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32: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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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 후에 하나님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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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이후의 희망: 하나님의 회복

요약: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이후에도 그 분의 회복과 은혜가 여전히 존재함을 강조합니다.
적용: 이 설교는 성도들에게 심판의 시기가 지나간 후에도 하나님이 회복의 손길을 베푸신다는 믿음을 갖도록 도우며, 개인의 고난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교훈: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죄와 부패를 다루시지만, 동시에 그 후에 회복과 치유를 약속하십니다.
이 본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 있는지: 성경의 모든 이야기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회복을 위해 오신 구세주라는 기독론적 초점을 유지하며, 그 분을 통한 하나님 아버지의 회복의 역사가 펼쳐진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큰 아이디어: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그 후에 회복과 은혜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설교의 핵심입니다.
추천 연구: 성경의 회복 주제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Logos 서재에서 관련 본문들과 주해 자료를 연구해보세요. 특히, 회복의 언어와 패턴이 나타나는 구절들을 찾아보며, 하나님이 백성을 어떻게 회복하시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회개로 회복

요엘 2:12-14
당신은 요엘서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 이후에 임하는 회복의 약속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당신의 삶의 죄를 심판하시지만, 회개와 겸손으로 돌아올 때 사랑과 은혜로 회복하실 것입니다. 이 구절은 심판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후에 부어주실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을 믿음으로 고백하라는 권고의 말씀입니다.

2. 언약으로 안전

예레미야 31:31-34
예레미야는 새로운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죄사함과 회복을 경험할 것임을 예언합니다. 아마도 당신의 과거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분의 법을 마음에 새겨주셔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십니다. 이 속에서 우리는 죄의 심판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3. 구원의 기쁨

이사야 61:1-3
이사야는 임박한 심판에도 불구하고, 장차 올 회복의 소망을 전합니다. 예수님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러 오셨고, 그는 기쁨의 기름으로 애통을 대신하십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고난을 넘어서신 그리스도의 사명을 통해 회복을 경험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은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의 회복 약속을 붙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 절망에서 소망으로

요약: 하나님의 심판이 임시적이며, 그 뒤에는 항상 그분의 회복의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건져내시고 다시 세운다는 약속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적용: 이 설교는 성도들에게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이 늘 우리를 회복시키고 새롭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여, 영혼의 위로와 통찰을 제공합니다. 우리의 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바라보도록 격려합니다.
교훈: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그 후에 놀라운 은혜로 회복하신다는 교훈을 제시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이 변함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이 본문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 있는지: 성경의 전반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회복의 궁극적인 실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한 희생을 통해 심판과 회복을 동시에 이루신 분입니다.
큰 아이디어: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을 보고 계시며, 그런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회복의 약속을 붙들어야 하며, 이는 우리가 겪는 고난과 시련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추천 연구: 회복 주제를 더 깊이 연구하기 위해 Logos 서재에서 회복의 메시지가 담긴 성경구절을 조사하고, 과거의 회복 사례와 함께 어떻게 하나님께서 역사해 오셨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실현을 비교하는 자료를 연구해 보세요.

1. 예레미야의 예증

예레미야 30:17
당신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 육체적 상처를 치유하신다는 약속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할 수 있으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실현됩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일어난 일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당신의 상처와 아픔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은 새로운 희망과 회복을 주십니다.

2. 이사야의 위안

이사야 61:7
아마도 과거의 수치와 어려움을 뒤로하고 이사야 61장에서 약속하신 두 배의 기쁨과 축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적, 영적 회복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겪는 고난이 낭비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희망이 새롭게 되는 것을 보증합니다.

