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6 금요기도회: 골로새서 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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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 = 세례
세례는 이전의 모든 모습들을 벗는 것 => 단순히 죄를 벗는 것 그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삶이 자신의 삶이 되는 것 -> 지금도 세례를 유효하게 유지하고 계시는 하나님
초등학문 = 실체는 없지만 어렴풋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가짜 신들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 = 안식일에 이웃을 돕는 것
기도하시겠습니다.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골로새서 2:6-12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2:6–12 NKRV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렇게 함께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말씀 주시고, 또 기도하게 하셔서 자신을 알아가게 하신다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도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골로새서 2장 말씀으로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말한 바울은 이제 그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족이 되었고,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찾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특별히 내일 우리가 함께 김장하고 교회 청소를 할텐데요. 오늘 말씀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한 가족이 되어 교회를 위해 섬기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려주는 말씀이 될 겁니다. 그럼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살피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먼저 바울은 6절에서 “그러므로”라고 시작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일하셨으니 이를 토대로 교회가 어떤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앞에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를 골로새 교회는 그리스도인이 될 때 ‘받았던’ 분입니다. 더욱이 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분이시며 지금은 세상의 주님이 되신 바로 그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쓰는 호칭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주 라는 이 세 가지의 호칭을 쓰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 지혜, 비밀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세상의 주님이 되신 그 분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받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보통 그리스도를 받았다는 말을 마치 오늘날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인 영접하다 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과 삶으로 초청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것도 어느정도 맞긴 하지만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받다’라는 단어의 의미는 때때로 가르침이 한 사람이나 한 세대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세대로 전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는다는 것은 골로새 교회가 예수님을 주시라는 선포를 받아들여 그 후로 계속 그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지위를 누리는 것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골로새 교회 입장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해야 한다고 유혹하는 것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받아 계속 신앙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의 초대에 순종했을 때 그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로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사람들은 어느 한 순간 중단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안에서 행하고 살아야 합니다. 원어를 살려서 표현하자면 그 안에서 걸어가야 합니다. 그 안에서 걸어간다는 것은 마땅히 믿음에 대한 행위를 나타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한다면 합당한 행위가 드러나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합당한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 반드시 해야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7절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사람은 합당한 행위를 나타내기 위해 그리스도께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너희가 마땅히 행위를 나타내기를 힘써야 한다고만 말하지 않고 반드시 그리스도께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아야 한다고 동시에 가르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행위는 내가 그렇게 살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불러오지 않고, 또한 내가 나 스스로 해낸 대단한 사람이라는 교만한 마음도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됩니까? 그리스도라는 믿음에 굳게 서서 마땅한 행위를 할 수 있게 하신 그리스도께 감사하게 됩니다.
바울은 뿌리를 박다고 세움을 받는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뿌리를 박는 것은 문법적으로 볼 때 단 한번만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단 한번 믿음이라는 뿌리를 박습니다. 그러나 세움을 받는 것은 계속해서 진행되는 겁니다. 단 한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세움을 받으면서 성장합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교회는 온전한 성숙을 향해 성장하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결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 뿌리를 박았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양분을 먹고 자라면서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그러면서 마땅한 행위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렇게 바울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모습을 나타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행위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골로새 교회 안에 있었던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가르침들을 따르지 말라는 겁니다.
