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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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3:1-5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들어가는 말
베드로전서 2장에서 사도 베드로는 나라의 권력에 순종해라 말을 했습니다. 순종해야 할 권력은 올바른 권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올바르지 않은 권력의 명령에는 소신을 밝혀야하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지요.
두번째로 언급했던 것이 사환들아 말하면서 종들이 주인에게 순종해야 할 것에 대해 말을 했습니다.
3장에 와서 베드로는 아내와 남편에 대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보기전에 베드로가 있었던 당시 사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사회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이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너무도 형편이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당시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지역에서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특히 아내들은 남편에게 거의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받았습니다.
여성은 남편의 법적 통제 아래 있었고, 그들의 권리는 제한적이었습니다. 결혼 후 여성은 대부분 남편의 보호와 지배를 받았으며, 경제적, 법적 권한이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성의 사회 진출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삶이었습니다.
당시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아내는 빌려 줘도 돈은 빌려 주지 말라.
그 만큼 여성의 삶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전파 되면서 여성들이 남자들보다 복음을 먼저 받아들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당시 사회 구조를 보면 종교는 남자의 종교를 따라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남자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자녀들과 아내의 종교가 정해지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복음을 믿게 된 것입니다.
여성들이 이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법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여성이 나설 수 없는 사회니 어떻게 전해야 하겠습니까?
본문 1절을 봅니다.
베드로전서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이 본문 가지고 남편들이 죽었던 기를 세우지요. 성경에도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는데…하는 순간 오늘 저녁이 금식으로 바뀝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본문 1절의 말씀에서 아내들에게 “순종하라”말하는 것은 “자신을 아래 두라”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하고 그 사람아래 나를 두는 것. 이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순종입니다.
그러면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1절 후반부를 보면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순종의 이유는 구원 때문입니다. 누구의 구원입니까? 남편의 구원입니다.
제가 사역을 하면서 청년부를 맡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매번 청년부를 맡아서 사역을 했습니다.
청년 사역할 때 매번 이야기 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자매들 한테 연애하고 결혼 할 때 꼭 “교회를 다니는 사람만나라”는 말이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게 되었냐하면요. 교회 다니지 않는 남자를 사귀는 친구들, 그리고 결혼 한 자매들 보면 거의가 나중에는 교회를 가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남자를 교회 나가게 하는 것이 쉽지가 않은 거예요.
남자들 얼마나 자존심 강합니까? 잘 삐져요. 한마디로 똥고집이 있어서 여자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아요.
종교는 더 하지요. 자신이 법이고 신인데 교회 가자고 하면 쉽게 따라가지 않습니다.
반면에 남자가 교회를 다닌다 그러면 여자도 교회를 다니는 확률이 높다는 것을 사역의 현장에서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여성은 남성의 테두리 안에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종교가 다르다는 것처럼 힘든 것이 없는 사회에서 남편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 시키려면 그 수고는 또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래서 여성들에게 그의 구원을 위해 순종해라 말을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믿지 않을 것을 베드로도 아는지 뭐라고 말을 이어가나요?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 남편에게 순종하라 말을합니다.
사실 남편을 구원 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남자 자존심 강하거든요. 신이든 사람이든 누구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 남자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종교를 바꾸거나 믿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바꿔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런데 남편 전도한다는 아내가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들어온 남편한테 월급도 쥐꼬리만큼 벌어오면서 밥이 넘어가냐, 도대체 다른 남편들은 잘도 승진하는데 당신은 왜 맨날 고자리냐,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냐 해요. 그리고 주일 아침에는 교회 가자고 하면 어떤 남편이 따라나서겠어요.
말 한마디라도 부드럽게, 자존심 세워주고 밖에서는 굽신 거렸어도 집에서는 아내로 부터 가장의 대우를 받으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겠어요.
본문 3-4절을 보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2–4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베드로는 아내가 남편을 어떻게 구원해야 하는지 2-4절에서 말씀합니다.
첫번째로는 정결한 행실을 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결한 행실"은 단순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순결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아내가 자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함과 순결함을 추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외적인 아름다움이나 화려함이 아니라, 내적인 아름다움, 즉 순결한 행실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3-4절입니다.