3. 요한의 약속

요한계시록 21:4
당신은 요한계시록이 주는 최종적 희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며, 이전의 고통은 지나갔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 삶의 절망과 고난은 일시적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1.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표현이다(출 6:7; 레 26:12; 신 26:17–19; 렘 30:22; 31:33; 32:38).
‘세우고 심고’(6절)는 예레미야가 전하도록 명령한 메시지의 긍정적인 면이다(1:10을 보라). ‘찢고,’ ‘뽑고’로 표현되는 심판의 메시지 이후에 이제 회복과 소망의 때가 마침내 온다. 놀랍게도 이 소망은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있다!
〈8–10〉 포로로 잡혀가는 것에서 피한 자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 혹은 애굽으로 도망한 자들(43장을 보라)은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헤티 랄레만, 예레미야·예레미야애가, ed. 백승현와/과정재원, trans. 유창걸, 초판., vol 21, 틴데일 구약주석 시리즈 (서울시 서초구 방배로 68: 기독교문서선교회, 2017), 313–314.
2. 땅을 매매하며 증인을 세우는 이유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라”

어찌되었든 보아스는 기업 무를 자로서 자신의 기업의 손해 보다는 죽은 형제 말론과 그의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아스는 말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10하반절에서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עֵדִים אַתֶּם הַיּוֹם; 에딤 아템 하욤)고 못을 박는다. 이렇게 보아스가 두 번씩이나 백성들과 장로들에게 증인이 되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예레미야 32장에서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지고 땅을 사는 데 증인을 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하나멜의 땅을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멜이 와서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מִשְׁפַּט הַגְּאֻלָּה; 미쉬파트 학게울라)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렘 32:8)고 권고하였다. 이에 예레미야는 “은 십칠 세겔”에 밭을 사고 “증서를 써서 봉인하고 증인(עֵדִים; 에딤)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 법과 규례대로 봉인하고 봉인하지 아니한 매매 증서를” 바룩에게 부쳤다(렘 32:10–12).

그 이유가 무엇인가? 비록 갈대아인의 손에 이 땅들이 넘어가고 땅이 황폐케 된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포로 됨에서 회복시킬 때에 그 땅을 다시 얻게 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를 위해서 “봉인하고 봉인하지 않은 매매 증서를 가지고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렘 32:14) 하신 것이고, 그때를 위해서 “증인(עֵדִים; 에딤)을 세우라”(렘 32:25)고 하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아스 역시 지금 당장은 기업을 모두 망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멜렉과 말론과 기룐에 속한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사고 룻을 사서 계대결혼을 하게 될 때 장차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보아스를 위해 행하실지에 대해 증언할 증인(עֵדִים; 에딤)이 필요하였다. 따라서 보아스가 장로들과 백성들에게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리라”고 요구한 것이다.

3. 심판이 예정된 이유

모세와 사무엘이 했던 것처럼 선지자는 중보(intercede)를 할 수 있다. 심판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사역 초기부터 예레미야는 중보의 시기가 끝났다는 메시지를 이미 받았다(7:16; 11:14; 15:1).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중보의 결과로 무엇인가 긍정적인 것을 여전히 기대한다(21:1–10). 예레미야가 정말로 중보 기도를 했는지는 보고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든 심판은 더 이상 저지될 수 없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은 자기 땅으로 철수하는 애굽 군대를 언급한다. 바벨론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불태우고 파괴할 것이다. 이 메시지는 39장에서 성취된다. 바벨론 군대의 철수가 예레미야 34:21에서도 또한 언급된다. 그러나 메시지는 같다. 이들은 돌아올 것이고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22:1–10 참조).

