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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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우리가 정말 자유한가?

종노릇이란
종이 아닌데 스스로 종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즉, 강압적이 아니라 나의 선택에 의해 종처럼 되엇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담배는 술은 돈은 우리를 종이 되라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노릇을 할 뿐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의 생각, 그의 행동, 그의 마음 등을 아는 것을 말한다.
윤대통령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윤대통령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의 생각 마음 의도 등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착각이며 대통령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괜찮지만 하나님을 모르면 종노릇을 벗어날 수 없다.
멤버쉽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종들의 모임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자녀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우린 설날에 만나야 한다.
생각의 전환
사회의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
노아의 때를 살 것인가?
바벨탑의 때를 살 것인가?
예수의 복음 아래 살 것인가?
예수를 닮기까지 씨름하라
사실 우리 삶은 온실 속 평안이 아니다.
광야고 왕따이며 전쟁에 포로에 종살이 그리고 그보다 심한 욥의 인생이 우리 인생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가?
그것이 체크포인트이고 중요한 사실이다.
전쟁이 날 수도 있고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더라도 그런일이 있을 수 있다.
그때 이렇게 말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다.
우리는 무엇에 종살이 하며 살아갈까요?
우리는 두려움의 종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종이 됩니다.
예를 들어,
엊그제 교회에 있다가 식사를 하러 갔는데 휴대폰을 놓고 갔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경이 쓰이는 것이에요. 휴대폰을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휴대폰의 종노릇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가 술이나 담배를 주기적으로 하는데 어떤 상황에 그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에 찾아오는 공백, 두려움, 염려 등 그리고 앞으로 그것을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오는 공포와 짜증, 슬픔 이러한 것들이 내가 종노릇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에 매어 살고 얼마나 많은 것에 종노릇 하며 살고 있습니까?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종노릇 좀 그만해라!
사실 우리가 부재로 인하여 오는 두려움과 궁핍, 결핍, 공허함, 염려, 걱정, 짜증, 분노 등의 대상은 딱 하나여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과 주기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모든 종노릇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로 충만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많은 것들에 매어 종노릇하며 살아갈까요?

1.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종노릇한다

바울은 먼저 그들의 과거를 상기시킵니다.
"그 때에 너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다" (8절).
과거의 갈라디아 교인들은 우상을 섬기며, 세상의 가치에 묶여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때로 돈과 명예, 인정과 성공을 섬기며 그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우리를 점점 더 깊은 속박으로 몰아넣을 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세상의 가치가 헛된 것임을 깨닫고, 참된 자유를 갈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그분께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 방법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종노릇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2. 다시 옛 삶으로 돌아가려는 유혹

하지만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을 알고 자유를 누리게 되었던 그들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9절).
왜 돌아가려 할까요? 익숙함 때문입니다.
새롭게 사는 것이 어려울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율법주의가 그랬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습관, 잘못된 가치관, 세상의 기준이 다시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돌아가지 말라." 예수님이 주신 은혜는 과거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완전히 새롭게 하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회귀본능
스프링과 낚시
종노릇, 끊어질 때까지 씨름하라!!

3. 날과 달, 절기를 지키며 미신을 섬긴다

바울은 그들이 다시 날과 달, 절기를 지키며 미신과 같은 신앙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책망합니다(10절).
갈라디아 교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려 했습니다.
특정한 날을 중요하게 여기고, 절기를 지키며, 행위를 통해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다시 종노릇하는 삶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모습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특정한 행위나 미신을 통해 복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우리의 유일한 근거입니다. 우리의 삶은 오직 은혜로만 살아가야 합니다.

4. 완전히 변해버린 사람들

바울은 한때 자신에게 눈이라도 빼줄 것 같았던 갈라디아 교인들이 이제는 완전히 변했다고 말합니다(15-16절).
처음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뜨겁게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복음을 전한 바울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이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바울은 이 상황을 보며 마음 아파합니다.
그는 다시 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상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뜨겁게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차갑게 식어버리거나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5. 헛된 열심이 아닌 좋은 열심에 힘쓰라

마지막으로 바울은 열심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니라... 좋은 일에 대하여 항상 열심을 내는 것이 옳으니라" (17-18절).
율법주의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열심을 내며 그들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헛된 열심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헛된 열심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은 좋은 열심입니다.
그것은 복음을 위한 열심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헛된 열심은 우리를 속박으로 끌고 가지만, 좋은 열심은 우리를 자유로 인도합니다.

결론: 종노릇에서 자유로 나아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종노릇할 필요가 없습니다.
1.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통해 자유를 누리십시오.
2. 과거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이겨내십시오.
3. 미신과 잘못된 전통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은혜로 살아가십시오.
4. 변해버린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고 다시 예수님께로 향하십시오.
5. 헛된 열심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좋은 열심을 가지십시오.
19절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씨름하세요.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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