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강해 1

에베소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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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교회

본 서신은 에베소 교회에게 먼저 보내진 것은 확실하지만, 에베소 교회만을 위해서 보내진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초대 1장에 1절에 들어 있는 에베소에 있는 이라는 표현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동일한 이메일을 여러 사람 들에게 보낼 때와 마찬가지로, 에베소 인근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회람하게 할 목적으로 수신자를 빈칸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회람이라고 할지라도, 에베소 교회에게 주된 목적을 두고 보냈으며, 그것이 다른 교회들에게도 유익하므로 참고하라는 것이지요.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3년간 머무르며 복음과 말씀을 가르친 교회입니다. 2차 전도여행 때에 고린도에 1년 반을 머무른 것과 함께 바울이 오랫동안 머무르며 진리를 가르치기에 힘썼던 교회이지요. 3년간의 목회 생활이 평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배척을 당했고, 이방인들에게는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3년여의 시간 동안 두란노라는 사람이 가진 건물에서 말씀을 가르치므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거짓과 진리를 구분하는 것에 상당히 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에 소동이 일어났을 때에 마게도냐로 건너갔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게 됩니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에 잘 아시다시피 누명을 써서 고발을 당했고, 이 일로 로마 황제에게 항소함으로써 로마행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감옥, 1차 투옥 시에 상당한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에 옥중서신이라고 불리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기록하여 보내게 되었습니다.
3차 전도 여행의마지막에 예루살렘으로 가기 직전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밀레도로 초청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2가지 부탁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사 도 행 전 20장)
첫 번째는 거짓 교사를 주의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며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로부터 소식을 들어보니, 그의 첫 번째 권면인 거짓 교사를 주의하는 것은 잘 지켜진 것 같습니다. 3년 동안 가르친 보람이 있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서로 도와주며 사랑하는 일에 소홀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에베소에 편지를 보내면서, 바울은 교리적으로 그들의 믿음을 잃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보다는 교회의 중요성, 교회가 무엇인지, 또 어떻게 서로 섬겨야 하는지와 같은 교회의 하나됨에 대해서 매우 강조하여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이번에 에베소서 강해를 시작하면서, 에베소서의 구절들을 계속 살펴보게 될 것인데, 그 결과물은 교회, 우리 토랜스 선한목자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과 서로에 대한 책임을 서로 지면서 더욱 하나됨을 이루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금요찬양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로부터 그 은혜가 시작되어 온 교회가 그렇게 변화되어 간다면, 부흥은 저절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인사말인 1절과 2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바울이 본 서신의 저자로서 자신을 밝히고 있는데, 그 첫 구절에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자신은 사도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 것이고, 사도들이 말씀을 전파하고 보증할 권위를 가지고 있었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며, 거짓과 진리를 판단할 자격을 갖춘 자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도의 직분이 자기가 노력해서 얻어낸 결과물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이루신다는 과정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를 택하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을 변화시키는 고백입니다. 앞으로 바울은 자신만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성도들도 그렇게 택함을 받았다라고 설명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그가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자기를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의 힘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약점과 부족함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전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신비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갑자기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된다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병고치는 은사가 나타난다든지 예언하는 은사, 혹은 방언의 은사가 나타나는 경우들도 있을 것입니다만, 그것은 매우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일상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고 해서, 그가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이전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긴다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여 배설물과 같이 무가치 하다는 고백일 뿐이지, 그런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실제적으로 그의 율법에 대한 지식과 그의 로마 시민으로서의 신분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얼마나 유용하게 쓰임을 받았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인생의 여정을 통해서 그를 오랜 시간 동안 훈련시키시고, 각자의 경험과 달란트를 통해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용하신 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지내온 인생의 경험과 지식이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아름답게 쓰임받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계신 분들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여러분들을 부르셨고, 택하셨고 일꾼 삼으셨습니다. 반드시 교회의 어떤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삶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전도자의 소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감동으로 거룩한 주의 종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의 원래 이름은 무엇입니까? 사울이지요. 사울과 바울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울이라고 불러서는 안됩니까? 제가 한 번 설명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시는 지 모르겠습니다. 사울이라는 원래 이름은 그가 유대인으로서 베냐민 지파의 출생이고, 베냐민 지파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라는 이름을 본따 받은 것입니다. 아주 영광스러운 이름이지요. 그런데, 바울은 로마식 이름입니다. Paulus라는 로마의 이름이지요. 그 뜻은 “작은” 혹은 “낮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들도 한글 이름을 영어로 할 때에 발음이 비슷한 영어 이름을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지요. (Leona 예온이)
그런데, 이제 바울은 사울이라는 이름보다는 바울이라는 이름을 주로 사용합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 자신을 유대식 이름으로 부르는 것보다 로마식 이름으로 부른다면 더 가깝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가까이 가기 위하여 자신의 이름도 바꾼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에베소서의 전체 주제 중에 하나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자기 주장을 고집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을 섬기기 위하여 때로는 포기하고 희생하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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