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0편(기억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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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혹시 이불킥 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무슨 의미냐고 하면 ‘정말 그때만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쪽팔려서, 자다가도 이불을 차고 일어난다’ 그래서 이불킥 입니다.
저도 군대에서 그랬던 일이 있습니다.
입대를 해서 자대배치를 막 받았던 이등병때 제 선임이 중대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를 시켰습니다.
그때 당직사관이었던 중위 한명이 제 이름을 듣더니 너 교회다니니? 라고 물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라고 했더니 본인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교회 다니면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외워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생각이 안나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 부터 성경암송대회를 나가 각종 상을 휩쓸었던 저의 자존심이 무너져내렸습니다.
물론 그때 엄청 긴장도 하고 그랬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그 때 일이 한번씩 생각납니다.
그런데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열심히 외우기는 했지만
정작 이 고백에 담겨진 참 의미를 그때는 잘 모르고,
예배 시간에도 습관적으로만 외우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을 지식적으로만 알다보면 습관적으로 익숙해져 버립니다.
그러면 본질이 가진 참 의미를 잊어버리고, 소중함이 흐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의 본질을 계속 배우며 곱씹으며, 되새기면서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본질이 흐려진 것들이 너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예배 입니다.
예배만큼 신앙에 중요한 것도 없고, 예배만큼 지키기 힘든 것도 없습니다.
교육부서를 오래 하다보니까 특히 중고등학생들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두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배만 시작되면 기가막히게 자는 아이들 입니다.
전날 피곤해서 조는 것도 아니고, 졸리지만 잠을 깨우고자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억지로 와야 하니까 예배 시간에 그냥 자는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예배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일 것입니다.
두번째는 부정적인 의미로 목적이 이끄는 예배를 드리는 자들 입니다.
예배를 가지고 부모님과 협상을 합니다.
예배 나가면 용돈 줘, 뭐사죠, 이거 해줘 등등 예배 안나가~! 로 협박합니다.
물론 부모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하시면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만은
절대로 예배는 협상과 협박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집에 가셔서 ‘예배 시간에 맨날 자는게 니가~!!’ 라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배 할 수 있는 이유는 곧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예배 드리는 것이 이렇게 힘이 들고 어렵습니까?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의 기억상실에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모습이 저렇다고 신앙의 선배이자 어른인 우리의 모습은 다릅니까?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예배를 나오고 계시고, 예배가 여러분들에게 어떤 의미 입니까?
좋은 말씀을 듣기 위해? 예배의 경건한 분위기가 주는 마음의 안정과 평화? 어릴때 부터의 습관? 직분 때문에? 이런 이유로 예배를 나오십니까?
이렇게 되어버린 근본적인 문제, 원인은 기억상실 입니다.
왜 여호와를 찬양하며 예배 하면서 그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이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00편의 표제는 감사의 시 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감사와 명령의 찬송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는 주제로 7개의 명령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명령임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예배의 대상이 누구인가 를 먼저 이야기 하고, 예배의 대상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어야 함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예배에 대한 바른 마음가짐과 그 이유를 고백합니다.
먼저 1-2절 입니다.
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1,2절에서 세 가지 명령어가 등장 합니다.
찬송을 부를 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길지어다, 노래하며 그의 앞에 나갈지어다
이 세가지 명령어의 공통적 특징은 모두 예배 용어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섬기다 라는 단어는 예배하라 라는 뜻도 있지만,
종이 주인에게 봉사하는 헌신의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 하는 것은 하나님께 나의 시간과 마음을 헌신 한다는 것 까지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과 시간을 드려 예배와 찬양을 드리는 유일한 대상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이심을 강조 합니다.
그렇다면 오직 여호와께만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 입니다.
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것과 / 우리를 지으신 것과 /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양이라는 사실 을 기억하라고 명령합니다.
특히 3절에서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적인 앎과 체험적인 앎을 함께 이야기 합니다.
지식과 체험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아주 긴밀하고 깊은 관계,
즉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주 잘 설명하는 부분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출애굽 사건 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노예로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있는 이스라엘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10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쳤습니다.
광야로 인도하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 입을 것을 주시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계명을 주시면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출애굽기 19장 4-6절 입니다.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출애굽은 단순한 탈출 사건이 아닙니다.
