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3장 10-17절(피할수없으면 즐겨라)
Notes
Transcript
찬양 : 나의 가는 길 (악보)
이 찬양은 저한테 결단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실 누가 광야의 고난을 받고 싶어 하겠습니까?
목사인 저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인정도 받고 적당히 돈도 잘벌고, 다니엘기도회나 수련회 때 초대 받아서 강사비도 많이 받고, 유명해지면 좋죠~
그런데 주님이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때 이런 삶이 저와 맞는 것인지 항상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래서 이 찬양을 들으면서 주여~~ 라고 하면서 다시 마음을 다 잡으려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가시고, 그 곳에서 훈련과 연단을 시키십니다.
나의 가는 길 주님 인도하시네 그는 보이지 않아도 날 위해 일하시네
주 나의 인도자 항상 함께 하시네 사랑과 힘 베푸시며 인도하네…
하지만 광야는 거부합니다.
주님 광야는 꿈도 꾸지 마시고, 이왕 고난을 주실꺼 쟤한테 주세요~
이것이 우리의 마음이며 고백이지 않습니까?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이자 양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쓰는 마지막 유언이며 동시에 사역인계서 입니다.
제가 알기로 오늘 길회 총회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임원인수인계 할 때 전 임원이 세워진 임원들한테 나 겁나 빡세게 했으니까 너네도 한번 죽어봐라 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에게 사역인계서를 쓰면서 하는 내용이 이와 비슷합니다.
그 지역에 가면 이런게 있고, 여기는 이렇게 사역을 해야하고 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는 박해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는 마지막 유언이자 사역인계의 주된 내용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나 돌에 맞아 죽다 살아난거 알지? 맨날 쫓겨 다니고 배신당하고, 사고친거 수습하고, 욕먹고, 나 죽이려고 결사대까지 만든거 다 봤지?
그런데 하나님이 다 지켜 주시더라 왠지알아? 복음을 위해 당한 고난 이니까
이게 공감능력 없고, 대문자 T 인 바울이 디모데에게 가르쳐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하나님이 지켜주시더라 라는 이 고백은 사실 바울이 처한 상황과 전혀 맞지 않습니다.
그는 어둡고 음침한 로마 감옥에 갇혀 처형당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차 투옥 때에는 가택구금이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기 위해 그를 찾아왔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사형 당할 날만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 무슨 주님께서 자신을 고난 가운데 건지셨다는 말입니까?
바울은 이제 자신의 사명의 날이 다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로는 쫓겨 다니고, 목숨의 위협고 돌에 맞아 죽기 직전까지 갔었지만, 바울은 오로지 복음을 위해 뛰어다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바울의 저런 삶을 불행하고, 마지막이 새드엔딩이고 실패한 삶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죽음을 앞둔 바울의 마지막 고백은 더욱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의 고백 밖에 없습니다.
함께 12절을 읽겠습니다.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신앙의 원리이며, 그리스도인의 삶 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니까 박해가 왔고, 그 가운데서 주님이 지켜 주시더라 라고 삶의 고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신앙의 원리는 어떤 특정한 그리스도인, 그러니까 바울이나 디모데, 사도들과 같은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신앙은 곧 세상에서 고난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님을 나의 구원자로 고백하며
주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경건한 자를 그리스도인 이라고 하며, 그리스도인은 결코 핍박과 고난을 피해갈 수 없다 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전 교회에서 졸업하는 고3들한테 제발 고삐 풀렸다고 술 마시러 다니지 말라고 이야기 하면
말은 못하지만 눈으로는 다 마시는데 왜 못먹게 하냐 라는 눈빛을 보냅니다.
