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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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요한복음 4:43-54 찬송: 434장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순간들을 마주칩니다.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공부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자 부모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래도 네가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학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자녀를 신뢰하며 기다리셨습니다.
직장에서 실수를 저지른 직원이 있었습니다. 상사는 그의 실수를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도 당신을 믿습니다."실수에도 '불구하고', 상사는 그를 신뢰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더 큰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곳으로 향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봅니다. 한 왕의 신하가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이 얄팍함을 지적하셨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품으시는 그분의 은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함께 살펴보며, 우리를 향한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함께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아시고도>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이 말씀은 단순한 속담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갈릴리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릴 때부터 보아온 사람이 대단한 인물이 되었다고 하면,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저 철없던 아이가?" "저 사람이 무슨..." 이런 말들이 우리 입에서도 나오곤 합니다. 예수님도 이미 나사렛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셨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그분을 배척했고, 심지어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려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그런 상황을 아시면서도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갈릴리에 이르시매" 이 짧은 구절 속에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마치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의사와 같습니다. 위험을 알면서도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 구원이 필요한 영혼들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그들은 기적을 본 후에야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불완전한 믿음도 받아주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도, 우리의 과거가 문제 있어도 찾아오십니다. 반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래도 저 사람은..." "그래도 저런 사람과는..." 하며 선을 긋고 판단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도 찾아가셨고, 연약한 믿음도 받아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조건 없이, 편견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참된 사랑의 모습입니다.
<연약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46절은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말씀합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특별히 요한복음 2:11 에서 '표적'이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단순한 기적이 아닌,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 되심을 드러내는 증거라는 의미입니다. 이곳에서 한 간절한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한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었기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이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자식이 죽어간다는 것, 이것은 어떤 부모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종교적 열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마지막 희망을 붙들듯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첫 반응이 의외입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죽어가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마치 그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책망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책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이 더 깊어지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간절히 구합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보시기에 참된 믿음의 시작이었습니다. 비록 불완전하고 연약한 믿음이지만, 예수님께 매달리는 그 진실한 마음을 예수님은 귀하게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단 한 마디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신하는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시기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다른 증거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 말씀을 믿고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성장입니다. 처음에는 표적을 보기 원했던 그가, 이제는 말씀만을 믿고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믿음도 받아주시고, 그것을 성장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완벽한 믿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부족한 믿음도 받아주시고, 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이끌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도 이 신하처럼 예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도, 우리의 기도가 완벽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우리를 받아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구원>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신하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가는 길에서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는 즉시 물었습니다.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바로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있다"라고 말씀하신 그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능력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지만, 그분의 말씀은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도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신뢰해야 할 말씀의 권능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더 큰 결실을 맺게 됩니다.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가, 한 사람의 연약한 믿음이 이제 온 가정의 구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지 아들의 병 고침을 위해 찾아왔던 이 사람이, 이제는 온 가족과 함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여기서 '표적'이란 단순한 이적이 아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하는 표징입니다. 첫 번째 표적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었다면, 이 두 번째 표적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신 것입니다. 두 표적 모두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며, 그분이 생명과 구원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줍니다. 첫 번째는 기쁨을 주시는 표적이었고, 두 번째는 생명을 주시는 표적이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에 상관없이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 가정을 새롭게 하시며,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신하처럼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아도, 비록 우리의 상황이 여전히 어려워 보여도, 주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도 이 신하처럼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놀라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도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연약한 믿음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셨지만,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불완전한 믿음도 받아주시고, 그것을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도, 우리의 삶이 문제로 가득해도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새롭게 하리라." "내가 너를 끝까지 사랑하리라."
오늘 우리는 두 가지 도전을 해야 합니다.
