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검은 비가 내릴 때

어두운 밤, 검은 비가 내릴 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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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과 검은 비가 내리는 그 때, 나는 어떻게 길을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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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부족한 자의 입술을 통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음성이 잘 선포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서 떨리는 심장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 좌우 앞뒤 형제 자매님들에게 이렇게 인사합시다. ‘우리 모두 낙심하지 맙시다!’
제가 신광교회에 와서, 처음 수요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전해야한다’ 는 그 스케쥴을 받아들고는 며칠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 곳에서 제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길 원하십니까?’
그렇게 기도하는 와중에 문득,
모 교회에서 다양하게 사역을 하던 때, 그 이후로 여러 찬양팀, 선교단체 그리고 전도사가 되어서 이전 사역지까지 쭈-욱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공통된 이미지를 딱 떠올리게 하시더라고요.
그게 무슨 장면이었냐면요
정말 열심히 사역하시고 항상 기쁨으로 웃음으로 사랑으로 섬기시는 우리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더 정확히는, 그 뒤에 감춰진 그 분들의 외로움과 아픔, 그 고난의 여정’ 이런 모습들을 딱 조명 시켜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 이렇게 정해본거죠.
‘어두운 밤, 검은 비가 내릴 때’ , 제가 이렇게 보니까 보통 설교 제목은 직관적으로 많이들 정하시는데, 저는 오늘 약간 감성을 약간 한 방울 넣어봤습니다. ㅎㅎㅎ
우리는 살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직분과 상관없이, 신앙의 연차와 상관없이 이따금씩 사방이 캄캄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을 맞이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는 어떠한 빛도 들지 않아서, 내리고 있는 비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옷만 축축하게 젖어들어 몸과 마음의 무게만 계속해서 무거워지는 그런 어두운 순간을 우리 모두는 가끔씩 경험하는데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누가복음’ 에는, 사회적, 종교적 강자들에 비해 과부, 세리, 어린아이들과 같은 약자들의 ‘간절한 상황, 그리고 그 태도’ 들을 대비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누구보다도 간절했던 그들이 그 어두운 순간, 그 낙심의 순간에서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지에 대해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설교 본문은 누가복음 18장으로 정했지만, 누가복음 전체의 흐름을 두고 나누길 원합니다.

차갑고 어두운

이 ‘누가복음’ 에는 정말 다양한 예수님의 ‘사역’ 에피소드가적혀있습니다.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세리와 함께하셨구요, 손 마른 자를 고치시고,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을 고치시기도 하고요. 과부의 아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 혈루증 여인, 바디매오.. 뭐 말할 것도 없이 정말 많은 이들을 고치시거나 위로해주시는. 그런 다양한 사역의 에피소드들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빛이시고 생명이시죠. 그런 의미에서, 어두운 상황에 갇힌, 죽어가는 이들을 우리 주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시고, 늘 항상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이고, 유일한 소망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우리가 이렇게 어둡고 어려운 순간들을 표현 할 때, 차가운 겨울에 빗대어 많이들 표현해왔습니다.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겨울은 배고픔과 어떤 시련을 대변해왔는데요.
요즘과 같은 춥고 시린 겨울이죠. 그런데 사실 저는 겨울을 좋아합니다. 제가 겨울에 태어나기도 했지만, 예전에 골목 어귀에서 솔솔 나던 군고구마 냄새나, 작은 지하 교회에서 맡던 등유 난로 냄새. 이런 구수하고 따뜻했던 기억들도 많이 있는데요,
이런 따뜻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연말이 오면 아주 차갑고 외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한 가지 대표적인 사례를 말씀드리자면요
연말연시만 되면, 우울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고 해요. 이 우울감은 <홀리데이 블루스> 라는 명칭이 아예 존재할 만큼,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우울감이라고 해요.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연말우울증’ 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기사 발췌

