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끝까지 버티면 반드시 승리한다!

하나바이블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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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과 심판, 우주적 종말

데살로니가후서 1:6–10 NKRV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사랑합니다! 꿈사땅 중고등부 여러분들과 새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앞으로 주 안에서 즐겁게 예배하고 함께 신앙이 성장하는 모든 시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제일 좋은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좋은 선생님들이 많은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이다. 여러분들의 중고등부 선생님들에 대한 소문이 아주 자자하다. 심지어 이렇게나 좋은 선생님들이 20명이 넘는다는 것을 듣고 정말 청소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열정적인 선생님이 많은 좋은 교회라고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근데 꿈사땅의 뜻이 무엇인가? 꿈과 사랑의 땅인가? 너무 예쁘고 귀한 이름인 것 같다. 여기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향한 꿈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넘치는 중고등부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말씀을 나누기 앞서 여러분은 이런 속담을 아는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과 이것을 사자성어로는 ‘고진감래’라고 한다. 쓴 맛 끝에는 단 맛이 오고, 열심히 살아가는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말로 이야기하는 속담이다. 여러분들은 보통 언제 ‘고진감래’를 경험하는가? 엄마와의 약속을 지켜서 유튜브, 넷플릭스 보고싶은 것을 꾹 참고 공부를 열심히하면 선물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이전보다 좀 더 좋은 성적으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고3친구들은 수능을 마쳤지만, 고2친구들이 이제 고3이 되어서 12년 동안 힘들게 남들 놀 때 놀고 싶은 마음 내려놓고, 힘겹게 공부했던 것들을 꾸준히 해야 더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떤 친구들은 이렇게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기도 열심히하면 좋은 대학교에 가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교에 간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기도를 왜 해야할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공부를 엄청나게 잘하는 친구가 서울대에 가고 싶다고 열심히 기도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실제로 합격하여 대학에 입학했는데 전교1등만 모여있는 곳이라 그런지 그곳에서 꼴등한다고 하면 좌절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그러다가 낙심하여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면서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의 극단적인 생각이 들게 된다면 과연 그곳이 축복의 자리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고진감래’를 외치는 편지를 쓴 것을 보게 된다. 사도 바울이 신약성경에서 작성한 편지 중에 가장 첫 번째로 쓴 편지가 여러분이 읽은 데살로니가서이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지역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유대인의 왕이라고 전하면서 로마의 황제 외에 다른 왕을 전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니 지역에서 핍박이 너무나도 심각했을 수밖에 없는 신앙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 데살로니가 편지를 썼을 때의 상황이었다.
그러니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부활하고 승천하신 예수님이 과연 다시 오시는 것이 맞을까?’하는 의심이 자꾸만 들게 될 것이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감옥에 넣거나 심지어는 사형까지 해버리는 그러한 상황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둘씩 신앙을 놓아버릴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때 사도 바울은 우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올 것이고, 다시 오시게 될 때 나타날 일들을 전하며 소망에 대한 약속으로 성도들을 위로하며 격려했다. 그 소망은 살아있는 자들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자들에게도 가질 수 있는 소망이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서가 ‘위로의 편지’ 또는 그들에게 어떻게 크리스천으로써 해야하는지를 말해주는 편지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읽었던 본문 1장 6절에서보게 되면 사도 바울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심판이 일어날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의 성도들을 괴롭게하고 고통을 주는 사람들을 그대로 갚으실 것을 위로한다. 그렇게 바울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의 모습을 아주 생생하고 드라마틱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한다. 예수님이 천사들과 하늘에서 내려오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하늘의 불꽃 가운데 나타나서 영원히 파괴라고 말하는 벌을 받을 것이고 결국 멸망해서 주님과 가까이 있을 수도 없고, 그분의 크신 영광을 볼 수도 없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있을 수 있다. “전도사님 요즘 같은 시대에 저는 딱히 예수님 믿는다고 해서 핍박이나 힘든게 없는데요?”라고 물어볼 수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 때나 지금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핍박이나 고난이 없다. 언제 핍박이 있었는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따라가고 세상 사람들이 고백하는 내가 주인된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되는 인생이 되어 그 예수님을 전하고 살아갈 때 핍박이 있었다. 거짓말하면서 남을 속이는 세상에서 정직하게 사는 삶, 나를 즐겁게 하려고 하는 삶이 아닌 예수님처럼 낮은 마음으로 겸손히 섬김으로 살아가려는 삶을 탐탁치 않게 보는 사람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한다고 하면 좋다고 받아들일 사람이 있겠는가? 