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 그리고 12광주리가 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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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가치관
제자들의 가치관
예수께서 눈을 들어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로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예수께서는 빌립이 어떻게 하나 보시려고 이렇게 질문하신 것일 뿐, 사실 자기가 하실 일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빌립이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한 사람당 조금씩만 먹는다고 해도 200데나리온어치의 빵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제자들 중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가 말했습니다.
“여기 한 소년이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앉히라.” 그곳은 넓은 풀밭이었는데, 남자들이 둘러앉으니 5,000명쯤 됐습니다.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씩 나눠 주셨습니다. 물고기를 가지고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그들이 모두 배불리 먹은 뒤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모아 두라.”
그리하여 그들이 남은 것을 모아 보니 보리빵 다섯 개로 먹고 남은 것이 12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분은 이 세상에 오신다던 그 예언자가 틀림없다.”
빌립이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한 사람당 조금씩만 먹는다고 해도 200데나리온어치의 빵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빌립을 시험하시는가?
7 빌립이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한 사람당 조금씩만 먹는다고 해도 200데나리온어치의 빵으로도 모자랄 것입니다.”
8 제자들 중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가 말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질문의 의도를 눈치 채었는가? 주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먹일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반복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경험아고 알아가는 중에도 온전한 믿음에 서지 않았다.
믿음이 자라가면서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 중에 하나가 가치관이다. 우리는 죄인이고 연약하기 때문에 세상적 가치관이 몸에 배여 있고, 주님을 알아가는 단계에서도 이에 의해 지배당하는 현상을 가지고 있다. 주님은 이런 우리들의 가치관을 점차적으로 연단하시며 변화시켜 나가신다. 그래서 주님은 가치관의 변화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우리 삶속에서 지속적으로 우리를 시험하신다. 특히, 일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관계적인 어려움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은혜가 주어진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경험을 한다.
세상적 가치관
돈, 명예, 권세에 집착한다.
유대 지도자들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말라고 했을 때, 베드로와 요한은 너희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보다 옳은지 판단하라고 하며 담대하게 말했다. 우리는 교회, 사회, 가정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적 가치를 세우기 위해 담대하게 행동해야 한다.
사람들의 평가, 인기에 매우 민감하다.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욱 두려워한다. (사울왕)
리더로서 공동체와 교회의 필요 보다 내가 얻어야 할 이익에 더 집중한다.
예수님의 가치 기준은 사람의 구원과 생명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죄로 인해 소외받고, 고통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올 때 해방하는 일을 우선으로 하셨다.
그리스도의 가치관을 가지려면 대가 지불을 해야한다. 하지만 대가를 지불할 용기가 없어서 차선을 선택한다면, 예수님의 가치관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교회는 건강해 질 수가 없다.
갈5:22-23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지할 율법은 없습니다.
9 “여기 한 소년이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년이라는 헬라어 paidarion은 어린 소년을 가리키며 어린 종을 두고 사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게하시를 부를 때 두번 사용한 단어와 동일하다. 이 소년이 들고 있던 보리 빵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저렴한 식품이었다고 한다.
왜 제자들의 열두 광주리에 가득 채워서 남겨주셨을까?
13 그리하여 그들이 남은 것을 모아 보니 보리빵 다섯 개로 먹고 남은 것이 12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제자들의 필요한 모든 것들을 예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갑자기 탁! 하고 깨달기 까지 그들은 언덕을 얼마나 오르락내리락 했을까? 제자들이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의 이 교훈을 깨닫기 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그러나 제자들에게 이 경험은 어떻게 자리잡았을까? 2만명의 사람들에게 강주리를 들고 빵을 배달하려면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까? 아마 날이 저물도록 그 일은 계속되었을 것이고, 사라지지 않는 빵과 물고기를 배분하는 동안에 그것을 공급하신 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주리를 가득 채우자 중단된 빵을 가지고 돌아가면서 그들은 무엇을 느끼고 배웠을까?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동안에 내가 들고 있던 광주리에 보리빵이 사라지지 않았어. 예수님의 아들 되심과 그 분이 만드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에 참여하는 한 내 인생에 부족함이 있을 수 없어! 그 분은 우리 배를 부르게 할 양식을 만드실 뿐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내 자신까지 창조하신 분이야. 그리고 이 분의 뜻은 죄와 결핍으로부터 해방하고 영원히 생명과 기쁨 가운데 회복시키는 분이시다.
내 인생의 하나님이 주신 남은 마음의 광주리는 무엇인가?
“참으로 세상에 오실 선지자”라는 사람들의 고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4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분은 이 세상에 오신다던 그 예언자가 틀림없다.”
군중들은 음식을 배불리 먹어서 얻은 만족과 승리감에만 집중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채움과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매개체인 아들을 바라보는 것에 놓쳤다. 생명의 떡이시며 그들의 진정한 필요를 채워주실 분으로 까지 접근하지 못하였다. 표적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그들은 육신을 만족시켜 줄 메시야를 소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유하게 하고 로마군대를 무찌르고, 질병과 악귀를 쫒아 주므로 그들의 육신이 편안해지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메시야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회개와 준비에는 관심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