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11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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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254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오늘도 저희를 이 새벽에 깨우시고 주님의 거룩한 임재 가운데 인도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어둠이 머물러 있는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밝히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시고 지치고 상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셔서, 오늘도 기도와 말씀을 통해 저희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하여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의 본을 따를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셔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은혜를 전하는 통로가 되어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주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것이 주님게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며 예물을 드린 손길 있습니다. 이 예물이 주님의 뜻에 따라 귀하게 사용되게 하시고, 예물을 드린 손길을 기억하셔서, 그들의 삶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고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믿음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을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22:24-34
2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28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이 땅을 살아가면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많은 종류의 고통이 있습니다. 그중에 깊은 아픔을 주는 고통은 배신 당하는 고통입니다.배신은 기본적으로 신뢰를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신뢰는 모든 인간 관계의 중심이 되기에 신뢰가 깨지면 사람은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과 세상에 대한 안정감을 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배신이란 믿고 의지했던 사람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오늘 본문 이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데어 주시고,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예수님의 몸과 피를 그들을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어날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심각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리 없는 제자들은 성만찬을 한 후에 어떻게 하면 더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나눈 것이 아니라,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높은지에 대해 언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의 심각성과 예수님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부족함은 이뿐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든 늘 데리고 다녔던 수제자인 베드로를 향해 사탄의시험을 당해 예수님을 배신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베드로만 예수님을 배신 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같은 내용을 기록한 다른 공간 복음서에서는 모두 제자 모두가 사탄의 시험을 당해 걸려 넘어져 예수님을 버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있게 본문 33절에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이나 죽음까지도 각오하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오늘 닭 울기 전에 3번 나를 부인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닭 울기 전에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자신의 안전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 자신도 예수님처럼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믿음이었습니다. 말로는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것 처럼 하였지만, 예수님이 잡혀가시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이야기 하며 도망가는 것이 베드로 였습니다.
배신이라고 하면 또 한명의 제자가 떠오릅니다. 바로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 넘긴 가룟 유다 입니다. 물론 유다는 베드로와 같이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 한 것은 아닙니다. 유다의 배신은 자신의 욕심때문이었습니다. 유다가 생각하는 메시아와 예수님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가 꿈꾸며 기다려 왔던 메시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팔아 넘겨 배신을 하였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둘다 똑같이 예수님을 버리고 배신하였지만 그 둘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이후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죽을때까지 사명을 감당하였고 가룟 유다는 나무에 목을 메달아 삶을 마무리 짓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하였습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배신하였는데 베드로는 사도로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고, 가룟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결과를 맞이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베드로는 회개를 하였고 가룟 유다는 후회만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배신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통곡하였습니다. 그 통곡은 복받쳐 오르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되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과 회개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 후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다시 만나 베드로의 실패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어 예수님이 허락하신 그 사명을 성실하게 충성되게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는 반면 유다는 달랐습니다. 물론 유다도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은 30을 대제사장들에게 돌려주면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다”고 고백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신의 후회를 하나님께까지 가지고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죄책감 속에 갇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죄를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행위를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없습니다.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나의 죄를 해결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가룟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자신의 죄를 해결 하려 하였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회개와 후회를 구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은혜를 믿었고, 그 은혜를 통해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은혜를 바라보지 않고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자신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 은혜를 거부하였습니다.
예화
어느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큰 잘못을 저질렀고, 자신의 죄 때문에 교회와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다시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용기를 내어 목사님을 찾아가 울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미소 지으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자격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 청년은 다시 교회로 돌아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베드로와 유다처럼 연약한 존재 입니다. 부족한 존재 입니다. 우리는 늘 실패하여서 죄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보다 내 욕심대로 살아가 하나님을 실망 시키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다 그런 죄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실패 이후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유다와 같이 그저 절망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이시간에도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이사야 30:18에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Isaiah 30:18 NKRV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Joel 2:12–13 NKRV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이처럼 주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시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처럼 주님은 이미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실패 할 것도 아십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하신 것처럼 지금 이시간 우리를 위해서도 주님은 기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그 주님의 은혜는 한계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새벽에도 그 은혜를 붙잡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백성인 성도로 온전히 세우실 것입니다.
기도
능력의 주님 베드로의 연약함으로 실패한 후 통곡하며 회개했을 때, 그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시 회복시키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이시간 저희의 연약함으로 인한 과거의 실패를 주님앞에 내려놓습니다. 저희도 베드로처럼 다시 일어나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여전히 역사하시고, 우리의 부족함을 통해 더욱더 주님만이 드러나는 오늘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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