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재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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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저는 고등학교를 버스타고 다녔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버스를 타러 가야했는데, 그 길이 10분 정도 걸어야했던 길이었어요. 중간쯤부터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호수아가 태양아 너는 기부온 위에 머물러라 했던 것처럼 저도 버스야 아리랑고개 사거리에서 멈춰라. 아무리 그래도 해를 멈추는 것보다는 버스를 멈추는게 할만하잖아요?
그러다가 버스를 타게 되면 속으로 와~ 진짜 하나님 살아계신다. 21세기에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죠. 그런데 반대로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면 하… 뭐야 기도해도 소용없잖아. 하나님 할 수 있잖아요. 하며 절망하고 낙담했었습니다. 한 두번 그런 일이 있은 뒤 어느순간 저는 버스를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기도하다가 역시 안되네. 뭐가 안바뀌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기도를 멈춘 경험이 있으신가요?
부모님의 변화를 위한 기도.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 나라의 경제를 위한… 한 해 어떤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셨나요? 그 기도를 꾸준히 하셨나요? 아니면 어느순간 나도모르게 그 기도를 멈췄나요?
이처럼 우리가 기도를 하다가 낙담하게 되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하고, 그 기도를 더 이상하지 않는 이유는 내 시간표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합니다.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기도를 하는데 여전히 내 삶은 그대로이고, 변화된게 없어요. 이것이 반복되면 학습된 무력감이 우리에게 찾아오고 더 이상 기도에 대한 기대도 열심도 사라지게 됩니다.
1절을 메시지 성경으로 읽어볼까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끈질기게 기도하고 절대 포기하지말아야 할 것을 가치려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끈질기게 기도하고 절대 포기하지 말 것을 가르치려고 오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1절에는 우리가 기도할 때 낙담할만한 상황이 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본문에서 자세히 살펴볼텐데. 지금은 우리가 기도하다가 마음이 무너지고, 믿음이 흔들리고, 기도를 멈추게 되는 함정이 있다는 것이죠. 예수님은 그 함정을 경고하고 그 파훼법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살펴볼 때, 항상 기도해야하는데, 낙담하고 멈추는 일이 있네? 예수님은 무엇을 가르치고 싶으셨을까? 이런 맥락을 가지고 오늘 본문으로 함께 들어가고자 합니다.
2-4절을 메시지 성경으로 함께 읽어볼까요?
2.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람들도 안중에 없는 재판관이 있었다.
3 그 도시에 사는 한 과부가 계속해서 그를 찾아왔다. 내 권리가 침해 받고 있으니 나를 보호해 주십시오.
4. 재판관은 그 과부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본문의 상황은 과부가 자신의 권리가 침해를 받아 재판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과부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알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 문화를 찾아보니 여자는 인구조사를 할 때 포함하지도 않을 정도로 사회 구성원으로 염두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자신의 이름도 없었으며, 아버지의 이름에 여성형 어미를 붙여서 사용했으며, 그 다음의 자녀들에게는 둘째, 셋째가 이름이 되거나 혹은 큰애 작은애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들에겐 투표권도 법정 증인권도 없었으며 법적 지위가 단지 어린아이에 불과했습니다. 여성들은 결혼하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보호아래, 결혼 후에는 남편의 보호 아래 들어가며, 평생 남편과 관련하여 그들의 존재가 결정되었습니다.
철저한 남성중심 사회에서 홀로 남겨진 과부가 돈을 벌만한 경제적인 기회는 좀처럼 없었고, 외부의 도움이 없이 홀로 생활을 꾸려가기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이런 시대상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과부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과부의 권리를 보호해주고 구제에 힘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 22:22-24) 그래서 보아스도 룻이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허락한 것이죠.
지금 과부의 상황은 단순히 조금 억울한 일이 생겼다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과부에게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생계가 빼앗기는 위기에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과부를 보호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재판인 것이죠.
성경적인 재판관에 따르면, 재판은 하나님의 일인데 이것을 재판장들에게 맡겨주신 거에요.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재판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재판에 임해야 했습니다.
15 재판할 때에는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여 두둔하거나, 세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편들어서는 안 된다. 이웃을 재판할 때에는 오로지 공정하게 하여라.
그런데 과부의 재판에 뇌물을 주는 자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내린다고 소문이 자자한 재판장이 배정된 거예요.
과부는 뇌물을 낼 돈도 없고, 자신을 대신해서 주장할 보호자도 없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무기는 끈기였습니다. 3절 과부가 재판장에게 갔다에 원어적 의미를 살펴보면, 소송을 위해 한번 찾아갔다가 아니라 끈질기게 계속해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찾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5절을 메시지 성경으로 읽어볼까요?
4. 재판관은 그 과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과부가 계속해서 찾아오자 재판관은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나는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관심도 없고 사람들의 생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5 그런데 이 과부가 끝까지 나를 귀찮게 할텐데 뭔가 조치를 취해서 이 여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해주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 그러지 않으면 이 여자의 집요한 펀치에 내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말겠다.
그녀가 매일같이 찾아와 자신을 귀찮게 하는게 마치 여자의 집요한 펀치에 내가 멍이들 정도로 괴롭다는 것이죠. 그래서 재판장은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기로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비유의 교훈을 가르쳐줍니다.
메시지 성경으로 6-8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6.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들었느냐
7. 그렇다면 너희는 도움을 구하며 끊임없이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을 위해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정의를 이루어 주시리라고 왜 생각지 않느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권리를 지켜주시지 않겠느냐
8. 내가 보장한다. 하나님이 반드시 그렇게 해주실 것이다. 그분은 질질 끌지 않으실 것이다.