4.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 땅으로 다시 부르시고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포로 시대는 70년간 지속될 것이다(렘 25:11–12, 29:10).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그 땅에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토지를 사라고 하셨다(렘 32:6–44).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흩어진 모든 백성을 모아서 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렘 23:1–8, 29:14, 30:3, 31:8, 32:37, 50:19; 겔 11:17, 20:34, 34:13). 목자가 자신의 양 떼를 돌보듯이 하나님은 흩어진 자기 양 떼를 모으실 것이다(렘 23:1–4; 겔 34:11–24). 그래서 황폐했던 그 땅은 다시 하나님의 양 떼로 가득할 것이며, 에덴동산처럼 비옥한 곳이 될 것이다(겔 36:8–12, 34–38).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을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주전 586년 심판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수효는 줄어들었다(신 28:62–63).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그 땅에 회복하실 때, 예전처럼 그들을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렘 3:16, 23:3; 겔 36:10–11, 37–38). 이 약속은 전 세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리라고 예견한 것이다(사 2:1–4, 49:6; 시 2:8, 22:27, 86:9; 렘 3:17; 말 3:12).
캐롤 카민스키, 구약을 읽다, trans. 이대은, 초판. (02576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19바길 33: 죠이북스, 2016), 348–349. 5. 하나님이 새 언약을 맺으실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렘 31:31–32)라고 하실 날이 올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 새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이 파기했던 모세 언약과 같지 않을 것이다(레 26:14–15; 신 31:16, 20; 렘 11:1–17; 겔 16:59).
새 언약은 단순히 모세 언약을 갱신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이스라엘 이야기는 아무리 모세 언약을 새롭게 해도 백성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옛 언약을 지키지 못한 것을 눈앞에서 목격한 인물로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다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모세 언약이 아닌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새 언약은 이스라엘이 깨뜨린 언약과 같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한다. 많은 세월이 흐른 후,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 언약을 언약이라고 언급하며(히 8:7–13, 9:15, 18), 예레미야서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새 언약과 옛 언약을 대조하면서 새 언약이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이며, 영원히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히 7:22, 8:6). 연구를 계속 하면 메시아가 자신의 피를 흘림으로써 새 언약을 개시하셨다는 사실을 배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날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마 26:26–29; 막 14:22–25; 눅 22:14–20; 고전 11:25; 히 9:15–17 참고)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새 언약은 옛 언약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새 언약은 이스라엘의 반역하는 마음을 해결할 것이기 때문이다.
캐롤 카민스키, 구약을 읽다, trans. 이대은, 초판. (02576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19바길 33: 죠이북스, 2016), 349–350. 6.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두실 것이다.
새 언약 아래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가슴속에 율법을 두시며, 그들의 마음판에 율법을 새겨 기록하실 것이다(렘 31:33; 히 10:16 참고). 십계명은 두 돌판에 기록되었기 때문에(출 24:12, 31:18, 32:15–16; 고후 3:1–7) 얼마든지 깨질 수 있었다(출 32:19; 신 9:17). 하지만 새 언약 아래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영으로 그 율법을 자기 백성의 마음에 두실 것이다(고후 3:1–11; 히 10:16). 그래서 새 언약은 마음의 내적인 변화를 초래한다. 에스겔 선지자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한 마음”과 “새 영”(겔 11:19, 36:26; 렘 24:7, 32:39 참고)을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이 가슴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길을 따르고 하나님의 율례를 지킬 수 있다(겔 36:27).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의 영을 통해서 내적으로 역사하시면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렘 24:7, 31:33, 32:38). 하나님의 백성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한다. 그래서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이 모든 육체에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실 날을 고대한 것이다(욜 2:28–32; 행 1:4–8, 2:1–36).
캐롤 카민스키, 구약을 읽다, trans. 이대은, 초판. (02576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19바길 33: 죠이북스, 2016), 350. 7.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모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정결하게 하시고 모든 죄악을 용서하실 미래를 이야기한다(렘 33:8, 50:20; 겔 36:25–27, 37:23).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참으로 회복되었음을 입증하실 것이다. 따라서 새 언약의 약속 중 하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악행을 사하시고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렘 31:34, 33:8). 이렇게 용서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은 새 언약의 더 나은 약속 중에서도 핵심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죽으심으로 이 약속은 시작된다(히 8:6–13, 9:11–22, 26–28, 10:11–18).