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잔치 비유(마2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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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심(22:1)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 이후 부패한 성전을 정화하시고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다(21:1-22). 그 후에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이 때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다가와 예수님 권위에 대해 도전한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세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 두 아들 비유(21:28-32), (2) 악한 농부 비유(21:33-46), (3) 혼인 잔치 비유(22:1-14) 이다. 이 중 마지막 세 번째 비유인 혼인 잔치 비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왕의 초청(1) (22:2-8) (1) 왕의 초청에 불응한 사람들(22:2-3)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한 나라의 왕이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푼 모습을 천국으로 비유하며 말씀하신다. 여기서 혼인 잔치(ἐποίησεν γάμους)는 우리가 흔히 아는 ‘결혼식(marriage-ceremony)’이라는 개념보다는 ‘결혼 잔치(marriage-feast)’를 가리킨다. (word studies각주) ‘결혼식’은 “한 남자와 여자가 평생 사랑과 성적 정절을 약속하는 예식”으로서 사람들을 증인으로 세워놓고 인정받는 일일 행사이다. 결혼 잔치는 결혼 예식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연회를 뜻하는데, 여기서 잔치의 정의를 보면 “어떤 것을 축하하거나 과거의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 성대한 식사(혹은 일련의 식사들). 잔치는 엄중한 기념이나 축하 모두를 의미할 수 있다. 잔치는 대게 며칠씩 이어졌고 축제와 유사했다.(lexham 문화 용어 사전)” 로 설명된다. 일일 행사가 아닌 며칠씩 이어지는 축제와 같은 행사였다. 며칠씩 이어질 만큼 가장 기쁘고 국가의 큰 행사였던 것이다. 나라 큰 행사인만큼 초청된 사람이 정해져있었다.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국가의 행사라면 정해진 날짜에 사람들이 왕궁으로 모이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왕이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친히 부르러 다니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인다. 그것도 모자라 초청된 사람들은 혼인 잔치에 참여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대놓고 비춘다. (2) 재초청에도 여전히 불응한 사람들(22:4-7)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어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왕은 사람들의 태도에 당연히 화를 내도 되는 위치에 있지만 다른 종들을 보내어 오히려 사람들을 설득하며 인자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소와 살진 짐승, 모든 것을 갖추었다는 말로(즉, 왕이 가지고 있는 모든 좋은 것으로) 유혹하면서 사람들에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귀찮다는 듯이 무시하며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떠난다. 심지어 다른 곳에서는 보낸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는 일까지 발생한다. 왕의 종들이 죽자 왕은 그제서야 분노를 드러낸다. 종들을 죽인 곳에 군대를 보내어 살인한 자를 진멸할 뿐만 아니라 동네 전체를 불사른다. 한 없이 인자할줄로만 알았던 왕의 모습에 반전이 숨어있는 것이다. 왕의 메신저들을 폭력적으로 배척한 결과는 왕의 심판이 있음을 철저하게 보여주는 구절이다(강대훈, 마태복음 주석(상-하)). (3) 왕의 근심(22:8)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결국 초청한 사람들은 전부 오지 않았고, 왕은 혼인 잔치에 자리를 메울 수 없음에 근심한다. 단순히 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것에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채울 사람들의 자격이 없음을 근심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왕의 거듭된 정성스러운 초대에도 불구하고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대응했기에 왕에 대한 마음과 왕자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무자격한 자들이다.
왕의 초청(2) (22:9-13) (1) 네거리 길에 모든 사람 초청(22:9-10)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왕은 새로운 사람들을 찾아 잔치 자리를 채운다. 성 밖에 있는 네거리 길에 나가 만나는 모든 사람. 즉, 악한 사람이건 선한 사람이건 상관 없이 종들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을 데려와 잔치 자리를 채운다. 그렇게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면서 연회가 시작된다. 왕과 왕자의 기쁨의 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2) 준비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22:11-13)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이 속에서도 왕의 눈 밖에 나는 자가 있다. 과거로부터 특별한 예식이나 의식에는 입는 옷을 따로 관리하는 자나 그것을 보관하는 장소가 있었다(왕하 10:22; 22:14; 대하 34:22). (라이프 성경사전) 그렇기에 혼인 잔치를 준비한 왕도 예복을 당연히 준비했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초대되어 즉흥적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인해 혼인 잔치를 즐길 수 있는 모습이 그 증거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준비해준 예복을 입지 않았다. 그가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는지 이유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가 비유라는 것과 앞에 나온 상황을 생각해 봤을 때 예복을 입지 않은 이 사람은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뜻하는 것일 것이다. 초대에 응한 사람일지라도 왕이 준비해준 옷을 입지 않는다면 잔치에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손발이 묶인 채로 바깥 어두운 데로 던져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론 및 교훈(22:14)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비유의 막을 내리며 예수님께서는 ‘택함을 입은 사람은 적다’고 말씀하신다. 왕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적다는 말이다. 혼인 잔치는 천국을, 왕은 하나님을, 아들은 예수님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상황들을 다시 보면 천국은 청함을 입은 자와 청함을 입지 않은 자 모두에게 열려있었다. 그러나 왕의 초청에 무관심 했던 자. 즉,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고 예수님에 대해 무관심으로 대했던 자들은 천국에 들어올 수 없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신저들에 대해 폭력을 행사했던 자들은 그 동네까지도 멸살당하게 된다. 청함을 받게 되어 천국에 입성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결국 천국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좋은 것을 준비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를 항상 하나님의 나라로 초청하고 그에 응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무관심으로 대응하거나 예복을 입지 않아 자격없는 자가 되면 안 된다. 날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쁨과 감사로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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