여기까지 우리가 읽으면, 오늘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교훈은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해야하구나. 무엇이든 간절히만 하면 되는거구나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기도 백지수표를 남발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 너희가 간절히, 들어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면 다 들어주실거야 라고 말씀해주신 것이 아니죠.
본문은 제가 처음 이야기했던 버스가 안 멈춘 이유는 결국 너가 간절히, 끈질기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6절에 등장하는 “불의”하다는 단어 때문입니다.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오늘 말씀의 핵심은 불의하다는 단어입니다. 불의한 재판장이 되기 위해서는 과부의 요청이 정당해야 합니다.
쉽게 예를 들어, 스왈로 사장님이 은혜랑 승아를 일주일 동안 가게가 너무 바쁘다고 시험기간인데도 매일 부르고 밤 11시까지 일을 시켰어요. 그런데 알바비를 안주는거에요. 그때 이 사장님은 불의한 사장님인 것이죠. 스왈로 사장님이 자주 저희 청년들에게 빵을 갔다주는데, 내가 좋아하는 애플파이를 안준다고해서 스왈로 사장님이 불의한 사장님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과부가 재판장에게 찾아온 문제가 정당한 이유가 되어야 하고, 재판관 역시 약자인 과부를 보호하고 정의롭게 재판해야하는 의무가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아야 비로소 불의한 재판관이 되는 것이죠.
이 비유에서 과부는 우리를,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가르쳐주시는 것은 너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때로 하나님이 불의해보일 수 있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불의해보여서 너희가 낙담하고 기도를 포기할 때가 있다고 미리 가르쳐주신 거에요.
하나님이 불의해 보이는 상황을 가장 잘 드러낸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장사의 소굴이 된 성전을 뒤집으셨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이 성전을 헐고 다른 성전을 사흘만에 지으리라고 말씀하셨죠. 예수님이 승천하고 40년이 지나도 성전은 그대로 있으며, 그 안에 타락한 종교지도자들도 그대로 있으며 아직도 심판을 받지 않았어요.
오히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고 열심히 살아가는데, 우리가 핍박과 심판을 받아요.
로마 대화재 사건을 아시나요? 네로 황제시절 로마에 14구역 중 10구역이 불타버린 대화재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울 2/3가 타버린 엄청난 국가적 재난이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이것을 잠재우기 위해 네로 황제는 기독교인들이 범인이라고 혐의를 씌웠어요.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고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기독교 박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함께 읽어볼까요?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죽이기 전에 시민들을 위한 오락에 이용했다. 일부 신자들에게 털옷을 덮어 씌워 개들이 찢어 죽이게 했고, 또 다른 신자들은 십자가형에 처했다. 또 다른 신자들을 불태워 밤에 등불처럼 밝히게 했다. 네로는 자기의 정원을 열어 이러한 쇼를 연출했고, 그는 원형 경기장에 서 마치 전차 경주자처럼 옷을 입고 전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벌을 받아 마땅한 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 들은 일반인들의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잔인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죽어갔기 때문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고 살아내는데 정작 그리스도인들이 목 베임을 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도하다가도 현실을 보면 하나님이 불의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왜 당신의 백성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내버려 두십니까?
하나님 악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계시록에서도 봤죠. 계 6:10 을 새번역으로 함께 읽겠습니다.
10 그들은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거룩하시고 참되신 지배자님,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지배자님께서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어 우리가 흘린 피의 원한을 풀어 주시겠습니까?”
순교자들이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지금 당신의 자녀들이 피흘리며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저 음녀는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우리의 피에 취해 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가 피를 흘려야 원한을 풀어주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과부의 요청과 너무 비슷하죠.
2000년 전 초대교회에서만 이런 일이 있었던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불의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상을 보면, 악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최근 말도 안되는 국가적 재난 사태가 벌어질뻔한 계엄령 사건. 자신의 투표를 위해서 자극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시위를 부추기는 운동권 정치인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범죄에 노출되고 피해를 받고 있어요.
제가 한 청년과 이야기하면서 기도제목을 받은게 회사에서 기독교인이라고 밝혀지자 회식자리나 평상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꼬장을 부린데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주십니다.
너희가 먼저 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핍박과 고난이 찾아올거야.
내가 불의한 것처럼 보이고, 원망도 들고, 마음이 무너질거야. 과부의 끈질긴 요청에 불의한 재판장도 들어주는데, 하물며 너희를 사랑하는 공의로운 내가 너희의 원한을 절대 외면치 않을거야. 내가 곧 원한을 풀어줄거야. 그러니 그때까지 나를 믿고 끝까지 기도해줘. 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해줘.
우리는 기도할 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 기도의 응답이 눈앞에 이뤄지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믿고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이죠. 우리는 믿음으로 고난과 역경을 견디며 충성스럽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기도해야합니다. 우리 함께 찬양한 것처럼.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며 이 귀에 아무소리 아니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믿으며 걸어가세
말씀의 결론을 맺으려고 합니다.
우리 옆 사람을 보면서 내가 널 위해 기도 할게 라고 말해 볼까요? 앞뒤 사람에게도 말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오늘 나에게 적용해보자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 가족을 위해서.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기도를 끈질기고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는 성도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옆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다보면 그 사람의 죄와 허물이 여전히 바뀌지 않고 똑같은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넘어뜨리게 합니다. 때로는 왜 하나님 도대체 만나주시지 않으세요? 하나님이 만나주시면 끝나는 일이잖아요. 라고 불의해보이는 하나님에게 원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그 일을 이뤄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이뤄가실 것입니다. 그 일이 우리 눈에 없어보일지라도 더디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며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 너를 위해 기도해(위클래시아)