한 뉴스기사의 일부입니다. 제가 한번 읽어봐드릴게요.
‘취업준비생 강모씨’는 12월 달력엔 아무런 약속 표시가 없다. 취업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서 계속 길어지는 취업준비 탓에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그래서 특별히 이런 연말이 다가오면 깊은 자괴감과 우울감이 밀려온다고 전해왔는데, ‘송년 모임 때문에 바쁜 직장인들을 보면 내 자신이 더 한심하게 느껴진다. 나는 1년 동안 대체 무엇을 한 것인가, 내가 한 없이 작게 느껴진다’ 고 말했다.
이 기사에 나온 취업준비생이 처한, 이 절망감의 경험은 정도는 달라도 다들 한번 쯤은 경험해보셨으리라, 그리고 누군가는 지금 그 시기를 지나고 계실 수도 있겠다. 생각합니다.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앓는 여인

말씀을 묵상하던 중에,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 나오는 야이로, 그리고 혈루증 앓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라고 소개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회당장’ 은, 유대교 회당의 책임자 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이 야이로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과 같이 일반적으로는 예수님을 대항하는 그쪽 세력에 속해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외동딸이 지금 죽어가고 있어서 그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장면입니다.
제가 41, 42절을 새번역으로 읽어드릴테니까 이 상황을 영화 보듯이 한번 상상 하시면서 들어보세요.
‘… 그가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서, 자기 집으로 가시자고 간청하였다.
그에게 열두 살쯤 된 외동딸이 있는데, 그 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시는데, 그때! 무리가 예수를 밀어댔다.’
야이로에게 문제가 생긴거죠. 예상치도 못한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다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면서 지금 시간이 지체되는 겁니다.
그 사이에 어떻게 됐죠? 이미 다 알고 있듯이, 야이로의 딸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여인은 어떤 사연이 있었나.
43절 입니다.
‘무리 가운데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있었는데 [의사에게 재산을 모두 다 탕진했지만] 아무도 이 여자를 고쳐주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12년동안 지금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본 상태인거죠.
야이로와 이 여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뭐였냐면, 나의 이 절망스러운 순간을 해결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소망. 정말 유.일.한. 소망으로 예수님을 찾았다 라는 겁니다.
그냥 동네 병원 오듯이 온게 아니라,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았다 라는 겁니다.

바디매오

그리고 누가복음 18장엔 ‘맹인’ 으로 기록되고 있는 이 바디매오는 어떤가요? 길가에 앉아서 구걸하다가 사람들에게 예수가 지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큰 소리로 외치는거죠. 다윗의 자손 예수여! 그러니까 주변에서 뭐라고 합니까?
39절 새번역입니다. ‘앞에 서서 가던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크게 외쳤다.’

삭개오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도 있습니다. 세리장이죠. 사람들이 ‘죄인’ 이라고 웅성웅성대는, 그런 취급을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부자면 뭐합니까. 그런 취급과 대우를 받는 삶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삭개오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는데, 여리고에 들어오셔서 지나가는 그 예수님이 너무 보고 싶은 거에요. 근데 무리가 가득차있으니까, 뽕나무에라도 올라가서 보려고 한거죠.
여러분 상상해보세요. 우리가 연예인 한 명 지나가도, 그 연예인이 보고 싶어서 어디론가 올라가는 그런 행위는요, 보통 간절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행동입니다. 그러니까 이유야 무엇이 되었든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고, 예수님과 함께하고 싶었다 라는 것입니다.
간절함의 방향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입니다.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이야기를 비유로 쭉 설명하시면서. 과부의 간절한 태도에 따른 불의한 재판관의 대답이 나온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18장 7-8절 새번역입니다.
7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여기서 말하는 믿음,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딸의 생사를 앞두고 간절했던 야이로’,
‘의사에게 전재산을 탕진했지만 12년간 나음이 없었던 혈루증 앓는 여인’,
‘모두가 잠잠하라고 꾸짖음 당해도 더욱 목소리 높였던 맹인 바디매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삶을 살지만 예수님을 간절히 보고자했던 삭개오’
이런 인물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 태도. 그 태도를, 그 믿음을.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라고 물으시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그 종말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지금 같은 질문을 하시는 겁니다. ‘지금 너희에게 이 믿음이 있느냐?’