첫째, 우리의 현재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갈릴리 사람들처럼 불완전해도 좋습니다. 왕의 신하처럼 간절한 요청을 가지고 있어도 좋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둘째, 우리도 주님의 이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누군가의 부족함이 보일 때, 누군가의 실수가 보일 때, 우리는 얼마나 쉽게 "그럼 그렇지..."라는 말을 하며 선을 긋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은혜로 우리를 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이 놀라운 사랑 안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교회가, 우리의 삶의 자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3분 축약

말씀의 문을 열며 3분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순간들을 마주칩니다. 직장에서 실수를 거듭하는 후배가 있습니다. 주변 동료들은 "그래도 저런 사람과는 일하기 힘들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한 선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믿어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그 후배는 팀의 핵심 인재로 성장했습니다.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수학 성적이 늘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선생님들은 "그래도 수학은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했지만, 한 선생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방과 후에 남아 함께 공부했고, 그 학생은 마침내 수학의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도 이런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어주었던 그 순간들 말입니다. 혹은 여러분이 누군가를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실천했던 순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가장 위대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요 4:4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곳으로 향하신 것입니다.
본론 I.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아시고도 (3분)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요 4:43) 예수님은 자신이 갈릴리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듯, 고향 사람들의 시선은 참으로 냉정합니다. "저 철없던 아이가?" "저 사람 집안이 어떻다더라..." 이런 말들이 끊이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이미 나사렛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신 적이 있었습니다.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사람들은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며 의심했고, 급기야는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려고까지 했습니다(눅 4:29).
그런데도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구원이 필요한 영혼들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마치 위험한 전염병 지역을 피하지 않고 들어가는 의사와 같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소방관과 같은 그런 사랑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만, 그들의 믿음은 온전치 못했습니다.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요 4:45) 그들은 기적을 보고서야 예수님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불완전한 믿음도 받아주셨습니다.
본론 II. 연약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3분)
이런 상황에서 한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요한은 이 사건을 특별히 '표적'이라고 기록하는데, 이는 단순한 기적이 아닌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 되심을 드러내는 증거라는 의미입니다.
그 신하의 심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들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갈릴리까지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당시의 교통수단으로는 하루 이상이 걸리는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요 4:47)
예수님의 첫 반응은 의외였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마치 책망하시는 것 같은 이 말씀 앞에서도 그 신하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간절히 구합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요 4:49)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또 다른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봅니다. 불완전한 믿음을 보이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믿음이 자라도록 이끄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요 4:50) 그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갔습니다.
본론 III.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구원 (3분)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요 4:51) 신하는 즉시 물었습니다.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요 4:52)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곧 능력이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수십 리 떨어진 곳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은 동일한 능력으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단순한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이 한 가정의 구원으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요 4:53) 처음에는 단지 아들의 병 고침을 위해 찾아왔던 이 사람이, 이제는 온 가족과 함께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연약한 믿음으로 시작된 만남이 가정 전체의 구원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1분)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동일한 사랑으로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완벽하지 않아도, 우리의 믿음이 연약해도, 우리의 삶이 문제로 가득해도 찾아오십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처럼 서로를 대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누군가의 부족함이 보일 때, "그럼 그렇지..."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으로 대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오시니 감사합니다. 연약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부족한 우리를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찾아오시는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래도...'라는 말로 우리의 편견을 정당화했습니까? 얼마나 많은 순간 우리의 판단으로 다른 이들을 밀어냈습니까? 우리의 교만했던 모습을 회개합니다.
갈릴리를 찾아가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사랑이 필요한 곳을 향해 걸어가게 하옵소서. 환영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그곳을 향해 가신 주님처럼, 우리도 참된 용기를 가지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한 신하의 연약한 믿음도 받아주시고, 그것을 온 가정의 구원으로 이끄신 것처럼, 우리의 작은 믿음도 받아주시고, 그것을 통해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옵소서.
이제 우리가 삶의 자리로 돌아갈 때, 주님의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시고, 우리도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일터, 만나는 모든 관계 속에서 주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드러내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도 찾아오시는 주님, 우리의 불완전함을 보시고도 품으시는 주님, 그 크신 은혜 앞에 우리를 엎드립니다. 우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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