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집중하고 있습니까?
Notes
Transcript
사무엘상 24:1-7
여러분!
팔랑귀 아시지요?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믿거나, 그때그때의 의견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즉, 귀가 얇다는 속담과 비슷한 의미로, 외부의 의견이나 말에 휘둘리기 쉬운 성향을 의미합니다.
팔랑귀도 문제이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고집불통도도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더 가깝습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나님께 집중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설교 시간에도 수도 목사님들이 말하잖아요. 하나님께 집중한다는 것은 흔들림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생각이 잘 요동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작은 물컵에 물을 채우고 식탁위에 두면, 가벼운 움직임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반면 바다는 엄청난 바람과 파도에도 그저 고요함을 유지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작은 물컵의 신앙이 아닙니다. 바다와 같은 신앙을 가집니다.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말 하나하나에 다 대응을 하지 않아요. 들었어도 알고 있어도 하나님께로 가지고 갑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하나님 앞에서 나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말씀안에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나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는가? 거룩함을 좇아가고 있는가?
늘 나를 하나님께 맞추는 것입니다.
해바라기 꽃이 하루 종일 해를 따라가며 자신의 얼굴을 향하고 있듯 내가 늘 하나님만 향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간절하게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이 어떤 일들이나 말에 흔들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만 집중해서 요동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를 끝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자 말자 어떤 사람이 사울에 다윗의 소식을 알려 줍니다. “왕이여 당신이 죽이려고 했던 다윗이 지금 엔게디 광야에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은 바로 3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엔게디 광야로 갑니다. 엔게디 광야에 이르렀을 때 사울에게 생리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사울은 그곳에 있는 하 굴로 들어 가게 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굴 깊숙한 곳에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환한 밖에서 굴에 들어오니 굴 안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울은 그곳에서 생리작용을 해결합니다. 바로 이 때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에게 이야기 합니다. “지금이 당신의 원수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부하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벗어 둔 겉옷의 옷자락을 자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이 행한 이 일조차도 죄책감으로 괴로워 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가지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설교 서두에 말씀 드린 것처럼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 “삶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두사람 사울과 다윗을 비교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을 비교 했을 때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신의 삶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사울과 군사들은 블레셋과의 전투를 마치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잡으러 가기 위해 다시 떠납니다. 성경은 여기서 시간적 간격을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추론 할 수 있는 것은 다윗의 소식을 알려 준 그 어떤 사람은 사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블레셋과의 전투가 동네 아이들 전쟁 놀이가 아닙니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입니다. 군사들에게 있을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런 군사는 뒤로 하고 어떤 사람의 말을 듣자 군사 3천을 다시 소집합니다. 여기서의 3천은 블레셋과의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군사가 아닐 것입니다. 그 전쟁에 함께 참가한 극도의 피로를 느끼고 있는 바로 그 군사들일 것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만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고 군사를 이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말에 마음이 흔들리고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지 않는 그의 인생에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본문 4절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다윗도 사람들의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사울이 들었던 어떤 사람의 말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사울이 들은 어떤 사람의 말은 사울의 시기심, 사울의 잘못된 욕망을 자아내는 말이었지만 다윗이 들었던 사람들의 말은 다윗의 생명과 직결된 말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4: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다윗에게 조언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생명이 위급해 질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부하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왜 인가요? 그것은 다윗 안에 분명하고 명확한 소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이런 소신이 어디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께 집중하는 신앙, 믿음에서 온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대한 존중과 순종의 마음을 보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상황적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태도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사울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윗도 지금 사울을 죽이면 자신이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옷자락만을 잘라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자신의 행동에 큰 죄책감을 갖습니다.
사무엘상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왜 다윗은 사울의 옷자락을 베었다고 죄책감을 갖습니까?
원어로 베었다는 것은 자르다, 끊다의 뜻입니다. 즉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베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왕의 직을 끊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끈는 이 모습이 사무엘상 15 장에 예시로 보여진 적이 있습니다.
사무엘상 15:27–28 “사무엘이 가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사울이 사무엘의 겉 옷자락을 붙았을 때 사무엘의 겉옷의 옷자락이 끊어졌습니다. 이때 사무엘에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사울에게서 이스라엘 나라를 떼어 이웃 즉 다윗에게 줄 것이라 말합니다.
이 예시가 바로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떼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도망자의 신세가 된 이후부터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말을 해도 흔들림이 없는 것.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말씀셨습니다.
누가복음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께 집중하기 때문에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중심을 바로 잡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 바른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로 말합니다.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시대 상황 가운데 예수를 바라 보는 것입니다. 수많은 유혹이 예수께서 걸어가야할 십자가 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 집중하심으로 사람들의 유혹의 말들, 고난을 이겨내셨습니다.
사회에서 스트레스와 문제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의견 차이가 있을 때, 다윗이 사울에게 복수할 기회를 마다한 것처럼 감정을 절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매일 아침 체계적인 기도 시간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 교회에서는 개인적 감정보다 공동체의 화합을 우선시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여러분!
지금 나에게 어떤 말들이 들립니까? 유혹의 말입니까? 근거가 없는 말들입니까? 나를 모함하는 말입니까? 하나님께 집중 하셔야만 수 많은 말들과 상황에서 바른 길을 가실 수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