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

고린도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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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전서 11:2-16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2024. 12. 9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본질적으로 그 역할이 다른데, 특별히 교회 안에서는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칭찬을 해요. 갑자기 왜 칭찬을 할까? 문맥상 칭찬을 할 타이밍이 아닌데, 뜬금없이 칭찬을 한단 말이죠. 자, 뭐라고 칭찬을 합니까? 오늘 본문 2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칭찬하는데, 칭찬하는 이유가 2갭니다. 하나는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희에게 전하여 준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전통이라는 말이 중요한데요. 이 전통이라는 말이 16절에 관례라는 말과 대칭이 돼요. 16절을 건너뛰어서 한번 봐 볼까요? 16절에 보니까,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2절에서는 전통을 지키는 것을 칭찬했는데, 16절에서는 관례를 따르는 것을 책망했어요. 이것은 곧 고린도교회가 전통을 지키던 중에, 새로운 관례를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관례를 새로 만들어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다는 거예요. 바울이 지금 이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겁니다.
자, 다시 2절로 돌아가서요.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전통을 지키는 것을 칭찬했어요. 이 전통은 헬라어로 보면 복수 형태로 쓰여졌습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전통이 아니라 여러 개의 전통들인 거죠. 이 전통들은 처음 교회를 조직한 열두 제자들이 만들고 발전시킨 것들이에요. 예배를 드릴 때는 어떻게 드려야 하고, 성찬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고, 복장은 어떻게 해야 하고, 구제사역은 어떻게 해야 하고…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이 초대 교회를 세운 뒤에 하나하나 규례들을 만들었을 거예요. 이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교회전통이 되고, 교회법이 되는 겁니다.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에도 교회법이 있어요. 목사는 어떤 절차에 거쳐서 안수를 받는가, 당회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세례는 누가 받을 수 있는가… 세세한 부분까지 다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이 큰 틀에서 보면 다 교회전통이에요.
그런데 이 전통이 나라마다, 문화마다, 또 교단마다 조금씩 달라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전통을 전해주었을 때, 이 전통은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배운 전통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와 고린도교회는 문화도 다르고, 환경도 너무 달라서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맞지 않는 부분들 가운데 고린도교회가 독자적으로 자기들의 상황에 맞게 변화시킨 전통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에서 다루는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문제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복장을 해야 하는가? 이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바울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우선 바울은 성경적인 하나의 질서를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3절인데요. 3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아멘.
이것이 성경적인 질섭니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에요. 여기서 머리는 “근원”이라는 의미인데요. 다시 말해서 남자의 근원은 그리스도이고, 여자의 근원은 남자이고, 그리스도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이것을 다시 설명하면 이런 말이에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계실 수 있고,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에 남자가 있을 수 있고, 남자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가 있을 수 있다.
수직적으로 잘 설명을 했죠.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남자와 여자. 이것이 성경적인 질섭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가지고 오해를 하면 안 돼요. 남자가 여자보다 위에 있으니까,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이고, 여자는 남자보다 하등한 존재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만약에 그렇게 본다면, 그리스도가 하나님보다 하등한 존재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과 예수님은 서로 동등한 존재이지 누가 더 우월하고 하등한 관계가 아닙니다. 삼위일체, 삼위 하나님은 서로 동등해요. 다만 질서상 구분이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도 서로 동등해요. 다만 질서상 역할에 구분이 있는 거예요. 이것을 우리가 잘 분별해야 됩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는 구분이 돼야 돼요.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구분이 돼야 합니다.
특별히 4절부터 교회 안에서 머리에 무엇을 쓰는 문제를 가지고 바울이 설명을 하는데요.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교회 안에서, 특히 예배를 드릴 때, 남자는 머리에 뭘 쓰면 안 돼요. 반대로 여자는 머리에 써야 됩니다.
왜 이런 전통이 생겼는가 하면, 이 당시에 머리와 옷 모양을 가지고 성별을 표시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자는 머리에 뭘 쓰지 않고 다녔고, 여자는 머리에 너울을 쓰고 다녔어요.
만약에 남자가 머리에 뭘 쓰고 다니면, 이것은 여자 흉내를 내는 남자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남자가 여자처럼 머리를 기르고 다니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물론 지금은 남자가 머리를 기르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안 하지만, 70년대 80년대만 해도, 남자가 머리 기르고 다니면 어른들한테 욕 먹었어요. 가시나도 아니고 뭔 머리를 기르고 다니냐?
바울 시대에 인식이 그랬어요. 남자는 머리에 뭘 쓰고 다니면 안 돼요. 반대로 여자는 반드시 머리에 너울을 쓰고 다녀야 됩니다. 집안에서는 상관 없죠. 하지만 밖에서는 너울을 써야 돼요.
고린도에서는 너울을 쓰지 않는 여자는 창녀들이었어요. 또는 남편이 없어서 자기의 매력을 어필하는 여자들이 너울을 안 썼습니다.
그런 환경이다 보니까, 교회 안에서 이 문제가 심각한 거예요. 남자와 여자가 구분이 엄격한데, 남자가 여자처럼 머리에 뭘 쓴다든지, 여자가 문란하게 안 쓴다든지 하면 성 질서가 흐트러져요.
머리에 뭘 쓰고 안 쓰고의 문제는 단순히 복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질서의 문제예요. 남자와 여자는 동등하지만, 분명히 구별이 되는 존재인데, 머리에 뭘 쓰는 문제로 인해서 남자와 여자간에 구별이 모호해져 버린다는 겁니다.