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주셔서 대신 죽게 하심으로써, 새 언약 아래에서 죄를 사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를 흘려 세상의 죄를 대속하실 것이다. 예수는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다시는 죄 때문에 제사를 드릴 필요가 사라질 것이다(히 7:26–28, 9:12, 28, 10:10).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것처럼 옛 언약 아래에서는 동물의 피로 육체를 정결하게 했지만, 절대로 죄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히 10:4)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의 죽음은 완벽한 대속 제물이기 때문에 그 흘린 피로 우리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이다. 예수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건네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맺은 새 언약이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보자면, 예레미야와 에스겔은 그날이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말세가 도래한다.
캐롤 카민스키, 구약을 읽다, trans. 이대은, 초판. (02576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19바길 33: 죠이북스, 2016), 350–351.
8.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의로운 왕을 세우실 것이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모두 회복의 때가 되면 다윗의 후손이 참된 왕으로 등극하여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시리라고 선포한다(렘 23:5–6, 33:14–26; 겔 34:23–24, 37:24–25). 주전 586년 이후 더 이상 다윗의 후손으로 온 왕이 예루살렘에서 통치하지는 않지만, 예레미야는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렘 23:5)라고 희망의 말씀을 선언한다. 예레미야는 그 왕의 이름을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렘 23:6)라고 밝힌다. 이미 살펴봤듯이, 다윗의 후손에서 의로운 왕이 나실 것이라는 희망은 하나님이 오래전 다윗에게 주신 약속,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렘 33:17; 삼하 7:16; 행 2:30–31 참고)에 의거한 것이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비록 예루살렘이 멸망했지만 다윗의 후손에서 난 왕이 그 왕위에서 다스리게 되리라고 온전히 확신했다. 그 왕이 통치할 때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가 될 것이고, 더 이상 두 왕국이 공존하지도 않을 것이다(겔 37:22, 24). 단지 하나 된 하나님의 백성만 존재할 것이다. 선지자들은 다윗의 후손에서 의로운 왕이 오실 것이라고 선포했다. 하지만 아직 그날은 임하지 않았다.
캐롤 카민스키, 구약을 읽다, trans. 이대은, 초판. (02576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19바길 33: 죠이북스, 2016), 351–352.
9. 예루살렘과 성전이 재건될 것이다 주전 586년 성전이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파괴된다. 하지만 에스겔 선지자는 회복된 성전, 이상화된 성전에 대한 상세한 환상을 본다(겔 40–48장). 그런데 에스겔이 본 환상에 따르면 그 성소는 한 성읍의 크기에 비할 정도로 대규모였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이 모든 땅과 그 거주민들을 새롭게 한다. 그곳에는 오직 의인만이 남을 것이며 더 이상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막과 예루살렘 성전은 모두 하늘에 있는 성전의 모양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출 25:40).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속받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보좌에 앉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백성들은 영원히 하나님의 무한하신 가치와 영광을 바라보며 기릴 것이다(계 5–7장). 성전을 재건한 사건은 성전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다가 그 땅에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포로 시대 이후, 성전을 새롭게 하리라는 영광스러운 희망은 부분적으로만 성취되었을 뿐이다. 실제로 주전 516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성전이 재건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바랐던 예언자들의 희망은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언젠가 그의 백성들 사이에 거하시리라는 희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슥 2:1–12).
우리는 연구를 계속하면서 자기 백성과 함께 거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의 네 벽 안에서가 아니라(행 7:48–50),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영적인 집으로 세워져 나가는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배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예수도 자신이 스스로 성전을 지으실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마 26:61, 27:40; 막 14:58, 15:29; 요 2:19–22). 이렇게 보자면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고전 3:16–17, 6:19; 엡 2:20–22; 벧전 2:4–8). 요한은 성령께 이끌려 새 예루살렘을 환상으로 본다(계 21–22장). 요한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봤지만, 성전의 형상은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계 21:22) 되시기 때문이다. 이 환상은 에스겔 선지자가 본 성읍의 환상과 일치한다. 그리고 그 이름은 “여호와 삼마(여호와가 거기에 계시다)”(겔 48:35)라 할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회복의 약속을 마음에 품고서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 연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 선지서들을 아직 읽어 보지 않았다면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남왕국의 마지막 시기에 대한 중요한 정보들과 그 사건의 신학적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캐롤 카민스키, 구약을 읽다, trans. 이대은, 초판. (02576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19바길 33: 죠이북스, 2016), 35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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