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있게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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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성탄절이 다가오면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합니다.
일반 은혜에 대한 잘못된 양극단적 태도가 있습니다.
금욕주의와 물질주의입니다.
금욕주의는 하나님의 일반 은혜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일반 은혜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금욕주의는 흔히 종교적인 사람, 신앙에 열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 나타납니다.
금욕주의는 일반 은혜의 사용을 제도적 혹은 인위적으로 금함으로써 행복을 얻고,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식욕, 성욕, 기타 다른 기본적인 욕구들을 무시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위해 금식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금식을 통해 행복과 구원을 추구하려면 금욕주의가 됩니다.
물질주의가 과도한 지금의 시대에는 어느 정도 금욕적인 태도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금식을 권합니다.
물질주의는 하나님의 일반 은혜를 과도하게 취하려고 하는 태도입니다.
물질주의는 일반 은혜를 주신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려고 하면 물질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쾌락을 추구합니다.
이것들을 얻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주요한 증상입니다.
물질주의의 잘못은 물질에 대한 지나친 탐욕에 있습니다.
과도하게 비정상적으로 과도하게 물질을 사용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물질주의 안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세상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입니다.
본론
본론
1. 세상을 사랑하는 것
보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 가장 사랑하고 애착을 가지는 것입니다.
보물은 단순히 물질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애착입니다.
단순히 돈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 명예가 아니라 명예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유하면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것?
저축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어떤 사건을 위해 계획하거나 준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 교육을 위해, 결혼 준비를 위해, 내 집 장만을 위해 저축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금욕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건강, 재산, 재능 등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 보물을 땅에 쌓아 두면 안 되는가?
보물을 땅에 쌓아두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후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좀 먹고, 녹슬고, 도둑 맞게 될 뿐 아니라 결국 죽음이 찾아 오기 때문입니다.
죽음과 더불어 모든 것은 나에게서 떠나가고 맙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면 그 보물이 우리의 마음을 무섭게 지배합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습니다.
주인이 뒤 바뀌고 맙니다. 보물이 오히려 우리의 주인이 되고 맙니다.
보물은 우리의 감정을 지배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가장 좋아 하는 것에 솔립니다.
보물은 우리의 지성의 눈을 어둡게 만듭니다. 돈에 눈이 멀고 명예나 권력에 눈이 멀고 학문이나 예술에 눈이 멀면 맹목적이 됩니다.
우리의 지성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태도를 말하는데 지성이 어두워 지면 인생관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칩니다.
보물은 우리의 의지를 지배합니다. 보물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보물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게 됩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보물을 나 자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에 쌓아 두는 것은 하늘에 영원히 남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많이 살아도 100세입니다. 영원한 삶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자원은 나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청지기로 부르셨습니다. 결산할 때가 있습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사람은 그 보물이 나에게 행복과 구원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리고 교회와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보물은 무엇입니까?
생명? 건강? 재능? 재산? 일? 가족?
이런 것들을 누구를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까?
2. 세상을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
우리 모두는 염려와 걱정거리가 많습니다.
세상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염려와 걱정은 없을 수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깊이 빠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우리는 세상을 지나치게 염려할까요?
첫째,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것과 작은 것은 다릅니다.
믿음이 작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작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창조주요 구원주로 알지만 나의 아버지로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필요를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목숨과 음식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당연히 목숨, 생명일 것입니다. 이 생명은 누가 주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면 그 생명을 유지하도록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입양의 원리
예수님께서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공중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아버지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겠느냐?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출애굽 광야 세대 40년 동안의 삶을 살펴 보십시오.
굶어 죽은 사람, 얼어 죽은 사람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죽었을 뿐입니다.
왜 우리는 세상을 지나치게 염려할까요?
둘째,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내일의 염려를 오늘 미리 가불해서 쓰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시켰기 때문입니다.
염려를 두 배로 하면 사실 비효율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내일 일에 대해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일 일을 위해 계획을 세워서 준비하는 것과 염려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염려는 우리를 포로로 삼아 먹지 못하게 하고, 자지 못하게 하여 몸과 영혼을 상하게 합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안 되는 것은 내가 신경 써서 염려할 영역이 아닙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하는 태도는 어찌 보면 불신의 태도입니다.
최선을 다하되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결론
결론
성도들과 이방인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점입니다.
아버지가 없는 사람은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아버지처럼 삽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는 자녀들은 아버지를 의지합니다.
성도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염려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하여 균형 잡힌 삶을 사는 사람들의 비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