 하는 거예요. 오늘 본문 2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아멘.
우리에게 자유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이 아니에요. 또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에요. 유익한 것이 있고, 덕을 세우는 것이 있는가 하면, 무익하고, 덕을 실추시키는 것도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거나 다 해서는 안 되고, 분별을 해야 돼요.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 정확하게 분별을 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분별을 해야 될까요? 기준이 있어야겠죠. 어떤 기준으로 분별을 할 것이냐?
그것을 24절에서 바울이 답을 주고 있습니다. 24절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아멘.
이것이 기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남의 유익을 구해야 돼요. 거꾸로 말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된다는 겁니다. 나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가 안 되면, 해도 돼요. 하지만 피해가 된다면 하지 말아야 돼요. 이것이 기준이에요.
여러분, 자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까지만 누려야지, 선을 넘으면 범죄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주방에서 식칼을 쓰는 것은 자유지만, 길거리에서 식칼을 휘두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잡혀가는 거예요.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제할 수 있어야 됩니다. 특별히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돼요.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우상의 제물을 우리도 먹을 수 있어요. 자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마음대로 먹어서는 안 돼요. 왜냐하면, 내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남에게 피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상황을 두 가지 상황으로 예시를 들면서 설명을 하는데요. 먼저 첫번째 예시는 시장에서 우상의 제물을 사먹는 경웁니다. 오늘 본문 25절에 보니까,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시장에서 파는 우상의 제물은 먹으라는 거예요. 제가 지난 시간에 고린도의 고기유통과정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었죠. 고린도는 특이하게도 고기를 팔기 전에 신전으로 먼저 가축을 보내서 도축을 하고 제사를 지냅니다. 고기에 신의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요. 그러면 고기의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업자들이 다 그렇게 합니다.
아닌 경우도 있기는 있어요. 가축을 신전에 보내는데 실패했다든지, 혹은 개인적인 신념으로 신전에 보내지 않고 곧바로 시장에 파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소수고 대부분은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와요.
그래서 시장에서 고기를 살 때는 이 고기가 신전에서 나온 고기인지 아닌지를 꼭 물어봐야 돼요. 그런데 대부분이 신전에서 나온 고기이기 때문에 깨끗한 고기를 찾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쩔 때는 아예 시장에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경우에는 고기를 먹을 수가 없죠.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 바울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시장에서 파는 것은 그냥 먹으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고 해서 우상숭배에 참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과 우상숭배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거든요. 만약에 내가 신전에 찾아가서 같이 제사를 지내고 거기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다면, 이것은 문제가 되죠. 우상숭배를 한 거니까.
하지만 반대로, 시장에 가서 우상의 제물을 사서 먹는 것은 괜찮다는 거예요. 시장에서 사먹는 것은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먹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파는 모든 것은 본래가 다 누구 거예요? 하나님의 거예요. 밑에 26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이 땅의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다 먹어도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첫번째 예십니다. 시장에서 우상의 제물을 사먹는 경우에는 먹어도 된다. 내가 양심상 거리낌이 없고, 또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이 되지만 않는다면,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두번째 예시가 나오는데요. 오늘 본문 2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아멘.
두번째는 불신자가 나를 식사에 초대하는 경웁니다. 내 친구, 직장동료, 또는 믿지 않는 집안식구가 나를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할 때, 이것을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의 문제인데요.
식탁에 보니까 고기가 올라와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 역시도 먹으라는 겁니다. 괜히 이게 신전에서 왔나 안 왔나 조사하지 말고, 그냥 아무 소리 말고 먹으라는 거예요. 왜요? 이것도 다 하나님의 것이니까. 우상 앞에 바쳐졌다가 온 것이라 할지라도, 우상 자체가 가짜기 때문에 아무리 제사를 지내고 뭘 해도 고기는 깨끗해요. 그러니까 그냥 먹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다만, 이것을 먹지 말아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나를 초대한 사람이 이 고기가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을 하는 경웁니다. 그런 경우에는 먹지 말아야 돼요. 자, 28절 말씀인데요. 28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아멘.
내가 고기를 먹으려고 하는데, 이 고기가 신전에서 온 것이라고 밝혀졌어요. 그러면 이때는 먹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 우상의 제물을 알고도 먹는 행동이 불신자들에게 오해를 심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만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구나, 두 주인을 섬길 수 있구나.’ 이런 오해를 하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내가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할지라도, 불신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불신자를 위해서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간에 반드시 나의 다른 사람의 양심에 유익한 일을 해야 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자유해야 하지, 진리 밖에서 자유해서는 안 돼요.
우리는 반드시 신앙양심과 교회의 덕을 위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모든 영역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31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31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아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말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돼요.
그 다음에 두번째 계명은 뭡니까? 이웃 사랑이죠.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웃이 실족하지 않고, 구원을 얻도록 해야 돼요.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두 가지 계명을 기준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자유가 혹시라도 하나님의 영광에 누가 되지는 않는지, 혹시 이웃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는지, 주의하고 조심해야 됩니다.
반대로, 나의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그것을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끝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한 마지막 방법을 알려주는데요. 그것이 고린도전서 11 장 1절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아멘.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고린도교인들이 자신을 본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어긋남이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죠. 일찌기 장 16절에서도 바울이 이 말을 했었거든요.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나를 본보기 삼아서,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인지 배우고, 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바울을 본받는 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이 자기가 가졌던 사도의 권리와 자유를 절제하고,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사명을 위하여 충성하며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내가 가진 권리와 자유를 절제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섬기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