베드로전서 3:3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이 말씀에서 “단장”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코스모스입니다. 코스모스 우주라는 단어입니다.
우주 얼마나 광할하고 오묘하고 아름답습니까?
은하수를 찍은 사진들을 보면 정말 아름답습니다.
코스모스라는 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코스메틱, 화장품이라는 단어가 파생되었습니다.
화장한 얼굴과 생얼의 차이를 우리 여성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이런 말이 있어요.
10대는~ 치장. 20대는~ 화장. 30대는~ 분장. 40대는~ 변장. 50대는~ 위장. 60대는~ 포장. 70대는~ 환장. 80대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우리 여성분들이 우주의 신비, 화장을 언제 하시나요? 외출할 때 하시지요. 누구에게 보이시려구요.나를 바라보는 모든 분들을 위해.
그런데 그 나를 바라보는 모든 분들 안에 빠져 있는 한사람이 있습니다. 남편입니다.
남편 주로 집에 있어요. 집에서 화장하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
평생 생얼 본 남편에게 전도한다고 단장해서 되냐 안됩니다. 왜 생얼을 알고 있으니까.
베드로는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여기서 “마음에 숨은 사람”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단장함으로 보여지는 외면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의 외적인 모습에 가려져 있는 나의 내면의 진정한 나를 말합니다.
사람의 내면적인 성품과 영적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말은 마음의 중심,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된 영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자세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내적인 자세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언어입니다. 행동, 삶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언어 습관, 밖에서의 행동이 나의 내적 자세입니다.
베드로는 남편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은 아내의 심령이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 그 만남이 성품으로, 영적 상태로 언어로,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화장 하지 말고 내면만 가꾸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화장하셔야지요. 그래야 자신감도 생기시고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 할 수 있으니 하셔야합니다.
제가 여자분들의 그 마음을 조금은 알아요.
제가 한국에 갔을 때 눈썹이 너무 없어서 그렸단 말이지요.
아 그런데 눈썹하나 했다고 사람이 달라 보이더라구요. 지금도 잘 생겼는데 더 잘생겨 보이고 자신감이 생기더라구요. 물론 지금은 다 지워졌습니다.
외모를 단장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 영적인 상태, 내면의 마음을 단장하시고 가꾸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 이것은 “마음에 숨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특성입니다.
온유(πραΰτης) 헬라어로 프라우테스는 단순히 성격이 온순하다는 의미를 넘어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온전히 맡길 줄 아는 겸손함을 나타냅니다. 이 온유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평온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진중하고 침착한 태도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나 겉모습을 보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의 마음과 성품을 보시지요. 그리스도인은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의 청결과 온유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누구에게서 나와야 합니까?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자에게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모든 사람들, 남자든 여자든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입니다.
결론
오늘 본문을 당시 사회의 배경을 가지고 해석하면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중요한 점은 아내의 순종이 내면적 아름다움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순종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외모나 세속적 장식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말합니다.
오늘 본문을 현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적용을 하면 아내에게만 해당하는 구절이라기 보다는 이 땅에 복음을 알고 전해야하는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시는 본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구원 받았습니다. 먼저 선택을 받은 자로서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섬겨야합니다.
나의 외적인 모습보다 내 내면의 영적인 아름다움, 온유함, 겸손함,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 언어로 행동으로 삶으로 나올 때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내 언어와 행동으로 어떻게 보여주고 있나요?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말과 행동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나의 내적 자세가 타인에게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돌아본 적이 있나요?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나의 순종과 온유함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나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내 삶에서 우선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나를 하나님의 값진 존재로 여긴다면, 이를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드러낼 수 있나요?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말이나 행동보다는 내 삶의 모습으로 좋은 본을 보이고 있는가?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 내 삶의 태도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내가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겸손, 온유, 그리고 진실함과 같은 내면의 성품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실천할 수 있을까?)
순종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기꺼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순종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의 행동에서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삶의 가치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무엇인지 기억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가?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 믿음을 어떻게 더 잘 나타낼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