8절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한 부정적인 조언을 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여기에서 사로잡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매우 드물게 사용되는 동사입니다. 이것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해보자면 “누가 너희를 그리스도의 무리로부터 먹이로 낚아해처 유대교 안에 가두지 않도록 조심하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을 낚아채는 수단은 헛되고 속이는 철학입니다. 철학은 단순히 문자 그대로의 철학이라기 보다는 철학은 “지혜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으로서 바로 지혜 사랑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지혜 사랑은 마치 내부는 허물어졌어도 멀쩡하게 서 있는 웅장한 저택의 현관처럼, 약속은 많이 하지만 사실상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헛되고 속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앞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골로새 교인들이 이미 소유한 그리스도라는 지혜와 지식이라는 보화와는 달리 이 ‘철학’은 단지 사람의 전통과 이 세상의 초등학문을 제공할 뿐입니다. 사람의 전통이란 살아있는 참된 종교를 단지 인간적 수준의 일련의 사상이나 규칙으로 변질시킨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안식일을 유대인들이 어떻게 하면 일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이며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기에 마땅한 날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전통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전통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랍비 학교의 전통, 곧 유대인들의 전통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초등학문이라는 것은 세상의 여러 지역과 인종을 다스린다고 여겨진 지역을 관장하는 신들, 즉 국가의 ‘신들’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의 초등학문은 실체가 없는 가짜 신들입니다. 그러나 왜 초등학문이냐면 어렴풋이 하나님을 알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초등학문인 가짜 신들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가 되며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바울은 우상은 실체가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교회는 이러한 철학과 초등학문에서 벗어난 존재들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민족의 통치자이시요, 심지어 어두운 미신과 신화의 세계에 작용하는 모든 세력과 권세들의 통치자이십니다. 그렇기에 골로새 교인들은 세계적인 하나님의 새 백성에 속함으로써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결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것처럼 또한 그들의 지역의 신들로부터도 해방되었다는 겁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더이상 철학과 초등학문을 따르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 일들을 하셨고 지금도 그것을 적용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유일한 통치자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에 더이상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왜 이 철학에 사로잡혀서는 안되는 지 주된 이유를 9-10절에서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성육신을 가리키며 하나님꼐서 ‘몸의’ 형태를 취하신 성육신 사건이 이전의 모든 예언, 즉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실 것이라는 구약의 모든 약속을 성취한 결고한 실제였고 또 지금도 그 약속이 적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지금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철학에 사로잡혀서는 안되는 이유로 첫째로는 그리스도인들이 하찮은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경의를 표할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좀 더 강하게 표현하자면 그리스도 외에 다른 모든 주들은 그리스도와 비교하면 우상이 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만이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임재이시요 바로 하나님 그 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바울은 유일신 신앙의 모든 장점이 기독교에 축적되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와 다른 두 번째 신이 아니십니다. 기독교는 다신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육체를 입으셔서 구현하신 분이시며 완전한 표현이십니다.
이러한 바탕 가운데 바울은 10절에서 “그러므로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해졌다”고 말하면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분의 사랑과 능력과 풍성함으로 가득 채우실 계획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들이 충만해졌음을 이야기합니다. 이 풍성함이 골로새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상속이기에 더 이상 골로새 교회는 다른 어떤 것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들은 다른 어떤 주인, 다른 어떤 주에게도 순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골로새 교회는 철학과 초등학문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것들은 그리스도의 권력에 도전하는 라이벌입니다. 라이벌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와 동등한 힘을 가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자리에 도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더 완벽한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복종하라고 계속해서 유혹하고 추종하게 만듭니다. 그러한 유인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신성모독에 해당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경쟁자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백성은 그 분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골로새 교회의 신분과 위치가 바뀌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11-12절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회가 이미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유대교로 개종하기 위한 조건인 의미로서의 할례를 또 다시 받을 필요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육체적인 할례가 이스라엘 공동체로 들어가는 입문 단계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백성 공동체로 들어가는 입문인 ‘그리스도의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가입 안내를 제공했고 골로새 교회는 이미 그것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할례를 육의 몸을 벗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과로 골로새 교회가 이제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전에 속했던 인간의 가족들, 또는 그들이 따르던 모든 철학과 초등학문과는 분리가 됩니다. 육의 몸을 벗는다는 말은 ‘옛 인간과의 연대를 벗는 것’입니다. 옛 생활과의 유대관계, 즉 그때까지 충성했던 가족과 사회의 관계망을 떠납니다. 골로새 교회가 처한 이러한 관계망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따르던 모든 가르침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를 받아 새로운 가족이 된 골로새 교회는 이제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을 따릅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삶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례의 의미입니다. 세례는 단순히 죄 사함 그 이상입니다. 죄를 사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족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육체의 가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공동체는 죄로 연대되어 있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교회는 그 죄로 연대되어 있던 옛 가족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옛 가족의 모든 삶의 모습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세례의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서 새 가족이 된 우리는 옛 모습, 옛 행위들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박아 세움을 받으면서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우리 새순교회가 이것을 기억하며 우리가 새 가족이 되었다는 이 진리 안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거짓된 지혜와 초등학문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성숙한 교회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새 가족의 공동체가 얼마나 복된 가족인지 알게 되는 공동체가 될 겁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새 가족입니다. 죄로 연대되어 있던 옛 가족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된 새 가족입니다. 윌는 옛 모습, 옛 행위들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놓고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를 새 가족으로 만들어주신 그리스도께 감사하는 기도를 먼저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행하는 성숙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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