청년들에게도 정직하게 살라고 하면
목사님은 사회생활 안해봐서 모르시겠지만, 술도 묵고, 관계도 쌓고 적당히 해먹고 해야지 성공할 수 있어요.. 그러면 돈도 많이 벌고, 헌금도 많이하고 일석이조 아닙니까?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와서 주님 다 아시죠? 위로와 inner peace ~ 마음의 평화를 달라고 하죠
그러다가 문제 생기면 주님은 왜 내 삶에 공감능력이 일도 없으세요 하고 원망합니다.
여러분, 13절에서 바울은 악한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진다고 합니다.
세상이 도덕적으로 호전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하죠.. 왜냐하면 오히려 더욱 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복리이자처럼 불어나는 죄악속에서 벗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하나님은 경건한 자에게 오는 고난과 박해를 견딜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입니다.
이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또 하나가 무엇이냐고 하면,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주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세상 사람들의 악의에 의한 고통과 고난과 환난은 더욱 악하고 강할 것입니다.
순수한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육신, 영성, 재물, 등의 관련된 여러 종류의 박해를 겪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고백하며 사랑하고, 주신 계명과 말씀을 지켜 살아가고자 한다면 박해와 환난에 노출 되는 것은 당연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지 않고, 자신들이 믿고 추구하는 데로 믿지 않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주님을 닮아가는 삶의 방식을 믿고 따르고 추구하는 자들을 평안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고난을 감당할 수 있느냐 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민하기에 앞서 버려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 받는 고난을 믿음이 깊어질 수록 고난을 더 잘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입니다.
단언컨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세상은 자기들과 가까운 자들에게 고난과 핍박과 환난을 주지 않습니다.
혹시 교회를 다니는데도, 주를 위해 받는 고난과 환난이 없습니까?
교회 안에서는 교인으로, 세상에서는 세상사람들로 전혀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라는 것에 가장 중요한 경건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면서 받는 박해를 어떻게 견디고 이겨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14-15절입니다.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이 해답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과 박해를 피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6-17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너무 유명한 말씀이라 이 말씀만 떼놓고 보면 성경을 잘 배우고 실천하면 이 땅에서 온전한 자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는 자가 된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디모데후서의 주제와 핵심, 문맥을 놓고 보면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교훈하시고,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셔서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온전한 사람,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받아도 선한 일을 행하는,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능력을 갖추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움과 굳게 믿음 안에 거하는 자의 삶은 고난 이 있고, 말씀을 통해 그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복음과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이 있습니까?
우리의 죄를 죽이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 우리 주님을 위해 기꺼이 좁은 문, 좁은 길, 가시밭길을 걸어갈 믿음이 있습니까?
처음에 시작하며 불렀던 찬양의 가사를 다시 묵상 해보십시오.
주님이 나를 위해 길을 만드시고, 강을 만드시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광야와 사막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중고등부 찬양팀이 몇주 전에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이라는 찬양을 불렀습니다.
주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불가운데 걸어가는 것, 바다 위로 걸어가는 것 이라는 데
이게 뭔 말인지, 어떤 삶인지는 알고 부르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주를 위해 불가운데로, 바다 위로 걸어가는 자들에게
그 속에서 신실하게 지키시는 그 손길을 경험하게 하시고,
온 몸을 덮쳐오는 폭풍 속에서도 잠잠히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맨날 우리가 이야기하고 기도하는 고난이
취직이 안되요, 인생 계획이 틀어졌어요, 또 헤어졌어요 죽을 것 같아요,
내 꿈은 돈 많이 쓰고 맨날 놀러 다니는 건데, 돈없이 놀러만 다녀요 그래서 괴로워요 주님 돈좀 주세요…
이런거 말고, 맨날 내 삶이 행복하게 해주세요 하는 그런 거 말고,
우리 교회의 영구 표어와 같이 주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우리가 됩시다.
주님의 거룩하심을 닮고 따라가기 위해서는 주를 위해 받는 고난은 필수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를 위한 고난을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광야로 나아가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광야가 더 이상 고난의 자리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주님의 전능의 손을 붙들고 정결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사랑하는 주의 청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