애굽의 노예적 삶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주권자의 변화 이며 정체성의 변화 입니다.
그리고 이 언약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주권적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절은 왜 하나님만을 예배 해야 하는 가? 에 대하여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고, 자녀 삼으셨기 때문에
오직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자녀삼아주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예배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의 인본주의적인, 사람 중심적 예배의 형태를 거부해야 합니다.
예배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내가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어야 합니다.
그 누구도 예배의 영광을 가로채고 방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배는 너무 사람중심적 입니다.
사람이 듣기 좋은 설교를 원하고, 내가 만족하는 예배의 분위기와 찬양을 찾습니다.
제가 예전에 고등부 사역을 하는데 이런 일 이 있었습니다.
찬양팀에 드럼을 치는 학생이 일이 생겨서 갑자기 결석을 하니까 찬양팀에서 오늘 드럼이 없어서 찬양 망했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고등부 예배실에 달린 조명 하나가 갑자기 고장이 나서 꺼지니까 오늘 예배 망했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엄청 혼을 낸 적이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예배 인지를 알지 못하니까 우리의 예배의 형식과 겉모습으로만,
사람의 만족과 즐거움 만으로 예배를 함부러 판단하고, 망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실패한 예배는 예배의 자리에 하나님이 임재하지 않으시는 것, 우리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는 예배를 두려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기분, 감정으로 예배를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설교자는 최선을 다해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말씀을 준비하고 전해야 하며,
청중들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면서 주님 앞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 생각, 상황 등등은 오직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임재 앞에 겸손히 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자의 참된 정체성 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예배자의 마땅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4절 입니다.
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4절에서는 네 가지의 명령을 통해 예배자의 마음 가짐과 참된 반응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라,
여기서 문은 성전 문이며 궁정은 성전 뜰을 의미 합니다.
이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 하는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 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임재하심이 있는 곳에 들어가, 감사로 송축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나의 힘과 자격이 아닌 오직 주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나올 수 있다는 고백 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 가운데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까?
자격이 없는 나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수요기도회에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힘과 능력과 결단이 아닌
주님의 보혈로 인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는 자가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이 자리에 임재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며, 예배 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온전히 기억할 때 우리는 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예배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의존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스스로 자립, 자존해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나의 행복이 우선이고, 나의 안위가 우선 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의지 하고, 붙들고 살아갈 때 참 행복과 평안을 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5절 입니다.
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5절을 한 마디로 표현하지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잊지 않으신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잊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영원히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언약과 인도하심을 곱씹고, 감사하고, 되새기며 예배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정말 올 2024년도가 한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며 내년을 계획하시면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십니까?
그 많은 계획과 목표 가운데 더욱 하나님을 알아가고 예배 하기 위한 계획들도 있습니까?
하나님을 더욱 더 깊이 알아가며,
더 깊은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고,
시간과 삶을 헌신하는 주님이 찾으시는 참 예배자로 세워지는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의 본질이 고귀한 내용이라면, 그것을 정성스러운 형식의 그릇에 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음식을 맛있게 해도 대접에 아무렇게나 던져주고, 그릇에 양념이 다튀어 있으면 먹기가 싫어집니다.
정성스럽게 만든 맛있는 음식을 예쁜 그릇에 플레이팅을 잘해야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게 여겨지기 마련 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형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는게 중요하지 예배야 어찌 드리던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찬양을 하던 일어서든, 앉든 별 관심도 없고, 그냥 설교만 대충 들으면 되지 라고 생각하고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본질을 담을 그릇을 소홀히 하다보면 / 타성에 젖어버린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앞으로 함부러 나아가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가짐이 동네 슈퍼 가는 것보다, 아니 잘 차려 입고 파티나 백화점이나 고급스러운 곳으로 가는 것보다 못한 예배를 향한 몸과 마음가짐 아닙니까?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기억하는 자,
예배의 대상자가 여호와 이심을 알고
예배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이심을 기억하는 자는 절대로 함부러 나와서, 아무렇게나 예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영원토록 기억하시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억의 은혜를 통해 매일의 예배와 매일의 삶의 예배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함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감사가 흘러넘치는 예배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온전히 회복되며, 살아날 때에 우리의 삶이 주님 앞에서 온전히 회복되어
더욱 주님만을 의지하며 의존하며,
영광을 돌리는 참된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 장전중앙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