내 이야기

저에게도 쉴새 없이 이 믿음이 요구되는 순간들은 계속해서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아래 지금도 영상 제작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처음 신학대학원 1학년에 입학했을 때였습니다.
기숙사에 의무로 지내야했기때문에, 여러 거래처들과의 작업에 차질이 생겨 결국 하나하나 끊어지는 겁니다.
사업을 하다가 갑자기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으니, 재정적인 어려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밤 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날 밤이 아주 생생히 기억이 나는데요,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차서 낙심한 상태로 말 그대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새벽 5시가 되어도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부끄럽지만, 그 때 이렇게 기도헀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가 아니라, ‘주님, 이렇게까지 하면서 전도사가 되는게 맞습니까?’
‘저 결혼하고 화목한 가정 만들고 싶었는데, 벌써 이렇게 재정적으로 어렵게되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라는 원망 섞인 기도를 했었던 그 밤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이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믿음이 요구되는 그 어두운 밤은 이따금씩 찾아옵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신광교회 성도 여러분, 어두운 밤, 검은 비가 내릴 때 ‘진정한 믿음’ 으로 간절히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한 걸음 내딛고 계십니까?
사실 ‘낙심’, ‘근심’, ‘걱정’ 이런 것은요. ‘아! 내가 믿음이 없어졌구나’ 하는 지표라고 합니다. 난 지금 무엇에 대해 간절한 것일까. 무엇을 의존하는 것일까.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회복해야합니다. 내가 낙심했다면, 우리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상태’ 라는겁니다.
요즘은 이렇게 많이들 말합니다. 그래도 괜찮아. 넘어져도 괜찮아. 낙심해도 괜찮아. 물론 위로하고 사랑해야겠지만..
여러분, 낙심하면, 괜찮은 겁니까?
어차피 하나님께서는 널 사랑하니까 낙심해도 괜찮은게 아니라!
낙심했을 때, 그 간절한 믿음이, 유일한 소망이 사라진 나를 그 자리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간절한 마음.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곡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사라져도 괜찮은겁니까? 그래도 되나요? 아닙니다!
믿음은 절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간구하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어두운 밤, 검은 비가 내리던 그 때, 정말 간절하게 우리 주님을 찾던
오늘 말씀 속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예수를 위해 사는 삶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누군가는 그 놀라운 역사를 널리 전했고, 누군가는 예수를 따랐습니다.
어떻게 낙심을 기점으로, 절망을 기점으로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상황을 변화시켜 달라는 요구를 한게 아니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그러니 지금 나를 돌아봐주시옵소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단순히 병을 낫게 해달라는 주문이 아니라
주님! 주님과 함께 하길 원합니다! 나와 함께해 주시옵소서! 주님이라면 이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될 줄을 믿습니다!
라는 ‘믿음의 고백’ 이었습니다!
제가 신대원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계속 되던 어느 날,
밤에 기숙사 밖을 나와 산책을 하는데
찬송가 가사가 제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않네.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의 길 되시고
나에게 밝은 빛이 되시니 길 잃어버릴 염려없네
광명한 그 빛 마음에 받아 찬란한 천국 바라보고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날마다 빛에 걸어가리
하늘의 영광 하늘의 영광 나의 맘 속에 차고도 넘쳐
할렐루야를 힘차게 불러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
아멘! 아멘!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 어두운 밤에,
빛이 되신 주님이 우릴 외면하지 않으시고 밝혀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몸과 마음을 축축 쳐지게 만드는 그 검은 비는,
유일한 소망되신 주님의 사랑으로
믿음 없는 우리의 메마른 마음에 내리는 단비로 변화시켜주십니다!
지금 낙심하셨습니까?, 아니면 주위에 낙심한 지체들이 보이십니까?
이 간절한, 그 진정한 믿음으로 담대히 선포하십시오!
낙심하지 말라!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 너와!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 간절한 믿음으로 계속해서 찾아오는 낙심의 때에, 그 절망의 순간을 통해
오히려 예수를 위해 기꺼이 살겠노라!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찬양을 통해 선포하며 나아가겠습니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고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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