오히려 싫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뭔가 손해본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신앙생활하는 것을 티내려하지 않으려 하거나, 포기하려고 고민하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나 여기 모인 여러분들에게도 사도 바울은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위해 사는 삶, 예수를 전하는 삶이 단순히 손해가 아니라,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순간을 누가 기억하시는가?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그 모든 보응을 하나님이 갚아주시겠다는 약속의 메시지요, 위로와 격려의 메세지라는 것이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나 원수같은 사람들도 하나님이 반드시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선하신 방법대로 복수해주실 것이기에 모든 복수심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로마서 12:19 NKRV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코를 푼 휴지나 볼 일을 본 휴지를 다시 재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도 없다. 그러면 그 휴지는 어떻게 되는가? 버려질 뿐이다. 하나님도 여러분에게 그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내가 복수하려고 하면 코를 푼 휴지나 볼 일을 본 휴지처럼 꺼지지 않는 복수심이 더 가득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할 수 있는 액션은 무엇이 있는가? 예수를 붙잡는 것 밖에 없다. 우리는 구원은 어떻게 받는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믿음이란 예수를 붙잡는 것이다. 예수를 붙잡기 때문에 날마다 성경을 가까이한다. 예수를 붙잡기 때문에 기도하는 생활을 멈추지 않는다. 예수를 붙잡기 때문에 교회에서 예배하며 모이는 일에 힘쓴다. 예수를 붙잡기 때문에 예수님을 닮으려고 살아가는 사람이 날마다 구원을 누리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마지막 때에 최후 승리를 맛보는 의의 멸류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핍박 받다고 죽으면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죽으면 땅에 묻혀서 끝까지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은 낙원이라고 불리는 천국에 영혼이 가게 된다. 그러나 육체는 땅에 묻혀있기 때문에 완전한 구원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다. 완전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이 땅에 오셨을 때, 세상의 모든 육체가 부활하여 그리스도를 끝까지 붙잡는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영원히 썩어지지 않는 영광스러운 육체로 영원히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누리며 고통과 슬픔과 아픔이 없는 그 나라에서 살 것이다. 반대로 예수를 믿지 않고 붙잡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도 없는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 살게 된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상황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땅에서 살아가는 현실에서 때로는 우울해 보이고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오늘 우리에게 사도 바울의 편지의 의도는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는 여러분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가 현재 세상의 불의를 이길 것을 확신하고 고난이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대한 신실함의 증거라는 것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하나님은 심판대 앞에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핑계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성경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1:20 NKRV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현재 세상에서는 불의가 만연해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주 예수님은 그분의 복음에 불순종하는 자들을 벌하고 성도들을 영화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정의를 가져오기 위해 곧 돌아오실 것이다. 오늘 읽은 본문은 믿음 때문에 학대나 억압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대에 살고 있냐면, 우리 썸네일에서 보이는 것처럼 후반전 1분 남은 상황에서 예수님과 사탄과 99대 1의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이미 십자가에서 사탄이 진 게임으로 심판이 호루라기를 부는 그 시간은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밖에 오른다. 경기가 끝나면 아무리 회개하고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혹여나 여러분 중에 예수님을 아직 믿지 않는 친구들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에 반드시 예수님을 붙잡는 인생이 되길 소망한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으면 전도사님께 와서 언제든 물어봐도 좋다. 전화해도 좋다.
그러니 사랑하는 꿈사땅 여러분, 반드시 믿음으로 존버하기 소망한다. 여기서 존버라는 단어를 세상적인 뜻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길 원한다. 존버란, 존귀하게 버티시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과 행동과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모든 순간에 예수님처럼 어떻게 살아볼까 고민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그리하여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전하려고 할 때, 내가 얼마나 성경에 대해 모르는지 깨닫게 된다. 그럴 때 성경을 보며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야한다. 그래도 이해가 안되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반드시 깨닫게 해주실 것이다. 그래도 모르겠으면 전도사님께 언제든 전화하라. 그러면 전도사님이 지금 열심히 공부 중인데 더 열심히 공부해서 알려주겠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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