댐이 작은 균열에서부터 시작해서 무너지듯이, 복장의 문제가 아주 작은 문제인 것같지만, 이것이 커지면 교회가 무너질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젭니다.
처음에는 여자처럼 머리에 너울을 썼는데, 이게 허용되면 나중에는 여자처럼 치마도 입고, 여자처럼 화장도 하고, 그러다보면, 여자처럼 말하고, 여자처럼 행동하고, 그리고 결국에는 여자처럼 성전환수술을 하는 문제가 되는 거예요.
아이들을 교육할 때 반드시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해서 가르쳐야지, 잘못 가르치면 남자아이들이 여자가 되고 싶어하고, 여자아이들이 남자가 되고 싶어하게 돼요. 성의 구분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가 무너집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초장에 잡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지금 고린도교회를 초장에 잡으려고 하는 겁니다. 남자는 쓰지 마라. 여자는 써라.
그러다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서 오해를 해요. 바울은 여성 혐오자다. 남성우월주의자다. 이런 오해를 하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바울은 양성평등주의자였어요.
갈라디아서 3 장 28절에 보면, 바울이 이런 말을 하거든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동등한 존재라는 겁니다. 이 말은 이 시대에 정말 혁신적인 말이에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할 것 없이, 남자가 우선이고, 여자가 나중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남자와 여자가 동등하다는 겁니다.
바울이 정말 시대를 앞서간 양성평등주의자예요. 그리고 또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이 기도나 예언을 하는 데 있어서 여자는 하지 말아라, 라고 말하지 않아요. 여자도 기도나 예언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인정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절, 5절 같이 읽어볼까요? 4절 5절 시작,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아멘.
바울이 ‘여자는 기도나 예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자도 기도나 예언을 할 수 있는데, 다만 머리에 쓴 것을 벗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정말로 바울이 얼마나 여자를 존중하고 평등한 존재로 생각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이에요.
여자가 남자처럼 영적인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이 당시에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감히 여자가 남자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여자는 밥이나 하고, 청소나 하고, 그냥 회중석에 앉아서 아멘이나 할 것이지, 어떻게 앞에 나와서 대표기도를 하고, 찬양인도를 할 수가 있어요?
이때 당시의 관념으로는 절대로 허용이 안 돼요.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허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자도 얼마든지 대표기도 할 수 있고, 찬양인도 할 수 있고, 공동체의 리더로서 순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질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남자는 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역적으로는 남자가 여자의 일을 할 수도 있죠. 식당에서 밥을 할 수도 있고, 강대상에 물을 떠올 수도 있고. 반대로 여자도 남자의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남자가 여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겁니다. 남자가 애기를 낳을 수 있습니까?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처럼 너울을 쓰려고 하고, 여자가 남자처럼 벗으려고 해요.
창조질서를 어기고, 복장에서부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하는 겁니다. 이 작은 문제가 결국에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시발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보세요. 특히 유럽교회, 미국교회를 보면, 이미 교회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있어요. 동성애가 허용되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나니까 지금 미국교회가 어떻게 됐습니까? 미국에는 동성애자 목사들이 있어요. 동성애자가 목사가 돼서 퀴어축제 집회를 열고, 동성결혼식 주례를 해요.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을 들어보면 가관이에요. 이 사람들이 뭐라고 주장는지 아십니까? ‘동성애자도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렇게 주장을 해요. 기가 막히죠?
여러분, 동성애자가 하나님의 형상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남자와 여자로 정확히 구분되는 겁니다. 절대로 동성애자가 하나님의 형상일 수가 없어요.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셨겠어요? 동성애자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심판을 하신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자와 여자는 반드시 구분돼야 합니다. 그 구분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져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가 되고, 여자가 남자가 되는 것은 선을 넘는 겁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릴 때, 그것이 참된 자유인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와 여자가 구분된다고 말씀합니다.
이 질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질섭니다. 그런데 이 질서가 사소한 문제로부터 무너질 수 있어요. 고린도교회가 사소한 복장의 문제로 인해서 흔들렸던 것처럼, 사소한 문제가 커져서 교회를 무너트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질서를 수호해야 합니다. 말씀을 지키고, 건전한 전통을 지켜야 합니다.
진리가 아닌 부분에서는 얼마든지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지만, 진리의 문제에 있어서는 물러서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1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어요. 동성애를 인정하는 관례, 성전환수술을 하는 관례, 동성결혼을 하는 관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대는 이보다 더 끔찍한 관례들이 많이 생겨나게 될 겁니다. 지금도 끔찍한데, 우리 다음세대가 살아갈 시대는 더 끔찍하겠죠.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는 시대를 넘어서, 사람과 AI, 사람과 로봇이 결혼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성경은 시대가 가면 갈수록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진다고 말씀해요. 절대로 선하게 변하는 일은 없습니다. 지금 세상도 끔찍하지만, 여기서 더 좋아지지 않아요. 더 끔찍해집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돼요.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우주는 점점 더 무질서해져가지, 절대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절대로 태초의 그 아름다웠던 에덴동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점점 더 타락하고, 점점 더 혼란하고, 점점 더 무질서한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말씀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 안에서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라서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고, 우리의 다음세대가 살아갈 미래를 지키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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